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복왕이 이렇게 동생바보일 리가 없어!

 

그 정복왕=알렉산더 대왕

 

문학관 출품 전, 추천게에 꾸준히 올린 알렉산더 시리즈를 읽었던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알대왕 덕후임요. 최근 잠시 휴덕기를 가졌지만 다시 덕심에 불을 지피며 집에 소장중인 관련 책을 전부 꺼내 재주행을 시작했음.

 

그렇게 '발레리오 마시모 만프레디'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유명한 3부작 소설을 읽다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이 나와서 공유하고 싶어졌음. 책소개에 앞서 기본적인 역사배경부터 설명하자면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충 타임~

알렉산더의 친형제는 딱 한명인데, '클레오파트라'라는 2살 터울 여동생임. 당연하지만 이집트의 그 여왕이랑은 300년 정도 시간차가 있는 동명이인임. 마케도니아, 혹은 에피로스의 클레오파트라라고 부름.

 

 

그녀는 알렉산더의 즉위 전 오빠랑 동명이인(에피로스의 알렉산드로스 1세*)이자 에피로스라는 지방을 통치하던 어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자기 외삼촌과 결혼하게 됨. 그녀의 결혼식날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호위병의 급습에 사망하는 암살 사건이 벌어지기도 함.

*알렉산드로스나 클레오파트라나 당시 그리스에서 유행하는 흔한 이름이었음.

 

알렉산더가 즉위하고 페르시아 정벌을 위해 소아시아에 당도한 시기, 그녀의 남편은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식민도시들의 원조요청을 받게 됨.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할 좋은 기회로 여긴 또 다른 알렉산더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처남의 동방원정과 반대방향으로 출정했음. 초기엔 연이은 승전보를 울려 근처 로마를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역시 이름이 같다고 능력까지 같은 건 아닌건지 얼마후 클레오파트라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받게 됨.

 

남편이 죽은 후 그녀가 잠시 에피로스의 국정을 맡기도 했으나, 아들이 너무 어린 나이라 왕위는 다른 유력 왕족에게 넘어가게 됨. 그녀는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인 마케도니아로 돌아갔음. 당시 마케도니아 궁정은 알렉산더의 빈자리를 대신해 안티파트로스라는 원로가 섭정을 맡고 있었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알렉산더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는 정치적 권력욕이 어마어마한 야망녀였음. 알렉산더 생전에는 아들이 내정을 맡긴 안티파트로스와 대립각을 세웠고, 아들 사후엔 그의 거대한 상속분인 제국을 놓고 부하장군들이 벌인 디아도코이 전쟁에 개입하여 자신의 정적과 본격적인 정쟁을 벌이게 됨.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는데 '페르디카스'라는 알렉산더의 부하장군임. 어린 시절 동문수학한 대왕의 친우이며, 동방원정을 함께 한 뛰어난 부하장군이자, 알렉산더가 자신의 죽음 이후 사후 처리와 제국의 관리를 맡긴 명실상부 2인자였음.

 

든든한 뒷배가 필요했던 올림피아스는 페르디카스에게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와의 혼담을 주선하게 됨. 그리스 본토의 실권을 쥔 정적에 맞서야 하는 올림피아스의 입장과 대왕의 후광을 등에 업고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던 페르디카스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혼인은 성사되었음. 

 

 

그러나 이 혼사에는 치명적인 막장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페르디카스는 앞서 안티파트로스의 딸과 약혼 상태였던 것.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안트파트로스의 딸과 결혼을 약속하고 뒤로는 대왕의 여동생과 양다리를 걸쳤다는 말임. 당연히 안티파트로스는 분노했음. 이 사건은 안티파트로스가 다른 부하장군들과 손잡고 페르디카스와 대적하며 디아도코이 전쟁이 본격 궤도에 오르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됨.

 

기본적인 배경지식 설명은 여기까지.

다시 본주제인 알렉산더와 여동생 이야기로 돌아가자.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사료가 많이 남아있진 않지만 그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가 하나뿐인 여동생을 정말 매우 엄청 많이 아꼈다는 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음. 동방원정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여동생과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았고 공방전 승리 후 획득한 전리품 상당수를 여동생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함. 뭐 여기까진 고대 왕족의 훈훈한 남매애 정도로 흐린눈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하루는 그녀에게서 "오라버니~나 요즘 존잘영계 궁정하인과 비밀연애중♡"이라는 현대 관점에서도 어지간히 파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가장 가까운 왕족인 그녀의 위치나 당대 그리스의 여성관을 생각하면 펄쩍뛰며 잡도리하는 게 당연한 반응일 것임. 

