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딸이 내팽개쳐 저 있던 핸드폰을 들어서 확인한다
'부재중 전화 1통 엄마 9 : 40'
'노인네 아침부터 전화했었네. 보자... 두 시간은 훨씬 지난 거 같은데.'
"여보세요?"
"으어. 네 어디고?"
"집인데. 엄마는?"
"으어. 밭에"
"맞나. 왜?"
"아니 머시 그거 어예됐나 싶어가야."
며칠 전 앞집이 엘리베이터 앞에 황색 의료폐기물 봉투를 내놓은 일이 있었다.
병원에서 청소 일을 하는 엄마에게 급히 전화해서 황색 봉투에 대해 물어보며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앞집이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하는 통화를 했었다.
엄마는 밭을 매다가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던 모양이다.
아니면 밭으로 가다가 심심해서 통화나 할까 하고 전화했을지도 모른다. 그 참에 그 일도 물어보고 싶고.
엄마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늙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몇 해 전에 뇌혈관이 한번 터진 적이 있어서 수술 후에는 부쩍 심해졌다.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해서 겨우 겨드랑이만 벌릴 수 있는 정도인데도 아직 병원 청소며 계단 청소며 부지런히 돈을 벌고 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어쨌거나 노화의 징후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확실히 총기는 사라져버렸다.
사지 육신 튼튼하다고는 못하겠으나 분명 엄마보다는 건강하고, 주변에 아기를 낳은 친구들이나 동생들보다는 건강하지만 마음에 병을 얻어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은 하고 있지 않다.
매일 집에만 있게 된 후로 늙은 엄마는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서로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내 쪽이 조금 더 나은지 우리의 대화 중에 종종 나는 깨닫는다. 이 이야기를 우리가 벌써 몇 번째 반복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꼭 마치 처음 들려주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는 엄마를 두고, 벌써 했던 이야기라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인지 알기에. 엄마가 아직 절반도 다 꺼내지 못했고, 좀 지나면 엄마가 가장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 주변에 젊은 사람이래봐야 손주를 들처업고 놀러 온 동네 '젊은 할머니'들이 전부다. 성당에도 나가보지만 청년들과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 먼저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면 좋으련만,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움이 많아졌다. 그나마 제일 젊은 사람은 보좌신부님이지만 그이의 사는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을까 말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애를 보는 여동생한테 전화를 걸어봐야 우는소리뿐이고, 시집을 잘못 보낸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릴 바에, 집에서 놀고 있는 늙은 언니에게 전화하는 편이 낫다.
나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일을 해왔고, 엄마와는 20년을 떨어져 살았으니, 낯선 나의 인생 이야기는 어쩌면 엄마한테는 누가 보기는 하나 싶지만, 아주아주 오래 방영되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인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도 착한척하고 사느라, 속에 있는 이야기를 여과 없이 털어놓기에는 멀리 사는 내가 편한 배설구였을 것이다. 온갖 시기와 질투, 마음에 안 드는 여자들 흉보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으니, 틈만 나면 왁 쏟아내고는 툭 하고 끊어버렸다. 잘난척하고 싶어 죽겠는데 들어줄 사람은 늙은 딸뿐이었다. 이모들은 다들 너무 잘 났고, 이모의 자식들도 하나같이 판검사에 하다못해 약사가 되었으니 못난 시샘도 한탄도 늙은 딸한테 퍼부을 노릇이었다.
자기가 나를 얼마나 학대하며 키웠는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단 한 번의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는 그 자존심을 굳이 긁어내지 않는 무던한 딸에게 오늘도 내일도 살을 빼라는 둥,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둥, 일장 연설을 하고 나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그런 여자였다. 오늘도 내일도 어제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전화를 받아주는 늙은 딸의 쓸모를 너무 잘 아는 여자였다.
엄마도 몇 해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늙은 딸은 꼭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주고, 자기 입으로는 차마 뱉지 못하는 걸출한 욕도 한 바가지씩 해주니
"아유, 니는 무슨 욕을 그렇게 하노. 그라무 안 돼."
하면서도 속으로는 체증이 내려가고 가려웠던 것을 벅벅 긁어주니 알면서도 끊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엄마는 정말이지 잊어버린 것 같다. 꼭 처음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꼭꼭 씹어 하나라도 놓칠세라 공들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종종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나는 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 쓸모없는 남자친구 이야기. 회사 동료 이야기.
가끔은 엄마다운 구실도 좀 해보라고 다 알지만 모르는 척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아유, 니는 그런 것도 모르나"
로 시작해서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한참을 설명했다.
뭐 가끔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노화로 생기는 증상들이나 부인 질환이나 보험 같은 것들.
엄마는 참 쓸모가 없는 사람이지만 나보다 28년을 먼저 살아 봤기 때문에 28년 어치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28년어치의 연륜이 있다.
20년 차 장수 드라마는 가끔, 작가도 배우도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던가 헷갈리기도 한다.
엄마한테 한참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기시감이 든다. 비단 기시감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나는 분명히 이야기를 했고, 어쩌면 엄마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 엄마는 재방송을 꼭 처음 보는 마냥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생각한다. 엄마가 재방송인 것을 알고 보고 있기를.
정말로 처음 보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별로 사랑하지 않지만, 엄마는 참 별로 쓸모도 없지만, 엄마가 아프고 그러다가 죽으면 나는 유일한 시청자를 잃어버리고, 나의 드라마는 영영 재방송도 하지 않는, 세상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
엄마는 참 쓸모없지만, 더 쓸모없고 고약한 아빠를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인 점에서 엄마가 아빠보다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되도록이면 병수발도 못해줄 만한 그 위인을 곁에 두고 아프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병수발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가끔 가서 죽어가는 엄마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까 싶기는 하다.
"아, 맞다. 엄마 어딘데"
"어, 엄마 지금 밭에"
"아, 아까 물어봤제. ㅎㅎ 내 정신 봐라"
"니는 어딘데"
"내? 집이다"
"맞나. 밥 챙겨 먹어라"
"어, 엄마도 물 자주 마시고"
"오야, 또 통화하자"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던 재방송은 오늘 방송분을 모두 마치고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