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없다!
“카페를 낼까?”
술을 마시던 중 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 잔째의 잭 콕을 한 입에 털어버리고는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청년 소상공인 지원 대출’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래. 어디 한번 읽어나 보자. 나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은행에서 청년과 소상공인을 지원해 주고 싶다. 그래서 만 39세 이하의 자영업자에게는 금리를 낮춰 주는데 그 금리가 연에 일점 팔구 퍼센트다. 그 밑으로도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뭐라고 써 있었지만 내용이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일점 팔구면 확실히 낮긴 한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몰랐다.
“너 진짜 하려고?”
“어차피 회사 들어가도 얼마나 다니겠냐?”
민준이는 담배나 피우러 가자며 테이블에 놓인 라이터를 챙겼다. 그런데 담배가 없는 것이 떠올랐다. 잠시만. 담배 사 올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민준이는 자기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주었다. 불을 붙이다가 실수로 연기가 눈에 들어가고 말았다. 왼쪽 눈에서 눈물이 났다.
담배가 거의 다 탈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준이가 담배를 밟아 끄고선 내게 물었다.
“별로일까?”
“아니, 별로는 아니고. 갑자기 그런 생각 한 게 놀랐어.”
“한번 해볼 만하잖아. 어차피 우리가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그랬다. 서울의 중위권 대학, 학점도 그저 그렇고. 하지만 갑자기 카페를 차린다는 것은 너무 앞선 일이었다. 우리는 술값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민준이가 가게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게 말했다.
“근데 저 가게. 인테리어 진짜 좋네. 얼마나 들였을라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민준이가 그냥 취업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농담 삼아 해 본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그대로 민준이랑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민준이의 카페 이야기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 달쯤이 지나 민준이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갑자기 점심을 산다니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나는 순순히 나갔다. 역시 학생식당이었다. 나는 사천오백 원짜리 순댓국을 주문했고 민준이는 삼천 원짜리 정식을 시켰다. 순댓국을 한 숟갈 떠서 후후 불고 있는데 민준이가 갑자기 말했다.
“이거 먹고 나랑 가게 자리 보러 가.”
“무슨 가게 자리?”
“카페 한다고 했었잖아. 기억 안 나냐.”
아. 문득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진짜 하려나 보네. 이왕 밥을 얻어먹은 김에 같이 가기로 했다. 어느 동네냐고 내가 묻자 민준이는 이 근처라고 했다. 이 동네 월세가 감당이 될지가 걱정이었다. 학교 후문에서 나와 자취방들이 모여 있는 언덕길로 향했다.
나는 오 분쯤 민준이에게 이끌려 걸었다. 그는 가끔 위치를 헷갈리기도 했으나 발길에 거침이 없었다. 아마 여러 번 와본 것 같았다. 나는 한참 걷고서야 생각했다. 여기는 우리 집이랑 오 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단독 주택에서 민준이는 멈췄다
이 일대에는 원룸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서 하늘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디에 가게를 한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됐다. 근처엔 전부 빌라뿐이고 가게를 할 만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카페를 한다는 건데?”
“이 차고. 여기가 생각보다 넓어.”
민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단독주택에 딸린 차고를 가리켰다. 차고는 철제 펜스로 닫혀 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를 왔다갔다하면서 수백 번은 본 건물이지만, 여기에서 카페를 한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하긴 근처에 원룸이 많으니 아침 장사는 잘 될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며칠 전 봤던 청년 소상공인 지원 대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건 행정사 사무실에 맡겼어.”
행정사 사무실, 그 단어는 어딘가 전문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더욱 더 진지해 보였다. 민준이는 내게 이번 달 안으로 승인심사가 완료될 것이고, 행정사 말로는 아마 탈락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어 집주인을 불러냈다. 집주인은 칠십 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지팡이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민준이는 귀가 어두운 집주인과 이야기를 하느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만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다 알아들어서, 집주인은 가방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 느려터진 움직임을 보다가는 내 복장이 먼저 터질 것 같아 열쇠를 빼앗다시피 낚아챘다. 단숨에 펜스에 걸린 자물쇠를 열어서 위로 올렸다. 먼지와 함께 차고의 내부가 드러났다.
“야. 꽤 넓은데?”
나는 민준이에게 말했다. 민준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먼지가 조금 쌓이긴 했지만 카페를 하기에 딱 좋았다. 넓이가 웬만한 강의실 하나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벽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는 것도 요즘 인기 있는 레트로 느낌이 나서 썩 어울렸다. 민준이는 먼지투성이인 차고를 다니며 핸드폰에 이것저것 적었다. 그리고 줄자를 꺼내 이곳저곳의 길이를 쟀다. 왼쪽 구석에 카운터를 놓을 모양이었다.
