에이바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백화점에서 냄비를 할인 행사한다고 들뜬 마음으로 일찍 집을 나갔는데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일찍 갔는데도 다 팔렸어.
아마 아닐 것이다. 에이바는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물건이 남아 있었어도 경쟁자들의 몸싸움에서 밀렸을 것이다. 남은 물건을 손에 쥐었더라도 누군가 에이바의 팔목을 비틀어 뺏었을 것이다. 에이바는 그런 여자였다. 밀리고 사는 여자. 뺏기고 사는 여자. 양보하고 사는 여자.
브로디는 그깟 할인으로 몇 푼이나 아낀다고, 돈 줄 테니 차라리 웃돈을 주고 더 좋은 걸 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아득바득 아귀다툼에 끼어 들어 수모만 당하고 돌아온 것이다. 더블린에서 가장 비싼 주택가에서 살고 있으면서, 매달 그냥 써도 되는 돈에 한도가 없으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에이바는 가난뱅이의 고질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웃기는 건 가난뱅이의 나쁜 버릇은 고스란히 갖고 있으면서 가난뱅이의 가장 중요한 생존 본능은 없다는 점이었다. 억척스러움. 에이바는 가난뱅이 집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억척스럽지 못했다. 항상 자기가 제일 먼저 포기하고 양보하고 뒤로 물러 났다. 자기의 생존이 위태로운 지점에도 본능적으로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는 생존력 제로의 인간이었다.
생존력 제로 에이바. 야생에 내던져지는 순간 가장 먼저 먹이감으로 전락할 최약체. 그래서 브로디와 맺어진 것일까. 브로디는 어쩌면 에이바에게 동정심을 느꼈던 건 아닐까. 에이바를 그냥 두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부부 관계를 맺은 건 아닐까.
에이바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백화점에서 팔목이 비틀리고 내쳐졌지만 집에 와선 표정이 밝았다.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설거지를 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오래된 냄비를 꺼내 재활용을 하려는 듯 설거지를 했다.
솔직히 말하면 브로디는 집에 냄비가 없으면 했다. 왜냐하면 에이바는 요리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요리를 못하는데 요리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될 수 있으면 외식을 하려고 했지만 에이바는 끈덕지게 집밥을 고집했다. 에이바가 해준 밥을 먹는 것이 매번 곤욕이었지만 브로디는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머니 에밀리도 요리를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맛 없다는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브로디에게 말했다. 코 막고 먹어. 그러면 먹을만 해.
아버지는 꽃집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스위스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꽃집 아줌마는 스위스에 가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날이 정해지면 브로디와 에이바도 함께 갈 계획이다. 결혼식 대신 신혼 여행을 가기로 한 건 에이바의 아이디어였다.
브로디는 회사가 적대적 인수를 당했다는 사실을 에이바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기와 다름없는 협잡 행위로 자신의 지분이 다른 회사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브로디는 아버지에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을 하다가 포기했다. 버크 오거닉스는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킨 것으로 만족했다.
그럼 우리 돈 없는 거야?
회사의 소유권이 넘어갔다는 말에 에이바는 놀란 듯 물었다. 돈은 그대로 있고 더 이상 회사를 마음대로 경영할 수 없게 된 것이란 이야기를 듣자 다행이라고 했다. 에이바는 브로디에게 얼마나 있는지 몰랐다. 대략적으로 이야기해 준 적은 있지만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았다. 에이바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에이바가 관심 있는 건 오늘 저녁에 무슨 요리를 할 지 뿐이었다. 브로디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도 에이바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에이바는 현생을 사는 여자였다. 과거도, 미래도, 세속적 삶의 기준도 없었다. 에이바는 지금 당장 한끼 식사가 전부인 사람이다. 브로디가 모든 걸 잃고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에이바는 브로디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걱정마 남편, 내가 먹여 살려 줄게.”
