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가 가출을 했다.밤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지만 신호만 갈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리고 다음날 할머니는 처음으로 외박을 했다.그럴 사람이 아닌데.....서둘러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필시 관절염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100세즈음 되면 창문은 커녕 계단 하나도 못 내려간다.우리 할머니는 관절염때문에
다리가 변형되어서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질럿같았다.
길가는 노인들 다리가 이상하면 꼭 펭귄같이 뒤뚱꺼려서 곧바로 관절염인게 티가 났다.집안 아무도 관절염 수술시켜주지 않아서 우리 할머니는 한국에서 때아닌 남극의 팽귄이 되어버렸다.
나도 작은데 할머니의 키는 다리가 굽어 점점더 작아졌다.
본론으로 넘어가 우리가 싸운것은 언제나 처럼 사소한것이었다.싸움은 항상 대부분 사소한걸로 일어난다....말싸움이 격해져서 할머니는 주변을 둘러봐도 너같은 손주는 없다고 했다.
그러고 집을 나가고 싶다고 여기아니면 갈대가 없는줄 아느냐고했다.난 그럼 굳이 붙어있지 말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다.이말을 하면서 약간 철렁했지만 내색 하지 않았다.노인들은 자기 죽으면 후회하지 말라고
자기 죽으면 어떻게 사냐 라고 자주 말했지만 난
어떻게든 살아갈거라는걸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오히려 그러길 바라는듯이 말하는거 같았다.
자기가 죽어도 못 살기를 자기의 존재가 남아있길.사실 그 순간에 보험비 생각도 살짝 스쳐지나갔다.저번에 말하길 1억 이라고 했었지...하지만 콩가루 집안이기에 1억앞에서 명절을 꾸역꾸역 챙기는 라도의 가족주의는 콩가루처럼 흩날릴것이 틀림없으리라...거기에 내게 떨어질것은 제로라 할 수 있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때 고운 한복을 입고 영정사진을 찍고 오셨다.그걸 거실한가운대에 장식해놓았다.
항상 헐렁한 이상한 패턴이 그려진 옷에 몸빼바지와는 대조적이었다.
할머니는 평소에는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루즈만 바르고는 했다.
스킨 로션 같은것도 바르지 않았다.
늙으면 늙음이 여성을 앞도하는가보다 생각했는데 죽는 순간에는 아름다움을 남기고 싶었던것일까 생각했다.
노인이 되는것은 죽음으로 가는것이전에 이미 죽은 삶과 다름없다.
노인들의 전매특허로 하는 말이 어차피 살다 죽으면된다.인데
그말을 70에 해서 90까지의 20년은 없는것과 다름 없었다.
게다가 사회에서의 노인은 없는것과 다름없다.생산도 노동도 못하는 하나의 생존하기만하는 짐
노인이란 생존하는 죽음이나 다름없는것이다.
노인이란 장애를 얻어가는 길이다.
당뇨,중풍,고혈압,관절염,암
모든것이 나아지기는 커녕 악화로 가는길....
외가쪽 할머니는 기저귀를 차고 기어다녔다.
중풍이 와서 쓰러졌다고 했다.
난 저렇게 되기 싫었다.저러기 전에 죽었으면 했다.
없는 인간이 되기 싫었다.
우리 할머니는 다행히 치매는 없었다.
콩가루 집안이라 요양원 보낼길 없는 집구석의
희생양은 내가 될것이 뻔했기에..
사람은 희생양이 자기만 아니라면 모든것을 보지 않았다.나는 항상 치매를 가장 무서워했다.
수치심이 없어지는것도 그렇지만 나를 나로 인식하지 못하는것이 가장 무서웠다.기억이 곧 나고 기억이 곧 사람인데 기억을 잃어버린다니 죽기보다 싫었다.
할머니는 평소의 배움에 대한 결핍인지
도전 골든벨이나 1대 100 우리말 겨루기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다.
할머니 말로는 할머니가 학교에갈때 뺨을 후려맞고
책을 모조리 버렸다고 했다.
그말을 할때는 늘 분해보였다.
할머니는 항상 듣거나 말거나
자기의 과거 얘기를 늘어놓았다.지금의 삶은 멈춰있기에 과거얘기밖에 할 수 없다는게 맞는 말일것이다.산을 타고 한참을 걸어가 약을 타러 가거나
산에 빨갱이들이 들어와 시체들이
가득찬 얘기,6.25때 피난간 얘기,광주에서
여자의 두개골이 드러나 바닥이 피바다가 된 이야기 등등.하도 얘기해서 난 이미 외워버렸다.
가끔은 내가 쓰레기통이 된 기분도 들었으나
이제 통달했었다.
타향에서 올라와 친구도 하나도 없는 할머니는
서울이라는 섬에 고립되었다.
문자는 항상 못보내 그나마 폴더폰을 쓰고
그때마다 난 짜증이 났다.
노인들은 항상 그 시간에 머물러 기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손자나 자식에게 부탁해서 너무 싫었다.
입은 이미 받아들여 햄버거나 피자도 잘 먹으면서 왜 손은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핸드폰은 못 쓰지만 그나마
컴퓨터를 배워 맞고만은 할 수 있었다.
아침5시에 일어나 밥을 해주고
아침마당이나 인간극장을 보고 쇼파에 앉아 맥심 커피를 타먹고
정각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맞고를 쳤다.
더 이상의 어려운 게임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김치나 짠지를 대충꺼내어서 김치국물과 대충 비벼먹고 시간이 지나면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들었다 깨서 빨래와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밥을 해주고 또 앉아서
멸치똥을 따거나 마늘을 까거나 고사리를 다듬으며 티비를 보는게 우리 할머니의 일과이자 일생이었다.
우리 할머니의 일생은 밥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할머니 본인은 연필이고 싶었겠지만.
가출한 할머니때문에 우리집안의 콩가루들은 분주해졌다.생일에도 어버이날도 연락이 없던 그들은
자기들이 제대로된 인간인것을 입증하느라
바쁜상태다.
우리집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할머니대신 가출할수 없는 냉동실에 꽝꽝얼린
시래기와 손질한 고등어 언제 산지 모르는 돼지고기들 냉장고에는 온갖 김치들과 장들이 있었다.
항상 반찬에 올라와서 꼴보기 싫은것들이
이젠 할머니가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들이었다.
음식이기 전에 할머니의 삶이었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할머니의 삶이 가득차있다.
나는 이상하게 그것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혼란을 야기해 제목을 수정한당
이글은 소설이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