“인테리어는 업자한테 맡길 거야?”
“그게 낫겠지. 열 평에 천오백에서 이천 얘기하더라고. 여기가 열 평이니까 딱이잖아.”
이천이라는 금액은 그동안 우리가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였다. 내가 비싼 것 아니냐고 하자 민준이는 카운터에 벽, 바닥, 테이블, 전등 같은 것까지 다 해주는데 뭐가 비싸냐고 했다. 그런가 싶어서 나는 다른 질문으로 넘겼다.
“여기 월세 얼마 달래?”
“천에 오십. 싸지 않냐.”
민준이는 집주인 할머니가 멀리 나가 있자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할머니가 원룸 건물 안 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지. 부동산도 못 믿어서 그냥 개인 대 개인으로 하자는 거야. 얼마 받아야 될지 자기도 모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깔끔하게 천에 오십 하시죠. 그러니까 얼른 좋다고 하잖아.”
천에 오십. 지금 내가 사는 자취방이 딱 천에 오십이었다. 싼 건지 비싼 건지 헷갈렸다. 가게의 월세라고 하면 어쩐지 백만 원도 넘을 것 같고, 보증금도 더 비쌀 것 같았다. 천에 오십이라. 오십이면 커피를 몇 잔 팔아야 하나 계산해 보다가 그냥 포기했다. 커피를 얼마에 팔지도 아직 몰랐으니까.
민준이는 그 자리에서 집주인과 얘기를 끝냈다. 여름방학 동안 공사를 거쳐 9월부터 장사를 하기로 했는데, 공사 기간 동안 임대료는 집주인이 받지 않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민준이는 근처 카페들이나 한번씩 돌아보러 가자고 했다. 나도 딱히 할 일이 없는지라 흔쾌히 그를 따라나섰다.
“왜 하필 장소가 우리 집 앞이냐? 다른 데도 있잖아.”
“일단 저 큰길가에 있는 데는 임대료가 너무 세. 그리고 이 자취촌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기도 귀찮잖아. 특히 아침 수업 가는데 커피 한 잔 먹고 싶어 봐.”
“아, 학교 카페도 그 시간에는 붐비지.”
“어. 그러니까 집 가까운 여기서 사서 가게 하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저 위에 사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 골목 거쳐야 돼. 또 집에서 공부 안 되면 괜히 나오고 싶은데, 바로 집 앞에 카페가 하나 있는 거지.”
나름대로 논리 정연했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학교 일대의 카페 열 곳 정도를 돌아다녔다. 학교 근처 카페들은 아메리카노를 삼천오백 원에서 사천 원 사이에 팔고 있었다. 민준이는 열 곳에서 전부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셔 보고 또 메모했다. 나는 그에게 슬쩍 아메리카노를 얼마에 팔 건지 물어보았다.
“이천오백 원. 아메리카노는 얼마 안 들어. 그리고 라떼나 카페모카나 그런 것들은 오백 원씩 추가. 휘핑크림 추가 오백원. 프라푸치노는 삼천 원부터.”
“그거 다 만들 줄 알아?”
“나 군대 가기 전까지 이 년 동안 스타벅스 알바 했었잖아.”
생각해보니까 그랬다. 그런데 민준이의 핸드폰 메모장을 보니 ‘꽈배기’, ‘팥도너츠’ 같은 것이 보였다. 카페에서 꽈배기랑 팥도너츠라니 좋은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걸 보고 있자 민준이가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꽈배기랑 팥도너츠 같은 걸 만드는 법을 알아.”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우리 할머니가 그 장사를 하시거든. 가게에서 하는 거 봤어. 이제 곧 가게 접는다고 하니까 그 설비를 내가 가져와야지.”
민준이는 카페에서 파는 빵 종류가 너무 비싼 것을 보고 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무조건 한 개 칠백 원, 세 개 이천 원에 팔겠다고 했다. 하긴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민준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진지했다.
민준이가 이제 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어느새 예전의 철없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다. 민준이 스스로 바뀐 걸까, 아니면 무언가가 민준이를 바꿔 놓은 걸까.
나는 신규 교직원 채용의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어찌저찌 스터디 모임으로 면접 준비를 해서 면접까지 마쳤다. 바쁜 일이 끝나자 본가에 한번쯤은 들러야 할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본가에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결국 신규 교직원 채용에 합격했다. 일 년 계약직이었지만 정규직 전환도 가능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학교를 떠나지 않는다는 게 좋았다. 학교를 떠나기는 아쉬웠다.
