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는 소설에 사용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내 글을 자기 사이트에 올리겠다는 회사가 있다. 하루에 5만원 지급. 주 7회 연재. 조건만 보아도 한 달에 140만원이라는 돈이 벌리는 셈이었다. 나는 당장 사이트에 적힌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알바몬에서 공고 보았습니다. 지원하고 싶습니다. 현직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인 대학생입니다.’ 새벽 4시인데도 답장은 빨리 왔다.
‘문자로 모든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전화 드리겠습니다.’
전화는 곧 걸려왔다. 생각보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차 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이트를 들어갔는데. 소설을 올려놓은 게 있는데 재밌는 것들은 진짜 재밌어요. 그게 효과가 좋더라니까. 그걸 봐야 되니까 계속 사이트를 쓰게 되고.”
웹소설을 본 건가? 웹소설 쪽으로는 써본 적이 없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차 실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 있잖아요. 뭐 나는 그런 소설이나 문학 같은 걸 잘 모르겠지만 문예창작학과라는 데 출신이니까 좀 알죠?”
“네.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드릴 테니까요. 거기로 하루 한 편씩 보내요. 시리즈로 보내도 좋고 어떻게 보내도 좋고.”
“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카카오톡으로 하루 한 편씩 보내라면 파일을 보내라는 건가. 이런 연재는 처음이라서 아무것도 몰랐다. 메시지로 카카오톡 아이디가 왔다. 친구추가를 하자 나타난 이름은 ‘ㄱ와이키키’였다. ‘24시간 문의 환영합니다.’ 무슨 사이트인데 24시간 문의를 받는 걸까. 뭐 중요하진 않았다.
한 화 분량이 a4용지로 5매 정도 된다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어떤 글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저번 학기 동아리에서 써놓은 단편을 하나 보냈다. ‘나와 그녀와 아밀라아제’라는, 연애에 대한 글이었다. 섹스 장면이 두 번 들어가는데, 그 탓에 동아리 회원들에게 지나치게 자극적인 코드가 많다는 평을 들었었다.
대놓고 순수문학 스타일의 글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연재되는 소설들은 거의 자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아예 로맨스나 무협, 판타지 같은 걸로 가야 하나.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파일을 못 읽어요. 메시지로 보내줘요.’
웬만한 회사라면 컴퓨터로 hwp 파일 정도는 읽을 수 있을 텐데. 나는 보내라는 대로 메시지로 다시 글을 보냈다. 그러자 1분도 안 되어 ‘기네요’라고 답장이 돌아왔다. 짧게 바꾸라는 뜻일까? 우선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십 분쯤 후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다시 전화를 받았다. 차 실장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건요. 중간에 섹스 하는 부분은 좋아요. 그런데 그런 내용이 주가 되어야지. 이런 건 재미없어서 사람들이 안 볼걸요.”
“그러면 어떤 내용으로….”
“아 그 왜 있잖아요? 인터넷 게시판 같은데 썰 푸는 거. 그런 식으로 쓰면 사람들이 많이 보지. 그런 식으로 한번 써볼 수 있겠어요?”
정말 감이 안 잡혔다. 나는 그에게 혹시 참고할 만한 글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카카오톡으로 보여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그에게 카톡이 왔다.
그가 보낸 링크는 누군가가 썼는지 모르는 글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최음제를 이용해 근처 여학생들을 강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성인 사이트에서 이런 글을 보면서 발기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몸은 솔직했다. 어느새 발기되어 있었다.
확실히 그 글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휴지로 정액을 닦아낸 뒤 글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이런 글을 쓰라면 쓸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실기를 통해 문창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는 백일장에서 상을 꽤 많이 탔었다. 대학에 와서도 몇몇 백일장에 입상했다. 전공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내가 왜, 이런 글을 써야 한단 말인가. 일당 오만원만 아니었어도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오만원이다.
우선 어떤 내용으로 쓸 것인가가 문제였다. 섹스를 한다면 개연성을 만들어야 할 텐데, 연애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너무 재미없었다. 아마 차 실장에게 빠꾸를 먹을 테다. 나는 우선 큰 틀부터 잡기로 결심했다.
어떤 관계로 할까. 문득 예전에 본 영화가 생각났다. 같은 아파트 앞 동에 사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인 거다. 남자는 매일 저녁 여자가 옷 갈아입는 모습을 창문으로 본다. 그리고…. 여기서부턴 뭐 더 이상 생각할 거리도 없었다.
나는 배설하듯 글을 썼다. 자유로웠다. 합평을 하는 글도 아니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뭘 배제하고 뭘 모티프를 넣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쓴 것이다. a4 용지 세 장이 넘어갈 무렵, 첫 이야기를 끝냈다. 장기 연재로 갈 것이다. 앞으로 10화 정도는 더 연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이 앞집 여자를 꾀어내 섹스를 하는 내용이었다. 차 실장에게 글을 보낸 후, 나는 칭찬받을 거라고 거의 확신했다. 차 실장은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예상대로였다.
