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가족 기업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수저론 철폐 이야기

바람이 분다 칼바람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또 있을까 라며 말들이 많지만 내 주변은 하하호호 파인다이닝이네 주얼리네 해외여행이네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그 누구도 추워보이지 않아서 대한민국이 과연 불황인가를 의심케 한다.

그러나 마트에서 집어드는 토마토 가격이 내 지갑의 죽탱이를 갈기는 걸 보면 진짜 불황은 맞는 것 같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대한민국. 죽어라 노력해도 흙수저인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게 맞을까, 분수에 맞게 사는게 뭘까 고민하게 되어서 걍 연휴 막바지에 정신 승리 한 번 하려고 뻘 글 써보게 되었다. 

 

긴 글 싫은 사람을 위해 걍 한 줄 요약하면

소장이 입아프게 말한 수저는 없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분수를 모르고 살면 뭐든 이를 수 있다.

 

이건 진짜 찌찌에 새겨야 할 명언이라고 본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되었으니까.

 

 

 

 

##. 방관과 예민충의 환장 콜라보, 지잡대의 시작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속칭 지잡대 출신이다. 예? 그런 대학이 있나요? 출신.

그게 가능한가요?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우리 아버지는 자식도 물만 주면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라나는 줄 아셨다. 당시에는 또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 하는 속칭 수재 천재들이 자기계발서를 물쓰듯 써주어서 우리 부모님은 진짜로 진심으로 교과서로만 공부하면 인서울을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딸 년은 슬프게도 그런 천재 만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또 기질 자체가 예민충이어서 바람에 불면 또르르 날아가는 낙엽에도 다 의미가 있겠거니 하고 세상 만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학 소녀..후.. 그냥 상병신이었는데 결국 그 중요한 십대 후반 나는 예술을 하겠다고 깝친다. 그리고 대차게 망했다. 

 

슬프게도 우리 가족 주변에는 조언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방대학을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심으로 몰랐다. 사회의 편견이 없는 그야말로 대가리 꽃밭이었달까... 내가 낸데. 사람의 중심을 봐야지! 그야말로 대가리 꽃밭 다운 생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나는 문학에 미쳐 있었고 읽어온 세월은 부끄럽지 않게 기승전결 구조의 주관식 답변을 조리있게 잘쓰는 편이었다.

 

덕분에 시험은 늘 무난하게 봤다.

그래서 나는 4학년이 될 때까지 놀랍게도 매일 같이 술만 마시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4학년 1학기를 맞이했다.

 

 

##. 5인 미만 가족회사의 교훈

주변에서 죄다 취업행렬이 시작되었다. 언제 그렇게 자격증과 공모전을 해왔는지 다들 척척 합격했다. 세상 태평하던 나도 이제는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슬프게 나에겐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아니 대학 선배들이 있잖아요? 라고 할 수 있겠으나 술만 마시면서 허송세월을 한 사람들끼리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나는 인터넷의 도움을 얻어 연혁이 20년이나 되는 모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이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취업은 어디든 할 수 있지만 '잘'하는 것은 어렵다는 걸.

 

출퇴근 왕복 3시간 30분, 월급 180만원. 

이름만 대면 알법한 N사 협력사라는 말에 나는 홀라당 넘어갔다. 노력하면 월급을 올려준다는 말에도 솔깃했다. 그러나 입사 후 내가 알게 된건 N사 협력사는 개나소나 다 붙일 수 있는거였고 이 회사는 5인 미만을 유지해서 연차를 주지 않아도 되는 회사였다는 점. 놀랍게도 나는 개눈박이답게 이 회사를 2년이나 다니고, 또 저따위 월급으로 당시 남자친구를 알뜰살뜰 먹여 살린다. 통탄할 일이지만 암튼 그랬다. 

 

회사에서 나는 소설속에 나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이제 취업했으니까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럼 나를 알아줄거야. 지금 생각하면 정말 슬프게도 나는 요령없이 열심히 했다. 주말에도 스킬을 올리고 싶어서 공부하고 사비를 털어서 공부하고 또 그걸 업무시간에 적용했다.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거라면 뭐든 공부했다. 즐거웠다. 실적이 올랐다. 도와달라는 직장 동료들에게도 기꺼이 알려줬다. 모두의 실적이 올랐다. 하지만 내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나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모두가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영악했다면 나는 초반에 내 실력을 가지고 회사랑 딜을 치던가, 회사 밖으로 나와서 더 나은 연봉으로 이직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나는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고, 단순히 기버의 마음으로 나의 정보를 모두에게 전해준다면 함께 성공할거야! 라고 굳건히 믿었다. 그렇게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첫 퇴사를 한다. 그리고 이 때가 내가 처음으로, 인서울을 못나와서 그런걸까?라는 수저론을 생각하게 된 때였다. 정말 지 인생 안풀린다고 남탓이 오져버리는 인간이 아닐 수 없다.