민준이의 카페도 오픈이 거의 다 되어갔다. 그는 인테리어 업자들이 공사를 제대로 하는지 보러 매일같이 음료수를 들고 찾아왔다. 내 방 창문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민준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카페 이름은 ‘다락방’이 되었다. 지나치게 문학적이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이름이었다. 인테리어는 따뜻해 보이는 갈색 계열로 꾸몄으며 테이블은 2인 테이블이 세 개에 4인 테이블이 하나였다. 영업시간은 아침 여덟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였다. 민준이의 집이 가게랑 가깝고, 근처 카페들이 다 밤 열 시 이후에 문을 닫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다른 카페들이 문 닫는 시간을 맞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락방이 문을 열기 하루 전, 우리는 카페 건물에서 술을 마셨다. 민준이가 맥주 피처 한 병을 사왔다. 불을 켜고 문을 열어 놓아서 사람들이 이따금 지나다니면서 유심히 보기도 했다. 그는 팥도너츠와 꽈배기를 튀겨 한번 먹어보라고 내밀었다. 팥도너츠는 적당히 달았으며 꽈배기는 쫄깃쫄깃했다. 가게에서 사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울에는 이거 파는 가게가 없더라고. 그런데 우리같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이 맛을 알잖아. 어릴 때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주시던 그 맛이라 이거지.”
그는 나주 출신이었고 나는 충주 출신이었다. 확실히 맞는 얘기였다. 자취하는 사람들도 다 지방에서 올라온 거니까. 민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술을 한 잔 더 들이켰다.
그때 딸랑 하고 가게 문에 붙여 놓은 종이 울렸다. 민준이는 술을 마셨는데도 흐트러지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아. 죄송한데 오늘은 영업이 아니고 내일부터에요. 네. 네. 많이들 이용해주세요. 이거 저희 가게에서 파는 팥도너츠인데 하나씩 드셔보세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민준이는 튀겨놓은 팥도너츠를 사람 수대로 챙겨서 건네주고는, 손님들이 나간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주 능숙하다고 내가 칭찬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는 해야 장사를 해먹지. 부모님한테 얼마나 잔소리 들었는지 아냐. 나도 이거 엄청 결심하고 시작하기로 한 거야.”
내일이 카페 다락방의 첫 영업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찍 자리를 파했다. 민준이는 술병을 치우면서 ‘될 거야.’라고 작게 중얼거렸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 출근 시간은 9시까지고 다락방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은 8시였다. 나는 8시 반쯤에 집을 나와서 다락방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충 파악해보았다. 마침 민준이는 주문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도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쪽을 바라보다가 커피를 손님에게 건네주는 민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씩 웃어 보였다. 나는 손바닥을 흔들어 그에게 인사해주고 학교로 향했다.
그날 민준이의 기분은 엄청 좋았다. 저녁 여덟 시쯤에 가 보니 민준이는 책을 읽고 있다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카운터 앞에는 ‘금일 팥도너츠/꽈배기 재고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재고를 몇 개 준비했는데 그래?”
“합쳐서 삼백 개 만들었어. 앞으로도 이렇게 팔리려나.”
꽈배기나 팥도너츠나 하나에 칠백 원이다. 칠백 곱하기 삼백은 이십일만 원. 그 둘로만 이십일만 원이면 커피로도 꽤 벌었을 것이다.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으로 상당히 벌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어보니 아직이라고 했다. 개업 축하기념으로 나는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우리는 사람이 언제 올지 몰라, 카운터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짜장면을 얼른 먹었다.
“하루 해보니까 어떠냐? 장사 할만해?”
“좋아. 아직까지는 진상 손님도 없고. 매출도 내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중요하지.”
“그래. 돈 많이 벌면 내가 2호점 내게 해 줘.”
너네 사무실 직원들이나 데려와. 민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커피 두 잔 주문이 들어왔다.
문득 민준이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게 성공이란,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민준이는 행복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돈을 벌게 되었다.
나도 해볼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락방에는 사람이 늘 붐볐다. 학교 SNS에서 졸업생이 차린 카페라며 홍보도 해주었고, 팥도너츠랑 꽈배기라는 의외의 상품이 있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자주 왔다. 밤샘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들이나 과제를 하는 예술대생들이 한꺼번에 꽈배기랑 팥도너츠를 열 개, 스무 개씩 사갔다. 물론 커피도 그 정도는 팔렸다.
아침 출근길에 다락방을 바라보면, 그 때마다 민준이는 항상 바빠서 잠시 얘기 나눌 시간도 없었다. 이따금 눈이 마주치면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할 뿐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항상 고용 불황, 최저 임금 인상 같은 뉴스가 나왔다.
다락방이 연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나는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조금 이상한 게시물을 봤다. ‘학교 근처 카페 ㄷㄹㅂ 얼음에서 과망간상칼륨 검출이라네요.’ ㄷㄹㅂ이면 다락방 말고 다른 카페는 없었다. 과망간상칼륨 검출이라니 무슨 소리지 싶어 자세히 클릭해보았다.