“역시 대학생이 뭘 좀 아네. 최고에요. 지금 당장 올리자고. 그나저나 제목을 안 붙였는데. 내가 대충 붙일게요?”
“아, 그 저….”
내가 말을 하려고 하는 찰나 전화가 끊겼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대충 휘갈긴 글이다. 어떤 제목을 붙여도 거기서 거기겠지. 아마 ‘젖은 그녀’ 같은 제목을 붙여서 나갈 거다. 어디선가 구한 야릇한 여자 사진이라도 붙여서 말이다. 어떤 사이트인지는 몰라도, 그걸 본 놈들이 자위를 해대겠지. 더러운 놈들. 나는 더러운 글을 쓰는 거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개비는 금방 탔다. 다음에는 맨솔이 아닌 그냥 담배로 사오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돈이 있어야 하는데. 원고료 오만 원. 물어봐야겠다.
차 실장은 답장이 없었다. 내가 보낸 원고를 가다듬어서 사이트에 게시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삼십 분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아. 방금 1화가 올라갔어요. 그나저나 그 오만원씩 주기로 한 거 말인데, 우리 회사 주소를 알려줄 테니까 우선 그거 보고 말하자구. 주소 문자로 찍을게.”
주소를 문자로 찍는다는 말이 좀 이상했다. 네이버에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사이트도 있단 말인가. 문자는 주소로 왔다. 'id: a01021458875 pw: 8888'. 이게 뭐지? 정황상 아이디랑 비밀번호인 모양이었다.
나는 사이트 주소를 입력했다. 처음에 접속이 안 되어서 주소 앞에 www, https를 붙인 끝에 간신히 성공했다. 사이트에는 아무것도 없고, 검정색 배경에 하얀 야자나무 하나, 그리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창뿐이었다. 나는 아까 문자로 온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사이트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가득했다. 크로스, 미니게임, 고객센터. 내 회원정보 에는 예치금이 5만원이 있다고 쓰여있었다. 그때 차 실장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사이트 접속했어요? 이런 놀이터 사이트 이용해 본 적 없나? 내가 아주 쉽게 설명을 드릴게요. 우선 크로스가 뭐냐면, 스포츠가.”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거는 것이 크로스. 사다리나 달팽이 경주 같은 게 미니게임. 여기는 토토 사이트였다. 그것도 사설. 차 실장은 매일 주기로 한 돈은 그곳의 예치금으로 지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게 사실 오만 원 주는 건데, 돈을 뺄 때는 오만원이 아니라 십 만원 십오 만원까지도 가져갈 수가 있는 거죠.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
“김호준입니다.”
“호준씨. 하튼 호준씨도 대한민국 남자면, 축구 야구 농구 좋아할 거 아냐? 경기 보는 거. 좋아하죠?”
“네….”
“그럼 돈을 걸어서 불리면 불린 만큼 환전을 해주는 거죠. 우리가.”
차 실장은 친절하게 설명을 더 해주었다. 그런데 사실 설명은 얼마 필요 없었다. 그냥 맞춰서 가져가라는 소리 아닌가. 그는 내게 ‘롤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롤링이라는 것은 돈이 도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 오만 원을 받은 즉시는 못 빼요. 근데 이걸 롤링을 시켜서. 그러니까 게임을 해서, 스포츠든 미니게임이든. 하면 돈을 딸 거 아녜요? 그럼 그때는 롤링이 된 거니까 뺄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그의 말에는 가장 중요한 점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실장님. 그러면 제가 돈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차 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또 오만 원 받으니까 그걸로 노리는 거지. 뭐.”
통화는 십 분 정도가 걸렸다. 아주 쉬운 것이지만 그게 또 긴가민가했다. 오만 원도 쉽게 주는 게 아니구나. 나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일단 이 오만 원을 어떻게든 내 계좌로 가져와야 한다.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거는 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미니게임 쪽을 둘러봤다. 사다리라는 게 눈에 띄었다. 이건 유명해서 나도 알고 있었다. 사다리 타기로 홀짝을 맞추는 거. 그래 우선 이거라도 걸어볼까.
홀에 우선 이만 원을 걸었다. 손에서 땀이 났다. 마우스에 손때가 묻은 것이 보였다. 나는 시작을 기다리며 마우스에 묻은 때를 물티슈로 닦아냈다. 이제 30초 남았다. 20초, 10초.
사다리는 왼쪽에서 출발해서 두 개의 단을 건넜다. 홀이다. 초심자의 운인가. 나는 적중에 성공했다. 1.95배를 벌었다. 이제 내 예치금은 육만 구천 원이 되었다.
