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역덕 2호] 푸틴의 전쟁 명분, '탈나치화'란?

 

저번 편에서 말했다시피 현재 러시아는 남동부의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있어. 도시를 봉쇄하고 포위전을 시작한 게 저번 달 초였는데 벌써 4주가 지나가고 있지. 러시아가 최소한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고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선 동부 돈바스와 남부 흑해 연안을 반드시 육로로 연결해야만 해. 바로 코 앞에서 가로 막혀 점령할 듯 말 듯 한 달을 질질 끌고 있으니 러시아 수뇌부 입장에선 기막히고 환장할 노릇이지.


한 달 전만 해도 아조프해 연안의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던 마리우폴은 예전 모습이 무색할 만큼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잿더미로 변해버린 상황이야. 전쟁의 참상과 더불어 이 도시를 장악하려는 쪽과 사수하려는 쪽 양측 다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어.




현재 마리우폴에서 제2의 레닌그라드를 재현 중인 부대는 우크라이나 국가방위대 소속 정규군인 '아조프 연대'라고 해. 이들은 사방이 포위되어 보급마저 끊긴 상황에서도 마리우폴 도심 중앙으로 진격하는 러시아군의 공세를 기적적으로 막아내는 중이야. 워낙 상황이 절망적이다 보니 젤렌스키가 도심지를 포기하고 철수해도 된다고 말했을 정도인데 비록 우리가 전멸할지라도 끝까지 마리우폴을 사수하겠다고 선언한 상태. 여기까지만 보면 마리우폴의 시민을 버리지 않고 지켜내려는 참군인들의 영웅적인 행보라고 칭송 받아 마땅하지. 그런데 이런 아조프 연대를 향해 전세계는 꽤 복잡다단한 시선을 보내고 있어. 왜 그럴까?

아조프 연대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강조했던 '탈나치화'의 핵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어. 현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본 사람이라면 러시아의 개전 명분인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 혹은 '비나치화' 라는 말을 들어 봤을거야.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침략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팽배한 나치즘과 네오나치 인사들을 뿌리뽑고, 그들에게 고통 받는 러시아계를 해방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거지. 물론 이런 푸틴의 주장에 전세계에선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억지에 생트집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야. 유대인인 젤렌스키보고 네오나치 몸통이라니 푸틴 드디어 노망난 거? 지들 하는 짓이 나치 판박이면서 누구 보고 나치래?

여기서 반전은 푸틴의 저 억지가 어느 정도 팩트에 기반하고 있다는 거야. 아무리 극성 러뽕들이 인지능력을 크렘린궁에 외주 맡긴 무지성이라지만 과거 똑같이 나치독일에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를 무맥락으로 나치몰이하는 건 설득력이 대단히 떨어지지 않겠어? 진실이 약간 첨가된 거짓말이 잘 통한다는 말이 있듯 저 주장이 사실과 교묘하게 혼합된 프로파간다라서 친러들에게 더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는 거야. 놀랍게도 아조프 연대의 뿌리는 네오나치가 맞아. 




2014년은 현 사태의 프롤로그이자 러우 관계가 완전히 강을 건너는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진 해였어. 유로마이단 혁명, 크림합병, 그리고 돈바스 전쟁이야. 그리고 아조프는 우크라이나 내에 반러 감정이 극에 달하던 이 시기에 극우 민족주의자 중심으로 뭉친 무장 민병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어. 

혹시나 싶어 간단히 언급하면 러시아 앞잡이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로 친러 정부가 축출된 사건이 ‘유로마이단 혁명’, 이런 우크라이나의 반러 친서방 기류에 위기를 느낀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군대를 밀어넣고 자체 주민투표를 통해 자국 영토로 편입해버린 '크림합병'을 지나 역시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이 분리독립을 주장하자 이를 막기 위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쟁이 벌어진 게 '돈바스 전쟁'이야.





당시 대대 규모였던 아조프는 2014년 돈바스 전쟁 당시 반군에 맞서 마리우폴 탈환하는 전공을 세우면서 이름을 알리게 돼. 이런 아조프의 성과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같은 해 11월 이들을 내무부 산하 국가방위군, 즉 정규군으로 편입했고, 부대원이 연대 규모로 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지. 아조프가 정규군으로 편제된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데 이들은 명백히 네오나치 집단이었거든. 현재는 의정활동을 위해 부대를 탈퇴한 아조프의 창시자 역시 약력을 살펴보면 백인우월주의에 반유대주의를 대놓고 드러내던 나치즘 신봉자로 알려져 있어.