게시물에서는 최근 식약청에서 전국 카페를 대상으로 얼음을 검사했는데, 그 중 몇 군데에서 유기물에 의한 오염 정도를 알 수 있는 과망간상칼륨이라는 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검출된 카페들이 전국에서 백 군데쯤 되는데, 거기에 다락방이 끼어 있었다. 옆에 주소도 쓰여 있었는데, 번지수가 대충 맞았다. 식약청에서 검사한 결과라니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게시물은 추천을 오십 개 넘게 받아서 핫 게시물로 선정되었고 댓글도 그 정도 달려 있었다. 나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다락방은 어차피 팥도너츠랑 꽈배기 먹으러 가는 거라. 근데 좀 충격이네.’
‘전국에서 백열두 개 나왔는데 그 중에 하나 포함된 거면 심각한데?’
나는 당장 사무실을 나와 민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준이는 다 안다는 듯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야. 그 얼음, 어떻게 된 거야?”
“제빙기를 중고로 사서 그래. 판 사람이 필터 교체하라고 했는데 까먹었어. 필터 바로 사서 갈았으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그거 소문 엄청 빠르다 야.”
“장사 잘 되냐?”
“평소보다는 안 되긴 하는데…. 우선 사과문 가게에 붙여 놨어. 뭐 기다려봐야지.”
그의 생각보다 의연한 태도에 나는 놀랐다. 예전보다 민준이의 그릇이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이는 우유부단해서, 과제를 안 하거나 지각하는 일도 많았다.
무엇이 민준이를 그렇게 바꿔놓았을까. 이제 더 이상 남에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민준이는 좋든 싫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새삼 그런 선택을 한 민준이가 대단해 보였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외롭고 무서운 일인 것이다.
제빙기 사건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어차피 날씨가 쌀쌀해져서 아이스커피를 시키는 사람도 얼마 없었다.
다락방은 성황리에 영업해가는 듯 보였다. 민준이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쌀쌀해지면서 막 만든 도너츠나 꽈배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다락방 마크가 찍힌 종이 포장지를 보는 일도 잦았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이틀에 한 번꼴로 누군가가 팥도너츠나 꽈배기를 사왔다. 가격 부담이 없다는 점이 학생들에게는 큰 이점이었다.
하나에 칠백 원, 편의점의 삼각 김밥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민준이가 참 좋은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다. 기계도 본가에서 가지고 와서 시설비도 들지 않았고 밀가루나 기름 역시 집에서 공급받던 업체에게 그대로 받아서 그리 비싸지 않다고 했다.
다락방의 카운터 안쪽에는 그 기계가 놓여있었다. 기계라고 해봤자 튀김을 할 때 쓰는 튀김 냄비였다. 검정색의 냄비 안에는 항상 기름이 팔팔 끓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민준이의 심장이라도 되는 양 끊임없이 기포를 토해냈다. 민준이는 매일 새벽 퇴근하기 전 반죽을 만들어서, 출근하자마자 기름을 끓이고 반죽을 튀겼다. 그의 얼굴은 항상 튀김 냄비의 열 때문인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민준이는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고용했다. 한참 사람이 몰리는 오전 시간을 자신이 맡고, 정오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아르바이트생이 가게를 보면 저녁 시간에 민준이가 가게를 보며 반죽을 하고, 매출도 계산하고 하다가 퇴근하는 식이었다. 새벽 두 시까지 영업한다고는 쓰여 있었지만 사실 열한 시가 되면 가게는 거의 문을 닫았다.
우리는 주말이 되면 거의 매일 함께 다락방에서 술을 마셨다. 나는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았고 그의 가게는 주말에는 손님이 평일의 반도 안 됐다.
“가게 하는 거 좋냐?”
“좋은 것 같아.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나는 누구 밑에서 일하는 거 싫었거든.”
민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있잖아. 두 달 전부터 월 매출이 점점 줄어가. 뭐 첫 달만 그러면 오픈 효과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상해. 제빙기 때문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고. 아마 커피가 안 팔리고 도너츠랑 꽈배기가 많이 팔리는 게 이유지 싶어.”
그의 말에 따르면 도너츠랑 꽈배기는 아무리 많이 팔아도 이익이 한정적이라고 했다. 박리다매가 될 정도로 팔리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가가 있으니까. 그는 술을 한 잔 더 마시고 말을 이었다.
“뭐 도너츠랑 꽈배기라도 팔리는 게 어디냐. 대출이자 갚고 내가 먹고살 정도는 되니까 다행이지.”
