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연애의 목적은 과시였다.
—
예전에 아는 작가가 쓴 원고를 읽고 합평하는 모임을 가졌던 적 있다. 그는 당시 아마추어 작가였는데, 내게 원고를 먼저 보여주고 평가가 궁금하다기에 내가 글 쓰는 아는 지인을 모아서 그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모임에 자기 여자친구 A를 데려왔는데, 그런 모임에 갑자기 애인을 데려온다는 게 지금 생각하니 이상하지만 그때는 뭐 그러려니 했다.
합평을 했던 건 생각 안 나고, 기억에 나는 건 그가 여자친구를 대하는 태도다. 내 여자친구 정말 특별하죠? 잘 보세요. 나는 그녀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그녀 역시 그의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전반적으로 꼿꼿하고 도도했다. “A는 정말 예측할 수가 없거든요.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사실 내게는 그녀가 평범하게만 보였다. 외모도, 스타일도, 성격도. 특히 남자친구의 합평회에 따라와서 은근슬쩍 과시하는 듯한 태도는 좀 별로였다. 하지만 솔직하자면, 지금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적어도 서로에게는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겠지. 그렇게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게 부러웠던 것이다.
그는 몇 달 뒤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한참 동안 SNS에 청승을 부렸다. 나르시시즘에 휩싸인 청승맞은 글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래 너네도 별 수 없구나 싶다가 나중에는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순간이었고, 그는 내 기억에서 잊혔다.
이상하게도 그보다는 A에 대해서 종종 생각했다. 그녀는 내 카카오톡 친구에 추가되어 있었는데, 프로필을 꽤 자주 바꿔서 그때마다 업데이트한 친구 목록에 떴다.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프로필을 했다가, 풍경 사진으로 했다가, 한동안은 좀 슬프고 쓸쓸해 보였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는지 애인과 함께 찍은 발 사진이나 손 사진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어떤 남자를 만났으려나? 근데 나는 왜 이걸 보고 있지?
—
서른을 코앞에 둔 나는 나의 지난 연애를 짚어보고 있었다. 내게는 몇 연애 트라우마가 있다. 정말 이상형의 외모인 사람과 사귀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여자 B랑 바람이 났다. 그 뒤에 B와 나를 집요하게 비교했던 적 있다. 내가 보기에 B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평범한 여자를 만나는지 궁금했고, 내가 그녀보다 특별하고 매력적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받은 상처를 외면하기 위해 그랬던 것 같지만.
아니, 시점을 좀 더 전으로 돌리자. 나는 십 대부터 소위 말하는 ‘우월한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는 특별해지고 싶고 우월해지고 싶었고 연애는 그걸 위한 손쉬운 수단이었다. 잘생기거나 잘나가거나 소위 말하는 인기 있는 사람을 소유하는 것. 혹은 그저 연애라는 서로를 우상시하는 그런 관계를 통해서 여성성을 과시하는 것. 그게 내 연애의 목적이었다. 그 당시 사귀었던 남자는 내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동아리의 회장이었고 배우처럼 잘생겼었다. 근데 내가 그런 남자를 사귀는 순간에 다른 평범한 여자랑 바람이 나서 내 자존심에 금이 갔다. (물론 상대의 배신에 슬프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여자를 싫어하면서 동시에, 평범한 여자일수록 오랫동안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나에겐 애증의 존재였던 것이다. 사랑받는 게 자랑스럽다는 그런 표정이, 애초에 태어나길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은 보여주지 않는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녀들(A, B)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
최근 알아가는 남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연애는 과시의 방법이었다고, 특별한 내가 될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리고 그에게 연애의 목적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가 자신은 그런 게 없다고 했다. “연애의 목적이 과시도 섹스도 아니라면 연애는 왜 해?” “그냥 그 사람이 좋으니까 하는 거야.” 나는 그런 방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생각해 보면 친구를 사귈 때는 목적이 없는데, 왜 연애에서는 목적을 찾고 있었을까.
그는 흉통이 두껍고 몸이 따뜻하다.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그의 품에 안겨있으면 되게 아늑하고 편안하다. 연애도 아니고 과시할 수도 없지만 이런 것도 좋겠지. 목적 없는 관계. 규정할 수 없지만 소중한 시간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시점을 더 전으로 돌리자. 최근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며 내가 5살 이전에 엄마가 일하느라 바빠서 나를 이모네에 맡겨뒀던 게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나는 누구를 사귀게 되면 스킨십을 자주 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 그런 게 내가 갓난아기 때에 엄마의 물리적 실체의 부재로 인한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대상이 실제로 만져질 때 큰 안정감을 느낀다. 기억도 나지 않는 갓난아기 때의 경험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상하지만.
우월한 남자를 만나고 싶은 욕구는 어디에서 왔나? 아마도 내가 부족하고 열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느리고 자주 깜빡하는 아이였던 것. 중학교 때에 일 년간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무리에 끼지 못했던 것. 그런 경험들로 인해 십 대에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연애의 목적이 과시였던 철없던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다. 스킨십을 통해서 안정감을 얻는 것처럼, 과시를 통해 안정감을 얻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마음의 욕구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다. 언제까지고 나의 특별함을 특별한 상대를 찾음으로써 증명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무슨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매번 인기남이랑 사귀는 건 너무 어렵기도 하고)
—
내게 연애는 사실 감정이 많이 소모되는 활동이다. 헤어지면 잊는 데에 몇 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에 울기도 너무 많이 운다. 나의 이성적인 면은 그렇게 감정에 압도당하는 게 싫어서 항상 사랑에 이유를 찾았다. 네가 잘생겨서 좋아, 네가 인기가 많아서 좋아, 네가 섹스를 잘 하고 능력이 있어서 좋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사랑에 빠지면, 인정하든 안 하든 그냥 그 사람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됐다. 네가 너여서 좋아.
상대방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는 대신에 나의 감정을 인정한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상대방이 특별한 이유가 아닌 내가 특별한 이유를 발견해낸다면, 아니 평범한 나도 그대로 좋아하게 된다면, 굳이 연애가 필요 없지 않을까. 연애의 목적이 사라지는 셈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무 목적도 없는 연애도, 한 번 해 볼까. 하고 말이다.
작가 돈주기 ![]() |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