 

그러나 이 눈먼 여동생 바보는 이에 화내거나 혼내기는커녕, "이쁜 내 동생~나 없는 궁정에서 왕족의 책임을 다하느라 얼마나 바쁘고 피곤할까? 몸 상하지 않게 가끔은 휴양도 즐기며 쉬엄쉬엄하렴"(...)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함. 

 

모전녀전이라고 만만찮은 야심가였던 그녀는 친정에 돌아온 뒤로 어머니를 도와 마케도니아 궁정에서 안티파트로스와 대립하고 있었음. 알렉산더는 이를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집안 단속은 고사하고 한결같이 내 동생 하고 싶은 거 다해♡ 모드였다고. 

 

 


 

그렇다면 만프레디의 3부작 소설에선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나올까?

 

일단 책부터 간략히 소개하자면, 고고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고증에 꽤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르 특성상 역사적 사건과 전투상세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보다는 인물의 캐릭터, 관계성, 내면심리와 변화과정을 유려한 문체로 묘사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음. 

 

특히 드라이한 역사적 기록들 사이의 공백을 채우고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소설적 상상을 넘어 "저기, 이건 좀,, 작가양반 사심 아니오,,," 싶은 부분이 꽤 많이 보이는 것도 특징. 과장 좀 보태서 역사동인지 내지 2차연성이라 봐도 무방.

 

 

역피셜부터 저 지경이니 이 장편포타...아니 소설에서 나오는 둘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음. 알렉산더가 어마어마한 여동생 바보에 클레오파트라도 그에 지지 않는 오빠 바보임. 쌍방 시스콤 브라콤 남매. 

 

이 소설에는 많은 각색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클레오파트라와 페르디카스가 연인이라는 설정임. 클레오파트라가 에피로스의 알렉산더에게 시집가기 한참 전부터 페르디카스를 유혹하고 혼전관계까지 가진 걸로 나옴. 첫날밤 이를 눈치 챈 남편은 질투심을 느끼지만 그 역시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후라 신혼을 망칠까봐 티도 못내고 전전긍긍하게 됨.

 

특히 아르테미스 신전에 봉헌물을 바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그녀가 호위대로 동행한 페르디카스에게 작업거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일품임. 요약해서 설명해봤자 본문의 내용과 분위기가 온전히 전달이 안될 듯 하니 그냥 직접 보고 느끼자.

 

"마차를 타고 싶지 않아요. 그냥 말을 탈 수는 없을까?"

클레오파트라가 불평했다. 페르디카스가 고개를 저었다. 

"명령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런 옷차림으로는 더더욱 말을 타실 수 없습니다 공주님."

그러자 클레오파트라가 페플로스의 가장자리를 턱까지 들어올렸다. 그 밑으로 아주 짧은 튜닉이 드러났다.

"봤죠? 아마존의 여왕같지 않아요?"

페르디카스의 얼굴이 빨개졌다.

"봤습니다. 공주님."

페르디카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럼, 옷을 어떻게 할까요?"

클레오파트라는 페플로스를 발목까지는 내리며 말했다. 페르디카스가 한숨을 쉬었다.

"제가 공주님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지금은 마차를 타십시오. 그러다가 궁궐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을 때 말을 타십시오. 대신 호위병 한 사람을 마차에 태우겠습니다. 마차에 탄 시녀들에게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겁니다."

"멋져요!"


"이러니까 우리 모두의 여행이 훨씬 더 즐겁잖아요."

페르디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앞쪽에 고정시키려 애썼지만 옆에서 물결치듯 움직이는 공주의 다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제가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해요."

공주가 사과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이 임무를 원한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페르디카스가 대답했다.

"정말이세요?"

클레오파트라가 그를 주의 깊게 쳐다보며 물었다. 페르디카스는 점점 더 어쩔 줄 몰라하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함께 가줘서 나도 기뻐요."


평소 눈 여겨 보고 있던 불쌍한 페르디카스를 유혹해 꼼짝 못하게 만든 그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결코 사랑의 포로가 아님. 연인이 아닌 다른 이와의 정략결혼을 앞두고도 눈물 한 방울 없이 해사하게 웃으며 결혼준비 과정을 오빠와 공유하고, 결혼 후엔 자신의 남편에게 곰살맞게 굴며 달달한 신혼을 즐김.

 

어떤 남자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다 내주지 않는 그녀는 모태매력녀임. 딱 한 사람 친오빠만 빼고.

 

"무슨 소문이 도는 지 아니?"

"무슨 소문요?"

클레오파트라가 갑자기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네가 페르디카스를 좋아한다는 소문이지. 글쎄, 네가 에우메네스를 좋아한다고도 하더라. 설마 둘 다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빠뿐이에요"

그러면서 다시 왕자의 목에 팔을 둘렀다.

