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영 - 지갑을 줍다


커버 - 내가 휴대폰으로 10분만에만듬

 

지갑을 줍다

 

그 지갑은 3호선 지하철 의자에 놓여 있었다. 누가 가져가세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철 의자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옆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그냥 지갑을 주웠다. 지갑엔 구찌 특유의 패턴 위로 벌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구찌 지갑이었다. 정품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비싸 보였다. 나는 지갑을 열어서 안을 살폈다.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김수연. 1992417일생. 나이는 나랑 5년하고도 11일 차이가 났다. 검정색 정장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머리를 풀고 사진을 찍었다. 눈이 아래로 처져 순한 인상을 주었다. 상당히 미인이었다. 발급일자가 201811월인 것을 보면 최근의 얼굴일 것이다. 눈은 쌍커풀이 있었는데 수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여자의 주소지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944-6 대명비발디 아파트 101302호였다. 지갑도 그렇고 돈이 꽤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계속 지갑을 살폈다. 그녀의 주거래 은행은 신한은행인 것 같았다, 보안카드에 신한은행 카드가 세 개나 들어있었다. 그리고 강남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의 회원 카드와 카페 스탬프 카드도 있었다. 주소지나 도서관 위치를 봤을 때 이 여자는 강남 일대에 사는 게 확실한데 특이하게도 카페는 영등포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 접힌 구찌코리아 A/S 영수증도 들어 있었다. 오늘 접수한 것으로 되어 있었고, 예약번호는 GFD1000-12였는데 무엇을 서비스센터에 맡겼는지는 안 나와 있었다. 지갑도 구찌인 것으로 미루어보면 이 지갑 주인은 구찌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도곡동에 위치한 진 베이핑샵이라는 전자담배 가게 스탬프 카드도 들어 있었다. 전자담배 액상을 하나 살 때마다 도장을 하나씩 찍어 주는 모양인데, 도장은 일곱 개 찍혀 있었다.

지갑이 얇아서 현금은 안 들어 있으려니 했는데, 오만 원짜리 한 장과 500유로 지폐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500유로가 얼마인지 핸드폰으로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무려 64만 원이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때 지하철이 약수역에 도착했다. 여기 있는 하나은행에서 환전하려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자, 내 하나은행 계좌로 수수료를 뺀 1243천원이 입금되었다. 출구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삼천 원짜리 사탕인 아이스브레이커스 딸기 맛 한 통을 샀다. 무설탕이라 칼로리도 적은 것이었다. 아까운 줄도 모르고 한 입에 다섯 개씩 넣고 와작와작 씹었다.

그리고 아이스브레이커스에 들어 있는 소르비톨이라는 성분은 과량 섭취시 설사를 유발한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변기에 앉았다.

다섯 번째 설사를 끝마치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파란색 가스불이 하늘하늘 타올랐다. 오늘 저녁은 아침에 먹다 남은 김치볶음으로 하고 내일 아침에 비싼 걸 먹으려는 생각이었다. 120만 원이나 들어왔으니까.

아니, 들어온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억지로 가져간 것이다. 만약 지갑이 그녀에게 돌아간다면 내가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한두 푼도 아니고 120만 원이 사라졌는데 그걸 찾지 않을 리가 없다. 지하철의 CCTV를 확인해서 누가 지갑을 가져갔는지 알아낼지도 모른다.

나는 책상에 앉아 지갑을 들고 한참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구찌 정도 되는 제품이면 중고로 팔아 치우기도 어렵다. 우체통에 넣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돈이야 사라졌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안카드랑 신분증을 되찾았으니 여자가 안심하고 그쯤에서 만족할지도 모른다. 도곡동에 사는 사람이니 120만 원쯤이야 사라져도 뭐 어때. 하고 넘길 수도 있다.

나는 집 앞 우체국으로 가서, 굳게 닫힌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우체통에 지갑을 밀어넣었다. 제발 여자가 지갑 안의 돈만은 찾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120만 원은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이었다. 배달음식을 몇 번 시켜먹어도 돈이 한참 남아 있었다. 하지만 며칠 해외여행을 가려고 예산을 짜보니 그 돈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결국 나는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평소 못 사던 옷을 사고, 그 외 용품들을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렸다. 고작 열흘 만의 일이었다.

