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어. 개전 초기, 아무리 길게 버텨도 일주일 남짓이라던 우크라이나는 아직까지 함락되지 않은 채 러시아군의 공세에 맞서는 중이야. 물론 체급 차이가 확연한 만큼 악전고투 중이지만 전세계가 작전범위인 지구방위사령부 천조국의 예측마저 빗나가게 만든 건 기적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어.
그에 비해 군사강국 러시아는 그야말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유일하게 전공을 세우던 남부 전선마저 정체 되며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이야. 서방의 군전문가들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진격은 대체로 정체 된 것으로 보이며 이제 그들이 최소한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라고 함. 머지않아 러시아군의 전력이 고갈되어 작전 수행이 불가능해지는 지점, 즉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게 될 거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어.
초기엔 러시아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민간인 공격을 자제해서 그렇다, 전선 밖에서 다른 병력이 대기중이니 이들을 투입하면 전세가 급변할 것이다 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미 설득력을 잃어버린지 오래야. 진작 러시아군은 화력무기를 동원해 민간지역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세로 전환했고, 병력손실을 메우기 위해 아직 임관도 받지 못한 생도에 예비군까지 몽땅 투입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도는 실정이거든. 언론에 따르면 현 전선과 정반대에 있는 극동·시베리아 지역. 심지어 태평양 함대 병력까지 재배치해서 다 끌어오고 있다고 해. 기사링크
한 달 전 푸틴이 군사 작전을 개시할 때만 해도 전쟁 양상이 이런 식으로 흘러 갈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전세계 밀리터리 덕후들은 물론 전문가, 군관계자들까지 실시간 중계 중인 러시아군 졸전에 경악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중.
까고보니 오합지졸, 열병식만 화려한 당나라 군대, 독소전 붉은 군대의 후신은 사실 우크라군 등의 조롱을 획득한 건 덤. 자타공인 군사력 세계 2위였던 러시아가 이렇게 한심한 작태를 보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1.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
우선, 대통령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단합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죽기를 각오한 항전이 있었기 때문이야. 미국의 대피 지원까지 거절한 젤렌스키와 정부 인사들이 키이우에 남아 자국민을 독려하여 국민 통합의 구심점이 됐고, 이는 안 그래도 반러감정이 팽배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의지에 불을 당겨 버렸어.
현재 우크라이나는 후대에 길이 남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실시간으로 써내려가는 중이야. 마치 80년 전, 압도적인 병력차와 열악한 조건에서도 스탈린의 붉은 군대를 철저히 농락했던 핀란드의 하얀 사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2. 러시아군의 낮은 사기
반면 침략자인 러시아군 입장에선 목숨 건 방어전을 펼쳐야 하는 우크라군보다 전시의지가 떨어지는데 거기에 명분까지 빈약하기 짝이 없지. 당연히 사기가 형편없을 수밖에. 특히 키이우를 주 목표로 삼고 있는 북부 전선의 경우 대부분 훈련기간이 짧은 징집병 위주에 한동안 보급 문제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더더욱 사기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여. 이런 군대를 아무리 들이밀어 봤자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 수 없겠지.
앞서 이야기했지만 현재 러시아는 이런 사기 문제를 해결하고 손실을 메우기 위해 정 반대 국경에서 주둔 중인 군대까지 가리지 않고 전국에 있는 병력을 말 그대로 영끌하는 실정이야.
3. 군대의 편제 문제
현대전에서 미국이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한데 그 중 하나는 작전 수행을 위한 기본 단위가 1만 명 정도의 '사단'에서 2~3천 명 정도의 '여단'으로 줄어드는 데 기여했다는 거야. 지구방위대 소속 미군의 화력, 기동력, 보급력이 워낙 사기 수준이다 보니, 과거 사단급 전투력을 여단이 커버하는 건 물론 슬림해진 체급으로 더욱 신속한 작전 수행이 가능해졌어.
이러한 미군의 활약상에 러시아는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게 돼. 그리고 이라크전을 모델로 삼아 재래식 무기 중심의 둔중한 군대 구조를 기동성과 유연성을 지닌 군대로 개편하는 대대적인 군 개혁을 단행하게 되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여단보다 더 작은 규모의 '대대'(1천 명 안쪽)를 기본 단위로 하는 부대로(대대전술단, BCT) 개편했어. 규모는 작지만 압도적인 화력과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군사 행동이 가능해졌고, 특히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효과를 발휘했다고 알려져 있어.
다만 이 체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한 국가와의 전면전이 아니라 러시아 영향권에 있는 소규모 분쟁 개입에 최적화된 군 편제라는 거야. 그리고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제대로 편성된 정규군과 맞딱드리자 그대로 꼬라박는 중. 국가 간 대규모 전면전에서는 하나의 지휘체계 아래 거대한 병력이 움직이는 사단급 부대 운용이 훨씬 효과적이거든. 똑같은 병력수라도 10개의 대대로 굴리게 되면 10개의 지휘부가 각자 따로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야. 각개격파 당하기 십상이지.
단기간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수뇌부는 제공권을 장악한 후 소규모 부대가 신속하게 들어가 정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생각보다 너무 잘 싸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
4. 제공권 확보 실패
더 결정적인 건 러시아는 아직까지 우크라이나의 하늘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야. 공군을 제대로 투입 안 한 게 아니라 항공기가 뜨는 족족 우크라이나 대공미사일의 맛난 먹잇감이 되어 격추되고 있지. 미국의 군사연구소 및 평생 러시아군 전력에 대해서 연구한 전문가들조차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러시아 공군의 지리멸렬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벙쪄있는 상태. 단순 전력으로만 비교하면 러시아의 공군력은 우크라이나를 10배 정도 압도하는 수준이야.