그래. 이번에는 홀일까 짝일까. 어떻게든 오만 원을 롤링해야 했다. 아까 이만원을 걸었으니, 이제 삼만 원만 더 걸면 나는 돈을 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삼만 원을 걸어 다 잃는다고 해도 삼만 구천 원을 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나는 홀에 삼만원을 걸었다. 결과는 짝이었다. 그래. 매번 딸 수야 없지. 그래도 만천 원밖에 안 잃었구나. 나는 사이트에서 ‘출금신청’을 누르고, 내 계좌번호와 원하는 액수 삼만구천 원을 써넣었다.
그러나 환전은 되지 않았다. 환전은 만 원 단위로만 가능한 모양이었다. 내 돈 중 삼만 원은 출금이 되는데, 구천 원은 출금이 안 된다. 나는 우선 삼만 원만 출금하고, 구천 원을 홀에 걸었다가 또 잃고 말았다. A4 용지 한 장에 만 원씩을 받은 셈이다.
차 실장이 알려준 게시판에 내 소설이 올라가고 있었다. 제목은 ‘옆집 누나 썰’ 이었다. 글의 조회 수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댓글이 몇 개 달려있었다. 나는 전부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재밌네요. 진짜 경험담인 듯.’
‘그냥 확 해버리지 하는데 진짜 해버렸네.’
‘경찰서 가는 걸 안 무서워하나?’
사실 주인공이 여자와 섹스를 하는 내용은 반쯤 강간이었다. 조금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뭐 여기서 합평을 받을 것도 아니고. 차 실장은 내 예상대로 글의 앞부분과 끝부분에 야한 사진을 넣었다. 그것도 그냥 사진이 아닌, 움직이는 사진이었다. 금발 서양 여자가 남자의 성기를 빨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 것도 덩달아 발기했다.
자위를 이틀 연속으로 하고 나는 배달의 민족을 켰다. 이제 돈이 생겼다. 치킨이나 피자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평소 못 먹던 BBQ를 시켰다. 맛은 있지만 비싸서 먹지 못하던 가게다. 이제 어느 정도 삶이 윤택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증거로, 이미 찬장의 진라면은 다섯 개에서 이틀째 하나도 줄지 않고 있었다.
혼자 밥을 먹을 수야 있나. 나는 경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만이다. 네가 밥 사는 거.”
경오는 치킨 양념에 밥을 비비면서 말했다. 오늘 특별히 비싸서 못 먹는 갈비천왕을 배달시켰다. 밥도 천 원짜리 오뚜기밥이 아닌 햇반 큰공기였다. 아르바이트 시작했거든. 나는 밥을 한 술 뜨면서 대꾸했다.
“무슨 알바냐? 노가다? 편의점?”
“인터넷에 글 쓰는 거. 연재처가 생겼어. 매일 연재하고 하루 오만원씩 받아.”
“그런 게 있어? 나도 좀 보여 줘라.”
아. 이런 때가 조금 문제구나. 나는 네가 좋아할 내용이 아닐 거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경오는 공대생답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보여 달라고 한 것도 반쯤은 빈말이었을 것이다.
“아참. 근데 그 눈 밑에 점 있는 여자분 있잖아. 우리 동아리 하시는.”
경오가 자기 오른쪽 눈 밑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정성혜? 내가 묻자 경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분 대학원 다닌대. 며칠 전에 학교 식당에서 만났는데 먼저 말 걸더라.”
“다행이네. 휴학이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성혜…. 잘 지내고 있을까. 요사이 바빠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궁금하긴 했다. 물론 다른 전 애인들도 궁금하긴 했지만 성혜만큼은 아니었다.
성혜는 내 첫 경험 상대였다. 나보다 세 살이 많았던 터라, 잠자리에서는 그녀가 나를 이끌었다. 다양한 체위를 알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날 자극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를 한동안 잊지 못했다. 다른 여자들은 다 헤어지고 미련이 사라지면 카톡에서 차단하는데, 성혜는 헤어진 지 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 카톡에 남아 있었다. 아니다. 차단했던가. 경오 녀석이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카톡을 확인했다. 성혜의 계정은 아직 있었다. 역시 아직 차단 못 하고 있었군. 내 마음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한동안 짧게 친 백금발을 고집했던 그녀는 이제 검정색 단발머리였다. 하긴. 대학원 면접도 봐야 할 텐데 백금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 아직 미련 남아?”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사실 모르겠다. 코딱지만하게라도 남아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엄청 많이 남은 건지. 사람의 마음을 아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마음까지도 잘 모르는데.
경오는 다음 동아리 모임에 꼭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2화를 써서 넘겨야 했다. 이번에는 오만원을 받으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2화 역시 술술 나왔다. 차 실장은 내 아이디에 예치금 오만 원을 군말 없이 입금시켰다. 그런데 이걸 사다리에 걸어서 한번에 잃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쪽에 걸어야만 했다.