내 스스로도 이렇게 돈을 많이 쓸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좋은 것은 자잘한 빚이 다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핸드폰 할부금을 완납해서 더 이상 한 달에 사만 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화장실 샤워기 필터를 좋은 것으로 하나 샀다. 놀랍게도 가끔 생기던 뾰루지가 싹 사라졌다. 물티슈도 이 김에 여러 개 사놓았고 테이블을 원목 제품으로 바꾸었다. 비싸고 옮기기 어렵긴 했지만 가끔 책상에 머리를 대고 숨을 들이쉬면 묘한 소나무 냄새가 났다.

마지막으로 늘 쓰던 천 원짜리 탈취제 대신 삼만 칠천 원짜리 양키 캔들과 오만 원짜리 캔들 워머를 구입했다. 회중전등 모양의 캔들 워머는 매일 밤 내 방을 호박색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그 지갑은 우리 집에 몇몇 개의 물건들을 남겨놓고 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들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남 경찰서 형사 박선규라고 합니다. 박용지 씨 맞으시죠.”

전화를 건 사람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 형사였다. 강남 경찰서라? 나는 최근 몇 달간 강남에는 가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싶어 그의 말을 천천히 기다렸다.

요 근래에 김수연씨 만나셨죠?”

김수연씨가 누구에요?”

김수연 씨. 도곡동 사시는 분 말이에요.”

그 순간 몇 주 전 주웠던 그 지갑이 생각났다. 나는 희미하게 기억나는 지갑 주인의 정보를 형사에게 물어보았다.

그 혹시 92년생?”

. 맞아요. 혹시 잠시 서로 출두하셔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저는 그냥 지갑만 주웠던 건데.”

자세한 이야기는 오셔서 해주세요. 혹시 오늘 오실 수 있을까요?”

나는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형사과 안에 있는 강력 1팀으로 찾아오면 된다고 했다. 지갑을 주운 게 강력한 일인가? 그것도 다시 주인한테 돌려줬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선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절도죄로 기소된 것인가.

나는 지하철을 타고 2호선 삼성역에서 내려 강남경찰서로 들어섰다. 경찰서라지만 건물은 아주 세련된 현대식이었다. 경찰서라기보다는 꼭 대기업의 본사 건물처럼 보였다. 중앙의 데스크에서 용무를 전달하자 안내 직원이 내게 강력 1팀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바닥에 노란 화살표로 형사과 가는 길이라고 안내가 되어있었다. 그 화살표를 따라가자 정말 형사과라고 쓰인 유리문이 나타났다. 나는 문을 열었다.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되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 박용지라고 하는데요, 박선규 형사님 전화를 받고.”

. 이쪽으로 오세요.”

내 말을 듣고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소리를 보니 아까 전화를 걸어온 그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사무실을 나와 계단을 몇 개 올라가, ‘취조실3’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취조실은 예전에 음악 하는 친구를 따라서 가 본 녹음실이랑 흡사했다. 벽은 크림색 흡음재로 되어 있었고, 책상과 의자 네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슬쩍 보니 천장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손에 든 서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김수연씨를 어떻게 알아요?”

아는 게 아니고 그분 지갑을 지하철에서 주워서 우체통에 넣어줬습니다.”

지갑을 주웠다고요? 무슨 지갑이었죠?”

구찌 지갑이던 걸로 기억합니다. 벌이 그려져 있는.”

벌 지갑. 그럼 혹시 이거 맞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지퍼백에 담긴 지갑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날 보았던 그 지갑이 맞았다. 나는 그 지갑이 맞다고 대답했다.

이걸 언제, 어디서 주웠어요? 지하철이면 몇 호선 어디 방면?”

날짜는 917일이에요. 3호선이었고 아마 대화행 열차였을 거에요.”

. 그러면 김수연씨가 도곡동 산다는 것도 지갑을 봐서 아는 거고?”

