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목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왜이리 맘에드는 제목이 없냐
미국 크래프트하인즈 사의 케첩이 한국의 오뚜기 케첩보다 맛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뚜기가 케첩에 그냥 설탕을 넣는 반면 크래프트하인즈 사는 고과당콘시럽(High Fructose Corn Syrup)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고과당콘시럽은 옥수수를 전분화해서 만드는 시럽인데, 설탕의 일천 배에 달하는 단맛을 자랑하는 반면 칼로리는 설탕의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크래프트하인즈 사가 고과당콘시럽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크래프트하인즈 사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에 약 칠백 헥타르 크기의 농업 단지를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옥수수, 케첩 전용 토마토 등 몇백 가지의 농작물을 기른다. 회사는 이곳에서 재배한 작물들을 자사 제품에 사용하는 것이다. 하인즈 케첩, 하인즈 콘 앤드 마카로니 샐러드, 하인즈 인스턴트 토마토 수프 등이 이곳에서 수확된 농작물로 만들어진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고과당콘시럽이다. 방금 설명했던 하인즈 케첩 말고도 코카콜라, 누텔라, 크리스피 앤 크림 도넛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등이 바로 이 고과당콘시럽을 사용해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은 타사의 유사제품들에 비해 극상의 단맛을 자랑하면서도 칼로리는 그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고과당콘시럽은 이렇듯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바로 그 고과당콘시럽을 파는 쇼핑몰 사이트에 접속해 있었다. 결제 창을 켜 놓고 주문할까, 말까. 주문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해외 배송비용 칠천구백 원을 포함해 3.75리터들이 한 병이 고작 이만 칠천구백 원밖에 되지 않았다. 이만 칠천구백원. 거기에 내 다이어트 비용까지.
카페라떼에 고과당콘시럽 한 방울을 넣어먹는다면 칼로리는 고작 백이십 킬로칼로리에 불과한다. 하루 한 잔씩을 마셔도 괜찮은 셈이다. 내 다이어트를 위해서 주문하는 거라고 충분히 합리화를 한 뒤, 고과당콘시럽 일 갤런, 즉 3.75리터짜리 한 병을 주문했다. 배송은 약 일주일에서 이주일 사이에 완료된다고 했다. 좋다. 고과당콘시럽. 나는 만족하고 운동을 하러 갔다. 고과당콘시럽이 내 다이어트를 얼마나 도와줄지가 궁금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정체불명의 박스와 마주했다. 꽤 커다란 박스에는 영어로 쓰인 운송장이 붙어 있었다. ‘Jae Seung Lee'라고 내 이름이 영어로 쓰여 있었다. 주소 역시 우리 집이 맞았다. 이게 고과당콘시럽이라고?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크기에 의아해하며 박스를 집안으로 옮겼다. 상당히 무거웠다. 나는 1갤런짜리 한 병을 시켰을 뿐이었는데 왜 이런 박스가 온 건지 짐작도 안 갔다.
박스를 뜯어보니 안에는 또 다른 박스가 들어 있었다. 그 박스엔 ‘WARNING!’으로 시작하는 경고 문구 같은 것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고과당콘시럽이 뭐 그리 위험하겠냐 싶어 그 박스도 그냥 뜯어버렸다. 안에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고과당콘시럽이 여섯 개 들어 있었다.
우유를 담는 플라스틱 용기보다 훨씬 더 컸다. 정수기에 꽂아 넣는 물병을 작게 축소한 듯한 그 동그란 통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그것 한 병으로 운동할 때 쓰는 케틀벨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분명 1갤런짜리 한 병만 시켰는데 여섯 병이나 오다니 이건 처치 곤란이었다.
우선 한 병을 뜯어보았다. 뚜껑을 열자 단 냄새가 확 풍겼다. 곶감 냄새 비슷한 퀴퀴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떤 맛인지 궁금해 새끼손가락을 병에 넣었다. 시럽의 점도가 상당히 높아서 꼭 곤약으로 만든 젤리를 연상케 했다.
