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반지

얘야조씨가 살아 있었디야!

 

오늘 지녁에 집으로 온다는구먼거 봐라 내가 뭐랬능가니 아부지두 살아계신 게 틀림없다니께니두 언능 내려오니라.”

 

내가 퇴근하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엄마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있었다처음 나는 엄마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엄마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유조씨가 누구…….”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벼락이 내 귀청을 때렸다.

 

야가 지금 무신 뚱딴지같은 소리랴조씨가 누군지 발써 잊어버렸능겨느그 아부지 배그 해주호를 탓던 영배아부지 말여 이것아영배 엄니 말루다가는 조씨가 중국에서 들어와 그동안 국정원인가 워딘가에서 조사를 받고 오늘 풀려난다는디닌 기자람서 그것두 모르능겨?”

 

그제야 나의 입에서 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조동식그는 17년 전아빠와 함께 말도 앞바다에서 실종된 이웃집 아저씨였다그렇다면 17년 전 그때해경이 발표한 것처럼 아빠와 조씨는 바다에서 실종된 것이 아니라 이북에 납북되었던 게 틀림없는 사실로 드러난 셈이었다그런데 아빠는 어찌된 것일까아저씨가 돌아왔다면 응당 아빠도 같이 돌아왔어야 하지 않은가나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와 차를 몰고 강화도로 향했다무엇보다도 우선 아저씨를 만나봐야만 했다.

 

내가 강화도에 도착했을 때엄마는 그때까지도 아저씨를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다영배엄마는 영배아빠가 병이 나 몹시 지쳐 있다며 엄마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나는 이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가 비록 죽을병에 걸려 있다 해도 엄마에게 먼저 달려와 아빠의 생사 여부를 알려주는 게 도리였다엄마는 진득하니 궁둥이를 붙이지 못하고 연방 영배네 집 대문을 들락거렸다영배엄마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밤 10시가 조금 지나서였다나는 엄마와 함께 허둥지둥 영배네 집으로 갔다집안은 뜻밖에 조용했다방문을 열자 그가 그때까지도 누워 있었는지 이부자리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비실비실 일어나 앉았다.

 

어서 오세요아주머니제가 먼저 찾아가 뵀어야 하는데 몸이 워낙…….”

 

그의 목소리에는 가랑가랑 가래가 끼어 있었다툭 불거진 광대뼈움푹 들어간 눈하얗게 센 머리깡마른 체구에 꾸부정하게 굽은 등 하며옛날 어렸을 적 보았던 꼿꼿했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엄마와 내가 자리에 앉자 영배엄마가 식혜와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해주호가 실종됐을 때만 해도, ‘서산에 잘 있는 냄편을 이곳까지 데불고와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라며엄마에게 악을 써댔다그러지 않아도 넋이 나간 엄마는 그럴 때마다 영배엄마를 달래느라 쩔쩔매곤 했었다조씨의 초췌해진 모습을 보자 나는 화보다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동안 고상 많았지유어렸을 때 봐서 기억이나 할랑가야가 우리 딸 미나유.”

 

내가 그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많이 컸구먼.”

 

그가 나를 일별하고는 엄마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미안합니다혼자만 내려와서…….”

 

그래우리 미나 아부지는 어찌 된 거유살아는 계시쥬?”

 

살아는 계시지요그럼은요살아 계십니다.”

 

그의 말투가 좀 이상했다엄마가 불안한 듯 눈이 한층 더 커졌다.

 

아니그럼 영배 아부지는 우리 애아범 소식을 잘 모른다는 게유우리 애아범과는 같이 안 있었남유?”

 

그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톡톡두드렸다그의 손등은 상처자국으로 얼룩져 있어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다왼손 엄지손톱은 뭉그러진 채 꺼멓게 죽어 있었고오른쪽 새끼손가락은 아예 한 마디가 뭉툭 잘려나가 고 없었다그가 마지못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엄마의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는 것 같았다나도 벅찬 가슴을 누르고 그의 이야기에 쫑긋 귀를 세웠다.

작품 등록일 : 2023-05-23
독자서평
와 글 진짜 잘썼다.

과연 마지막말이 사실인지도... 난 못믿겠다
데미럽   
끝까지 숨도 못 쉬도 읽음. 훌륭한 단편.
관리자   
재밌다. 밥먹다가 단숨에 읽어버렸네
hoy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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