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 - 에바 일루즈(0)
sh****** 2021-02-02
빨갱이냄새 싫은 사람은 스루ㄱ


최근 관계맺기를 지양하는 2~30대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느껴짐.
이런 현상에 관한 책이 있지 않을까 싶던 찰나에 에바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를 발견함.
읽어보니 이드녀들이 관심을 가질듯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 여기다 발췌해 봄.

사실 '관계맺기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에 발간된 <사랑은 왜 끝나나>가 더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제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랑은 왜 아픈가>부터 공유함.




…오늘날 중산층 출신 이성애 여성들은 참으로 묘한 역사적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여성은 당당하게 자신의 몸과 감정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지금껏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여전히 남자에게 지배당한다.


… 여자가 서두르는 것도, 배타적 독점의 형태를 원하는 것도, 두 남자는 원치 않는다. 여자가 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남자보다 더 쉽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바람에 이는 다시금 남자, 특히 동등하거나 우월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자가 만남의 감정적 조건들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사정을 경제적으로 표현해보자. 경제자원을 주로 통제하는 덕에 남자들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누군가와 결합하려는 본능을 지는 여성은 자신이 지닌 유일한 무기인 섹스를 교환수단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여성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니까 여성의 감정세계는 수요와 공급, 과잉과 부족이라는 관계를 활용하는 남자의 감정세계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이성애의 낭만적 사랑은 20세기에 일어난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혁명을 포괄한다. 하나는 생활방식의 철저한 개인주의화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자신의 감정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사회 관계의 경제화로 자아와 심지어 그 감정을 꾸미는 일까지 경제모델이 장악했음을 뜻한다. 섹스와 성적 취향은 도덕규범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방식과 인생설계의 문제가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문화의 문법이 권력을 가지고 이성애라는 낭만적 관계의 영역으로 침투해 장악한 결과다.


현대의 개인은 감정적인 동시에 경제적이며, 소설을 읽으며 낭만을 즐기는 동시에 계산적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결혼에서 사랑이 차지하던 핵심역할이, 가족 결성의 도구로서 결혼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함께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사회적 이동성을 담당한다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럼에도 경제적 계산에 종지부를 찍기는커녕 현실의 사랑은 더욱더 경제적 계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랑이라는 연금술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결혼시장은 낭만적 관계의 탈규제화라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 배우자 선택과정을 규제하던 전통적 도덕규범으로부터 낭만적 관계를 분리시키면서 탄생한 게 결혼시장이다. 낭만적 관계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환’은 사회가 배우자를 찾는 일에 더는 간섭하지 않으며, 치열한 경쟁 아래서 만남의 과정이 이뤄지도록 한 발달의 결과물이다. (중략) 이런 역사적 발전과정은 동질혼과 같은 사회적 규제의 소멸과 결정의 개인주의화 그리고 경쟁상황의 일반화와 맞물려있다. 결혼시장의 형성은 곧 현대에 들어와 빚어진 일이며, 현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상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혼시장을 운운하기보다는 ‘섹스 경연장들’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물론 경연장이라는 개념은 짝을 찾아 나선 남성과 여성이 어느 주어진 사회적 장소에서 함께 경쟁할 때 똑같은 능력을 자랑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


자유가 경제영역에서 불평등을 야기한 동시에 이를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게 만들어버렸듯, 섹스영역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감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들을 교묘하게 가려놓는 효과를 빚어냈다. 이 책이 확실히 하려는 핵심논점들 가운데 하나는 상당히 단순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조건들 아래서 남자는 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여자보다 훨씬 더 큰 선택의 폭을 누린다. 그리고 이 불균형이 남자의 감정적 지배를 이끌어냈다. 이 책의 목표는 결국 전통적으로 심리학이 지배하던 곳으로 사회학을 데려가서, 여성 문화사회학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곧 우리 주관의 아주 은밀한 구석까지 속속들이 낭만적 선택의 생태와 구조의 변화 같은 ‘주어진 큰 사건’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를 구하는 일이다. 사랑받지 못한다거나, 버림을 받았다거나 거리를 두는 상대의 태도로 아파하는 것 같은 감정적 고통의 익숙한 경험은 결정적으로 현대의 주요 제도와 가치가 빚어놓은 결과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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