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상해란”글에 이어 (1편 먼저 읽기 추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기나긴 여름이 끝나자마자 겨울이 와 버렸네. 여기 저기 폭설을 뉴스로 접하면서, 따뜻한 남반구에서 지내다 문득 11월의 상해에 대해 먼저 쓰고 싶어졌어.
11월의 상해, 는 사실 깊은 기억이 없어. 끈적끈적하고 무더운 여름, 얇은 소매마저 견딜 수 없던 그 더위와 생각보다 싸늘했던 겨울만 기억나. 처음 상해에 도착한 것은 3월 말. 20평 조금 넘는 어파트였는데, 라디에이터 하나 없이 에어컨 기능에 추가된 온풍기능에 기대어 이른 봄을 보냈지. (나중에 그걸로 겨울도 남) 퇴근을 하면 이불을 꺼내와 2인용 빨간 이케아 소파에서 온몸을 돌돌 말고 앉아 중국 드라마를 봤어. 그럼 밖으로 나와있는 코끝이 어찌나 차갑던지.
그렇게 두계절을 보내고 나니 11월의 싸늘함은 그러려니 했는 듯. 기억에 없네. 약간의 육체적 물리적 고통이 수반되야 기억에 오래 남나봐. 이 계절 호텔을 고를때면 따뜻한지 잘 알아보길.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나? 언니들 그거 알아? 중국은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귀가길이 늦어 택시잡기가 힘들어 걸어 집에 갔거든. 거의 한시간? 두 시간? 역시 구상하이 시가지인 인민광장에서 말이야.
인민광장은 상해박물관 상해극장이 유명해. 여기서 카르띠에 보석전도 보고 (상해 박물관은 규모가 커서 전시 규모도 매우 컸어) 오페라의 유령 외국인 출연하는거 앞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 봤었어. 한국보다 매우매우 싼 금액으로 6만원정도. 2월인가 11월인가 그랬는데 기억이 가물. 겨울 코트를 입고 간 것만 기억난다. 같이 가자니까 진짜 아무도 안가서 혼자 봤어. 왜 그런걸 그 돈을 주고 보냐는 듯한 반응. 중국인들 봉급으론 너무 비싼편이라 더 권하진 않았어.
당시 극 끝나고 손님 거의 없는 극장 내 커피숍에서 커피를 기다리는중이었어. 수려하고 등치 큰 서양남자랑 삐쩍 마르고 머리 빡 깎은 동양남자가 내 옆에서 커피를 사더라. 서양 남자가 어째 눈에 익더라고? 누구게? ㅎㅎ 맞습니다 그 사람. 유령역할로 엄청 유명한 호주 남자. 근데 당시 못알아보고 사진 한 장 못찍고 그냥 각자 갈 길 감. 가면 벗으니 알아볼 방법이 있나 어쩐지 날 지긋이 쳐다보더라니.
인민광장에서 샨시난루에서 가까운 집까지였으니 아주 먼거리는 아닌데, (택시로 10-30분내) 어찌나 엉덩이가 추웠던지. 그때 엉덩이를 덥지 않는 블루종형 구스 점퍼를 입었었는데 (허리부분에 고무줄이 있어 상체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쥬는 항공점퍼 스타일) 바지로 청바지를 입고있었단 말이야. 그 후로 엉덩이 덮지 않는 겨울 외투는 사지 않게 되었어. 구정이 지난 2월엔 울로 된 가디건과 치마를 입고, 무릎 기장의 모직코트를 입었어. 모직 스카프에 장갑도 필수였고, 울로 된 비니도 야무지게 쓰고 다녔어. 11월은….글쎄 기억이 희미해: 유니클로 패딩에 모직 스카프 정도면 되지 않을까싶네. 신발는 어그는 노노. 그냥 운동화나 앵글 워커정도?
11월의 상해를 생각하면 푸시(浦西)지역의 (1편 글에 나온 구시가지 중심지, 라오상하이(老上海) 프랑스 조계 지역이 기억나네.
푸시지역의 프랑스 조계지는 상해 1년 간 살면서 가장 좋아했던 곳이고 지금도 상해하면 떠오르는 아주 고즈넉한 거리야. 그 거리 가로수는 플라타너스 나무였던것 같네. 사계절이 한국에만 있다더니, 가을 단풍은 한국에만 있을 것 같더니 그 플라타너스 나무들에서 가을에 물든 누런이파리들이 또르륵 굴러떨어져 굴러다니던 그 길.
이차선 많아봐야 사차선 거리들. 골목 골목 이국적이거나 서구식인맛집과 바와 까페와 베이커리가 구석구석 자리했던 그 곳. 주말이면 어김없이 택시를 타고 외쳤어. “스푸, 칭따오항샨루(衡山路”(택시 기사님, 헝샨루로 갑시다) 헝샨루는 탕슈루 堂熟路 혹은 용캉루 永康路, 낭양난루囊阳南路 등의 이름으로 대체되곤 했어. 모드 프랑스 조계지의 거리들이야.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프랑스 조계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어.
