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집으로 가는 길 (1)

6살이 되어서야 만나게된 낯선 부모의 집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할아버지는 후랑크소세지를 까서 부지런히 손녀의 입속에 쏙쏙 넣어주었다.

엄마아빠랑 살아서 좋겠네~
거기가면 공기도 좋고 할비도 자주 볼러 갈게~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겨울의 앙상하고 흐린 풍경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역에서 어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두 남녀가 나의 엄마 아빠라고 했다.
두발짝쯤 가다 이내 울면서 뒤돌아 할아버지에게 안겼는데,
아빠라는 작자가 내 손을 획 낚아채서는 그대로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갔고 냄새나는 포터에 실려 아빠와 엄마 사이에 끼인채로 낯선 도시를 달리다 외곽으로 자꾸만 자꾸만가서 넓고 넓은 이상한 땅에 봉긋하게 솟은 초가집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는 몇밤전에 서울에서 여기 왔다고 했다.
초가집의 종이가 발린 이상하고 조그만 문을 열었더니 천장을 보고 버둥거리는 젖먹이 아기와 코를 턱까지 흘리고 있는 나보다 좀더 작은 아이가 있었다. 
이들이 나의 동생이라고 했다. 누워있는 애가 남동생, 코흘리게가 내 여동생이라고 소개하며 바닥의 걸레로 여동생의 코를 벅벅 닦아냈다.
이어 버둥거리던 아기의 기저귀를 벗겨내서 나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는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쉬가 마려우면 방 구석의 요강에서 누면 되고 똥이 마려우면 저기 담벼락에 가서 호미로 살살 땅을 파서 누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후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가족이 오줌을 누고 나면 요강을 비우고 엄마 아빠가 일하러가면 여동생의 코를 걸레로 닦고, 남동생의 기저귀를 갈았고, 더 얼마뒤에서는 아궁이의 불이 꺼지지 않게 나무를 넣게 되었고, 더 지나서는 기저귀를 빨아서 빨갛게 얼어터진 손으로 탈탈 털어 마당에 걸린 빨랫줄에 널게되었다. 여동생은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았고, 남동생은 어쩐일인지 울지를 않았다. 할아버지랑 살때 건넛방 새댁이네 애기는 밤낮으로 울어서 남편이 집을 나갔다고 했는데.

동네 어른이 하얀 백구한마리랑 빼빼 마른 검은 개를 데리고 왔다.
백구의 이름은 흰순이고, 검은 것은 깡순이라고 했다.
아빠는 늘 누워있었지만 그날은 일어나서 백구와 깡순이가 살 집을 만들었다.

그날 부터 나는 개 밥을 챙겨 주는 일과 똥을 치우는 일도 하게 되었다.

흰순이는 눈이 오는 날에는 정말로 신이나게 눈밭을 뛰어다녔고, 깡순이는 진짜로 바들바들 떨어서 나는 엄마 아빠가 없을때마다 수시로 안아주었다. 여동생은 자기도 안아달라고 자꾸만 보챘다. 남동생은 갸우뚱하면서 몸을 뒤집기도 했다.

집안일을 잘하면 엄마는 가끔 건빵을 주었다.
나는 그걸 참 아껴서 먹었다. 여동생에게 별사탕을 주느라 나는 딱 한번 흘린거를 먹어보았다. 참 달았다.
개들과 나눠먹으려고 개밥그릇에 넣어줬다. 밤에 엄마가 와서 이 비싼거를 개새끼를 줬다고 쳐먹기 싫으면 쳐먹지 말지 하며 뺨을 몇대 갈겼다. 코 끝이 찌릿하더니 찝찌름하게 코피가 났다. 그게 아닌데... 손을 싹싹 빌며 잘못했다고 했다. 어디서 배운것도 아니고 한번도 해본적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하게 되었다. 그래야 살수있을것 같았다. 그날 벌로 쫓겨나서 흰순이네 개집에서 자게되었다. 흰순이랑 꼭 안고 잠이 들었다. 깡순이도 비집고 들어와서 따뜻했다. 발이 얼었다. 진물이 났다. 동상이라고 했다. 나는 된장이 치덕치덕 발린 발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처음으로 여동생이 말을 했다. 자기가 몇밤 전에 똥을 밟았는데 이렇게 됐었다고.

봄이라는 것이 왔나보다. 
겨우내 얼어서 꼼짝않던 개울이 와글와글 시끌럽게 지나간다.
도로에서 멀금멀금 아지랑이가 피었다.
나른하게 졸려서 짚단에 벌렁 누워 지나가는 구름을 하루 종일 바라보다 잠들었다.