하긴, 예전에도 그런 내용의 댓글을 봤던 것 같았다. 다락방은 팥도너츠랑 꽈배기 먹으러 가는 거라고 했었다. 내가 세트 메뉴를 만드는 게 어떠냐고 묻자 그는 그렇잖아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커피 두 잔을 시키면 팥도너츠나 꽈배기 하나를 주는 거야. 그럼 두 명이니까 하나를 더 살 거 아냐. 커피도 팔고 도너츠도 파는 거야. 어때?”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 부린 상술이었다. 스타벅스는 원가 사백 원짜리 커피를 사천 원에 판다는데, 그런 상술에 비교해 보면 이쪽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스타벅스는 고풍스러운 나무의자지만 이쪽은 있어 보이려고 베이지색으로 색칠한 플라스틱 의자였다. 심지어 쿠션도 안 달려 있어서 오래 앉아 있자니 엉덩이가 배겼다. 혹시 이것도 민준이의 상술이 아닐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민준이는 정말 그 세트 메뉴를 만들었고, 동시에 스탬프도 만들었다. 흔하디흔한 카페 스탬프였지만 다른 점은 도장 세 개를 찍으면 우선 도너츠 하나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장 일곱 개를 찍으면 다시 도너츠가 하나. 열 개를 찍으면 커피 한 잔이 공짜였다.
확실히 다른 카페에 비해서 도장을 적게 찍어도 서비스를 받으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주 사먹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학교 휴지통에 다락방 컵홀더가 늘었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다락방 팥도너츠 점심시간에 빨리 사오는 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수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민준이는 어느 날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너는 배달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 좋은데 누가 배달시켜 먹을까? 만 원 이상만 배달되잖아. 커피 두 잔 오천 원 해도 도너츠나 꽈배기를 일곱 개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먹는 사람이 있겠어? 거기에 배달료 이천 원까지 내고.”
그런데 그것은 기우였다. 혹시나 해서 익명으로 학교 커뮤니티에 ‘다락방 배달도 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라고 글을 올리자, 댓글로 자기도 그러길 바란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학교에서 다락방으로 가려면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데, 그 언덕이 부담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민준이는 결국 모험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배달 대행을 써서 배달료를 내는 대신, 자기가 직접 배달을 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영업시간을 저녁 열 시까지로 바꾸고 자신이 하루 종일 가게에 있었다. 낮 시간에는 의외로 배달이 많았다. 다락방의 컵홀더에는 어느새 ‘학교 전 지역 만 원 이상 배달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민준이는 처음에는 자신의 두 손으로 배달을 하다가, 결국 배달 전용 가방을 구매했다. 한 번에 커피를 열두 잔까지 담을 수 있고, 도너츠는 백 개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백 팩이었다. 점심시간에 나가기 귀찮은 사람들이 강의실로 배달을 시키곤 했다.
우리 사무실도 점심이면 돈을 모아 다락방에서 항상 배달을 시켰다. 내가 가장 낮은 직급이다 보니 건물 1층에서 커피랑 도너츠를 받으러 가는 건 항상 내 몫이었다. 민준이는 커피를 전해주면서 항상 도너츠 하나씩 더 넣었다고 웃어주곤 했다.
그 무렵 동기들도 민준이의 소식을 알게 되었는지 종종 카페에 들르곤 했다. 그들은 퇴근길에 들러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는 ‘야. 너 진짜 좋겠다. 학생들이랑 젊게 지내겠네.’ ‘상사가 없으니까 네가 왕이네.’같은 소리를 하고 가곤 했다. 하긴 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고는 했다.
그 무렵 학교 근처의 카페들이 커피 가격을 대폭 낮췄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금세 반값인 이천오백 원, 이천 원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구백 원짜리도 있었다. 전부 무인 기계를 들여놓고 아르바이트생을 줄였다. 그 여파는 단숨에 민준이에게도 찾아왔다. 확실히 학생들이다 보니 가격이 싼 쪽으로 소비가 집중됐다. 민준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나랑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차피 손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거야. 얘네 오래 못 버텨. 몇 달만 버티면 된다. 민준아.”
“내 생각에는 오래 갈 것 같아.”
민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문자메시지 기록을 내게 보여주었다. 커피를 납품하는 업자랑 나눈 대화 같았는데, 나는 대화 내용을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장님. 저희가 아쉽게도 다음 달에는 원두를 공급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장님들 생각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 알려 드릴까요.’
어딜 봐도 다른 카페 사장들이 민준이를 매장시키려고 수를 쓴 것이었다. 내가 다른 사장에게 연락했느냐고 묻자, 민준이는 고개를 저었다.