"거짓말! ...그래도 그런 말 들으니 기분이 좋은 걸. 정말이라고 해두지 뭐."

 

"그리고 내가 이 방에서 나가고 난 뒤에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약속해줄래?"

약속을 하는 동안에도 클레오파트라의 뺨 위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렉산드로스는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그녀가 등 뒤에서 외쳤다.

"신들이 원하실 때."

알렉산드로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넌 항상 내 가슴속에 있을 거야."


"넌 그에게 꽃이 될 거야. 봄날 같은 미소가, 황금 속에 박힌 진주가 될 거야."

클레오파트라가 빛나는 눈으로 오빠를 보았다.

"나를 그렇게 보셨어요, 오빠?"


그는 말 위에 훌쩍 뛰어올라 아르테미스 여신상같이 눈부신 여전사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흥분에 휩싸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둘은 서로를 꼭 껴안고 얼굴과 눈에 입을 맞추었다. 둘 다 어쩔 줄 모르며 부드럽게 상대방을 쓰다듬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랑하는 내 동생."

알렉산드로스는 슬픔이 담긴 동생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렉산드로스 오빠. 나의 왕이시고 주인이신 사랑하는 오빠. 내 눈의 빛이시고......"

더 이상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 다시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요?"

클레오파트라가 눈물에 젖어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매일밤 잠들기 전 네 이름을 부르마. 바람이 내 목소리를 실어다 네게 전해주길 바란단다."

"잘 가세요 오빠. 저도 매일 밤 높은 테라스에 올라가 귀를 기울일게요. 바람이 오빠 목소리와 오빠의 체취를 실어다주기를 기다릴게요. 잘 가세요. 알렉산드로스......"


"자네 동생, 이피로스의 클레오파트라 편지일세."

"이상하군. 방금 전에 해변을 산책하면서 그 애 생각을 했는데......"

"보고 싶은가?"

"많이. 그 애의 미소와 맑은 눈과 그 목소리, 따뜻한 애정이 그립네."


「 나의 사랑하는 오빠. 오빠와 마지막 포옹을 나눈 지가 벌써 1년도 더 지났네요. 그동안 오빠의 모습을 그려보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답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너에 대한 그리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란다. 지금 이 순간 네 발 밑에 앉아 네 몸에 머리를 기대고 너의 부드러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우리가 약속했던 것처럼 지는 해를 바라볼 때마다, 바람이 내 목소리를 전해줄 때마다 나를 생각해주렴.


알렉산드로스는 동생 클레오파트라를 몹시 그리워했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그녀에게 다정다감한 편지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남매가 함께 나오는 장면들은 그냥 전부 다 이런 분위기임. 읽다 보면 어느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고 이게 역사소설이냐 씹덕망상라노벨이냐 싶음. 

 

작중 알렉산더 곁에는 많은 여인들이 거쳐가는데 새로운 상대를 만날 때마다 남들은 몰라보는 그녀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최고의 로맨티스트임.(aka 산높계깊 금사빠) 일단 작품 기준 가장 마지막에 만난 박트리아* 태수의 딸인 록사네를 진정한 마지막 사랑이시라며 제1정비로 삼긴 하는데 이 새끼 단명 안 하고 그대로 서방원정 떠났음 거기서 또 다른 여자 만나 또 찐찐찐막 트루럽 타령해댔을 게 백퍼임. 그냥 이 정복패왕에게 진정한 사랑 따윈 없는 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

 

결국 인간여자 중 알렉산더가 변함없이 애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이는 건 자기 어머니랑 여동생 뿐임. 그 중에서도 언급의 빈도와 표현의 느끼함으로 따지면 여동생에 대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

 

이렇듯 못 말리는 여동생바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애 사정에 함부로 간섭하거나 반대하진 않는데, 이미 페르디카스와의 관계를 눈치챘으면서도 거기에 별로 말을 얹지도 않음. 그보다는 이미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그녀가 연애에 대해 과한 환상을 가졌다가 나중에 고통스러워질 까봐 걱정하며 충고해주기도 하는 좋은 오빠이기도 함. 

 

 


클레오파트라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후 페르디카스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알렉산더를 따라 페르시아 원정길에 오름. 그리고 분명 비밀연애였을 게 분명한 둘의 관계는 원정길 내내 알렉산더의 최측근인 친구들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입에 오르내리게 됨. 마케도니아 본국에서 둘이 얼마나 티를 내고 다닌 건지 감도 안 잡힘. 이 정도면 역으로 당사자들만 눈치 못 챘을 뿐 사실상 마케도니아 궁정 안 사람들 모두가 도둑시청 중인 연프가 아니었나 싶음.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실컷 안줏거리로 삼은 주제에 좀 찔리긴 하는지 친구들은 대화 끄트머리 마다 "오 불쌍한 페르디카스!" 이런 식으로 그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냄. 하지만 매번 알렉산더는 (고대 왕족이란 게) 원래 다 그런거지, 뭘 그렇게까지 오바임? 딱 이 반응임. 