최근 분석에 따르면 그동안 국지전 위주로 전투를 수행하던 러시아군이 이 정도 체급의 전면전을 해보는 건 거의 처음이라 대규모 항공 작전을 수립하고 수행할 역량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 즉, 훈련과 경험 부족으로 인한 미숙함이 원인이라는 것.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투기 사정은 훨씬 열악해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과 서방에서 들여온 지대공미사일, 즉 지상에서 항공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무기로 탄탄한 방공망을 구축해놓은 상태.
5. 불분명한 전략 목표
현재 우크라이나에 형성된 전선은 북부와 남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
북부 전선에는 개전 초부터 수도 키이우(Kyiv)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공세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그리고 다들 언론을 통해 알다시피 이쪽 전선은 러시아가 그야말로 대박 깨지고 있는 중이야. 현재 러시아군은 수도를 둘러싸고 우크라이나의 보급로, 연결망 등을 차단하려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키이우와 그 주변은 우크라이나의 통제권 안에 있어. 최근엔 되려 반격을 당해 우크라이나가 빼앗겼던 주변 영토 일부를 되찾기까지 했지.
남부 전선에는 각각 남쪽의 크림반도와 동쪽의 돈바스에서 출발한 병력들이 항구도시 마리우폴(Mariupol)을 양쪽에서 압박하며 치열한 포위전을 벌이고 있어. 하르키우나 오데사같은 대도시도 아닌 마리우폴이 수도인 키이우와 더불어 최대 격전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에도 나와있다시피 러시아가 여길 차지하면 크림반도에서 '친러' 동부 돈바스 지역이 하나로 이어지게 되거든. 마리우폴이 함락될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항구 중 하나를 장악하게 되고 크림반도와 이번에 독립을 승인한 루한스크, 도네츠크 사이에 직접 육로로 오갈 수 있는 회랑이 연결되는 거야. 만약 러시아가 그 상태에서 서쪽으로 진격해서 오데사까지 점령하면 어떻게 될까? 러시아는 흑해 연안을 완전히 장악하고 우크라이나를 내륙국가로 밀어낼 수 있게 되겠지.
이 때문에 우크라군과 러시아군 양측 모두 필사적인 공격과 방어로 격전을 벌여왔어. 그리고 현재 마리우폴은 사방이 러시아군에 포위돼 보급이 끊긴 악조건 속에서도 4주 가까이 버티는 중이야. 그 어떤 군전문가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 기적의 중심에는 현재 마리우폴에 주둔하며 러시아의 공세를 막아내는 '아조프 연대'가 있어. 현재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는 이 부대에는 꽤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할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현재 북부는 왕창 깨지고 있는 중이고, 남부는 전략적 목표치에 어느 정도 도달했으나 마리우폴을 목전에 두고 정체됨' 이라고 할 수 있지. 서론이 왜 이렇게 길었냐면 북부와 달리 남부에는 러시아군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야.
아마도 러시아가 세운 초기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아닌 '친러지역인 동부와 남부를 속전속결로 점령하여 크림반도와 이어지는 육로를 연결한 후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상에 나선다.'였을 확률이 높아. 즉, 개전 초기 북부 병력의 키이우 진격은 기존 작전계획에 없었을 거란 이야기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초기 쾌속진격하던 남부와 달리 북부에는 실전경험이 없는 징집병 위주에 연료, 식량, 탄약 등 보급이 3일치 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진짜 작전수행을 위한 병력이 아니라 동남부를 장악하는 동안 북부 우크라군을 묶어두기 위한 미끼였다는 거. 그런데 러시아는 이렇게 준비도 안된 군대를 개전과 동시에 적의 심장부인 키이우로 닥돌을 시켰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이미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봤으니 생략.
아니, 러시아 군수뇌부는 전부 뇌가 플로늄 홍차에 절여진 머저리만 있는 건가? 준비도 안된 병력으로 무턱대고 적진 수도에 진격 명령을 내리는 군알못 닭대가리가 대체,,,
누구긴 누구야 21세기에 강림한 히틀러 MK2 때문이지
푸틴은 자국의 병력을 밀어 넣기만 해도 겁먹은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붕괴할거라는 야무진 착각에 빠져 이런 졸속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여. 이 기회에 우크라이나 전 국토를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욕심에 동부, 남부만 먹고 협상을 진행한다는 확실한 전략목표를 어정쩡하게 만들어 버린 거야. 당연히 결과는 참담했고 우크라이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세계에 여론전을 펼쳐서 미국과 서방의 전폭적인 지지와 경제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해. 범슬라브 대러시아 제국의 황제로서 위대한 업적을 후대에 남기겠다는 푸틴의 개인적인 욕심과 전략적 근시안이 전쟁이 한 달 넘게 장기화되는 나비효과가 된 거나 마찬가지.
만약 푸틴의 간섭 없이 러시아가 초기 계획대로 북부는 양동작전을 위한 미끼로 놔두고, 오로지 남부 전선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준비된 정예병들로 주요거점을 빠르게 점령하고 친러지역 돈바스와 회랑을 연결한 후 승리 선언까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면 아무리 우크라이나의 저항의지가 하늘을 찔렀어도 제대로 반격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
현재 끝없는 추태로 온동네 웃음지뢰로 전락한 러시아군의 모습은 2차 대전 히틀러의 패착과 놀랍도록 그 모습이 닮아있어. 사악한 나치로부터 세계를 구한 영광스러운 승전국에서 이젠 거꾸로 '악의 제국'이 되어버렸으니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지.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역사학자 임용한 박사님의 촌철살인으로 이 상황에 대한 총평을 대신하며 마무리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