“가게 자리 구하러 돌아다닐 때 들었어. 이 동네 카페 사장들은 다 자기 건물 1층이 비니까 카페 하는 사람들이야. 돈이 좀 있다 이거지. 가게도 자기 거니까 월세도 안 나가는 거고. 이 김에 무인기계 들여놓고 하는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준이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셈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 민준이는 아직 모르겠다고만 했다. 그에게서 떨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일부러 오버하는 티가 났고 신경을 쓰지 않는 척하려고 했다.
민준이도 결국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상대는 사회 경험을 수도 없이 쌓은 사람들인데다 여러 명이었다. 아기 양과 늑대 무리의 싸움이라고 하면 알맞을 것이다. 나는 민준이가 걱정되었다. 혹시 다락방 간판을 내리고 끝나지는 않을까. 다락방은 이제 문을 연 지 육 개월이 좀 안 됐다.
다락방은 손님이 점점 줄었지만, 꽈배기랑 팥도너츠 덕분에 현상유지는 그런대로 되는 것 같았다. 배달을 자주 시키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빵을 시키는 김에 커피도 같이 시키는지라 그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민준이를 학교에서 마주치는 빈도가 준 건 사실이었다. 우리 사무실은 상관없이 계속 배달을 시켰는데, 예전보다 배달 시간이 빨라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들은 배달이 빨라졌다고 좋아했다.
문득 왜 다른 카페에서는 팥도너츠나 꽈배기를 팔지 않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것쯤 얼른 설비를 들여놓으면 그만일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민준이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거 설비 관리하기가 어려워. 오븐이랑 전혀 다른 거라서, 차라리 우리처럼 다른 빵은 안 팔고 팥도너츠랑 꽈배기만 판다면 몰라도 빵이랑 같이 팔기는 힘들 거야. 그리고 그거 제빵사 시험 본 사람이나 만들 줄 아는데, 카페 알바생들이 만들 수나 있겠어?”
“그러면 카페에 있는 허니 브레드 같은 건 어떻게 파는 거야?”
“냉동으로 나오는 거 오븐에 돌려서 크림 올리고 시럽 뿌려서 나가. 편의점 도시락 데우는 거나 똑같아. 근데 팥도너츠나 꽈배기는 냉동으로 안 나와. 나와도 맛없을 거고.”
승산이 있어. 팥도너츠나 꽈배기나 다른 가게에선 절대 못 팔아. 조금만 버티면 될 거야. 민준이는 가게 매출을 정리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포스기를 눌러서 카드 매출을 확인하는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팥도너츠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수를 썼다.
나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저게 말이 되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집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인다거나, 자기 여자 친구랑 인사를 했다고 상대방을 주먹으로 때린다거나 하는 소식들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치졸할 수가 있나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은 치졸한 면이 있었다. 그게 돈이 걸리고, 자기 밥그릇이 걸리면 더해졌다.
‘다락방 팥도너츠 괜찮은 거에요?’
학교 커뮤니티에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다. 클릭하자 다락방에 있는 튀김 냄비의 사진이 보였다. 민준이의 어머님이 십 년간 쓴 것을 민준이가 가져왔다고 했다. 냄비는 확실히 지저분했고 군데군데 튀김가루가 떨어져 있기도 했다. 반죽이 엉겨붙어 하얗게 굳어있기도 했다. 글쓴이는 사진 밑에 이렇게 써 놓았다.
‘저는 다락방 팥도너츠 진짜 좋거든요ㅠㅠ 그런데 며칠 전에 다락방에 갔는데 이런 게 보이더라고요. 너무 더러운 것 같지 않아요? 식품위생법에도 걸릴 것 같던데. 맨날 몇백 개씩 만들다 보면 꼼꼼하게 청소는 못한다 해도 이 정도는 너무하지 않나요.’
지능적이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익명이라서 누구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학교 커뮤니티는 학교 메일로 인증을 받는지라 학생, 교직원, 교수 같은 사람이 아니면 가입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렇다고 해도 외부인이 아주 들어올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예전에도 중고 카페 같은 곳에서 아이디를 사고판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진짜 학생이 쓴 건지, 아니면 근처 카페 업주들이 쓴 건지 모르겠지만 효과 하나는 뛰어났다. 그 사진 덕에 추천이 백 개도 넘게 받아서, 해당 게시물은 핫 게시물을 넘어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었다. 베스트 게시물은 일 년에 열 개 나올까말까 한 수준이었다. 물론 다른 글들도 우후죽순처럼 올라왔다.
다락방 이제 안 간다. 사장님 좋게 보였는데 실망이다. 팥도너츠 맛있었는데 이게 원효대사 해골물이냐. 등의 글이 순식간에 열 개도 넘게 쌓여서 한 페이지를 채웠다. 그 중에서는 구청에 인터넷으로 민원을 넣었다는 글도 있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민원을 넣은 것을 캡쳐해서 올렸다.
