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2021년였다. 비대면 박람회가 있는데 마땅히 영상편집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곰믹스프로 같은 허접 초보자용 프로그램으로 편집질을 한 게 시작이였다.
매장에서 못말리는 아버지를 둔 딸이 디자인 하고 싶다니까 퇴근길에 300만원짜리 넘는 와콤 윈도우프로를 구입, 무심결에 내뱉은 딸은 큰 화면에 그림 그리는 것이 막막 한 나머지 기계 나부랭이 따위는 꼴도 보기 싫다고 나한테 거의 새 제품으로 중고나라에서 180만원에 팔았다.
나는 신나서 가져왔지만 나한테도 허들이 높았다. (눈물)
하여간 고사양 와콤 윈도우 프로로 대학숙제 좀 하다가 곰믹스 허접용 영상편집프로그램 편집을 하는데 얼마나 재밌던지, 내가 이런것도 할 줄 아는 구나 하고 신났었다.
그것을 계기로, 엑셀(only sum)과 편집 좀 하는 날을 눈여겨 본 할미상사는 2년 후 너 운전할 줄 아냐고, 그까짓거 차만 있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날림으로 셀프홍보 하는 나를 채용.
지옥의 2023년이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포크로 맥주효모로 극복했다는 할미상사 머리통을 쑤시고 싶었던 나날이 지나고 올해 2년차로 너 믿고 한다는 할미상사의 부담스러운 말을 들을 때마다 뒤돌아서 눈물 짓는
요즘 그동안 평생교육사로 진로센터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작업 욕심으로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대충 학생들 대상으로 행정일 한다고 생각하면 됨)
첫번째는 흙놀이 프로그램으로 2023년 문화예술프로그램 결과집 작업을 했다.
나는 서울디지털대학(온라인대학)을 졸업했는데 거기 유일무이한 국가자격증이 문화예술교육사였다.
당시 꿈다락토요문화학교나 지역특성화 사업을 병행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분명 미술을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 4천만원짜리 도예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시스템관리부터 간식비 구입까지 할머니 이것은 뭐만 하면 소리지르면서 나를 닦달하는데 미술이고 나발이고 정서가 망가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배운다고 생각하고 걍 참았다. (대신 놈팽스한테 온갖 스트레스를 풀었다…)
몇 개 좋았던 건, 발달장애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22회차 진행하는데 보면 볼수록 귀엽더라.
글자도 겨우 쓰던 모지리남자애가 뭘 물어볼때 ‘네!’하고 대답하는 게 그렇게 기특해보일 수가 없었다. (발달장애인은 나이를 먹어도 일정 이상 정신 연령이 올라가지 않음.)
원래는 7월 이후에 들어왔던 예비 간사가 결과집을 작업한다고 했었으나 시간 부족으로 2개의 결과집 중 한개는 내 쪽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미리캔버스를 통해 책자형식의 작업물을 하게 되었고, 프린트물로 간이 제작해서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두번째는 2024년 1월이다.
하게 된 계기는 우울한데, 7월에 예비간사로 들어와서 자신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겠다고 뽐뿌 오지게 부렸는데 캠프도 그렇고 기존의 약속했던 것이 실상 너무 부풀려져 있었던게 뽀록나면서 도망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할미상사는 그정도 까지 사태를 파악하진 못했으나 캠프 끝나고 나한테 전화와서, 너가 1년정도만 있어주면 예비 간사를 제대로 된 간사 답게 만들어보겠다고 무려 나한테 징징댔다. 그 기쎈 할미가 그러는데 왠지 짠해서 나도 모르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쁘띠간사 그녀는 그 다음해에 7월에 도망갔다.)
어찌어찌 다시 1년을 보내게 된 나는, 2023년 정산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우울해서 못 참았다. 도대체 여기 앉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할미상사의 고나리질로 8년째 유지&성장된 센터의 시스템에 등록된 진로체험처 목록을 뒤집어 깠다.