간신히 손가락에 살짝 찍어 맛을 보았는데, 아주 조금만 먹었는데도 너무나도 달았다. 혀가 얼얼했다. 당장 침을 여러 번 뱉고 양치질을 했다. 이것은 사람이 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동안 먹었던 단맛이 소주라면, 이 시럽은 공업용 알코올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도저히 먹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쳐다보기도 싫었는지라 어딘가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만만한 곳은 변기였다. 그런데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려 하자, 잘 내려가지가 않았다. 저 놈의 점도 때문이었다. 어떡하자는 거지. 변기가 저렇다면 싱크대나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당장 박스를 들고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내려갔다.
음식물 쓰레기통의 문을 열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를 견디며 시럽을 쓰레기통에 부었다. 그런데 이게 참 못할 짓이었다. 한여름이라서 음식물 쓰레기가 살짝 부패한데다 파리까지 꼬였다. 시럽은 또 점도가 엄청나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삼십 초를 채 못 넘기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닫았다. 젠장. 저기는 절대 안 될 것 같았다.
버리는 건 너무 아깝기도 했다. 이만 칠천구백원이면 그렇게 싼 가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먹어보기로 하고 델몬트 백 퍼센트 생과일주스를 가져왔다. 설탕이 하나도 안 들어간 제품답게 하나도 달지가 않아서 맛이 없어 못 먹고 있던 것이었다.
얼마나 넣으면 좋을지 몰라서, 우선 밥숟가락으로 한 숟갈 정도를 퍼서 주스 병에 넣은 후 뚜껑을 닫고 잘 흔들었다. 찰랑찰랑 소리가 나며 시럽은 주스에 서서히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병 바닥에 시럽이 남지 않을 때까지 흔들었다.
잘 섞였다 싶을 무렵 뚜껑을 따서 컵에 따랐다. 한 모금 마시자 오렌지 맛은 느껴지지도 않고, 그 이질적인 단맛이 확 느껴졌다. 못 먹겠다 싶어서 당장 싱크대에 뱉어버렸다. 시럽 여섯 통에 주스 한 통까지 버리게 생겼다. 다행히도 주스는 변기에 따라 버리고 물을 내리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정말 큰일이었다. 이 시럽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동네 하수구에 가져다 버릴까 생각했지만 거긴 너무 보는 눈이 많았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우격다짐으로 가져다넣을까도 고민했지만, 역시 24시간 CCTV가 가동되는 곳이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몰래 쓰레기를 버렸다가 벌금 이십만 원을 받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발각되는 것은 거의 백퍼센트 확실했다.
사람이 없고, 이걸 버려도 모를 만큼 티가 안 나는 곳이 어디일지에 대해서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바다에 공장 폐수를 몰래 버린다는 대기업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바다. 그 정도면 버려도 얼마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충북에는 바다가 없는 것이 참 짜증났다. 바다처럼 물이 많아서, 이 시럽 여섯 통 정도 버려도 모를 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
바다 하니까 생각났다. 나는 당장 에어컨 스위치를 끄고 핸드폰으로 그곳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검색했다. 걸으면 십 분이지만 버스를 타고 가려면 삼십오 분이나 걸린다고 했다. 계단에 묶여 있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당장 달렸다.
내가 생각한 곳은 바로 내가 출퇴근길에 매일 지나치는 명암저수지였다. 바로 앞에 명암 타워라는 랜드마크격인 건물이 하나 있고, 식당가가 몇 개 늘어서 있기는 하지만 근처 상권이 너무나 별로여서 저녁 일곱 시면 모두들 문을 닫았다.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밤에는 발길이 끊긴다. 저수지 옆에 난 도로는, 작년에 새로운 길이 뚫리면서 교통량이 금세 십분의 일로 줄었다. 여기만한 불법 투기 장소도 드물 것이었다. 저수지의 크기는 넉넉잡아 축구장 하나 정도는 됐다. 이 시럽 여섯 통을 전부 버린다 해도 전혀 모를 곳이었다.