. 그때 제가 지갑을 열어서 누구 거인지 봤었거든요.”

이게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건 말하고 나서 깨달았다. 흠칫 놀라며 형사를 봤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노트북에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우체통에 넣은 건 박용지씨가 맞는가 보네요. 지갑에서 지문이 검출이 됐고, 이 지갑이 이 상태 그대로 105일에 김수연씨 집으로 왔습니다.”

,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김수연씨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 못해요. 그 다음날 새벽에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죽었다고? 오른쪽 귀에서 삐- 하고 이명이 들렸다. 대체 왜?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형사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살인이에요. 칼에 찔린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알리바이도 찾아보면 있을 거에요.”

아는데, 우선 조서를 꾸미기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거 두 장 작성해주세요. 지갑 주운 날이랑 사건 당일인 10월 6일에 뭐 했는지, 소상하게 적으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어디를 다녀오겠다며 취조실을 나갔다.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서류가 몇 장 스테이플러로 묶인 채 놓여 있었다. 저게 혹시 김수연이 찔려 죽었다는 사건에 대한 자료일지도 모른다. 나는 감시카메라가 있는 건 신경 쓰지 않고 서류를 잡았다. 내 예상대로 김수연에 대한 서류가 맞았다.

가족관계 증명서가 맨 앞에 있었다. 아버지가 1962년생, 어머니는 1964년생. 김수연씨는 외동딸이었고 부모님과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서류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사진 두 장이 나왔다.

김수연씨가 숨을 거두었을 때의 사진이었다. 플래시를 터트린 컬러 사진이었는데 그 탓에 색감이 더욱 선명했다. 그녀는 머리를 묶은 채 어딘가의 주차장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주차장 바닥에 레드카펫처럼 피가 고여 있었다. 얼굴이 아스팔트를 보고 있어서 사진에 있는 건 그녀의 뒷모습뿐이었다. 검정색 드레스를 입었는데 등 한가운데가 쭉 찢어져 있었다. 넉넉잡아 십 센티미터는 될 것 같았는데, 그곳이 아마 칼을 맞은 자리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는 구찌 가방이 매어져 있었다. 그날 서비스센터에 맡겼던 건 이 가방이었을까?

밑의 사진은 시체의 얼굴을 찍은 것이었는데, 광대뼈가 부러졌는지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마와 볼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떠져 있는 오른쪽 눈에는 핏발이 서려 있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얼른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

마지막 장에 있는 건 진술서였다. 아마 시체를 최초 발견한 사람의 것인 모양이었다. 성명은 김선규, 직업은 건물 경비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건물의 주소는 없고 이름이 있었는데, 그냥 건물이 아니라 가필드센터 강남문화회관이었다. 나는 진술서의 내용을 읽어나갔다.

 

201910월 6일 오전 2시 15분경 순찰을 위해 건물을 돌고 있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차장 쪽에서 난 것 같아 가보니 피해자의 시체가 주차장에 쓰러져 있었고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손전등으로 화단을 비추어보니 검은 자켓에 회색 바지를 입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도망쳤습니다. 피해자는 잠시 몸을 떨더니 이내 몸에 힘이 풀렸고 발견 당시부터 피가 계속 나고 있어 경찰서에 전화연락을 하였습니다.

진술서는 엄청 짧았다. 자필로 쓴 걸 보면 직접 쓴 것이 확실했다. 이제는 내 진술서를 작성할 차례였다. 나는 두 장에 그때 있었던 일들을 전부 써나가기 시작했다. 메모장에 매일 일기를 써놓아서 편했다. 그걸 읽으면서 기억을 되살려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지갑을 주웠을 때 돈이 있었는지를 쓸까 하다가 그냥 안 썼다. 주인이 죽은 마당에 그깟 현금이 얼마 있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나보다 더 나쁜 놈이 나타나자 내가 한 잘못은 잘못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그냥 우체통에 넣었고, 그날 밤에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고 썼다. 그때 PC방 결제 기록이 남아있을 테니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문제는 105일의 알리바이였다.

