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정체성을 확신한건 20살 겨울이었다.
그전까지는 인정하기 싫어서 남친을 사겼음.
중간에 여자도 만나긴 했는데 메인 애인은 늘 남자로 뒀다.
사실 난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좋아하게 생긴 얼굴이다.
십대 내내 인기가 좋은 편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남자는 쉽게 만났다.
그러다 20살 겨울, 21살로 넘어가던 겨울방학에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언니가 레즈였는데
그 언니와 함께 레즈클럽, 레즈 술집 등을 다니면서 레즈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레즈 스타일은 크게 두 부류다.
나처럼 여리여리한 한녀스타일과 걸크러쉬 느끼게 하는 보이쉬한 스타일(티부).
티부 스타일들은 굳이 온라인을 통해 레즈 인맥(?)을 만들지 않아도 일상에서 여친을 사귀는 것 같던데(이들은 흔히 말하는 일반과도 연애가 됨) 난 온라인으로 만나지 않으면 여자 만나기 힘들었다.
스마트 폰이 생기기 전에는 인터넷 레즈 사이트에서 만났고(2010년 전)
스마트 폰이 생긴 후부터는 어플로 만났다.(2010년 이 후)
레즈판이 좁다보니, 온라인으로 연락을 하다보면 예전에 연락했던 사람과 또 연락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문신돼지충이 그런 경우였다.
2010년대 초반, 스마트 폰이 막 생겼을 때 카톡 아이디를 받아 프로필 사진을 보고 조용히 차단했던 사람이었다.
일단 뚱뚱했고 인상이 나빴다. 지방에서 막 상경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싫었다.
(정확히 강남 근처 살면서 자기 강남산다고 소개하는게 촌스러워보여서 마음에 안들었음)
레즈생활을 하며 별의 별 인간군상을 다 만났다.
게이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레즈클럽이나 술 번개에서 만난 레즈 가운데 나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 스펙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서울 4년제 졸업, 중도 우파의 중산층 화이트 칼라의 부모.
나고 자란 동네 친구들도 대부분 나랑 비슷했다.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사고방식, 전문직이나 대기업 다니는 부모 밑에서 성실하게 공부하며 자란.
부모가 살아온 길과 다른 인생은 한 번도 생각 못해본 친구들.
그래서 괜히 지방에서 올라왔다고하면 안 만났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 같아서.
딱 한 번, 이십대 초반 레즈 연애경험이 적던 시절, 가정 환경이 안좋은 사람과 연애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더 몸사리게 됐다.
(2년제 졸업해 월 120정도 벌었는데 그 가운데 80만원을 아빠 빚 갚는데 지출하는 애였음.
술만 먹으면 넌 곱게 자라서 고생을 더 해봐야 한다고 악을 썼다. ㅎ.. 왜 사겼나 시발;;;
그땐 내가 걔를 구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무튼 그런 문신돼지충과 스마트폰에 익숙해졌을 무렵, 온라인으로 다시 재회하게 됐다.
완전히 우연이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랜덤으로 레즈 사이트에서 연락 주고받다가 카톡 아이디를 교환했는데 걔였음.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자마자 알았다.
걔는 내 사진을 보지 못한 상태여서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만날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근데 그 당시 외모가 괜찮았지만 성격은 개쓰레기 같았던 애와 헤어진지 3일이 지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모를 안보고 ^인성^만을 보겠다는
존나 지금 생각해도 머가리에 총 맞은 것 같은 이상한 결심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ㅎ....
시발 내가 왜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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