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음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영화가 있다. 처음 이 영화를 본게 2015년인데, 그때 나는 뉴질랜드에서 교환학생 중이었고 잘생긴 아시아계 남자애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꽤 심각하게 좋아해서 매일 밤 걔한테 메시지하거나 울거나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았다. 그날 밤, 나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잠을 못잤다.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걔는 나를 안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걔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고있었어 어떻게 이런착각을 했지? 진짜 쪽팔리다. 쥐구멍에 숨고 싶다‘

그 뒤로 일주일동안 쪽팔려서 잠을 못 잤다.

내가 근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는 나랑 단둘이 있을 때 나를 특별하게 대했다. 우리는 밤에 산책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대화하곤 했는데 그는 자신의 어릴 때 일이나, 미래의 꿈 같은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나와 같이 요리를 하거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기도 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안하면 며칠 뒤 먼저 연락을 해왔고, 나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그게 로맨틱한 관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왜냐면 결정적으로 내가 사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거절했으니까.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친구로 지냈고, 그는 내게 매우 친절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이 영화를 보고 현실을 직시하기 전까지).

 

영화에 따르면 여자들은 ‘걔가 널 좋아해서 괴롭히는거야’라는 말이나 ‘걔는 사실 널 좋아하는거같아’라는 말을 하기를 좋아한다. 여자들끼리 위로도 그런 식으로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나를 좋아하는데 부끄러운 거겠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르겠지. 서툴러서 그렇겠지. 등등 이유를 만들어내면서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만약 남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면 먼저 연락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특별한 관계가 되고싶다고 말할것이다. 그게 아니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놓치는 건 상대 남자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에. 또는 말로는 여자를 좋아하는 척 하기 때문에. 그런데 행동을 봐야한다. 어떻게보면 단순하다.

 

그때 짝사랑했던 데릴은 아직 인스타그램 친구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6년만에 포스팅을 해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데릴은 최근까지도 내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건 2년 전이다. 별 얘기는 안 하고 자기 집 샀다고 해서 “오 성공했네”하며 축하해줬다. (나랑 밤산책할 때 직장인으로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말하며 집을 사는 걸 이야기했었다. 7년 전에 그가 말한 꿈을 이룬게 좀 뭉클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일 년 뒤, 데릴은 갑자기 메시지로 “그때 너랑 사귀었어야 했어. 그 뒤로 너만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없었어”라고 말했다. 자기가 나를 좋아했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도 왜했는지 모르겠다.) 새로 생긴 여자친구의 인스타 계정을 나도 모르게 염탐했는데, 즉각적으로 나랑 닮은 외모라는 걸 알게됐다. 이목구비가 크고, 쌍커풀이 진하고, 얼굴 중안부가 짧고, 보조개가 있고, 전반적으로 귀여운 인상에, 잘 웃고, 생기있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 둘러쌓여 있고. 나의 이런 모습을 데릴이 좋아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데릴이 내게 반했었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런데 아니다. 나한테 메시지로 뭐라고 말했건, 내 인스타를 염탐했건, 그 뒤에 여자친구를 어떤 사람을 사귀었건, 관계없이 남자가 내게 한 행동을 봐야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동이었는지? 비참하게 하는 행동이었는지? 데릴의 행동은 후자였다.

 

그가 내게 반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존심에 금이가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과거의 매력적인 남자들을 생각하면서 ‘걔가 사실은 나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한다. 내 블로그를 매일 염탐하던 구남친.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 열정적으로 피드백을 줬던 선배.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는다 ㅋ 왜냐면 진짜 좋아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아무리 잘해줬거나 애매하게 굴었다고 하더라도, 먼저 연락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사귀자고 하지 않는다면 호의, 잘해봐야 호감 정도일뿐이다. 착각에 빠져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 나의 손해인 것이다. 

 

물론 그런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상대가 매력적이라는 건 인정한다. 일례로 데릴의 새로 사귄 여자친구는 팔로워 7,000명의 뉴질랜드 배우였는데, 나와 외모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10배쯤 더 활기있고 자연스럽고 매력적이고 자신감에 차있는 여자였다. 그러니까 데릴이 그녀에게 반한거고, 그녀를 만날만큼 데릴 자체도 매력적인 남자였던 것이다. 그런 매력남과 썸씽이 있었다는 것자체는 좋은 추억인 거 같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지. 그러니까 내게 반한 남자를, 내가 진심으로 대할 가치가 있는 남자를 찾아야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냥 알아볼수있다. 여자에게 반한 남자는, 여자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나있고, 그러기 위해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작품 등록일 : 2025-02-17
최종 수정일 : 2025-02-17

▶ 연애의 목적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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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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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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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
stra******   
좋은 글이넹 나도 정신차려야지 일욜에 할 일 다하면 이 영화 봐야겠다
카레   
스스로가 만든 착각이랑 희망고문에서 벗어나는게 정말 힘들지 ㅠ
무도회장   
너무 맞는 말 하 나도 걔가 날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an*********   
테일러스위프트 뮤비같은 느낌ㅎㅎ글 좋다 고마워
ja******   
좋다
레모나   
오 내 상황에 맞는 글이다! 나도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거였어
ta******   
오 좋은 글이다
ho******   
오 재밌엉
가마니   
오 재밌다ㅋㅋㅋㅋ외국 러브코미디소설 프롤로그 한편읽는 느낌ㅋㅋ
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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