 

 

##. 다른 길을 걷는다. 하지만 어디로?

그렇게 나는 퇴사를 했다. 마침 부모님 사업이 잘 되고 있던 내 인생 몇 안되는 봄날이어서 나는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좋은 대학 못가 개고생하는 것이라 마음 절절했던 어머니는 그러마 하셨고 아버지는 여전히 방관했다. 나는 그렇게 남들 황금기에 대한량의 시대를 걷는다. 그리고 이제 유학길 떠날 거야 하는 순간 내 인생에는 커다란 암초가 두 개 나타났다. 부모님 사업이 대망함과 동시에 가족이 아팠다. 아주 많이.

 

아직도 간간히 나는 이 날의 꿈을 꾼다. 불꺼진 원무과 앞에서 정말 서럽게 울었다. 아마 태어날 때만큼 크게 울었던 것 같다. 옅은 소독약 냄새와 암담한 표정의 아버지, 그리고 내이름만 부르며 울던 어머니. 시간을 헛되게 쓴 죄를 일시불로 갚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가는데 돈이 없었다. 그냥 없었다.

 

이제 길어야 육개월입니다.

 

뒤에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이틀이 지옥이었다. 주말 내내 나는 미쳐서 대출을 알아봤다. 그러나 무직자 인간에게 대출이 나올리 없었고 나는 이 날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대출이 나오는 회사를 다닐 것. 그리고 더 나오는 회사로 옮길 것. 수저가 머리 속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 좆소좆소 좆좆소 중소중소 중소기업 연대기

그렇게 구직을 시작했다. 8년 동안 나는 스타트업 탈을 쓴 중소기업도 다니고, 여성친화기업이라면서 실상 여성쥐어짜기 기업도 다니고, 야짤 계정 보여주며 이런거 만들어야 돈번다는 팀장 밑에서도 일하고, 돈 많이 준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어둠의 회사도 3일 다니고 95%가 여자인 여초회사에서 초반 유령 취급 당하기도 하고, 이런 씨발년이 소리도 들으며 그야말로 존버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잘 하지 못했어서, 내가 시간을 함부로 보냈어서 라고 후회하면서.

 

늘 날 밤까고 연봉은 쥐꼬리였지만 내게는 첫 회사에서 배운게 있었다. 바로 딜 칠 기회는 온다.

나는 초봉이 너무 적었던 관계로 올려도 올려도 5년 간 3,000따리 였다. 그러다 6년차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봉 n,000만원을 올렸다. 그리고 3개월 뒤 그보다 더 좋은 회사로 옮겨서 연봉을 또 n,000만원 올리고 인센을 2년간 그보다 더 받는 기염을 토했다. 

 

운이 좋아서?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제 분수를 몰랐다.

물론 그만큼의 아웃풋을 보여주고 난 다음에 말을 꺼낸 거였지만 나는 무조건 내가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한치의 의심없이 당연히 나 이렇게 잘하는데 줘야하는거 아니야?라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은 쉬웠고 세 번째는 거침없었다. 

 

사회성이 돌아가신 예민한 성격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깎이고 깎였다.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의 친구들이 내 밑으로도 들어오고 내 위로도 들어오고 또 일을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다. 내가 분명 채워야 하는 것도 있지만 나보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나는 물 속 오리처럼 죽어라 바동거리며 내가 못하는 것들을 몰래 훔쳤다. 그게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되었던 업무 스킬이 되었던 상대를 보면서 물빨아 들이는 스펀지마냥 흡수했다. 웃긴 것은 연봉이 오를 수록 어느 새 수저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저를 뛰어넘을 발칙한 생각만 했지.

 

이쯤 되면 오 좀 모았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 때 번 돈은 교육비와 내 병원비로도 줄줄 새기 시작한다. 그래서 남들이 볼때는 잘 벌지만 내 수중에는 뭐하나 남지 않았다. 한 번 아프기 시작하니 주변에서도 만류하기 시작했다. 일 좀 적당히 해. 일 중독자세요?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럼 내 인생에 뭐가 남지? 그 생각이 들자 너무나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뒤통수 맞고 사기 당한 것도 이 때였고, 가장 아끼던 동생의 질투를 받은 것도 이 때였다. 그리고 정확히 이때부터 매력이 0이 되었다

 

그래도 이 때 이드를 알았더라면 내 인생은 5년 앞섰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이드를 몰랐다. 그렇지만 재기 불능이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픈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은 텅빈 고목처렁 텅텅 비었다. 나는 그냥 고장난 기계가 되기로 선택했다. 아니 선택이랄게 있나. 그냥 그 길 뿐이었다.

