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역덕 7호] 연합군의 수호신, 이탈리아군의 트롤대잔치

이탈리아군의 졸전은 딱히 전쟁사에 관심없는 사람도 한 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어. 2차대전 당시 다른 나라들은 처절한 생존 블록버스터 찍고 있을 때 저 혼자 몸개그를 시전하며 코미디 장르를 선보인 걸로도 유명하지.

2차대전 이탈리아 졸전 기록을 살펴보면 일맥상통하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어.

1. 아무 준비 없이 선전포고 하기
2. 아무 계획 없이 돌격하기
3. 대박 깨지고 질질짜며 독일에게 SOS 치기

이 법칙은 이탈리아군이 참전한 모든 전투에 다 통용된다고 봐도 무방해. 

인류 최악의 전쟁이라 불리는 2차대전. 그 살육의 한복판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압도적 존재감을 뽐낸 이탈리아군의 위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할게. 더불어 이런 짐덩어리까지 짊어진 독일이 전유럽을 상대로 얼마나 힘겹고 고독한 싸움을 해왔는지도 함께 느껴보도록 하자.


1. 프랑스 침공



'마지노선'이란 말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의미의 관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어.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1차 대전의 지옥같은 참호전에 된통 데인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유래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폴란드 침공 이후 반년이 지난 1940년 5월, 전간기 20년의 공백을 깨고 독일은 또 다시 프랑스를 침공했어. 그리고 이번엔 무려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며 전유럽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지. 전통적인 유럽 강호이자 1차대전 참호전의 진창에서 몇 년을 이 악물고 뒹굴었던 프랑스가 이번 전쟁에서는 고작 한 달 만에 패하고 백기를 들었다는 소리야. 




이 때의 충격이 얼마나 강렬하게 남았는지 '6주 항복'과 '백기'는 2차대전 프랑스군의 굴욕적인 패배를 조롱하는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는 중이야.



다만 이에 대해 바보같은 프랑스군이 주구장창 마지노선만 사수하다가 뒤에서 갑툭튀한 독일군에게 얻어맞고 항복한 걸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오해에 가까워. 물론 전투가 시작되자 마지노선 사수에 당시 프랑스 육군의 절반 이상을 투입한 뻘짓을 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프랑스 지휘부도 아주 머저리는 아니라서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침공할 수 있다는 것도 예측하고 있었거든. 문제는 그 우회로가 어디냐는 거였지.



1차 대전 프랑스 침공을 위해 독일이 세운 작전으로 '슐리펜 계획'이란 게 있어. 그림처럼 베네룩스 3국을 치고 국경을 넘은 후 해안선에 맞닿을 기세로 최대한 크게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와서 그대로 파리와 프랑스군을 포위하자는 작전이었어. 그리고 이 작전이 실패하면서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독일의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 유명한 1차대전 지옥의 참호전이 열리게 되지.

프랑스 군수뇌부는 독일의 2차 침공 전략도 슐리펜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어. 독일과의 국경선 대부분은 철통같은 마지노선이 든든히 방어해주고 있으니 우회한다면 어차피 침공루트는 북부인 벨기에 국경선으로 정해져 있다는 거지. 



딱 하나, 벨기에 방어선과 마지노 방어선 사이 '아르덴'이라는 삼림지대가 있었지만 여긴 진지하게 침공로로 여기지도 않았어. 이건 프랑스 군수뇌부가 마냥 안이해서가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야.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 보시게~

아르덴은 숲이 빽빽하고 길이 좁은 고원지대에 그 일대를 관통하는 강까지 놓여있어서 그 자체로 천연 방어막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야. 저런 험난한 지형에 전차로 이루어진 기갑사단과 대규모 병력을 기동시켜 돌파한다는 미친 생각을 누가 하겠느냐는 거지. 설령 병력을 진격시킨다고 해도 절대 단기간에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어.



독일의 주 침공루트를 벨기에 방어선으로 확신한 프랑스-영국 연합군은 남은 부대를 몰빵해 벨기에 방면으로 북진시켜 버렸어. 하지만 그 시각 독일은 연합군이 상상도 못한 진격로를 통해 전진하며 프랑스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지. 바로 7개의 기갑사단을 앞세운 대규모 주력부대를 밤낮없이 기동시켜 울창한 아르덴 숲을 돌파한 후 프랑스 국토 안으로 빠르게 진격하여 포위하는 작전으로 연합군의 허를 찌른 거야.