스포츠 베팅을 해볼까? 축구나 야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석까지 할 정도로 즐겨 보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가 강팀이고 약팀인지는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때 차 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2화도 좋던데요. 받으신 오만원은 어디에 거실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다리나 할까 생각 중인데요.”
차 실장은 잠시 고민하는지,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사다리가 우리 주 수입이에요. 그걸로 돈 제일 많이 벌어요. 머저리 아닌 이상 사다리 하는 놈은 없죠.”
“그러면요?”
“내가 사실 돈 많이 쓰는 회원들한테는 분석도 무료로 제공해줘요. 돈을 어떻게 하면 딸 수 있나, 알려준다 이거지.”
그걸 호준씨한테 해드릴게. 차 실장은 내게 첼시, 맨체스터 시티, 로젠버그의 승에 돈을 걸으라고 말해주었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차 실장이 내게 돈을 다시 빼앗아가려고 일부러 틀린 분석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냥 오늘 역시 사다리를 하기로 했다.
사다리를 하다 보니 남은 돈은 만구천원이었다. 나는 그걸 전부 홀에 걸었다.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이었다.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입고 있는 티셔츠를 세탁기에 던져 넣고 새로운 셔츠를 입었다.
시팔. 짝이었다. 오늘의 수입은 0원이었다. 이거 좆 됐구만. 나는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찬장에 놓인 진라면 순한 맛을 하나 꺼냈다. 저번에 돈이 없어서 컵라면도 큰 컵이 아닌 작은 컵을 샀었다.
라면을 후루룩거리면서 차 실장이 찍어준 경기들의 결과를 살펴보았다. 첼시 승, 맨체스터 시티 승, 로젠버그 승. 세 개 다 적중이었다. 배당은 3.6배였다. 그러니까 내가 오만 원을 걸면 십팔만 원이나 벌 수 있었다는 소리다. 그냥 만 원만이라도 걸어볼걸. 그 생각을 못했네. 나는 라면 국물을 한입에 마셨다. 내일은 차 실장이 하라는 대로 할 테다.
소설은 그냥 그랬다. 댓글이 많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꽤 보는 듯 했다. 차 실장이 그 소설로 이득을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오만 원을 계속 벌게 해줬다. 내가 지금껏 썼던 소설 중 가장 잘 쓴 소설은 아니지만, 내게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해 준 소설인 셈이었다.
상한이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업무 차 서울에 왔는데 저녁이나 같이 먹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더 꼰대가 되었을까, 걱정되었지만 그가 오늘 사 줄 밥이 눈에 아른거렸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그래도 사촌이랍시고 나에게 돈을 푸짐하게 썼다. 그래. 만나자. 나는 좋다고 말했다.
상한이 형은 만나는 자리를 고깃집으로 잡았다. 나는 삼겹살을 불판에 올려놨다. 그는 소주 한 잔을 앞에 놓았다. 2대 8로 넘긴 머리는 언제 봐도 참 짜증났다.
“잘 있냐? 휴학했다며?”
상한이 형의 노력이 시작됐다. 나라는 어리석은 이십 대를 구제하려는 삼십 대의 노력이 말이다. 골든타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창조적인 생각. 그가 상사에게 들었을 법한 말들이 내게로 쏟아진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가 다 동원된다.
“나도 사실 대단한 놈은 아니야. 근데 시팔.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거 아니냐.”
여기서 그의 웅변은 자기 과시로 바뀐다. 이제 슬슬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새끼의 턱주가리를 갈기고 여기를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가 차비 명목으로 주는 용돈은 상당한 액수다. 그리고 이 밥값은 또 얼마인가. 나는 맥주를 추가 주문했다.
그의 혀가 살짝 꼬부라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벌써 아홉 시가 다 되어 가고, 그가 타야 하는 기차는 아홉시 반에 출발한다. 일곱 시에 만났으니 두 시간 일한 셈이다. 그는 계산하라며 카드를 내게 넘겨주었다. 법인 카드였다. 회사 돈이구나. 어쩐지 그가 평소보다 조금 더 호기로웠다. 그래서 나도 육회에 특수부위까지 주문했던 것이다.
“이거 차비해라. 택시 한 대만 잡아주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지갑에서 오만원짜리 하나를 꺼냈다. 시급 이만 오천 원인 셈이다. 오늘 횡재했구나. 나는 바지 주머니에 지폐를 잘 넣었다. 혹시 흘릴까 봐 주머니 지퍼도 올렸다. 사차선 도로로 택시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그때 그가 나를 밀쳐냈다.
“이 새끼야. 그렇게 해서 되겠어! 봐봐.”