 

그 후 클레오파트라가 과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전쟁의 승기가 확실히 마케도니아 쪽으로 기운 어느 날, 페르디카스는 술을 진탕 마시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청혼하기 위해 알렉산더를 몰래 찾아가게 됨. 그리고 이 때 나누는 둘의 대화는 대화라기보단 그냥 알렉산더의 일방적인 페르디카스 멘탈 학대씬임.

 

"할 말이 뭔가?"

"자네, 여동생 클레오파트라 왕비가 혼자 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네."

"불행하게도 그렇지."

"난 그녀를 사랑하네. 예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랑해왔네."

"알아."

"그걸 어떻게 알지?"

페르디카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고 있네. 그러면 된 거지."

"내가 여기 온 것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청혼하기 위해서야."

알렉산드로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은......"

"뭔가?"

페르디카스가 애처로울 정도로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알렉산드로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프톨레마이오스도 청혼을 했네."

"오!"

"그리고 셀레우코스도."

"다른 사람은 없었나?"

"리시마코스와 헤파이스티온도 있어. 그리고 자네가 있지."

"내게 희망은 별로 없어 보이는군."

"자네가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내가 보기에 그들의 청혼은 클레오파트라가 내 동생이기 때문인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내로 맞고 싶다고 청한 사람은 아마 자네 뿐일 거야.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네."

 

"만약 그 애와 결혼하고 싶다면 어떤 위험이나 어떤 희생, 자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게다가 자신이 그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직접 보여줘야 하네."

평정을 되찾은 페르디카스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난 자네를 위해 그 모든 것과 맞서지 않았나?"

"자네 동료들보다 더 뛰어났던 건 아닐세."

 

그동안 그렇게 생각해주는 척 오지던 친구새끼들 통수가 얼얼한 건 둘째 치고, 여동생을 사랑하는 페르디카스의 고뇌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만큼 흔쾌히 그러라고 할 줄 알았건만, 알렉산더는 예상보다 훨씬 냉담한 태도로 일관함. 여기서부턴 뇌피셜이지만 알렉산더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로 짐작 가는 구석이 몇 가지 있음. 

 

먼저 알렉산더 성향상 결과가 어떻든 남자답게 맨정신으로 부딪치지 못하고 술의 힘을 빌려 취중고백을 한 게 유약하게 보였을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페르시아 원정 초창기 멤논이라는 호적수를 만나 팽팽한 공성전을 벌이던 중, 그 때도 거하게 만취한 페르디카스가 알렉산더의 지시없이 휘하부대를 이끌고 급발진 취중공격을 감행하다 피같은 병력을 적의 성벽에 꼴아박아버리는 대참사를 일으킨 것. 

 

이 때 피해가 얼마나 막심했던지 알렉산더는 멤논 측에 휴전 요청까지 해야 했음. 정신이 돌아온 페르디카스는 차라리 자길 죽이라고 알렉산더 앞에서 떽데굴 구르며 자살쇼를 벌이는데 이 추태를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보던 알렉산더의 반응은 역시나 싸늘하기 그지 없음. 

 

 


 

물론 어렸을 때부터 함께 뛰놀던 불알친구로서의 정과 의리, 무엇보다 그가 없으면 핵심전력인 헤타이로이(친위기병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기에 쳐내지 않고 계속 중용하며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기도 함. 근데 그건 그거고 내 소중한 여동생의 남편 자리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내라고 여기서 판단 끝난 게 아닌가 싶음. 

 

아직 기회는 있으니 너 자신을 증명해 보이라고 말을 덧붙이긴 하는데, 말 그대로 사족이고 전혀 진심 같아 보이지 않는 게 문제.

 

 

 

알렉산더 대왕에서 모티브를 따온 은하영웅전설의 주인공 라인하르트 역시 중증 시스터 콤플렉스 설정으로 유명함. 이쪽은 여동생이 아니라 누나.

 

작품 등록일 : 2025-09-21
최종 수정일 : 2025-09-30

▶ 역알못을 위한 세계사 공부 조언 外

만화보다 만화같아
he*******   
꺄아아아악♡
미친 대존잼♡
진미오징어   
또 써주십쇼 존잼
알로할로   
존잼존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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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2존나 칼같아서 빠진다 잘보고감다 더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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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재밌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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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덕후라니 .. 뭔가 근사하다 ㄷㄷ
잘읽었어! 시스콤대왕 ㄷㄷㄷ
sj******   
재밌다!!!!!!!!!!
믹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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