민준이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바빴다. 그날 우리 사무실에서는 직원들끼리 말하지도 않았는데, 다락방에 커피랑 도너츠를 주문하지 않았다. 이미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넘어 교직원들까지 학교 커뮤니티는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민준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퇴근길에 가게에 갔으나 이미 닫아 펜스를 내린 뒤였다. 아직 저녁 6시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걸어보자 전원이 꺼졌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집에 찾아갈까 했으나 그건 조금 위험했다. 민준이는 무슨 일이 있으면 무작정 숨었다가 며칠 뒤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내가 무작정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는, 조개가 필사적으로 다물고 있는 껍데기를 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개는 억지로 껍데기를 열면 죽어 버린다.
내일 이야기하자고 생각했는데, 가게는 역시 닫혀 있었다. 굳게 쳐진 철제 펜스에 ‘실망을 드려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라는 쪽지가 적혀 있었다. 그 금방이 언제일지 궁금했다. 한 달에 오십만 원씩 내는 월세가 부담스러울 텐데, 아마 금방 다시 열지 싶었다.
그러나 다락방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굳게 닫혀 있었다.
이미 학교에는 다른 간식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날이 추워지자 학교 후문에 붕어빵 장수들이 등장했는데, 고구마 붕어빵과 초콜릿 붕어빵이라는 특이한 메뉴로 학생들의 지갑을 휘어잡고 있었다. 나도 한두 번 사 먹어 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두 개 천 원, 하나 칠백 원이라는 가격은 완벽하게 다락방의 대체재가 될 만했다.
당연히 민준이랑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락방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다. 가끔 창밖으로 내다보면 다락방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문을 닫고 이 주일쯤 지나자 그런 사람들도 싹 사라졌다. 학교 SNS에서 우리 학교 근처 카페를 카드 뉴스로 만들어 소개했는데, 거기에도 다락방은 빠져 있었다.
영업 시작한 지 고작 육 개월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다락방은 사람들에게 빨리 잊혔다. 커뮤니티에도 다락방에 대해 언급하는 글이 이제 올라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카페들은 다시 커피 가격을 올렸다. 더러운 놈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스타벅스 외의 다른 카페는 절대 가지 않았다. 차라리 스타벅스가 가장 신사적이었다. 그곳은 최소한 월세 오십만 원짜리 가게를 망하게 하려고 치졸한 짓을 벌이지는 않았다.
민준이는 두 달만에 연락을 해왔다. 2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12월 초의 주말 아침이었다.
“오늘 다락방 짐 뺀다. 와서 도와줘라.”
그 말투는 너무도 차분했다. 나는 양치만 대충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민준이는 어디서 일 톤 트럭을 가지고 왔다. 카페에 있는 책상, 의자, 컴퓨터 같은 것들을 전부 트럭에 실었다. 언제 따로 가져갔는지 몰라도 튀김 냄비가 없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민준이는 짐칸에 둘둘 말려 있던 방수포를 덮었다.
육 개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짐은 트럭을 가득 메웠다. 민준이가 커피 머신은 조수석에 실어가야겠다며 조수석 발밑에 놓았다. 나는 조수석에 타서 이 짐들은 전부 어디로 가는 건지 물었다.
“새로 카페를 내려는 사람이 있대. 신림동에. 거기에 전부 양도하기로 했어.”
“얼마 받았냐?”
“사백.”
사백만 원이면 제값을 받는 건가.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몇 달 만에 보는 그의 얼굴은 상당히 해쓱해져 있었다. 밥은 제대로 챙겨 먹었나 싶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민준이는 내게 물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이거 가져다주고 같이 먹자. 내가 살게.”
“어. 그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으나 신림동까지 가는 동안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딱 다락방이 있던 그런 좁은 골목이었다. 차가 한 대 다니기도 벅찬 골목길에는 불법 주차된 오토바이와 녹슨 자전거가 서 있었다. 카페는 회색인 건물 색과 대비되게 하얀색으로 칠을 해서 눈에 확 띄었다.
문가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있던 여자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민준이는 안녕하세요. 하고 말한 후 트럭에서 짐을 내렸다. 아마 그녀가 이 카페의 사장인 모양이었다.
그 여자도 민준이나 나랑 비슷한 연배인 것 같았다. 대학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짐을 내려주고,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이 젊으시네요. 카페는 처음 하시는 거에요?”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사 다니다가 올해 초에 관두고 계속 카페 창업 준비했다가 이제야 간신히 여는 참이에요. 공부할 게 많더라고요.”
민준이는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락방처럼 이 카페도 꽤 작은 규모였다. 나는 근처에 학교나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여기 큰길가로 나가면 독서실하고, 공시 학원이 많더라고요. 제가 다니던 학교하고도 가깝고요. 여기도 다 고시생들 자취하는 곳이에요.”