105일의 일기에 나는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앓아누워 있었다고 쓰여 있었다. 알리바이가 아무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것이다. 그날 뭘 하고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우선 첫 줄에 심하게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다음 줄에 뭘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형사는 인주를 가져와서 내게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지장을 찍고 진술서를 전달했다. 그는 10월 6일의 진술서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진짜 이것밖에 없어요?”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럼 뭐 그날 집에만 있었어요? 집이 어디라고 하셨지?”

을지로 3가입니다.”

그는 내 말을 하나하나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계속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그럼 도곡동이나, 도곡역 주변에는 절대 안 가고요?”

가본 적이 없어요. 강남 쪽에는 터미널밖에 안 가요.”

김수연씨를 본 적도 없고? 목소리라거나 들은 적도?”

. 그 지갑 아니면 접점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타이핑을 해나갔다. 그리고는 내게 갑자기 웬 광고 사진을 보여 주고 그 사진을 본 적 있냐고 했다. 사진은 컬러 렌즈의 광고사진이었는데, 모델의 눈만 나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렌즈를 안 껴서 렌즈엔 관심도 없고, 이 광고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거두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게 김수연씨 사진이에요.”

. 그분 직업이 모델인가요?”

. 그렇죠.”

이런 걸 나한테 말해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선 조사에만 집중했다. 그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물어보더니 내게 말했다.

. 우선 저녁이나 좀 먹죠. 벌써 저녁시간이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우선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그러면 저녁을 먹고도 조사는 계속된다는 말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틈에 저녁이 날라져 왔다.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퍼 온 듯한, 식판에 담긴 밥이었다. 그런데 단체 급식치고는 상당히 훌륭한 메뉴였다. 소시지 케첩볶음에 잡곡밥, 소고기 뭇국, 취나물무침에 메추리알 조림, 김치까지 포함이었다. 한 끼에 얼마나 할까? 이 정도면 칠천 원 정도 받아도 좋을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 먹던 학교 급식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됐다. 내가 밥을 잘 먹자 박선규 형사가 내게 말해주었다.

저번에 빅뱅 승리 씨 왔을 때도 식당 밥 맛있게 먹더라고요. 맛있죠? 우리는 외식 안 해요.”

, 그러면 저는 여기서 잠도 자야 하나요?”

그는 나의 말에 미간을 잠시 찌푸리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내일도 조사받으러 오셔야 해요.”

언제까지 그렇게 출두를 해야 하나요?”

선생님의 무죄가 증명될 때까지는 그래야겠죠. 감식반에서 지금 사체를 조사하고 있어요. 이삼일 내로 결과가 나올 거 같습니다.”

이삼일.”

어차피 나는 휴학 중이라 뭐 상관도 없었다. 나는 궁금해서 그에게 이 사건에 용의자가 몇 명이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서너 명 있어요. 제일 유력한 용의자도 지금 다른 곳에서 조사받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결정적인 증거까지 가지고 있거든요. CCTV 확인하고 그러고 있어요. 선생님은 불구속 수사지만 그 사람은 구속수사하고 있습니다.”

구속수사면 경찰서에서 자나요? 숙직실에서?”

유치장에서 재우죠. 그분은 핸드폰도 뺏었어요. 뭐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지만 내부에서는 한 70퍼센트 정도 그분 소행이라고 봅니다.”

그럼 나를 왜 불러서 조사하는 걸까. 하지만 핸드폰도 쓰게 해주고 밥도 챙겨주니 내게 그렇게 손해가 가는 건 없었다.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편하실 때 오세요. 식사도 제공해드릴 테니까. 저희는 하나라도 더 증거가 필요하니까 증거가 생각나면 꼭 말씀해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취조실을 나섰다. 집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할 테지만 그 전에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아까 건물 경비원의 진술서에서 확인했던 바로 그, 김수연 씨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건물이었다. 이미 이름은 기억해놓고 있었다. 가필드센터 강남문화회관. 나는 네이버에 건물 이름을 검색했다. 다행히도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한 번에 바로 갈 수 있었다.