그는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직접 시범을 보였다. 발을 구르면서 양팔을 휘젓는 그의 모습은 참 가관이었다. 택시 한 대가 속도를 줄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봐봐 임마. 이렇게 적극적으로 안 할 거면 임마. 응? 하지 마. 새끼야.”
그는 비웃듯이 내게 말하고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잠시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그의 기차 표가 보였다. 아까 택시를 잡다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택시가 멀어질 때까지 승차권을 안 보이게 발로 밟고 있었다. 택시가 신호를 받아 멀어지자, 그제야 발을 뗐다. 기차표를 찢어서 하수구에 버려버렸다. 개새끼. 가다가 택시 사고나 나버려라.
오랜만에 생긴 현금 오만 원을 깨기 아까워서 술도 깰 겸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구글 지도를 켰다. 여기서 이십 분만 걸으면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은 자취방들이 모인 언덕의 맨 꼭대기였다.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성혜였다. 그녀는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검정색 단발머리를 하고, 못 보던 토트백을 메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의 허리 부분에는 은색 벨트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추리닝에 운동화, 티셔츠 차림이었다. 나는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그녀의 벨트만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휴학했다며.”
성혜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학원 다녀. 성혜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한 번 더 물었다.
“아직도 글 쓰지? 잘 돼?”
“뭐 그렇지.”
“동아리 조만간에 모인대. 한번 가자. 화석끼리 뭉쳐야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그새 화장법이 바뀌었는지 얼굴은 더 세련되게 변했다. 알겠어.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인사했다. 그녀는 사는 곳이 바뀌었는지 내가 처음 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이 살고 있는 내 자취방으로 올라갔다.
집에 가자마자 나는 바지를 벗고 자위를 했다. 아까 상한이 형이 준 오만 원짜리가 바지에 들어있는데, 그걸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팔. 진짜. 시팔. 나는 그대로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아랫도리가 찝찝했지만 그대로 있었다. 최소한 가만히라도 있으면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오만 원이나 있는데도 뭐에 쓰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다.
차 실장은 연재한 지 일주일이 되자 글이 조금 재미없어졌다고 했다. 이쯤에서 다른 내용으로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동안 받은 돈은 계속 차 실장이 알려 준 경기에 걸었다.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통장에 저축한 돈이 이십만 원은 됐다. 나는 이제 차 실장이 알려 준 경기를 내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베팅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따는 비율이 조금 더 높아졌다. 내가 건 팀이 이기고 있다가 갑자기 두 골을 내리 먹히고 졌을 때는 책상을 두들기고 소리를 질렀다. 벽에 걸어놓은 달력이 조금 흔들렸다.
“내일부터 다른 걸로 안 쓰면 돈 안 줘요.”
차 실장은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첫 화랑 오늘 쓴 화를 비교해봐라. 그러면 호준씨가 얼마나 게을러졌는지 알 것이다. 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긴 그랬다. 쓸데없는 정사 장면이나 쓰면서 분량을 채우려 했다. 무슨 내용을 써야 하나. 고민하며 한글 문서를 열었다.
성혜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안 되지. 생각하며 다른 내용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내용도 떠오르지 않고 성혜 얘기만 생각났다. 이건 진짜 안 돼. 나는 내 자신을 진정시키려 했다.
성혜의 젖가슴이 떠올랐다. 75B라고 했었다. 잘록한 허리, 부드럽던 살결, 같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나던 체취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성혜랑 난 왜 헤어지게 되었었지. 나는 생각을 거듭했다.
그래. 성혜가 먼저 이별을 고했던 것 같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 보니 헤어지게 되었고, 나는 헤어진 후 군입대를 선택했다. 그 사이 그녀는 몇 번의 연애를 했고 그 관계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명의 여자도 만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봤자, 이미 끝난 일이다. 성혜와의 관계를 돌릴 수는 없다.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똑같은 이유로 다시 이별할 것이다. 그럼 성혜를 소설로 써도 괜찮을까. 고작 오만 원에 성혜를 파는 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일단 성혜 얘기를 쓰고 싶었다.
글이 얼마나 될지는 상관없다. 차 실장이 빠꾸를 먹여도 상관없다. 나는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글을 썼다. 성혜를 만나서, 술을 마시고, 고백을 하고, 잠자리를 갖는 내용이었다. 소설은 그날 저녁 시작되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문서 정보를 확인해 보니 200자 원고지로 80매가 나왔다. 한 화 분량으로는 제격이었다. 나는 차 실장에게 소설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차 실장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 오만 원을 또 넣어주었을 뿐이었다. 이 시팔새끼. 나는 또 돈을 걸었다. 그건 다행히도 땄다. 1.4배 배당이었기 때문에 칠만 원으로 돌아왔다. 가지고 있는 전액을 환전 신청했다. 십육만 원이었다.