충남도내에서 꽤나 상위권이였기 때문에 이렇게 관리가 잘 됐는데 그저 우리만 알기엔 아깝다 싶어서 책자로 만들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한 … 100페이지 되더라. 4월까지 작업했던 것 같다.
그리고 쓸모없는 센터의 이해력만 증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공오피스를 1년 임대하여 그림을 그려 나가겠다는 마음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7월에 들어온 뿌띠간사는 부릉부릉 벌려놓은 일과 주둥이에 비해 제대로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시댁, 불규칙적 생활, 건강악화, 애들, 남편, 대출 등)으로 치닫으면서 올해 7월을 기점으로 충북으로 시댁을 모셔야 한다고 떠났다.
아직도 그녀는 SNS에 가톨릭대학원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고 앞으로 박사가 될 것이며 강의를 나가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어느정도 뿌뿌띠간사의 허영을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할미 상사는 의심만 하고 닥달만 했지, 이런식으로 통수 맞을 지는 몰랐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하고
나는 여름에 쁘띠간사가 벌려놓은 자료와 계획을 폴더에서 찾아봤다.
원래 센터 자체 상품은 창업캠프(6시간)짜리 밖에 없었는데 어쨌든 쁘띠깐사와 함께 진로탐색지(2시간) 프로그램을 만들긴 했다.
실제로 중학교 1학년 대상으로 나갈 때, 쁘띠깐사는 함께 했다.
하지만 원래 쁘띠깐사가 약속했던 것의 일부였고 난 충분히 납득했다.
처음부터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였다. 사회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나보다 나이든 사람한테 ‘애기’같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벌려놓은 자료집이 워낙 방대해서 그동안 이야기가 나왔던 보드게임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하나 더 짜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 이거 까지만 하면 올해 일 하면서 뭔가 하나 더 배우겠지.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하고
2달동안 뒤지는 줄 알았다. 근데 60%까지 완성 못함.(박람회가 있어서 시간이 읎)
4시간 짜리 호흡의 프로그램 하나 짜는데, 온갖 보드게임과 퍼즐책, 관련 경제용어와 프로그램 흐름까지 모두 연구해야되는 지 미처 몰랐다.
'응, 이건 내가 아니라 어디 연구원에서 돈 받고 일하는 연구진이 하거나, 이게 능력인 사람들이 하는 일이였군'
어쨌거나 문화예술교육사든 평생교육사든 프로그램 기획이 핵심인데, 온갖 자료집과 관련용어로 짜집기해서 만들어냈다곤 하나 결국 만들어내기 시작하니까 새삼 그동안 문학관에서 깨비로서 연재 아닌 연재를 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선정하고 다음에는 뭘 할 까 라는 고민을 그동안 하지 않았다면 뭔가 배우기도 전에 할미 상사 머리통 포크 찍고 도망갔겠지. 옛날처럼.
롯데시네마랑 카페에서 일하면서 앞으로 작업은 앉아서 많이 하니까, 앉아서 하는 일을 하면서 순서있게 작업을 하는 걸 배워야겠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도움이 되었다.
몰입도 있게 작업할때마다 건강악화로 이어졌는데 일하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순서있게 일하는 것 등등 사소한 집안일부터 생활을 알게 된 게 도움이 됐다. 또 공공오피스 작업실도 올해 말로 빼기로 했고, 집에서 사무실처럼 PC를 구입해서 셋팅하고 작업하고 있다.
근데 퇴근하고 오면 힘들어서 작업 시간이 스몰사이즈임.
응 거지 체력
사무실에서 작업하면서 매번 느꼈다. 깨비로 작업하면서 살 지 않았다면 못했을거라고. 없는 거 있는 거 주섬주섬 꺼내가며 갱신히 이어가는 깨비에 비하면 할만 한 것들이였다.
하지만 깨비로 살아가는 것이 피카츄 오만배 파이리 더블악셀 재밌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만들어가려고 한다. 진지하게 취집도 생각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멀리 보면 똑같은거 같은데 그래도 깨비가 쬐금 더 영혼있는거 같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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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게 없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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꺌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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