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동안 신나게 출장 다니고 혼자서 서울도 끌고 다녀본 결과(처음에 올림픽대로 3번 넘게 돌았음) 운전은 재밌고 신난다는 것이다.
하여간 쿨하고 멋진 것이다. 언제나 사고 날 위험이 도사리는 까만 아스팔트에 허연 줄 하나로 가지각색의 동차들이 가격대를 뽐내며 달리는 것은 과연 도시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24시간 살아가는 인간들의 군상이랄까.
그 속에서 일반인 코스프레 하듯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따르릉 거리면서 살았던 세월에 비하면 압도적인 기동력, 다양한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월급으로 그 동안 방 안에 처 앉아서 망상질하고 그림그리고, 놈팽스 후려치느라 아파서 못했던것들을 하면서 어딘가 취해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여기가 어딘가, 점심에는 뭐 먹지 하고 커피숍 처 앉아서 아줌마들 수다를 듣다가 나는 누군가 싶었다. 아, 이렇게 늙어가는건가?
아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더라. 바쁘지만 5시 땡 하면 이제 받던 전화도 받아지지 않는 공공기관과의 공공질서 속에서 나 뭐했더라?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퍼득 들었다. 핸들을 조낸 돌리든 빠구를 하든,
그러다가 장애인청소년들을 데리고 미술명화관을 갔다. 우리 동네에는 없었던 옆 동네 우수체험처였는데 그냥 명화 쇼핑물 운영하는 촌닭같은 아저씨가 산림욕 하기 좋은 동네에다가 무슨 무슨 미술관 오르세 전시관 이런 식으로 해서, 커다랗게 액자로 만들어서 버젓이 문화예술교육사도 고용해서 운영하는 곳이였다. 체험 프로그램도 있고 중간에 범블비 구경하는 곳도 있고, 코로나 이후로 격타를 쳐맞은 듯했지만 그래도 유니크했으며 오신 선생님들도 좋아했다.
나는 학교밖청소년으로 1회차 방문하고, 장애인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회차 방문했다. 그 날은 내 생일이였고 가는 날이 장날이였다고 조낸 비가 왔다. 끈적 끈적하고 습한 기분으로 애들 처먹일 과자를 포장해서 갖고왔다. 돈 없어서 내가 직접 해야한다. 음료수 끙끙 갖고왔는데 걔들한테 해줄 게 볼만 한 거 찾아서 체험 시켜주는 거랑, 먹을 거 주는 거 밖에 없어서 한다.
생일 기념으로 눈독 들이던 고흐의 아이리스(붓꽃)을 발판으로 만든 3만 3천원짜리를 샀다. 같이 오신 활동보조사 분들이 이거 그림같아서 발판으로 쓰겠냐 했다.
바닥에 보는 그림 같았다. 색깔도 선명하고.
덩치도 크고
그렇게 한 2주가 지났다.
20살때 학교 여름방학때 도서관에서 보고, 그토록 계속 처 보면서 흉내내면서 그렸었는데 부엌에 갈때마다 깔판으로 보니까 다시 보였다.
아 이 그림이 이렇게 복잡한 그림이였나?
앞에 붓꽃도 있고 무슨 백합도 있고 뒤에 노란민들레같은 것도 보이고, 요즘 자연친화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그런가 모르겠는데 하여간 조낸 복잡했음.
나는 이 그림이 자연스럽고 담백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엄청 화려하고 복잡한 걸 보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무리 그 당시 인상전이라고 무시당하면서 서민을 그렸던 나부랭이라고 할 지라도 굉장히 엘리트적으로 그림을 배우고 해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미학책에서는 고흐를 b급의 화가의 전설이라고도 칭하는데
섬세함이 문화예술 우수기획서 수준이고요? 진행과정은 천재 행정관 아닌가???
너 근데 왜 총 맞고 죽었냐.
아 ㅅㅂ
이런 그림그리고 싶어서 이지랄하면서 살기로 한 거였는데.
센터 다니기 싫어서 나 청소서비스업 하면서 취미로 그림하고 싶다고 했다가 놈팽스한테 단호한 반응을 본 뒤로부터 세상 맘상하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거 완전 양아치 아니여, 이 사기꾼 색히들 스러운 아줌마들 부터, 정직하게 살아가는 수더분한 남자들까지. 마치 세상이 뒤집힌 듯 다른 종류들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속에서 열심히 월급을 침 발라가며 나눠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이 사람들을 처럼 살아가고 싶었고 그게 내가 도달해야할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스스로 유예기간을 만드는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바깥이 아니라 내 손에 안에 갖고 있었던 것처럼 쥐어진 것을 보고 알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돼. 너 그거 이제 알았냐고 하문서 머릿속이 댕댕 울린다.
알바하면서 바보같이 마냥 그림그리고 이드페이퍼 사전예방접종주사 씨게 맞고
그림 그려서 손 아프고 눈 아픈게 아니라 조낸 겜질 하느라 손 아프고 눈 아팠던 시절로.
쪽팔리지만 그림 안 그리는 것보단 나아서 다시 몰래 단순한 게임 시작했다.
할머니 상사가 옆에서 생과 사의 삶에 지혜를 알려주면 나 몰라요 하면서 딴 짓 한다.
(근데 할머니 뭘 해도 날 좋게 봐줘서 곤란하고 일을 만드심, 비서 다됐심 )
멋스럽게 시작한 공공오피스는 울며 겨자먹기로 걍 유지하고(해약하면 남은금액 초가와이) , 다시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물론 완전 그때로 돌아갈 순 없다. 그러기엔 세상이 기회도 많고 할 것도 많다. 규칙적인 생활도 필요하고, 창작할 자유로운 시간과 여유도 필요하다.
센터 일 하면서 안조은 사람들도 봤지만 좋은 사람도 만난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다시 돌아간다.
그 옛날 훌륭한 인생, 인정받는 방식 냅두고 꼴 난대로 그리면서 멀쩡하게 가르쳐놨더니 엄마 속 끓게 한다는 똘추들 처럼
세상에 남길 그림을 갈망하다가 멍텅구리처럼 죽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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