인터넷뱅킹 앱을 확인하니 그들은 돈을 10분이 지나도록 보내지 않았다. 빠른 환전이 생명인데. 이 새끼들. 불법인 주제에. 돈은 결국 환전신청한 지 이십 분이 다 되어서야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피자를 한 판 주문했다.
딴 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계산해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돈은 모두 해서 사십만 원, 그 중 내게 들어온 돈은 사십이만 원이었다. 이만원이나 더 챙겼다. 그것도 집에 앉아서. 그러나 그 중 대부분의 돈은 그날 써버렸다.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들었다. 돈을 오래 가지고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걸 내 통장에 쌓아놓으면 원래 있던 돈까지도 썩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 이건 연재처가 아니다. 내게 하루에 오만 원씩을 꼬박꼬박 주는 좋은 일자리가 절대 아니다. 나는 내 내장을 끊어 팔고 있다. 하루에 몇 센티미터, 혹은 몇 미터. 운이 좋으면 몇 십만 원을 받을 수도 있다. 내 내장을 끊어 팔아서.
하지만 이미 잘라 버린 판이다. 남은 게 몇 미터건 몇 센티미터건 이미 나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자르는 걸 멈춘대도 피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것이다. 이미 나는 내장을 끊어 팔고 있고, 한 번 끊었으면 모두 끊어야 한다.
나쁜 일은 시작조차 하지 말라.
그런 말이 문득 생각났다. 누가 했더라. 아마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했을 것이다. 그게 맞다. 내가 알바몬에서 차 실장의 글을 본 순간, 그리고 거기에 연락한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다. 시팔. 정말 잘못된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미 불법 도박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혹시 몰라서 그간 인터넷을 돌면서 불법 도박은 어떤 방식으로 잡히는지 알아봐 놓았다. 거래 내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놈을 무작위로 몇 명 잡는댔다. 매일 출금하다시피 하는 놈이 아니면 누가 걸리겠어. 차 실장이 제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내야지. 나는 한글 문서를 켰다. 오만원이라도 받아야지. 그래야 먹고라도 살 수 있었다.
차 실장은 이상하게도 성혜 얘기를 일주일째 쓰는데도 새로운 걸 쓰자고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조금씩 질질 끌고 있었다. 참고로 차 실장이 붙인 제목은 ‘연애일기’였다. 연애일기라는 제목이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의 제목 같기는 했지만 수긍했다. 이건 정말 연애 얘기니까. 차 실장은 멋있었다.
그는 잘 썼다 못 썼다 하는 법이 없었다. 그냥 수고했다고 하고 사이트에 예치금 오만 원을 넣어줬다. 나도 그냥 계속 썼다. 마치 공장 같았다. 만들면 만드는 거지 그게 칭찬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불량이 나면 그건 호되게 질책을 받는다.
경오에게 밥을 한번 사주었다. 그는 내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운동을 좀 하라고 충고했다. 당연하다. 이미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끔 어지러웠고 이따금씩 배나 가슴이 간헐적으로 아팠다. 목도 좀 굽어 가는 것 같고, 잠자려 하면 허리가 쑤신다. 앉아서 하는 일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칭을 유튜브에 검색해서 몇 번 스트레칭을 해도 그대로였다. 예전 공장이나 편의점에서 오래 서 있을 때 찾아오던 바로 그 고통이 돌아왔다.
그냥 다른 일을 할까. 생각해서 알바몬을 찾아보았다. 편의점이든 피씨방이든 사람을 구하는 곳은 많았다. 하루 7시간에 시급 8350원, 주휴 수당이니 뭐니를 합치면 얼마를 받을까, 단순 계산으로만 따지면 하루에 오만팔천 사백오십원이다.
아니지. 그거로만 따지면 안 되지. 일하는 곳까지 가는 시간, 교통비, 감정 노동의 대가.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알바가 없다. 이건 하루 세 시간도 안 쓰는데, 사실 마음먹고 쓰면 한시간에도 쓴다. 하여튼 이걸 쓰고 오만 원이다. 월급날까지 안 기다려도 된다. 그날 바로 넣어준다. 물론 운이 나쁘면 오만 원 다 날리지만, 운이 좋으면 십만 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따면 계정을 차단시키는 사이트도 많다는데 난 좋은 사이트를 만났다. 벌써 몇 십만 원을 군말 없이 주니 말이다. 이런 기회비용도 계산해야지. 이런저런 계산을 끝내고 나니 나는 이 일을 절대 그만둘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핸드폰에서 진동소리가 들렸다. 문잔지 카톡인지 뭔지가 왔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동안 무시해놨던 동아리의 단체 톡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 가볍게 맥주나 한잔하면서 얼굴이나 보자고, 올 사람은 투표해달라는 회장의 공지였다. 안 가는 건 당연하고 누가 오려나? 나는 참석에 투표한 사람을 확인해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19학번들을 비롯해 1, 2학년들이 주축이 될 모양새였다. 그런데 거기 몇몇 나이든 사람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 중에는 경오도 있었다. 나는 경오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새내기들 끼는 데 끼면 어색할 테니까 우리끼리 따로 만나는 거 어때. 경오는 좋다고 했다.
