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이 걱정된다.
10월 끝자락, 뼈마디에 스며드는 한기에 계속 코를 훌쩍인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다.
야근을 하고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겨우 막차를 타고 간다.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리면 온도차에 얼굴이 발그레 진다.
술에 취한 기분으로 눈을 감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작은 포장마차가 있다.
그곳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평소에는 들어가 볼 생각도 안 했다.
길가에 무턱대고 장사하는 노상들을 혐오한다.
도대체 어디서 물을 길어와서 음식을 만드는 건지, 아무튼 보기 안 좋으니까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날은 배가 무지 고팠다.
야근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주 엿같은 회사, 무능한 팀장은 우리 팀에 일만 가져왔다.
자기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나는 매일 매일 야근에 지쳤다.
나이 많은 중고 신입이 입다물고 해야지.
다들 내게 보내는 눈치가 그랬다.
나는 모든게 아쉬운 처지라 하라는 대로 했다.
바보같이 다 해놓고 속이 곪아가고 있었다.
" 아줌마, 국수 하나만 주세요. "
손님이라고는 나하고 아저씨 한 명 있었다.
주문해 놓고 바로 후회했다.
둘러보니 너무 비위생적인 환경이라.
주인아줌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봤다.
불편해 보이는 동선에도 아줌마는 익숙하게 몸을 움직여 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 자, 우리 집 김치 다 맛있다 그래, 같이 먹어봐요. "
아줌마가 내어준 김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쉰 김치였다.
언제 담그셨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색이 바랜 배추에 흡사 홍어 냄새.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 먹으니,
아줌마가 이곳에서 어찌 오랫동안 장사해오신지 의문스러웠다.
짜기만 하다.
돈이 아까우니까 그냥 먹는다.
아줌마는 한숨 돌리고 난로 앞에 앉았다.
" 아가씨, 결혼 했수? "
" 아직이요.. "
" 어이구, 나이가 몇이야? 애인은 있어? "
나이는 스물아홉이요, 남자친구는 없습니다.
아줌마는 계속해서 신상을 캐물었다.
제발 손님이라도 한 명 들어오지, 빨리 먹어야겠다 싶은데 양을 2인분 정도 주셨다.
" 여자는 빨리 시집가서 애를 낳아야지 "
이제는 저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누구나 하는 말이니까.
" 내가 사돈 남 말 한 처지는 아니야, 결혼을 세 번이나 했으니.. "
아줌마의 첫 남편은 두 살 위의 동네 오빠였다고 한다.
간신히 다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임신을 해버리는 바람에 졸업도 못하고 도망치듯 서울로 왔다.
추운 겨울, 첫 딸을 낳자마자 아기를 등에 업고 하루 종일 설거지를 했다.
남편도 처음에는 착실히 일만 했는데 어느 순간 노름에 빠졌다고.
돌이켜보면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랬다며, 남편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무지 나쁜 놈이었다.
방 한 칸 월세도 밀리고, 우는 아기 소고기 한번 못 먹이고, 젖몸살에 딱 죽겠다 싶은데 연탄 살 돈도 없었다.
옹알이하는 딸을 꼭 껴안고 둘이 솜 이불 덮고 죽을까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몸도 성치 않았는데 둘째까지 임신했단다.
남편이 이제는 정신 차릴까 싶었지만 오히려 점점 집에 안 들어왔다.
둘째는 아줌마를 꼭 닮은 아들이었다.
연속으로 겨울에 애를 낳다 보니 뼈마디란 뼈마디에 한기가 찼다고, 그래서 음식만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
남편이 그나마 집구석에 들어오는 날은 아줌마의 월급날이다.
자기 자식들인데 보는 둥 마는 둥 해서 너무너무 섭섭했다.
어떻게 번 돈인데, 아줌마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사정없이 후드려패며 몽땅 가져갔다고 한다.
죽는 수밖에 없는데, 고슴도치 같은 자식들이 하루가 다르게 예쁘게 크더란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몇 년 만에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당장에 애들 데리고 내려오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목이 멨다.
고향 갈 차비도 없었던 터라, 창피했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남편을 두고 그 밤, 도망치듯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큰 애가 3살, 작은 애가 2살 이었다.
아줌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골구석에서 돈벌기가 막막했다.
그래서 혼자서 서울로 올라갔다.
아버지와 새어머니께 돈도 재깍재깍 보낼테니 제발 잘 봐달라고 거듭 당부드리고
곤히 잠자는 아이들 얼굴만 몇 번 쓰다듬고 떠났다.
남편이 찾아올까 무서워 원래 일하던 식당은 못갔다.