나는 자전거로 십 분 정도 달려서 곧장 저수지로 갔다. 평일 저녁에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더위를 피해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저수지 옆에는 카페가 하나 있긴 했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카페 유리문에 ‘close 22:00'이라고 쓰여 있었다. 역시 새벽에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밤에는 사람이 한둘이라도 보였다.
혹시 몰라 공원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면서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도 살폈다. 카페 쪽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반대편 주차장이 있는 쪽에는 CCTV가 설치될 만한 공간 자체가 없었다. 주차장에는 구형 아반떼랑 그랜저 XG, 산타페가 서 있었다. 세 대 전부 초록색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먼지를 켜켜이 덮어쓴 채 오랫동안 서 있는 모양이었다. 타이어의 바람은 하나같이 빠져 있었고, 블랙박스가 달려 있을 리 만무했다.
어디서 버릴지 고민하다가, 저수지 쪽으로 나 있는 난간이 보였다. 나는 난간 위로 서 보았다. 차가 다니는 길과도 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길은 막혀 있었다. 이 정도면 완전범죄를 저지르기 적당한 구조였다. 속전속결로 당장 오늘 새벽에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시럽을 어디에 넣어 가져갈지 고민하다가, 군대 간 동생의 방에서 내 상반신만 한 노스페이스 등산용 가방을 발견했다. 여섯 통을 전부 넣어 보니 지퍼가 간신히 채워졌다. 그걸 어깨에 져 보니 그렇게 움직이기 힘들지는 않았다. 자전거로 간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 두 시쯤이면 적당할 것 같아 일찍 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알람을 맞춰두고 아홉 시에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가 되기 정확히 삼 분 전 눈이 뜨였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스릴이 내 몸을 휘감고 있는 덕이었다. 얼른 옷을 챙겨 입었다. 가장 눈에 안 띄는 검정색 아디다스 반소매 상하의 세트로 이미 정해 놓았다. 시럽이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혹시 몰라 준비해 둔 검은 마스크도 꼈다. 집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당장 저수지로 달려갔다.
짐이 무거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어깨가 불편했다. 내리막길에서는 평소보다 가속도가 더욱 붙어서 브레이크를 밟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가는 동안 내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자주 학교 담을 몰래 넘어서 점심을 먹으러 가곤 했는데, 딱 그 때의 느낌이었다.
저녁때보다 조금 빨리 저수지에 도착했다. 곧바로 자전거를 주차장에 세우고 아까 본 난간으로 향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저수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수면에 비쳤다. 나는 저쪽으로 간간이 보이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를 보며 빨리 버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방을 벗어 발 옆에 두고 시럽을 한 통 꺼냈다. 뚜껑을 열고 거꾸로 부어 잘 나오게 흔들었다. 처음에는 잘 안 나오다가 저수지의 물을 살짝 섞으니까 순식간에 한 통이 저수지의 검은 물결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그대로 두 병, 세 병째를 부었다. 이러다가 저수지 물에서 단맛이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병을 비우고 나서, 어쩐지 물소리가 아까와 달라진 것 같았다. 발목으로 물방울이 막 튀었다. 핸드폰으로 후레쉬를 비춰보니 시럽을 먹기 위해 물고기들이 마구 달려들고 있었다. 그 중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초점 없는, 죽은 것 같은 눈이 소름끼쳤다. 저래도 괜찮은 건가 싶었으나 뭐 이미 버려 버린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진 터라 바지만 내린 채 수면에 오줌을 쌌다. 물고기들이 오줌을 맞고 수면 위로 통통 튀어올랐다. 바지를 올리고 자전거를 세워 둔 곳으로 향했다. 증거 인멸을 위해 시럽이 들었던 빈 통은 전부 그대로 가방에 넣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이 빈 통들을 어디에 버릴까 고민하다가, 도로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 톤짜리 트럭이 보였다. 트럭의 옆구리에는 ‘여수해물 도매전문 061-655-8774’라고 쓰여 있었다. 지역번호를 보니 틀림없는 여수에서 온 차였다. 아마 여수로 돌아가겠지. 운전석을 슬쩍 보니 기사는 의자를 뒤로 제쳐 놓고 캡 모자를 얼굴에 쓴 채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 여기에 해결하면 되겠구나.