아조프 연대의 부대기와 로고를 보면 더 노골적이야. 부대 표식에 나치독일의 상징인 검은 태양과 나치친위대 SS 기갑사단을 뒤집은 로고가 합쳐진 게 보이지?

네오나치가 기원이라는 점 이외에도 아조프 연대를 단순히 숭고한 구국 영웅들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의 전적 때문이야. 돈바스 전쟁 과정에서 아조프 연대의 국제인도법 위반 사실을 확인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아조프 부대원들이 약탈, 감금, 고문, 강간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있어. 또 돈바스 분쟁을 통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 대다수가 반군 점령지 주민이었다는 점도 꼬집고 있지. 즉, 아조프 연대가 반군 소탕 작전을 수행하면서 눈엣가시로 여기는 친러계 민간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해. 푸틴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돈바스 분쟁 내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친러계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쯤되면 푸틴이 왜 아조프 연대를 콕 집어 '탈나치화'의 핵심 대상으로 지목했는지, 전략 요충지인 걸 감안해도 러시아군이 왜 유독 마리우폴에 앞뒤 안 가리는 무차별 포격과 공세를 퍼붓는지에 대한 설명이 됐을 거라고 봐.

반대로 아조프 입장에서도 러시아가 네오나치 소탕을 개전 명분으로 내세운 순간 자신들이 주 타겟이란 걸 모를 리기 없잖아? 그러니까 얘네한테 항복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야. 이미 저승행 편도 티켓 끊어놓고 수속절차까지 마친 상태에서 민족의 원쑤 루스키 놈들 한 명이라도 더 길동무로 잡아끌고 가겠다는 작정인 것. 현재 마리우폴에 생존해 있는 아조프 부대원들은 탄약보급은 물론 식량, 식수까지 다 끊긴 상황에서 전선은 점점 밀릴지언정 도시를 완전히 내어주지 않은 채 한 달 넘게 버티고 있어. 지난달 초부터 함락 임박이라던 마리우폴이 아직까지 넘어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 어떤 전문가도 명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는 한편, 그럴 수 있다고 다들 납득해버리는 데는 이런 배경이 존재했던거야.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억지라고만 생각했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가 돼. 진짜 푸틴 말대로 아조프 연대는 네오나치 집단이고 우크라이나가 정부는 그런 아조프를 정규군으로 편입한 나치 수괴들이나 마찬가지네? 알고 보니 푸틴은 위악의 징벌자였던건가? 전세계를 적으로 돌릴지라도 어둠 속에서 정의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다크나이트?? 




응, 어림도 없지. 21세기 히틀러 MK2를 만만히 보지 말라고.

물론 현 사태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의 과오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결사항전으로 전투에 임하는 아조프 연대 역시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일부 친러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우크라이나가 결코 절대선이나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아니며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를 징벌할 정당한 명분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중이지. 서방의 시각에 치우쳐 국제관계를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나누지 말고 중립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라는 엄근진 훈계를 시전하는 건 덤.

그렇다고 이번 침공이 나치즘에 경도된 우매한 우크라이나를 정상화하기 위한 러시아의 불가피한 조치라는 건 더더욱 앞뒤가 안 맞는 뻘소리야. 앞서 말했다시피 이건 팩트와 거짓을 교묘하게 혼합한 전형적인 러시아식 프로파간다이자 가스라이팅에 불과하거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분량 조절을 위해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할게. 


작품 등록일 : 2022-04-02

▶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마리우폴

▶ [주간역덕 1호] 예상 외의 졸전, 러시아는 왜 이렇게 못 싸우는 걸까?

다음편 두근두근!!
옴뇸*   
하 우리집 십자매(새)랑 구피(열대어)도 이해하기 쉽게 잘 쓰셨습니다 이 구역의 정리왕 ㅠㅠ
시진핑 사생팬   
선결제 후입금 무현반복 시키고 싶다...!
갓띵ra선생님이시어!!!
진미오징어   
오와 황금같은 타이밍에 잠 깼다 선댓 후 감상 남길게~

다 읽었어 오늘도 재밌따
탄약이 다 떨어졋으면 근접전 백병전으로 싸우고 있는 거야? 그러면 접근하기 전에 러시아인이 탕탕 안 쏴? 진짜 어떻게 싸우고 있는 건지 모르갯군
MK2가 뭐야?
호수를달려요 개초딩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