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내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거지.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데,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움직여야 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운동장 끄트머리에 있는 철봉 근처에서 친구와 무언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고학년인 것 같은 여자 몇 명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철봉에 매달린 채로 턱걸이를 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대화를 듣고 나는 기회를 엿보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철봉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등장한 나를 그들이 쳐다보았다. 나는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난 할 수 있는데."라고 중얼거린 후 뛰어올라서 턱걸이를 몇차례 했다. 그리고는 친구 손을 붙잡고 교실로 냅다 도망쳤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대뜸 잘난체를 하고도 그자리에 남아있기에 나는 지나치게 숫기없고 소심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남들 눈에 멋있어보이고 싶은 본능에 따라 하던 행동 중에 가장 오래된 기억인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길가를 걸을 때 걸음걸이도 가게에서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내면서도 카페에 앉아서 시험 공부를 할 때도 과연 지금 내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생각했다. 매일 눈감을 때까지 온 종일 남의 눈을 신경쓰다보니 제대로 뭔가를 할 리가 없었다. 문득문득 생각하기에 나도 이런 모습이 한심했다. 하지만 제어가 되는 영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았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것 외에도 문제는 많았다. 형편없이 서툰 대인관계, 병든 정신, 나약한 의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기만을 좋아하는 성질, 핑계대는 버릇..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어디서 ADHD에 대해 주워 듣고 거기에 매달렸다. 내가 병신인 것은 환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사를 가면서 새로 옮긴 정신과에 가서 그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ADHD약을 줬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우울증 증상밖에 없었기 때문에 의사는 갸우뚱하면서도 우울증이 너무 심하면 페니드를 소량 처방하기도 한다며 처방을 해줬다. 당연히 약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달리기를 해서 심박이 빨라지면 약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토악질이 나기만할뿐. 나는 그것이 몸서리치게 슬펐다.
작품 등록일 : 2020-06-06
간결해서 잘 읽었다
H2*******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