경오는 약속을 금요일 밤 9시로 잡았다고 했다. 그래. 내일은 샤워도 하고 면도도 한번 해야겠다. 누가 오냐는 말에 경오는 다 알 사람들이라고만 말하고 넘겼다. 성혜도 오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왔으나 간신히 눌렀다. 그러고 보니 머리도 슬슬 길어지기 시작했다. 내일은 가서 머리도 잘라야지. 가는 김에 옷이나 한 벌 살까.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성혜가 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르겠다. 아마 눈을 마주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날 만났던 때와는 느낌이 다를 거다. 나는 걔 이야기를 팔고 있으니까. 하루 오만원에. 성매매여성의 화대보다도 싼 값에. 불법도박하는 이들에게 팔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건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성혜의 이야기를 본다. 그리고 자위하겠지. 아니면 자신의 여자친구나 마누라나 섹스파트너와 섹스를 할 테다. 어떻든간에 그들은 사정에 이르러가며 성혜를 생각할 것이다. 가끔 속으로 ‘성혜야 간다!’ 거나 그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할 거다.
성혜가 내가 쓴 글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나를 욕할까. 아니면 조용히 나를 손절할까. SNS를 통해 대문짝만하게 ‘김호준은 개새끼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걔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냥 자기 지인들 몇몇에게만 말하고 끝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지인들에게 말하겠지. 성혜가 여섯 명에게 말하고, 여섯 명이 두 명씩에게만 말해도 열세 명. 피라미드다. 말은 기하급수적으로 퍼진다. 이렇게 좁은 커뮤니티에선 더 빨리 퍼질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강간범, 개새끼, 관음증 환자로 변할 거고 글을 쓰는 놈들 사이에서 좋은 안줏거리가 될 테다. 누군가의 작품을 합평하던 중 정사 장면을 보고 ‘야, 이건 거의 김호준인데?’ 라는 식으로 농담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내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그럼 로열티를 받아야 하나.
그래.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필욘 없다. 소설 속에서 성혜는 김유진이란 가명을 썼고 나 역시 가명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실에 기초하긴 했으나 가면 갈수록 픽션이 더 많다. 이건 거의 경험담보단 소설에 가깝지. 물론 전개는 완벽하게 똑같다. 그러니까 뼈는 같지만 살이 다른 셈이다.
나는 그렇게 합리화를 해냈다. 만약 성혜를 만난다면 좀 미안하긴 하겠지만 법적으로 걸리진 않을 것이다. 수염을 미리 깎기로 했다. 전기면도기는 말끔하게 내 턱과 인중을 정리해주었다. 평소엔 잘 손대지 않는 뺨의 잔털도 신경 써서 정리했다.
성혜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맥주를 한 잔씩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성혜 이야기는 없었고 경오가 누가 오기로 했는데 안 왔다거니 하지도 않았다. 남자 셋 여자 둘의 술자리. 과거 함께 놀았던 적이 많아서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예전에 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테트리스 블록이 쌓이듯이 이야기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누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도 않았고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다. 괜히 걱정했군. 나는 세 잔째의 오백 잔을 비우며 그렇게 생각했다.
경오랑 나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런데 그는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뭘 보는 거야? 내가 묻자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담배가 꺼질 때쯤 내게 물었다.
“성혜 씨 와도 괜찮겠냐?”
갑자기? 내가 묻자 그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너 며칠 전에 성혜 씨 만났는데 어색해했다며. 그래서 본인도 올까 말까 고민 많이 한 것 같더라. 그래서 오늘 너한테 물어보고 괜찮다면 오기로 했어.”
“그럼 다른 애들은 다 알아?”
나는 술집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 알지. 미리 얘기를 했는데. 다들 괜찮대. 너는 어떤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꾸며지고 있었다. 이제 대답을 해야 한다. 나 혼자 어색해지나, 아니면 모두가 어색해지나의 차이였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나는 그에게 성혜가 와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얼굴이 확 펴지더니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래. 넌 다행이겠지. 모두가 얼굴 붉힐 일 없는 상황이니까.
들어가서 오백 한 잔을 더 시켰다. 경오가 돈은 자기가 내주겠다고 했다. 아니 나도 이제 돈 있는데, 성혜 팔아서 번 돈. 그렇게 생각하며 씩 웃었다. 자리에 있는 놈들이 전부 한 마디씩 했다. 그래. 언제까지 어색해할래. 친군데. 재밌게 놀자. 신경 쓰지 마. 그때 경오가 핸드폰을 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성혜 씨가 새내기 한명 데리고 온다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혜는 그동안 원래 진행되기로 했던 새내기들 중심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거기 자리가 파해서 같이 데리고 오겠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여기 새내기랑 성혜까지 껴서 이야기가 참 잘도 되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경오는 성혜가 금방 올 거라고 말했다.