기사가 깨지 않게 조용조용 일을 개시했다. 트럭 짐칸의 빈 공간에 하나하나 통을 집어넣었다. 트럭에는 웬 낚시용 그물과 뜰채가 하나 있었고, 해산물이 들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빈 유리 욕조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이 근처에 청주농수산물센터가 있다. 아마 이 트럭은 밤을 새서 해산물을 센터에 납품했을 거고 잠에서 깨자마자 여수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트럭은 훌륭한 증거인멸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시럽 여섯 통을 전부 짐칸에 넣어놓고 그대로 내달렸다. 집으로 돌아와 팀장에게 ‘팀장님. 저 새벽에 배탈이 심해서 내일 병가 내겠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놓고 땀범벅이 된 몸을 씻을 새도 없이 바로 잠들었다. 속이 무지무지하게 시원했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을 줄 알았다. 내가 퇴근길에 저수지에 서 있는 청주시청 환경관리과의 차량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었다. 저수지 주차장에는 ‘청주시청 환경관리과’라는 초록색 글씨가 붙은 하얀색 케이 파이브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나는 저수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꽤나 기괴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 둘이 저수지 앞 풀밭에 서 있던 사람들과 뭐라고 대화를 하더니 저수지 안으로 들어갔다. 풀밭에 선 둘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대화를 듣기 위해서 근처 흡연구역으로 옮겨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말이 들렸다.
“아니. 여기 붕어가 뭘 잘못 먹었다는 거야?”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마 화학비료를 누가 버린 것 같습니다. 거기에 그 성분이 들어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그 디히드로 뭐라고?”
“디히드로…. 저도 기억은 안 나는데 그게 하여튼 화학비료에도 들어가고 한대요. 무슨 콜라에도 들어간다고 하던가?”
“그럼 고기가 어느 정도 먹어도 괜찮은 것 아니야?”
“적당량은 그렇죠. 그 환경부 사람 말로는 이 정도가 되려면 몇백 킬로그램은 여기에 버렸을 거래요. 아, 이게 그 붕어야??”
어느새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들이 들고 있는 붕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붕어는 정말 끔찍했다. 팔뚝만 한 놈이었는데 얼마나 먹었는지 탁구공처럼 거의 원형이 되어 있었다. 그게 그렇게나 큰 영향을 미쳤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냥 엄청나게 단 시럽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그들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양수기 불러서 물 다 빼고 붕어들 전부 살처분하고?”
“그렇죠. 사무실 돌아가면 과장님 책상에 서류 있으니까 결재만 해주시면 됩니다. 살수차 불러서 물도 다 빼고 붕어들도 싹 다 처리해야 돼요.”
“이거 일 났네. 대체 누가 여기에다 그걸 쏟아버린 거냐. 그 디히드로 뭐?”
“이름은 저도 기억 안 나는데 무슨 옥수수로 만든 거래요. 그걸 몇백 킬로그램이나 어떻게 가져다 부은 건지.”
“그거 못 잡는다지? 여기 CCTV 하나도 없을걸?”
“여기 CCTV 잘 돌아가지도 않는대요. 저수지 관리인도 없고.”
내가 부었던 여섯 통의 고과당콘시럽이 원인인 게 확실했다. 그제야 박스에 들어 있던 그 경고 문구가 떠올랐다. 무슨 뜻이었는지 해석해보고 싶어도 박스를 이미 내다버렸으니 알 길이 없었다. 그 고과당콘시럽이 그렇게 무서운 놈이었을 줄이야.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럼 언제 할 거냐? 양수기는 언제 된다고 하데?”
“내일모레, 이번 주 금요일 오전 열한 시에 하기로 했습니다. 서류에도 그렇게 나와 있을 겁니다.”