 

 

##. 대기업 취업.. 그 뒤에

이쯤 되니 환멸도 났다. 고만고만한 애들끼리 정치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허상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더 좋은 회사를 가면 보다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얘기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도 좀더 스마트하고 내가 배울게 많겠지. 인간 모이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몇 년 동안 겪었으면서도 또 헛된 망상을 하며 나는 미쳐서 알만한 대기업이란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잦은 이직과 나의 나이 그리고 그놈의 학교가 발목을 잡았다.

누구나 알만한 기업들만 지원을 했고 4번 떨어지고 나서는 슬슬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 갈 때는 여전히 뻔뻔하게 굴었다. 절 뽑으면 니 인생이 편해집니다를 면접관 앞에서 뻔뻔하게 어필했다. 수저따위 없다고 수없이 되뇌였다. 그러나 내 메일함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아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 분수를 알아야 하나..? 싶을 때

정확히 또 다른 지옥 문이 열렸다. 물론 그 때는 너무 기뻤다.

그렇게 나는 이름을 들으면 아는 모 기업에 취업해서 매력이 박살난 고자새끼로 살고 있다.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자격증도 하나 없는 인간인데도. 지방대보다 인서울 찾는게 쉬운 회사에서. 

 

누군가는 그럴거다. 아니 그 인생에서 대기업간 게 자랑이야? 그거밖에 내세울게 없어?

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인생 가장 큰 업적은 남이 만들어주는 인생에서 내가 만드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흙수저네 은수저네에서 벗어나서 그냥 내 수저 내가 만들어서 내 손으로 밥 먹는 인생.

 

올해는 분수 모르는 인간 답게 집을 사는게 목표다. 물론 돈은 없다. 진짜 통장에 0원이다. 하지만 나는 집을 살 것이다. 왜냐면 내게 수저따위 없으니까. 그깟 수저야 내가 만들면 그만.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 고목같던 마음에서 새싹이 피어올랐다.

 

 

 

걍 내키는대로 썼는데 결론은 위에 요약한대로 그거다.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나는 평생 이 회사에 취업하지 못했을 거라는거.

그리고 지금 받는 연봉도 내겐 꿈이었을 거고 180만원 벌 때 만났던 남자친구한테 매달려가지고 겨우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하면 살았겠지.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겠지만 나는 고장난 로봇인 지금에 만족하고 있다. 목표를 설정할 때마다 매 순간 살아있다는게 느껴지니깐.

 

그러니 이게 맞나 고민되는 이드녀들에겐 분수를 모르고 살기를 권하고 싶다.

올해 모두가 원하는 일들이 마법처럼 이뤄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 

마지막으로 첨언 하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대학 때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나 거기 가고 싶어. 모두가 비웃었지만 신기하게 지금 다닌다.

고등학교때 딱 한 번 아버지 앞에서 나 nn살까진 연봉 500만원 받는 직업 가지고 싶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니가 되겠냐 라고 비웃음 당했지만 정확히 nn살 나는 그 연봉을 받았다.

 

인생 말하는대로, 생각하는대로 진짜 된다. 그러니까 힘내서 한 번 말해보고 신나게 살자.

 

 

작품 등록일 : 2025-01-31
최종 수정일 : 2025-02-01
아 진짜 너무좋네 님아
너무좋아서 울부짓엇따. 투명숟가락이 울부지저따. 숟가락은 없엇따.
yeah   
진짜 띵언이다
멋진글 공유해줘서 고맙고 응원해
ch*****   
수저를 뛰어넘을 발칙한 생각 ㅡ이거 하나로 이땅의 학좀들 다 이긴다
bo********   
대차다. 고생많았고 집도 당연히 살수있다.
bo********   
고생했어. 연봉 액수에 상관없이.. 누구보다 멋지다...
운동에미친사람   
재밌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해서 또 글써줘!
Kelly   
좋다
Zzzzz   
고마워 글 써줘서
지요   
이런 글 너무 좋아!
+) 재독하다가 오타 발견 마지막 주석 부분에 연봉 500만원!
SonatainC   
멋지다
HybS   
언냐 연봉에서 0이 하나 빠진거같아요..
El**   
집 사고 꼭 자랑해죠
건강해라
crushon   
문학이다
회장   
와 개쩐다 진짜
우냐   
언니 진짜 대단하다 수저니 뭐니 그냥 내 수저 내가 만들어서 내 손으로 밥 먹는 인생 정말 와닿는다.. 집 사고 문학관 올려줘
탄산수   
글 너무 잘쓴다! 화이팅!!
먹는게제일좋아   
언니는 할수있을것같음. 집사는 후기도 꼭 올려줘
Blondie   
굿굿
토피넛라떼   
언니 멋지다. 대기업까지 입사했는데 당연히 집 살수 있다.

대기업 장점이 대출 잘나오는 것이니, 대출 팍팍 받아서 곧 등기 칠거야
하루하루   
감동적이다
언니 집 사면 또 자랑해줘
Heave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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