성혜는 정말 금방 왔다. 오늘도 세련된 옷차림을 입은 채였다. 옆에 서 있는 새내기가 빛이 바랠 정도였다. 오랜만이네? 그녀는 불특정다수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새로운 안주를 하나 주문했다. 새내기니까 상큼하게 과일안주. 라는 식으로 식상하게 레퍼토리가 흘러갔다. 그리고 성혜에 대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학원에 대해, 교수님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역시 새내기를 중심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녀는 동아리의 선배들 이름을 다 모르겠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그나마 친한 성혜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주겠다며 한 명씩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얘는 누구, 얘는 누구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성혜는 딱히 어려워하지 않고 소개를 시작했다.
“얘는 호준이! 소설 써요. 지금은 휴학했는데 다음 학기에 복학하니까 맛있는 거라도 사달라고 해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소개가 하나하나씩 끝나고 여기에 없는 친구들의 소개까지 시작됐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행히 아무도 말실수를 하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라켓과 공으로 테니스를 치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자리는 화기애애해져 갔다.
나는 성혜만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면 눈이 마주칠 것 같아 시선을 성혜의 배에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연분홍색 블라우스에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성혜는 원래부터 세련된 옷을 잘 골라 입는 재주가 있었다. 그에 비해 내 오늘 옷차림은 옷장에서 꺼내 입은 하늘색 셔츠에 면바지였다. 다림질을 언제 했는지 셔츠에 주름이 잔뜩 져 있었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셔츠를 손으로 계속 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이제 집에 가보아야겠다고 했다. 그 말에 다들 자기 막차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파하는 분위기구나. 나도 슬슬 일어났다. 새내기는 안 내고, 나머지 인원들끼리 돈을 나눠서 계산했다. 모두들 술집 밖에 모여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경오랑 술이나 한잔 더 할까 했으나 그는 피곤하다며 가버렸다.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참. 성혜랑 같은 방향이구나. 그녀가 나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냥 속도를 높여서 가버릴까.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성혜는 이미 나를 따라온 뒤였다. 그녀는 내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오늘 말도 얼마 없더라. 피곤했니?”
나는 가볍게 고개만 저었다.
“경오 씨랑 오랫동안 얘기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마냥 어색할 필요는 없잖아. 넌 나랑 사귀기 이전에 좋은 친구였으니까.”
“응. 그렇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자리 자주 만들자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어색함을 상쇄하려는 듯 웃어 보였다.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나는 저 웃음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 그래서 짜증났다. 그래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언제 내려갈지를 지켜보았다.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었다. 성혜는 잘 가. 하고 말했다. 여전히 웃고 있는 채였다. 나는 그래서 더욱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간신히 집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썼던 소설을 저장해놓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걸 저장해놓았다면 컴퓨터를 부숴 버렸을 것이다. 컴퓨터를 쳐다보기도 싫어 일부러 벽 쪽을 바라보고 누웠다. 그냥 푹 자고 싶었다. 오랜만에 술도 마셨겠다. 잠도 푹 올 것 같았다. 그러나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성혜가 생각났다. 성혜의 머리카락, 목선, 오프숄더를 입었을 때 드러나는 쇄골. 허리, 언제나 샵에 들려 손질하는 손톱.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성혜의 손톱을 봤던 것 같다. 무슨 색깔이었더라. 나는 얼른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잠이나 자자. 잠이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에서 울린 진동 때문이었다. 흐린 눈으로 뭔지를 확인했다. 카카오톡이었다. 보낸 사람은 성혜. 성혜였다. 비몽사몽한 손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두 번을 연속으로 틀렸다.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해서 숫자를 눌렀다. 아. 비밀번호가 풀렸다. 성혜가 보낸 카톡을 읽어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손에 힘이 풀려서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슬쩍 내용이 보였다.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야. 성혜야. 난 널 팔아먹었어.
“아. 호준씨? 다름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이 소설을 그만하려고. 어. 사실 보는 사람도 좀 적고 하다보니까. 뭐 어쩔 수 없게 됐네. 미안해요. 예치금 오만원 넣어놨으니까 그거 가지고 마지막으로 베팅 한 번 해요. 우리 사이트 이용하려면 계속 이용하시고. 서비스도 많이 줄 테니까요. 그동안 수고했고.”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정말 예치금이 오만 원 들어 있었다. 조금 고민하며 두 경기를 골라 걸었다. 따면 팔만 원이다. 경기 시작까지는 아직 삼십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직도 졸렸다. 크게 하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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