과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짜증이 엄청나게 나 있었다. 내가 있는 흡연구역으로 다가오더니 디스 플러스 담배를 필터가 찌그러지도록 세게 물고 불을 붙였다. 옆에 있던 그보다 직급이 낮아 보이는 다른 남자가 과장을 위로했다.
“과장님. 이 정도면 다른 데 유출 안 될 때 빨리 본 거에요. 장마라도 졌으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여기는 붕어만 사는데 저 옆에 영운천으로 가면 메기나 쏘가리 같은 놈도 있는데요.”
“하긴 그건 그렇지. 에이, 시팔 그래도 비료를 여기다 버려버리는 놈이 어디 있어?”
미안하다고 과장에게 싹싹 빌고 싶었다. 내가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다면 다른 데에 버렸을 것이다. 아니. 만약 다른 곳에 버렸다면 저 남자의 말처럼 더 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여기가 그래도 흐르는 물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금요일 오전에 물을 뺀다니 한번 가보고 싶었다. 책임감 같은 것이 들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단지 물 뺀 저수지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조금 궁금했다. 내가 버린 고과당콘시럽이 대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집으로 돌아가서 바로 검색해보니 내가 구매한 것은 그냥 고과당콘시럽이 아니라 고농축된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구매했던 쇼핑몰에서도 판매중지가 되어있었다. 영어로 된 상품설명을 번역기로 번역해 보니, 일반 고과당콘시럽의 100배에 달하는 용도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역시 그런 것이었다. 이런 걸 대체 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았던 걸까.
게다가 박스에 붙어 있던 경고문을 해석해 보니 ‘이 제품을 폐기할 때에는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안전하게 처리하십시오.’라는 뜻이었다. 역시 공업용 제품이 맞았다. 쇼핑몰의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런 게 한국에 들어왔는데 통과시켜 준 세관도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날 밤 9시에 KBS에 명암저수지 뉴스가 나왔다. 그것도 아홉시 뉴스가 전부 끝나고 나오는 지역뉴스에 나온 것이었다. 명암저수지에는 가보지도 않았는지 준공 당시 찍힌 사진만 자료 화면으로 나오고, 아까 나도 봤던 붕어 사진이 나오고 관계자 인터뷰가 나왔다. 입었던 옷을 보니 아까 그 과장이었다.
- 아. 이게 뭐 비료를 버렸다는 설이 가장 지배적입니다. 디히드로하이프럭토즈라는 성분이 무단으로 저수지에 방류가 되어서….
결국 그 이름을 외우긴 외운 것이었다. 그 뒤 자막으로 ‘지역주민 “물이 달다” 제보로 검사 후 적발’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나도 생각만 해봤던 건데 진짜 물맛이 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물을 맛본 지역 주민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대체 어떤 경로로 저수지 물을 맛보게 되었던 건지 참 궁금했다.
금요일 오전 열한 시에 저수지의 물을 다 빼고 물고기들을 살처분할 거라고 했다. 나는 당장 팀장에게 문자로 금요일에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 사회복무요원은 이게 좋았다. 내가 쓰고 싶을 때 언제든지 휴가를 쓸 수가 있었다.
금요일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아침밥을 먹고 바로 저수지로 향했다. 저수지에 도착해 보니 열 시 반이었다. 이미 요번에 봤던 청주시청 환경관리과의 차가 서 있었고 환경부에서 온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이건 스타렉스였다. 사람이 많이 올 일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저만치 저수지에 서 있는 요전의 환경관리과 직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웬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팔짱을 낀 채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옆으로 대여섯 명의 또 다른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했고 작업복과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다. 작업복에 ‘환경부’라 써 있는 걸 봐서 이들이 스타렉스를 타고 온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웬 빈 자루가 쌓여 있었다. 이걸 뭐에 쓰나 궁금해 하고 있는데, 트럭 세 대가 왔다.
십오 톤 정도는 될 것 같은 커다란 트럭이었다. 전부 유류 운반 차량처럼 커다란 탱크가 달려 있었다. 트럭 세 대는 미리 마련해 둔 자리에 일렬로 섰다. 그리고 환경부 직원들이 트럭 탱크에 달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호스를 꺼냈다. 호스는 타이어처럼 커다랬다. 이 트럭 세 대에 저수지의 물을 전부 담으려는 모양이었다.