그러고 보니 여기도 자취촌이었다. 아마 월세는 비슷하거나 좀 더 비쌀 것이었다. 문득 공부를 많이 했다는 여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준비 많이 하셨다면서요. 근처 카페들이랑은 이야기해 보셨나요? 만약 다른 카페가 이쪽을 타겟으로 잡고 가격을 확 내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것도 모자라서 위생 상태가 안 좋다고 구청에 고발한다면요? 얼음에서 무슨 성분이 검출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다. 여자의 표정이 너무나도 해맑았다. 성공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그 표정은 마치 육 개월 전의 민준이 같았다.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트럭에 타면서 제발 이 여자는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성공할 확률은 십 퍼센트도 안 될 것이다. 이 세상은 경험 없는 사람을 벗겨 먹으려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민준이는 트럭을 반납하고 그 근처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트럭은 종로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마침 근처에 우리가 자주 가던 순대집이 있었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국밥 두 개랑 모둠순대 하나를 시켰다. 곧 김이 펄펄 나는 국밥 두 그릇이 날라져왔다. 민준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동안 뭐 하고 살았냐? 가게 문은 계속 닫고.”
“가게 접고 취직할 데 알아보고 했지. 그놈의 가게는 육 개월밖에 안했는데 문 닫는 것도 일이더라. 폐업 신고를 해야 하고 뭐 하고…. 건물주도 얼마나 지랄을 하는지.”
“그럼 거기는 다른 가게가 들어와?”
내가 묻자 민준이는 그럴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이 월세 맛을 보더니 계속 장사를 할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거기엔 뭐 해야 잘 될 것 같냐고 내가 묻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는 뜻인지, 뭘 해도 안 될 거란 뜻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너는 정규직 될 것 같냐?”
“확실히는 모르겠어. 그래서 여러 군데 알아보고는 있어.”
“나는 일단 정해지기는 했다.”
민준이는 일 년 계약직으로 취직이 되어서, 다음 주부터 일하기로 했다고 했다. 빚도 갚아야 하니 일단 급한 대로 눈을 낮춰 구한 거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빌린 돈은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오천이었다. 민준이는 남들이 다 영에서 시작할 때 자기 혼자 마이너스 오천으로 시작하는 셈이었다.
“그동안 좀 고민이 많았는데,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일단 돈이라도 벌어봐야지.”
어느새 민준이 혼자 소주를 반병이나 비웠다. 가게 문을 닫고 있던 동안 또 마음을 어느 정도 다잡은 모양이었다. 그는 초연해 보였다. 빚이 오천이나 되는데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한 병을 다 비우고 카드로 계산을 했다.
나는 그에게 담배 한 대를 권했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민준이는 필터까지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비벼 껐다. 민준이는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이제 자기는 뭔가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빚이 있으니까 엉덩이에 불이 붙었지. 죽을 거 같더라. 진짜.”
그러니까 죽을 각오로 일자리를 찾았다는 얘기였다. 민준이는 자기소개서를 일곱 번 고치고, 면접 정장도 비싼 돈 주고 새로 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카페를 할 때는 머리도 덥수룩했는데 지금은 짧게 잘랐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다락방 운영했다고 이력서에 썼냐?”
“썼지. 자기소개서에도 쓰고, 역경을 극복한 사례로.”
“무슨 역경을 극복했는데?”
내가 재차 묻자 그는 웃으며 이제 그만 좀 물어보라고 했다. 다락방은 결국 오천만 원의 빚과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소재밖에 남기지 못한 셈이었다. 그래도 그 덕에 민준이가 계약직으로나마 취직에 성공했으니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걸 어디서 사나 했더니 이런 데서 사는 것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오천만 원 어치나 사다니. 이건 강매였다. 민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따 저녁에 너희 집에서 술 먹다가 클럽 가자.”
“좋지.”
“오늘 토요일이니까 무료 입장 있겠지?”
“있어. 홍대는 거의 무료야.”
얼떨결에 클럽을 가게 되었다. 클럽에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우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천천히 걸었다. 가는 길에 빌딩에 걸린 커다란 플래카드가 보였다. 남자 배우가 두 팔을 펼치고 있고 두 팔 사이로 ‘청년이여. 도전하세요!’라는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민준이가 그걸 보고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뭘 찾나 싶어 자세히 보니 그는 돌을 찾고 있었다. 민준이는 잠시 고민한 끝에 큼지막한 붉은 벽돌을 들었다. 그는 냅다 벽돌을 남자 배우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졌다.
벽돌은 배우의 오른쪽 눈에 적중했다. 쨍그랑!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주위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쳐다봤다. 민준이는 마침 타이밍 좋게 파란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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