왜 가고 싶은지는 나 자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김수연씨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어떤 곳에서 숨을 거뒀는지, 그리고 그곳은 어떤 곳인지가 궁금했다. 버스는 금방 왔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쉽게 그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잘 몰랐는데, 그 건물은 상당히 특이한 디자인이었다. 마치 도넛을 연상케 하는, 가운데가 빈 동그란 모양이었다. 건물 1층은 모두 주차장이었고 문을 통해 2층으로 들어가야 했다. 꼭 외계인의 UFO가 잠시 착륙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역시 내 예상대로 건물에는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경찰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에서 김수연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사건이 어디서 일어난 건가, 궁금해서 고개를 빼고 살펴보니 금세 보였다.

말라붙은 검붉은 피가 주차 라인 한 칸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말라붙은 게 저 정도면 범행 당시에는 얼마나 많았을까. 더 보고 싶었으나 옆에서 지키고 있던 경찰 한 명이 들어가시면 안 된다고 제지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김수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올 정도인 사람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내가 처음 지갑을 주웠을 때 보았던 그 증명사진이었다. 예명 없이 그대로 김수연을 썼고 나이는 1992년생이지만 프로필용 나이는 1995년생으로 되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아직 사망 처리는 되지 않았고, 직업은 모델 겸 배우로 나와 있었다. 어떤 작품에 나왔는지 궁금해서 더욱더 자세히 확인해봤다. 내가 들어본 영화도 몇 개 있었지만 대개 단역 아니면 조연이었다. 그녀는 죽기 몇 달 전에도 활발하게 영화에 출연하고 있었다.

혹시나 더 정보가 있을까 싶어 그녀의 소속사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유명한 배우와 모델들도 있는 상당히 규모 큰 회사였다. 그녀의 프로필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있었다. 내 예상대로 소속사 프로필은 네이버 프로필보다 조금 더 자세했다. 그녀가 출연한 광고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게시해 놓은 것이었다.

그녀는 미스코리아 서울 미 출신이었고 여러 광고도 찍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중 하나인 구취제거제의 광고를 클릭했다. 영상은 삼십 초짜리였는데 아마도 유튜브를 노리고 만든 분량인 모양이었다. 처음 화면을 보는 순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수연씨는 광고에서 구취제거제를 들고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레이션으로 내 쨍한 웃음의 비결은, 리스테린!’ 이라는 문구가 나왔다. 아마 나레이션 역시 그녀의 목소리로 보였다. 하얀 치열과 눈웃음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까 내가 봤던 그 일그러진 얼굴과 일치가 전혀 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이란 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누가 이 여자를 죽였을까.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모델 일로 밥 먹고 살고 있던 이 사람을 누가 죽인 걸까. 문득 내 방 안에 있던, 그녀의 돈으로 산 물건들이 보기 싫어졌다. 그러나 버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내가 경찰서에 갔을 때, 형사는 내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제보다 더 자주 자리를 비웠다. 나는 또다시 경찰서에 가서 쓸데없는 진술서를 작성했다. 이번에는 어제 집에서 생각해낸 것들을 추가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침으로 식빵을 먹었고, 점심으로 피자 배달을 시켰다고 썼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일종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어제 형사가 유력 용의자도 조사받고 있다고 말해준 다음부터 누명을 쓸 걱정은 절대 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나는 진술서 세 장을 썼다. 형사는 점심을 가지고 와서는 내 진술서는 확인하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먹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제육볶음에 상추쌈, 된장국, 오징어 볶음이었다. 나는 상추쌈을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물었다.

오늘은 진술서 확인을 안 하시네요?”

방금 유력 용의자 자백 나왔습니다. 부검 결과 봐야 알겠지만 거의 확실해요.”

진짜요? 그럼 오늘 저 안 왔어도 됐겠네요.”

자백만 가지고 유죄 입증이 안돼서 오늘까지는 오셔야 했을걸요. 그래도 자백이 일관성이 있고 상황이랑도 맞아떨어져요.”

어떤 관계였는데 그분을 살해한 거죠?”