호스 세 개가 전부 저수지에 들어갔고, 트럭 기사들이 어떻게 조작을 하자 물이 탱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빨대로 빨아먹는 것처럼 수면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물속에 잠겨 있던 수초랑 분수대, 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이 들어가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한 삼십 분도 안 되어 저수지는 이미 뻘밭으로 변해 버렸다.
저수지 바닥에 남은 것은 수많은 붕어들이었다. 몇몇은 내가 그때 봤던 놈들같이 탁구공처럼 몸이 부풀어 있었고, 아닌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많은 물고기들이 전부 붕어였다. 아마 언젠가 저수지에 인위적으로 붕어를 풀어놓았던 것 같았다.
이제 환경부 직원들이 또 나섰다. 그들은 스타렉스에서 대나무 막대기를 꺼내왔다. 보니까 끄트머리를 뾰족하게 깎은 것이었다. 저걸로 무엇을 할지는 이미 짐작이 갔다. 그들은 대나무와 자루를 하나씩 가지고 물 빠진 저수지로 들어갔다.
환경부 직원들은 붕어들을 대나무 끄트머리로 찔러서 잡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가 꽂히면 그것들을 자루에 넣었다. 붕어들은 아직 살아 있었고 꿈틀대기도 했으나 그들은 이미 익숙한 듯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대나무에 찔린 붕어가 퍼덕대며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냈다. 환경부 직원은 작업복에 튄 피를 끼고 있는 고무장갑으로 슥 털어냈다. 자루는 금세 찼다. 직원들은 프로답게 천천히 자루를 채워나갔다.
자루를 서른 개는 가지고 온 것 같았는데 금세 몇 자루나 모였다. 그들은 뚱뚱해진 붕어나 그냥 붕어나 상관없이 무조건 잡아넣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할머니가 “나도 몇 놈 주면 좋겠네. 붕어찜 해먹게.”하고 혼잣말을 했다. 과장이 할머니에게 한마디 했다.
“어르신. 저놈들은 오염이 돼서 못 먹는 거에요.”
“아니, 살이 저렇게 통통하게 올랐는데 무슨 오염이 됐어? 암말도 안할게 세 놈만 줘봐. 늙은이가 몸보신하고 싶어서 그래.”
“아. 안 된대도 그러십니까.”
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가래침을 탁 뱉었다. 할머니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붕어들은 계속 자루에 담겼다. 열 자루가 넘어 이제 스무 자루에 가까울 것 같았다. 저 자루들을 치우는 것도 일일 것인데 어디에 치우게 되는 걸까.
소각장에 가서 불태우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오염이 되었다는데 저걸 땅에 묻을 수도 없을 것이고, 사료 공장으로 보낼 수도 없을 테니까. 그때쯤 방송국 차가 왔다. 저번에 뉴스를 보도했던 KBS 방송국이었다. 카메라맨과 기자가 하나 내려서 물이 텅 빈 저수지를 찍고, 붕어를 찍고는 직원들과 인터뷰를 조금 했다. 그들은 붕어 자루는 찍지도 않고 그냥 저수지만 계속 찍더니 이내 가버렸다. 저걸로 과연 뉴스 분량을 만들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중요한 건 찍어가지도 않았으면서.
붕어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자루에 담기자, 어딘가에서 또 집게 달린 쓰레기 수거 트럭이 왔다. 내가 참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온 트럭이 몇 대며 그들의 유류비에 인건비는 또 얼마일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국가에 낸 세금보다 많은 액수일 수도 있다.
수거 트럭은 집게로 자루를 여러 개씩 실었다. 그러던 중 자루를 꽁꽁 묶지 않았는지 붕어 하나가 내 앞으로 떨어졌다. 나는 붕어와 눈이 마주쳤다. 아가미 바로 옆에 동전만한 구멍이 뚫린 붕어가 싸늘하게 식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둘러 눈을 피했다. 붕어들은 금방 트럭에 전부 실렸다. 오라이. 하고 누군가가 외치자 트럭은 자리를 떴다. 바로 옆에 과장이 있었다. 나는 과장에게 모르는 척 하고 물었다.