농업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일장춘몽이었다. 애당초 그런 신기술이 그렇게 빨리 받아들여진 역사가 없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빙하의 유속처럼 느리게 발전해왔다. 자연과 인간은 영원히 공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주장도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버크 오거닉스의 기술들이 사장된다 해도 브로디는 미련 갖지 않기로 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들이 그렇게 살기로 했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대로, 그들은 그들의 선택대로 사는 것이다.
에드나가 그랬다. 사장님 이제 수도승이 된 것 같다고. 머리 깎고 동쪽으로 가셔야 할 것 같다고. 브로디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다. 감정 기복이 사라진 것 같았다. 일희일비 하던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세속적 변화에 심정 변화가 없는 브로디를 보고 직원들은 경외심을 느꼈다. 사장님이 세상 일에 달관한 사람이 되었다고, 에드나의 말처럼 속세를 떠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에린의 죽음이 끼친 영향이라고 했지만 에드나는 과학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사업자가 아니라 과학자가 된 거라고. 그래서 저렇게 의연할 수 있는 거라고. 에드나는 과학을 하면 부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세속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내일 죽어도 여한 없는 인생이었다. 40년 넘게 살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해본 것 같다. 복받은 인생이었다. 특이 능력을 갖고 태어나 그 능력으로 남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봤다. 지금 브로디에게 중요한 건 에이바와 뱃속의 아이다. 이들 외 다른 미련은 존재하지 않았다.
냄새로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는 법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여자 아이 같다. 에이바에겐 말하지 않았다. 에이바는 여자 아이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여자 아이를 낳아서 머리를 땋아주고, 함께 동요를 부르고, 먹거리를 기르고, 채집을 하고, 요리를 하길 꿈 꾸고 있었다.
에이바는 벌써 아이 이름까지 지어 놓았다. 여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가 남자가 태어나면 크게 실망할까 봐 브로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브로디는 대런에게 새로 태어날 아기의 대부가 돼 달라고 했다. 대런은 ‘제가요? 왜요?’라는 표정이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런은 지금껏 항상 그렇게 임무를 맡았다. 터무니 없는 일들을 아무 대꾸 없이 수행했다. 세계에서 제일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을 대부로 얻는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가장으로서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랄까. 대런이 어떤 사람인지 에이바가 모르는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평생 모르고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게 더 안전한 삶일 테니까.
오라일리 교수는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거기서 음악 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했다. 자식 핑계를 댔지만 오라일리 교수는 사실상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 상태였다. 오라일리 교수는 로리 맥닐리의 다음 희생자는 자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렉 웰런의 죽음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로리 맥닐리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배신자”에서 지옥의 저승사자가 돼 있었다. 영국으로 피신한 그는 아일랜드에 공포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오라일리 교수는 로리 맥닐리를 유기견 취급하고 있었다. 저 꼴 사나운 개새끼 보라며 막대기로 찌르고 때리고 조롱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유기견은 미친개가 되었고 미친개에겐 염력이 있었다. 염력으로 인간을 조종하고 있었다. 미친개의 염력은 강한데다 공권력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
브로디은 더블린 경시청에 3년만에 돌아왔다. 그렉 웰런 살해 사건은 브로디의 마지막 경시청 임무였다. 온 몸에 특수 연소액을 뿌리고 자살한 범인이 계산하지 못한 건 연소액이 발가락에 닿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범인의 타다 남은 발가락엔 자연의 생태계가 있었다. 범인의 유전자와, 성장 배경, 즐겨 먹었던 음식과, 함께 했던 관계, 그리고 가장 최근 행적들. 후각 능력은 경험과 함께 강화된다. 타고난 재능은 중요한 게 아닐지 몰랐다. 브로디가 농부의 자식이 아닌 금융가의 월급쟁이로 자랐다면 그의 후각 능력은 쓰임새가 있었을까. 지금처럼 발달할 수 있었을까. 과거 의미없이 지나쳤을 분자 알갱이는 이제 브로디에게 새로운 우주였다. 그의 후각은 세월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과거 대수롭지 않았던, 쓸모 없었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소름 돋도록 방대한 의미를 전했다.