그는 그것까지는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도 그가 가지고 온 서류 뭉치에 정답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형사가 식판을 돌려놓으러 간 사이에 서류 뭉치를 확인했다. 어제의 그 서류가 맞긴 했는데, 내 예상대로 거기에는 진술서가 추가되어 있었다. 진술한 사람의 이름은 박주현이었다. 나는 천천히 진술서를 읽어나갔다.

 

피해자 김수연과 저는 2016년경 직업상의 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포토그래퍼였던 저는 김수연의 사진을 여러 차례 찍어 주었고 이후 가까워져 사석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되어, 2016년 말부터 교제를 시작하였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였던 저희 둘은 2018년 들어 부쩍 결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수연은 프리랜서라는 저의 직업적 한계를 아쉽게 생각하며 늘 번듯한 회사에 입사하라,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취업 준비를 해보라는 등의 압박을 주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거절하면서부터 김수연은 저와의 연락이 시들해지게 되었습니다.

2019년에 들어서부터는 김수연은 저에게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저와 함께 맞춘 반지를 빼고 다니는 등의 행동을 자주 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상당히 절박해져서 김수연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하고 다니는 등의 일이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612. 저는 동료 포토그래퍼 최동우에게 김수연을 촬영장에서 만났는데, 같이 촬영한 남자 모델과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둘이 연인 관계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김수연에게 연락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김수연은 업무가 바쁘다며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2019920. 저는 오랜만에 만난 김수연에게 내가 선물해준 지갑과 가방을 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수연은 지갑은 잃어버렸고 가방은 A/S를 맡겼다. A/S 영수증을 지갑에 넣어놓아서 둘 다 보여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변명으로 생각하고 김수연이 저를 버렸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수연을 죽이겠다고 생각해 2019105일 오후 6시경 영국제 페어번-사익스 단검을 강남구에 소재한 밀리터리 용품점 제레미와이드에서 9만 7천 원을 주고 구입해 저의 자켓 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같은 날 8시 40분경부터 저는 김수연의 집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가, 새벽 2시경 집을 나서는 김수연을 만났습니다. 저는 15분여간 김수연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좀 하자고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김수연은 저를 못 본체 하기만 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저는 근처에 있던 가필드센터 강남문화회관 주차장으로 김수연을 유인하여 자켓 안주머니에 있는 단검을 꺼내 김수연의 등, 목 등을 10여 차례 난자하였습니다.

김수연이 쓰러진 후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자연스럽게 주차장 옆 화단을 통해 도망쳤고, 서울특별시 방배동에 있는 저의 자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지갑이 박주현이 김수연을 죽이는 데 영향을 미치긴 한 셈이었다. 죄책감이 들어 서류를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만약 그 지갑을 줍지 않았더라면 김수연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살해된 채로 발견되지는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형사가 돌아왔다. 그는 내가 쓴 진술서를 걷어가면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방금 검사결과가 나왔어요. 어제 말했던 주요 용의자, 그 사람 자켓에서 피해자의 피가 묻은 게 발견이 됐어요. 하여튼 이틀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그 사람이 범인으로 확정된 건가요?”

. 아마 빠르면 오늘 저녁 뉴스에도 나올 겁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나는 그날 저녁 뉴스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일상을 살았다. 휴학생이라도 할 일은 많았다. 몇 가지 시험을 보고 자격증도 따고,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그런데 남들을 보니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못 한 일들이 널려 있었다. 그래봤자 망한 인생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매일 밤 캔들 워머의 호박색 불 밑에서 딴 짓을 했다. 해봤자 돈도 안 되고 인생에 도움도 안 되는 짓들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글을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올해 살해당한 여자 모델이라는 글이었다. 김수연 씨가 생각나 나는 얼른 글을 클릭해보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으나, 그 글은 바로 그 김수연씨에 대한 글이었다.

어딘가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을 캡쳐한 것 같았다. 여덟 장의 캡쳐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내가 다 아는 내용이었다. 무슨 영화에 출연했고, 무슨 광고에 나온 모델 겸 배우 김수연 씨가 강남 건물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자백했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는 나만 아는 내용도 마지막 장에 들어 있었다.

