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설익은 가을이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살다가, 11월 중순부터 편의점 앞 배너용 풍선처럼 미친 듯이 앞뒤로 흔들면서 할머니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난리를 쳤다. 작년 9월에 바뀐 센터장까지 나서서 한 두달만 쉬고 오면 어떻겠냐고 설득까지 당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나보고 진로교육 교과연계과정 센터용으로 책 만들라고 하는데 그거까지 3년차때 하고 나면 나는 그냥 ‘교육인’으로 살아야할 것 같은 감각크였다.
연말에 진로 관련 강사들이랑 모여서 체험 비슷한 식사를 하는데 한 강사분이 그랬다. ‘하던거 계속 하는 게 편하지 않아요?’
나도 모르게 별로 안친한데 툭 대답해버렸다. “하던거 아닌데요”
하던거 아니라고...그림 그릴거라고...
일 배우러 온거라고, 말뚝 박으러 온 거 아니라고....
할머니 상사는 내가 그만둔다는 난리쇼를 2달 연속으로 하자 슬슬 진짜 그만둘건가 보다 하고 허겁지겁 담당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담당자는 아예 관련 자격증도 경력도 없었던 사람으로, 당일날 면접보고 오후에 와서 연차나 수당을 물어보더니 그대로 못하겠다고 잠적하였다.
두 번째 담당자는 몇 주간 이력서를 받아서 대여섯명을 모아놓고 면접을 진행한 후 들어온 담당자였다. 얼마 전에 자격증을 따서 경력은 없지만 열의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 열의에 지쳐 한 주 만에 도망갔다.
이쯤 되니, 인수인계 하는 내 입장에서도 이게 이 돈 받아가면서 하기에 그렇게 힘든 일인가? 라는 고민을 하였다. 책임부담이 좀 있는 일이긴 하다.
두 번째 담당자가 이거 3명이 하는 일이라고 자꾸 우기길래, 최저시급이 올라서 1명이 3명 몫을 해야되는 뉴트렌드 노동시장이 형성된거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인수인계 진행했다.
뽑아놓고 대단한거 시킬 것도 아니면서 왜 사람을 시험 보고 뽑는지 알 것도 같다. 시험 보고 뽑아야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버틸거 아닌가. (복지라는 부가서비스는 덤)
그냥 계약직으로 뽑으면 반의 반도 안되는 양이라도 에구머니나 하고 사람 도망간다. 시험은 궁댕이 싸움이 맞다. 궁딩이가 무거워서 못 도망간다.
세 번째 담당자는 멀쩡히 다닐 것이라고 예상했던 두 번째 담당자가 도망가면서 할머니 상사가 차선으로 생각했던 분한테 연락해서 구했다. 이 분은 관련 기관에서 4년 정도 경력이 있었고 관련 전공도 하셨다. 그래봤자 완전 쌩둥맞는 일이긴 했지만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당장 운영계획서나 사무편람을 제출하거나 이자반납을 하는 등, 기존의 담당자가 있어야 해결되는 문제가 있어 인수인계 후 몇 번 방문하게 되었고, 그대로 봉사활동 비슷하게 일주일에 한 두번 가게 되었다. (할머니 상사가 한달 급여 60%을 1회 준다고 했다. 짠순이 할머니 모럴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날 정말 좋아서 붙잡은 거였다)
결론은 모냐, 직장은 그만뒀는데 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국 받아드리기 나름이라고, 2년동안 일한 업무를 칼로 무짜르듯이 도망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
애매한 이 상태 그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문학관에 글을 쓸 때는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어따 팔아먹었는지 성냥팔이 소녀마냥 불 켜지는거 맞지유 싶은 성냥을 들고 굽신거리면서 허겁지겁 붕어빵 처먹듯 써내려간다.
지금이 그 날이다.
멍때리고 할머니 상사와 쭉 떨어진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그간 일하면서 작업했던 그림들을 앨범에서 쭈욱 훑어보는데, 별의별 실험적인 그림을 그려댔다 싶더라. 한참 보다가 왜 그렇게 그렸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리던 스타일이 정말로 내가 좋아서 그리고 싶은 건지, 아니면 배운대로 눈칫밥으로 흉내내기만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서양화 기법을 배웠지만 21살에 스알짝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릴 때 낙서 형식으로 그리는 습관이 남아있었다. 어릴 때 자유롭게 그렸던 나와 그림을 잘그리고 싶어서 그림답게 만드는 훈련을 한 내가 부딪치고 엮이면서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위대한 화가에게는 언제나 고난과 역경이 뒤따라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개소리다. 니가 그림경력이 X만해서 그런거임.
누가 내 그림을 훔쳐먹었습니까?
춥고 건조하고, 습한 눅눅한 우리네 센터건물 안에서 이따구(?) 그림을 예뻐해줬던 문학관 독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센터에서도 내가 일을 잘하진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늦게까지 남아서 하거나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거는 좀 더 하고, 해야하는 것들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그냥 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랬다.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일을 그만두고 계약기간이 끝나고 쿰척쿰척 가뭄에 콩 나듯 사무실에 오면서 알겠더라.
나의 가능성을 보고 좋아해줬구나. 내가 잘해서 그런게 아니라, 최소한 이 정도는 하니까 앞으로 이 정도는 할 것이고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말들이였다.
내가 할 수 있을만큼 해내는 과정에서 따뜻한 시선을 받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되가고 있다. (매번 알면 프리패스급 인간 되겠지만 매번 알지는 못한다)
항상 따뜻하게 바라봐줘서 코맙습니다.
그동안 했던 것처럼 계속 그림과 글을 엮어서 작업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새해복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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