로리 맥닐리의 실험실은 예상대로 바다 위에 있었다. 브로디의 냄새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을까. 로리 맥닐리 측이 몰랐던 사실은 바다 위에도 꽃가루와 포자와 흙먼지가 떠 다닌다는 점이었다. 바다 위 로리 맥닐리 수하들은 해안가에 무수히 핀 들꽃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꽃들과, 곰팡이들, 그리고 흙먼지들이 서로 몰랐던 이들을 연결해줄 것이라고, 손님을 불러 올 것이라고 상상한 적 있을까.
군인들은 고무 보트와 잠수 장비를 이용했다. 배에는 레이다 장치가 있을 것이고, 자폭 시설도 설치돼 있을 것이다. 열화상 카메라에 따르면 배에는 16명이 있었다. 12명은 갇힌 상태, 4명은 일 하는 상태, 군인들의 임무는 이 4명을 제압하고 배를 압수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어떻게 자폭 장치를 무력화 시키고 일개미들을 제압한 것인지 브로디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지휘관이 설명해줬는데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증거 확인을 위해 브로디는 대런와 함께 배에 승선했다. 이들이 알지 못했던 것은 갇혔던 이들 중에 실험이 완료된 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병정 개미였다. 실험실에서 번데기였다가 실험이 완료되면 병정 개미가 된다. 병정 개미가 군인 한 명을 해치고 도망가다 대런과 마주했다. 대런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다 위에서 도망 가는 길은 죽음 뿐인데 어째서 저항하는 것인지. 병정 개미는 특이한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어떻게 휘둘러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게 디자인 된 나이프였다. 대런은 차분했다. 상대의 전투력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어떤 상대든 상관 없다는 무념무상 자신감일까. 대런은 무기도 꺼내 들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동작의 민첩성을 저해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대런은 주말마다 격투 노름판에 가서 뭘 했을까. 본인도 격투에 참가했을까. 그러는 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 물어 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다. 브로디가 후각의 경험치를 쌓은 것처럼, 대런도 시각의 경험치를 쌓았을 것이다. 어떤 근육의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어떤 반응이 어떤 근육의 움직임을 낳는지, 많은 데이터를 쌓으며 정교한 직감을 얻었을 것이다.
실전은 사무라이 결전에 가까웠다. 눈 깜짝할 사이 승부가 갈렸다. 병정 개미는 손목이 잘렸다. 버티컬 카운터. 키가 작고 팔이 짧은 대런의 역발상이었다. 수평 공격이 들어오면 아래에서 위로 찌른다. 공격하는 순간 겨드랑이 밑으로 순간이동 하는 대런의 칼날은 처음 보는 사람에겐 속수무책 필살기였다.
대런은 어깨에 칼을 맞았다. 누구와 붙어도 맞는 법이 없는 대런에겐 예외적인 일이었다. 대런은 병정 개미의 움직임이 생소했던 것 같았다. 정상인과 실험체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려면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할 것이다.
대런은 갑판 위로 도망 가는 병정 개미의 발뒤꿈치를 잘랐다. 손발의 인대가 잘린 채 바다로 뛰어든 병정개미는 군인들에 의해 생포됐다. 생포된 이들은 로리 맥닐리와의 실험체의 연관성을 확인해 줄 지 모른다. 그러면 영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소환 요구를 들어줘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로리 맥닐리가 소환된다 해도 그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았다. 미친개가 외국에 있으나 우리 안에 갇히나 달라질 것이 있을까, 오히려 우리 안에 갇힌 쪽이 더 위험한 건 아닐까.
또 다른 실험실이 있는지, 실험실에서 풀어 놓은 실험체가 몇 명이나 더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실험실의 모든 자료는 삭제/소각되고 남은 것이 없었다. 앞으로 또 다른 실험체가 발견되어야, 또 다른 희생자가 나와야 추가 조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경시청에서는 로리 맥닐리와 관련된, 그와 적대적 관계의 인사들 근무지와 주거지에 경호 인력을 배치했다. 경호 인력들은 실험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주의 사항을 교육 받았다. 해당 주의 사항은 브로디를 포함한 모든 경호 대상들에게도 전달되었다.