남자친구는 조사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김수연이 자신과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자신이 김수연에게 직접 환전해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마지막 장을 읽고 몇 분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할부금이 완납된 핸드폰, 원목 책상, 샤워기 필터, 물티슈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캔들 워머였다.

그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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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4 21:44 1차 퇴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지영

 

 

 

 

 

작품 등록일 : 2020-02-02
끌올...
sj******   
이거도 이드 띵작
히잉이   
우와 유로화 일련번호로 추적..이런게 이어지면 속편 나오는건가..
gu******   
넘넘 잼있다
yo*******   
우와 한번에 싹읽음
lo******   
존잼
젠히   
헐 멋있다 ㅋㅋㅋㅋㅋ실화인줄
장코   
커버는 구리지만 글은 참 재밌다
pipp   
존잼
사과밭   
재밌당
여름밤2   
존잼
콜미바이유어네임   
물방울떡   
진짜 재밌다
xoxomoon00   
와........대박........진짜 재밋다..
맥쥬소쥬   
재밌어요^^
찐빵   
진짜 섬세하다
he********   
우왕짱잼!!
lu*********   
와 우연히 클릭해서 순식간에 다 읽었어
ju****   
재밌어 순식간에 다 읽음 존나 검색해 볼뻔 댓글 안니였으면
kk**   
와 진짜진짜 잘쓴다
코코넛러브   
충격적이군
머리를 한대 맞은거같은 기분이 드는건 이 소설 때문인가 졸려서인가
ha****   
좋다
ji*******   
재밌게 읽었어 언니
메리제인   
지영이 행님 조은 친구를 소개해주어 고맙읍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ㅋㅋㅋ 느낌 살짝비슷했다능ㅋㅋ
Gye   
엉엉 죄책감!!!
Darian   
와진짜재밌어
Jen   
와 쫄깃해
la******   
잘썼다
치코리타귀여워   
가독성 짱이네.
누노   
소장이 월간이드 출간하면 또 돈 모아놓을게ㅋㅋㅋ
나 폰만 만지고 살아서 글도 두줄 읽고 재미 없으면 안 읽는데 당신꺼는 호로록 읽음 ㅎㅎ
Gye   
추리소설 써도 잘 쓰겠다. 디테일 쩔고 중간중간에 사건이 연결되는거 장난아니네. 너 정체가 모니
ka******   
흥미진진하네
뭏낙   
심장 쫄깃한채로 읽은 건 죄와벌 이후로 처음!!
가지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느끼고 사는 여자의 숙명 같음
rl*******   
순식간에 읽음 재밌다
톰보이   
어쩜♡ 돈 드립니당♡
sh****   
재밌다 또 써줘
tr******   
호에에 진짜 재밌어
저수지도 카페이야기도 이것도 진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재밌다
돌멩이   
근데 후기 같은 거는 좀 안 쓰는 거 추천. 글쓰는 사람이 무슨 변명이 그렇게 많냐. 그냥 쓰고 올리면 그만이지.
관리자   
소장추천은 실패하지않넹 잼썼따 ㅋㅋ
키위**   
정말, 재밌네
여우만만   
호엥 재밌어
재아   
헐.. 잘썼다..
?   
나존나 초반에는 진짜있었던일인줄 알고 읽움ㅋㅋㅋㅋㅋ 재밌다 잘읽었어
mm*****   
디테일의 승리.
관리자   
마지막에 천유로 요구한것만 빼면 그럴듯함ㅋㅋㅋㅋㅋ
일어나보니 오후 2시   
재밌다
로라   
와 재미있다. 리얼해.
보패   
홀리듯 읽었네 잘읽었어!
ki****   
에이 시벌ㅋㅋㅋ
진짠가 싶어서 또 김수연 검색해볼 뻔 했네
내가 일기를 쓰니까 남 것도 일기같음ㅋㅋㅋㅋ
책은 딱 소설, 수필 나눠져있는데 ㅋㅋㅋ
재미떵.잘봐뛍!!
Gye   
좋당 순식간에 읽었어
n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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