아침상은 언제나 남는다. 점심때 마져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설탕물을 한그릇 타서 여동생과 나누어 먹고, 남동생 분유를 먹이는 것은 우리의 저녁식사다. 
밤이 되면 시끄럽게 포터가 들어오고 엄마 아빠가 온다.

그날 아빠는 시발 거리면서 들어왔다. 
아빠 손에는 깡순이가 빳빳하게 굳어서 가만히 들려있었다. 풀숲에 제초제를 뿌렸는데, 깡순이가 내가 줬던 건빵을 숨겨뒀다가 먹은것 같다고 했다. 
망할년아 니가 개새끼 죽였다고 아빠가 발로 찼다. 울컥하고 아까 먹은 설탕물이 올라왔다. 걸레로 그걸 닦으면서 나는 깡순이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여동생이 달려와서 아빠다리를 물었다. 나는 그러지말라고 여동생을 뜯어 냈고 머리통을 몇대 더 맞았다. 
아빠는 깡순이를 휘휘 몇바퀴 돌려서 어디론가 던져 버렸다.

날이 밝고 엄마 아빠가 일하러가고 나는 남동생을 등에 업고 여동생 손을 잡고 깡순이를 찾으려 온 들녘을 해짚었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다같이 아빠의 포터를 타고 어디론가를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사진이 있었고, 아빠는 서럽게 울었다. 계속 울기만 했다.
무슨일인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없고 할아버지 사진만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딜 갔다고 했다. 이다음에 이다음에 볼수있다고 했다.
나 버리고 어디 갈려고 나를 버리고 갔구나. 할아버지가 진짜 미웠다. 
아빠가 하듯이 욕을 했다. 시발새끼. 나를 보러 한번도 오지않고.

흰순이 밥을 주려고 나갔더니 흰순이가 없다. 
동산에서 연기가 핀다.
동생들을 업고 손에 쥐고 동산으로 올라갔다.
아빠다.
동네 아저씨들과 모여있다.
나무에는 흰순이가 피떡이 되어서 목이 달려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동산을 내려오면서 토를 하기도 하고 부르르 떨기도했다.
예쁜것을 봐야지 되겠다고 이웃마을에 꽃구경을 다녀왔다. 누구의 무덤인지 양지바른 곳에 아이들을 내려두고 한참을 울었다. 

개집은 한동안 계속 비어있었다.

팀스프리트 훈련이라는 것을 한단다.
하늘에 까맣게 헬기가 떠있었다.
우리집옆에 논에 헬기가 누런 흙먼지를 날리며 앉았다. 
도로에는 매일 탱크가 지나다녔다.
나는 면에 딱 하나 있는 국민학교 병설유치원에 들어갔다. 여동생은 나랑 같이 집에서 나서서 내가 마칠때까지 학교앞 분식집에서 기다렸다.
남동생은 엄마가 데리고 일하러 갔다.

매일 유치원이 파하면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놀았다.
나는 종일 기다렸을 여동생에게 달려갔다.
여동생은 늘 분식집앞 평상에 오도카니 앉아서 머리가 다 빠진 꼬질꼬질한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동생의 손을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멀었다. 걷다가 동생이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유치원가방을 동생에게 걸어주고 등에 업업었다가 좀 앉아서 쉬다가 탱크를 구경하고
기브미쪼꼬레 해서 미군식량봉투를 받아오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알려주고 할아버지한테 배운 현철의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집까지 걸어왔다. 

노태우가 대통령을 하고싶다고 우리집에 얇은 책을 보냈다. 집에 책이 한권도 없었는데 거기는 그림도 있고 만화도 있고 글도 있어서 좋았다.
대통령이 뭔지는 몰랐지만 얼마나 하고싶으면 할아버지도 잊어버린, 개도 한마리 없는 우리집까지 책을 보냈을까.

그해 겨울 나는 우리집에 불을 질렀다. 
작품 등록일 : 2020-03-09

▶ 88년 집으로 가는 길(2)

다 묶어서 출판했으면...
물불바람물마음   
ㅜㅜ
팡안리   
문학관에 올려줘서 너무 좋다 ㅠㅠ
se*****   
진짜..다시 읽어도ㅜㅜ
펜지   
나도 이드 글 중에 최고라고 생각해
깔라만시   
이드 글 중에 최고야
hy****   
와이씨 다시읽어도 ㅠㅠ
키위**   
아 ㅠㅠ
la******   
ㅠㅠ
mo*****   
이글 기다렸어
정은   
마스크 사려고 기다리면서
읽는데 흑
쿵짝쿵짝   
이드에서 제일 좋아하는 글
김씨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