- 실험체는 목표물을 살해/파괴/제거하기 위해 개발된 생물학 병기임.
- 지금까지 발견된 실험체는 모두 인간이지만 동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 실험체는 정체를 가리고 다닐 가능성 높음. 색안경, 모자, 두건, 후드티, 쇼올, 히잡 등.
- 실험체는 의사 소통 능력이 없을 가능성 높음. 언어적, 시각적, 신체적 소통 불가.
- 실험체는 같은 조건 일반인에 비해 최소 30%에서 최대 100% 더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임.
- 실험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신체 일부가 잘려도 임무 수행을 중단하지 않음.
- 실험체는 뇌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며 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음.
- 실험체는 뇌/머리가 파괴되어도 움직임에 영향이 없으며 임무 수행을 중단하지 않음.
- 실험체를 막기 위해선 몸의 물리적 작동을 중단시켜야 함. 혈류, 호흡, 신경 기능 마비가 효과적.
- 무기 사용시 심장 혹은 대동맥을 우선 파괴해야.
- 테이저건 등 전기 충격도 효과적.
- 박치기, 깨물기, 급소 가격, 어떤 신체 공격도 무용지물.
- 신체 접촉, 맨손 격투, 육탄 저지 절대 금지.
- 모든 종류의 근접전 절대 금지. 근접전 무기 사용 금지.
- 머리 공격 절대 금지.
- 실험체는 인간이 아닌 기계라고 생각해야 - 죽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작동 불능시킨다고 생각해야.
정성주의 기술은 당분간 묻어 둬야 할 것이다. 극히 일부만 유출됐는데도 이렇게 무서운 혼란이 발생하다니. 다른 기술들까지 공개될 경우 어떤 참극이 발생할 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는 항상 그랬다. 하버-보슈 기술은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데 쓰였고, 원자력 기술은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쓰였다. 같은 패턴이다. 기적의 다이어트 약이 되었어야 할 정성주의 기술은 연쇄 살인마를 만드는데 쓰였다.
브로디는 집 담장을 더 높게 쌓았다. 정원 식물들 일조량에 악영향을 주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담장 위를 넘어 오는 개나 사람 크기의 물체가 있을 경우 경보가 울린다. 그 사이 대피실로 대피가 가능하다. 경보가 울리는 추가 경호 인력이 투입된다. 집은 특수 경호원들로 둘러싸인 안전 가옥이 된다.
집을 경호하는 사람들에게 에이바가 푸딩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다 브로디에게 제지당했다. 임무 수행 중인 사람들은 정해진 음식만 먹어야 한다, 절대로 사적으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논리로 에이바를 납득시켰다.
회사는 당분간 데이나가 운영을 맡을 것이다. 새로운 이사회에서 새로운 경영진을 꾸릴 때까지 데이나는 별 탈 없이 회사를 이끌 것이다. 대규모 인력 조정이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다. 그 사이 브로디는 방치해 두었던 집 정원을 꾸밀 것이다.
다시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매일 아침 정원으로 출근해 잡초를 뽑고 병충해를 검사했다. 흙의 상태와 식물의 신진대사를 확인했다. 새로운 농법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당분간 엣날 방식으로 식물을 길러 보기로 했다. 비즈니스를 위한 재배가 아닌, 재배를 위한 재배였다. 그러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다.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 기다리면, 또 다른 새로운 종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에이바는 정원에 핀 꽃을 가리키며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브로디는 그 꽃은 아직 이름이 없다고 했다. 에이바는 꽃이 마음에 든다며 자기가 이름을 붙여도 되냐고 했다.
무슨 이름으로 하려고?
브로나.
그거 당신이 지은 딸 이름이잖아.
이 꽃처럼 예쁜 애가 태어날 테니까 같은 이름으로 하려고.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브로나. 어디서 들었을까? 에이바는 이 이름을 직접 지은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들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