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때 담임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더러 영문과를 가라, 내가 학원을 보내주겠다-하고 하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영어단과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훗날 내가 거기서 일하게 될 줄은)
실업계를 다니고 있던 터라 배운거라고는 주판만지는거 타자기 만지는게 다였으니
이제와 학원에 다녀본들 별 소득이 없는 짓이였지만, 필통도 없이 학교 다니던 내게
키티 필통에 색색깔 볼펜까지 사들려서 학원에 등록시켜줬다.
밤되면 제법 추워졌던 늦가을에, 내가 들어갈 만한 적당한 반도 없어서 재수생들 문제풀이반에 입성하게 된다.
담임이 맡은 과목은 상업계산이라고 주산을 가르키는 건데, 쉽게 얘기해서 주판으로 몇억단위 소수점, 백분율, 할푼리 계산하는 과목이다.
목적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것인데, 고2 2학기쯤되면 또래의 실력이 계산기가 비빌 속도가 아니다.
몇급까지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입학할때 받은 17급짜리 주산책을 아직까지 못떼는 천하에 쓸모없는 나에게 담임은 대학을 가라고 바람을 넣었다.
당시에 비주얼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비디오대출프로그램 정도는 배꼽긁으면서도 만들어낼만큼 컴퓨터는 제법 만졌기 때문에 나는 컴공과를 생각했는데,
담임은 to부정사가 ‘부정’하는 말인줄 아는,hospital을 호스피탈로 읽던,It’s와 Its를 구분할 줄 아는게 인생의 유일한 자랑이던 나더러 영문과를 가고 하는것이
되도않은 소린지는 알면서도 왜인지 설득이 되버린것이다.
이게 인생 꼬이는 첫 시발점이었던것도 모르고 시발꺼.
재수생과 발등에 불떨어진 고3들이 적게 잡아도 한 80명 모인 교실로 멸치하나가 들어와 교단에 섰다.
멸치는 멸치한박스 우려낸 육수색깔의 낯빛을 하고 손톱반틈만한 눈알위로 반무테 안경을 쓴 세미 미라체형이었는데,
재수없는 미소를 날리면서, 교복입은 년들은 그저 남자어른이라면 딸딸이 치는줄 단단히 착각을 하면서 같잖은 잘생긴 척을 해댔다.
그게 또 먹히는게 이 바닥생리인기라. 제법들 나도 저런 스마트한 인텔리가 되어야지하는 꼬추들의 눈빛도 듬성듬성 더러 있었다.
고3들과 재수생이 떠나고 다시 고3반이 꾸려지면서 내 또래 아이들과 반이 다시 만들어졌다.
여전히 나는 늘어날 실력같은건 없었고, 그래도 필기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나날이 학원에는 잘도 다녔다.
담임은 문제집 또 필요한건 없느냐, 학원에서 풀어온 내 모의고사 시험지를 보면서 이렇게라도 시험을 쳐보는게 어디냐며 왜인지 기뻐했다.
방학이 되자 학교를 탈탈 털어서 대학갈만한 애들 한웅큼을 교실에 불러 앉혀서 국영수 보충수업을 시켰다.
나에게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꿈이 한가지 있었는데, 이다음에 나는 유희열이든 신해철이든 윤상이든 아무튼 그들과 동료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올 겨울방학에는 기타를 마스터하고 오디션을 보러다니겠다던 개같은 꿈은 어차피 개꿈이라 수만가지 사연과 눈물과 불면의 밤과 함께 깨끗하게 포기했다.
낮에는 학교에서, 저녁에는 학원에서 배움에 목마른 사슴 코스프레를 하며 지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멸치가 한 껏 더 좆같은 면상으로 수업에 들어왔다.
뭣도 모르는 내가 봐도 얼굴에 나 사연있어요- 새긴 선생은 수업내내 한숨. 칠판잡고 발끝보기. 하늘 보며 한숨.
누구라도 무슨일있냐고 물어주기만 기다리며 주둥이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완벽한 세팅이었다. 지금 해가 바뀌었는데도 크리스마스 다음날 부터 입고 있던 목티를 여즉 입고있었거든.
하여간 쉬는시간에 딸래미 몇명이 교탁에 비비적거리면서 무슨일있냐고 물어본게 그게 또 시발점이이었다 시발꺼.
멸치의 이름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아주 준수했다. 이름이 준수. 성이 뭐더라. 시발이었나.
“내가 왜 이 옷을 계속 입는지 그게 그렇게 궁금해?”
아니오.
하지만 멸치준수는 입을 털었다. 아니다 그래도 선생이었는데. 말을 꺼냈다.
이 목티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준수씨는 8년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8번째 크리스마스였다.
여자친구가 사준 회색목티를 입고, 무스탕을 걸치고 만났다.
저녁을 먹고 8시쯤 어딜가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횡단보도에 서있었는데
준수씨와 맞잡은 손을 쓰윽 빼더니
준수씨,우리 이제 그만만나. 연락하지마.
그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렸다.
삐삐쳐도 소식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핸드폰을 살까? 요즘들 커플핸드폰이라고 많이 한데. 하던 그말을 들을 걸.
전화라도 걸어보고 싶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전화를 불나게 해볼 수도 없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 그 목티를 분신처럼 입고 있다고했다.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어른들의 사랑.
8년.
잘가라고 하고 헤어지면 그뿐인 관계.
제대로 된 문장으로 풀어낼 수는 없어도
윤상이 유희열이 부르던 그 슬픈 사랑이야기들이 이런걸까 어렴풋이 짐작해봤다.
괜히 멸치가 안쓰러웠다.
봄에도 멸치는 그목티를 벗지 않았다.
여름이 오기전에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거든.
가요제와 오디션에 고3 절반을 허비했다.
결과는 뭐. 그렇지.
담임은 속이 상했는지 후로는 딱히 아는체를 하지 않았다.
짜달시리 응원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타를 매고 왔다갔다 할적마다 알수없는 표정으로 쳐다봤을 뿐이다.
수능을 말아처먹고, 좆같은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했다.
다시는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고, 담임도 후로 본적이 없다.
그 시절이 솜씨좋게 도려낸듯이 사라졌다.
내가 그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한반도를 떠돌아 다니다 다시 고향에 내려온 2015년.
플라타너스 낙엽이 볼품없이 구겨져 나뒹굴때.
어디를 가려던 길인지 몰라도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건너편에 회색목티를 입은 사람을 봤다
멸치준수씨는 신호가 바뀌자 공허한 그때의 그 눈빛으로
그 누런빛회색목티를 입고 나를 스쳐지나갔다.
여자친구가 사줬던 그 목티를 입고, 그 여자친구가 기억할 마지막 그 모습으로 늙지도 않고.
2020년.
가게로 4명의 여고동창들이 술을 마시러왔다.
나를 못알아 보기에 마음 놓고 그들의 대화를 모르는 사람처럼 듣고 있었다.
왁자지껄한것은 여전하지만 말린 대추처럼 쪼글쪼글 늙어버린 그들의 입에서 담임 이야기가 나왔다.
간암걸려서 한 몇달 아프더니 고마 죽어버렸다고.
누구더라 걔 담임이 학원도 보내주고 그랬는데 알까 몰라.
방부처리된 기억이 툭. 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