첫 번째 그림처럼 적진 깊숙이 파고든 주력부대 A집단군은 앞서 벨기에 방어선에서 자신들이 주공인 척 교전을 벌이며 연합군을 기만한 보조부대 B집단군과 함께 완벽한 포위망을 형성했어. 이제 연합군은 상추 속에 맛난 고기 한 점이 되어 꼼짝 없이 싸먹힐 일만 남은 거지.



프랑스 국토 안쪽까지 호를 그리며 파고들어 적을 낚아 챈 모양새가 마치 낫처럼 생겼다고 해서 '낫질작전'으로 알려진 이 계획은 히틀러가 발탁한 두 천재 대학동기의 합작품이기도 해. 독일 군수뇌부 '최고 브레인'인 만슈타인이 구상하고,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인 구데리안이 현장에서 미친 듯한 속도의 기동전으로 완성시켰지. 

그리고 독일이 이렇게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 동안 이탈리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집권 이후 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 개입, 알바니아 점령 등 계속 전쟁을 일으켰지만 막상 2차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땐 그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어. 히틀러가 소련과 함께 폴란드를 반갈죽하고,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프랑스 침공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도 밍기적대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지. 

제 아무리 전투종족인 독일과 손을 잡는다 한들 당시 유럽 최강 영국, 프랑스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한다는 게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일 거야. 오히려 직접 연합군에 맞서기 보다 1차대전 때처럼 독일과 연합군의 전투가 고착화되고 장기화되면 그 틈을 타서 자신들의 앞마당인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하겠다는 떡고물을 기대하는 중이었지. 




하지만 전황은 무솔리니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어. 당대 최강 육군이라 불리던 프랑스군이 한 달 만에 독일에게 그야말로 박살이 나버린 거야.

히틀러를 자신의 아류쯤으로 생각하던 무솔리니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고 질투의 시선으로 이를 바라보게 돼. 지금이라도 독일 편에서 싸워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는 협상 자리에 끼어든다면 영토와 전리품도 한 몫 단단히 뜯어낼 수 있을 거라는 욕심도 슬그머니 생겨났고.

결국 참지 못한 무솔리니는 파시즘 종주국의 체면이 있지 나도 가만있을 수는 없다며 실제 행동에 나서게 돼. 프랑스의 패색이 짙어진 6월, 로마의 베네치아 궁전 발코니 앞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특유의 화려한 언변술과 함께 영국,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날려버린 거야.


















문장만 보면 마치 일생일대의 결전을 앞둔 고대 로마의 사령관이 자신의 군대 앞에서 목숨을 건 각오를 다지듯 비장미가 넘쳐흐르는 명연설이 아닐 수 없어. 실상은 독일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슬쩍 얹으려는 거면서 말이야.

이탈리아 반도에 다시 한번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일 두체(Il Duce, 수령), 무솔리니의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할게.


작품 등록일 : 2022-07-27
최종 수정일 : 2024-05-14

▶ [주간역덕 부록] 2차대전의 미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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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왜이제봤지ㅋㅋㅋ이탈리아졸전사 유료글 잘이해못해서 내머리가 빠간가햇는데 이거보니까 이해잘되ㅋㅋ이태리는 어쩜저리 허술해?? 빈틈없는 독일군복바라
모찌   
아 너무좋아요 선생님
카단서버   
오늘도 매우잘읽었읍미다 연재 넘 조아유
초장   
히틀러는 실제로 무솔리니의 아류였음. 무솔리니처럼 되려고 투쟁한 게 총통 이전의 히틀러의 삶이었고 2차대전 발발 직전까지도 히틀러의 집무실에는 무솔리니의 흉상과 사진이 있었음.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롤모델이자 최고존엄이었음.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쟁 나니까 저렇게 된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뜨고 볼 수 없는 진정한 막장 개코미디극인데 이거 두 사람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ㅋ 게르만과 이태리의 민족 근성인 거 같음 ㅋ
관리자   
아악 나 이거 오늘 새벽인가 읽고 다음편기다리는중ㅋㅋㅋㅋ
시진핑 사생팬   
굿굿 존잼이여
rb****   
헉헉 너모 재밌습니다.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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