“붕어를 왜 다 죽이는 거에요? 어디로 가나요?”
“아. 누가 여기에 화학물질을 버려서 붕어랑 저수지 물이 오염된 겁니다. 다 소각장으로 가서 태울 거에요.”
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디스 플러스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였다. 나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과장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아니.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유독성 물질을 개인이 막 함부로 버리고…. 환경부 사람도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답니다.”
“뭐 찾아서 벌금 같은 거 못 먹여요?”
“그 물질 처리에 대한 관련 법률이 없다고 곧 제정한답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여기가 저수지라 다행이지 흐르는 물에 버렸으면 청주 시내 하천 다 작살나는 거였는데.”
잡혀도 처벌할 법률이 없다니 조금 안심되기도 했다. 그런데 확실히 그건 좀 이해가 안 됐다. 요 며칠간 저수지에 비상이 걸렸는데 이걸 처벌할 방법이 없다니. 내가 한 일이었지만 이건 처벌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말을 이었다.
“이 저수지 자체도 만드는 이유가 없던 거요. 원래 여기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걸 한 이십년 전에 랜드마크 만든다고 저 타워 만들고, 이름도 명암저수지라고 멋들어지게 짓고.”
“그럼 이 저수지는 왜 만든 거죠?”
“뭐 근처 주민들이 저수지 생기면 전망 좋다고 놀러오는 사람 많아질 거라고 그때 강력하게 요청을 했었어요. 그런데 오긴 누가 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이 동네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지만, 이 저수지에 일부러 놀러 오거나 한 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저수지의 바닥을 바라보았다.
쓰레기도 엄청났다. 캔이나 플라스틱 병, 동전 같은 것은 예사였다. 무슨 동물의 뼈도 보였고 심지어는 오리배의 잘린 목이 땅에 반쯤 파묻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웬 거북이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저 거북이도 청거북이라고 예전에 애완동물로 인기 있던 건데 누가 여기 버리고 가서 새끼 치고 사는 거예요. 저건 또 생태계 파괴종이라고 얼마나 환경에 안 좋은 건데. 사람들이 물에 뭐 버리면 티가 안 나는 줄 알고 아무거나 자꾸 버리고 가.”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 내가 딱 그 생각으로 저수지에 시럽을 버렸었는데. 나는 담배를 끄고 저수지를 나섰다. 환경부의 스타렉스랑 청주시청 환경관리과 차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두 시나 되었다. 나는 한숨을 한번 푹 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뉴스에 물을 다 빼낸 저수지가 나왔다. 그러나 붕어를 어떻게 했다거나 저수지 바닥에 쓰레기가 있다거나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나왔고, 이번에도 과장이 얼굴을 가린 채 인터뷰를 했다.
- 이제 물을 다 빼서 오염물질 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요. 장마가 오기 전에 빨리 대처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몇 톤의 붕어들이 자루에 든 채 소각되었고 몇 대의 트럭이 오고갔다. 그나마 빨리 대처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을 뒤척인 끝에 늦은 새벽에 잠이 들었다.
저수지에는 물이 다시 채워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전히 사람이 없었고 여전히 관리가 안 되었다. 주차장에는 여전히 낡은 차들이 버려져 있었고 명암 타워는 밤에도 불을 밝히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저수지에는 다시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출퇴근길 저수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특히 물고기가 가끔 수면 위로 튀어 오르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폈다. 혹시 그것이 탁구공처럼 부풀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다행히도 그 때 같은 물고기들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저수지를 관찰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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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있다ㅠ 경험담인가 하고 소름끼쳤는데 다행히 소설인가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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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밌다. 근데 다 읽고 나니까 주인공 패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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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잼있어 글이 막 죄책감이랑 강박이랑 꾸덕한 단맛이랑 범벅이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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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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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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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글 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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