숙식 가능한 식당에 들어갔다.
처음엔 설거지만 했는데 같이 일하던 언니들이 손이 야무지다고 요리도 알려줬다.
아줌마 목표는 확실했다.
돈 모아서 애들 데리고 와야지, 매일 매일 그 생각 뿐.
생각했던 것만큼 빨리 돈을 모으지 못했다.
찾아가 볼 엄두는 안 나는데 그리워서 가끔씩 전화했다.
어느 날, 아이들 바꾸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요리조리 딴소리만 늘어놨다.
불길한 예감에 악다구니를 쓰니, 며칠 전 남편이 찾아와 데려갔단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남편은 재가한다며 데려가서 잘 키워보겠다 했다는데 그이가 퍽이나 잘 키우겠냐고
아줌마는 엉엉 울며 다시 데려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직 나이도 어리니 시집이나 다시 가라고 말했다.
그 뒤로 한동안 친정에 연락하지 않았다.
아직도 식당 한편에서 살고 있는 자신이 애들은 어떻게 키울까, 잘 된 일이다 되뇌며 일만 했다.
두 번째 남편은 맞선으로 만났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 큰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그래도 고향집에 가기가 싫었다.
작은 아들이 벌써 국민학교 1학년이라는데, 잘 살고 있는 애들 들쑤실까 멀리서 얼굴만 보기를 수십 번, 아버지가 많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막상 늙은 아버지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는 언니처럼 아줌마가 결혼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효만 하는 것 같아, 맞선을 보기로 결심했다. 새어머니가 여러 다리를 걸쳐 소개해줬다.
아줌마 나이 스물일곱, 남자 나이 서른여섯.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처녀는 아니지만 노처녀, 노총각 나이들이라 소박하게 가족끼리 밥을 먹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두 번째 남편하고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 번만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해주시지, 아줌마의 마음속에 응어리는 여전히 있었다.
두 번째 남편은 거짓말쟁이다.
서울 제일 비싼 동네에 집을 샀다더니,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를 다닌다더니,
짐을 챙겨 신혼집에 갔더니, 예전에 살았던 달동네와 다름없는 곳이다.
5평 남짓 방 한 칸에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남편은 아는 형님 고물상에서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당장에 이혼하겠다고 밤낮없이 싸웠다.
아줌마는 혹시나 전 남편에게서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을지 모른다고, 내 손에서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게 부질없어지고 뭘 위해 살아야 하나 싶어도 그리운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를 악물었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심했다.
아줌마의 모든 것을 트집 잡았다.
화장실 갈 때 휴지를 많이 쓴다고, 맛없는 음식만 만들어서 남편이 삐쩍 꼬랐다고, 엉덩이를 방정맞게 흔들어서
남자들 홀리고 다닌다며 결정적으로 왜 임신을 못하냐고 사람 피를 말렸다.
한 번 갔다 온 것들은 이래서 안된다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리도 수두룩하게 했다.
남편은 한 번도 아줌마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오면서 맨날 동네 만화방에 죽치고 있던 철없는 마마보이 남편,
아줌마는 이때 편두통을 얻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아줌마는 또다시 집을 나갔다.
이제는 누구를 탓할 힘도 없었다.
그동안 세가 빠지게 번 돈도 다 쓰고, 오직 돈 생각에 치가 떨렸다.
무슨 면목으로 아이들을 보겠는가,
그냥 다시 죽어라 일만 했다.
그 사이에 두 번째 남편이 이혼하자고 찾아왔다.
임신해서 배가 나온 여자 손을 잡고.
아줌마는 군말 없이 이혼했다.
아줌마 나이 서른여덟.
방 두 개짜리 집도 사고, 포장마차도 시작했다.
포장마차는 아는 언니가 하던 걸 물려받았다.
돈 버는 게 제일 좋았지만 남자들도 가볍게 만났다.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시절에 최고로 포장마차 호황기였다고 한다.
돈다발이 술술 들어오니 눈뜨면 신나서 장사하러 갔다.
남들이 새벽 3시면 대충 끝내도 아줌마는 손님들이 나갈 때까지 영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해 뜨면 문 닫기 일 수였다.
반쯤 감기는 눈을 허벅다리를 찔러대며 참던 날, 끊임없이 하품이 나왔다.
젊은 남자 손님이 국수 한 그릇 주문했다.
그때 시간이 벌써 2시가 넘었고, 마지막 손님이라 생각했다.
저 손님만 가면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다.
피곤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청년은 허겁지겁 국수를 다 먹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줌마는 한참을 뒤통수를 바라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