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나치가 기원이라는 점 이외에도 아조프 연대를 단순히 숭고한 구국 영웅들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의 전적 때문이야. 돈바스 전쟁 과정에서 아조프 연대의 국제인도법 위반 사실을 확인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아조프 부대원들이 약탈, 감금, 고문, 강간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있어. 또 돈바스 분쟁을 통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 대다수가 반군 점령지 주민이었다는 점도 꼬집고 있지. 즉, 아조프 연대가 반군 소탕 작전을 수행하면서 눈엣가시로 여기는 친러계 민간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해. 푸틴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돈바스 분쟁 내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친러계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쯤되면 푸틴이 왜 아조프 연대를 콕 집어 '탈나치화'의 핵심 대상으로 지목했는지, 전략 요충지인 걸 감안해도 러시아군이 왜 유독 마리우폴에 앞뒤 안 가리는 무차별 포격과 공세를 퍼붓는지에 대한 설명이 됐을 거라고 봐.
반대로 아조프 입장에서도 러시아가 네오나치 소탕을 개전 명분으로 내세운 순간 자신들이 주 타겟이란 걸 모를 리기 없잖아? 그러니까 얘네한테 항복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야. 이미 저승행 편도 티켓 끊어놓고 수속절차까지 마친 상태에서 민족의 원쑤 루스키 놈들 한 명이라도 더 길동무로 잡아끌고 가겠다는 작정인 것. 현재 마리우폴에 생존해 있는 아조프 부대원들은 탄약보급은 물론 식량, 식수까지 다 끊긴 상황에서 전선은 점점 밀릴지언정 도시를 완전히 내어주지 않은 채 한 달 넘게 버티고 있어. 지난달 초부터 함락 임박이라던 마리우폴이 아직까지 넘어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 어떤 전문가도 명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는 한편, 그럴 수 있다고 다들 납득해버리는 데는 이런 배경이 존재했던거야.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억지라고만 생각했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가 돼. 진짜 푸틴 말대로 아조프 연대는 네오나치 집단이고 우크라이나가 정부는 그런 아조프를 정규군으로 편입한 나치 수괴들이나 마찬가지네? 알고 보니 푸틴은 위악의 징벌자였던건가? 전세계를 적으로 돌릴지라도 어둠 속에서 정의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다크나이트??
응, 어림도 없지. 21세기 히틀러 MK2를 만만히 보지 말라고.
물론 현 사태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의 과오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결사항전으로 전투에 임하는 아조프 연대 역시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일부 친러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우크라이나가 결코 절대선이나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아니며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를 징벌할 정당한 명분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중이지. 서방의 시각에 치우쳐 국제관계를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나누지 말고 중립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라는 엄근진 훈계를 시전하는 건 덤.
그렇다고 이번 침공이 나치즘에 경도된 우매한 우크라이나를 정상화하기 위한 러시아의 불가피한 조치라는 건 더더욱 앞뒤가 안 맞는 뻘소리야. 앞서 말했다시피 이건 팩트와 거짓을 교묘하게 혼합한 전형적인 러시아식 프로파간다이자 가스라이팅에 불과하거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분량 조절을 위해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