상하이 프랑스 조계(프랑스어: La concession française de Changhaï, 중국어: 上海法租界, 병음: Shànghǎi Fǎ Zūjiē)는 1849년부터 1943년까지 중국 상하이에 설치되었던 프랑스의 조계이다. 상하이 프랑스 조계는 비시 프랑스가 1943년 난징에 있던 일본의 괴뢰정부인 왕징웨이 정권에게 조계 지역을 넘기는 조약을 체결하게 되어 사라졌다.
아 그래 프랑스 컨세션이라고도 불렀던 거 같애. 높은 건물이 없고 유럽식 멘션같은 단층, 이층 건물들이 주루룩 골목골목 계속 이어져있고 예쁜 가게들이 있지. 아이보리색 건물에 우유빛을 많이 섞은 연한 오렌지나 황토빛 색을 입힌 벽돌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루가 깔려있고 계단 손잡이도 목재인데 반들반들해서 거스름이 없던. 중국식 혁명적 미감과 글자체에 지쳤을때면 조용하고 아늑한 유럽식 멘션들이 자리한 프랑스 조계지에서 시야를 다독이곤 했지. 여기서브런치를 해도 좋고. 그냥 걷기만 해도 좋아. 해지고 가면 어떤 이층 유럽식 멘션에 led조명이 번쩍번쩍 한데 들어가보면 무슨 bar임. 들어가서 괜히 뭐 좀 시켜 마시고 먹으면 된다.
딱 정해놓고 다니던 곳이 아니라 그냥 주말이면 택시타고 가서 걸어다니며 탐험했던 곳이기도 해. 당시 상해에 있던 엑스펫이나 외국인들이 자주 브런치를 하거나 식사를 하던 곳이기도 해. 에매하면 프랑스 조계지 스벅이나, 색계에 나와서 유명해진 우캉멘션을 검색해서 가봐. 난 우캉멘션은 기억에 없는데 관광객 사이에서 유명한가봐
너무 오래 전 일이긴 했는데 거기있는 simply thai라는 태국 음식점에 자주 갔었지. 지금은 한국도 맛있는 태국음식점이 많아 딱히 차별화가 안되겠지만 참 좋아했었어. 몇년 뒤 보니 신천지에도 입점되있던데 지금은 모르겠다. (新天地 신티엔띠, 이전 글에 나온 한국인에게 핫한 상업지구, 서양식 음식점 바 스벅 상하이탕 같은 중국 패션브랜드 등이 입점해있는 아담한 쇼핑몰이 모인 관광객 타겟으로 한 일종의 유원지? 근데 핵중심가임. 여기 아파트? 멘션? 그런거 있는데 여기 산다하면 엄청 부자임. 샤먼에서 태어나서 본 제일 중국 예쁜 언니의 썸남이 여기 살았는데 씹돼지였음. 언니는 얼마나 예뻤는지 그냥 황홀했음. 중국에서 자동차 모델 등 모델을 한다고 했는데 내가 살던 아파트 복도 맞은 편 집에 살고 있었어. 절대 낮에 길거리에서 보이는 그런 사람의 외모가 아님. 저 외모로 자동차 모델밖에 못하다니 놀라울지경. 딱 하루 말을 나누고 말았네. 자기집에 초대했었는데. 울 회사의 부유한 인도네시아 교포 중국남의 여친이었는데 이 언니는 그와 결혼을 꿈꿨던거 같아. 아랍인과 아시아의 혼혈 외모를 수려한 인상인데 글로벌 기업에서 중요직에 있던 뇌섹남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육각형 남자. 언니 눈빛이 슬퍼보였는데 그 남자 그냥 결혼 약혼 이런거 안하고 귀국해버림) 암튼 신티엔띠에선 밥먹고 스벅 커피먹고 칵테일 마시고 하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찾아서 사진 찍음, 그냥 상해가면 무조건 가난 곳임)
글구 아이리쉬 바 이런데도 자주 갔고 그랬네. 나보다 현지에 오래 산 네델란드 출신 국제변호사와 결혼하여 살던 한국 언니와 갔었네. 그 언니와는 당시 헝롱광창(이전 글에 소개된 플라자 666, 샨시난루 陕西南路 섬서남로)의 몰 지하에 있던 fitness first라는 헬쓰장에서 만나 친구가 둬었지. 상해에서 한국 중국 유럽 중동 미술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해주는 큐레이터 일을 맡아서 했던 언니야. 이 언니와의 오랜 인연이야기도 언젠가 풀어 볼게. 헝롱광창에서 이 프랑스 조계지까지 오는덴 멀지 않아. 내 주무대 샨시난루에서 택시비 1만원도 안됐던 기억이 있네.
또 어떤 삼층짜리 멘션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레스토랑으로 개관해있었어. 오랜만에 상해에 방문했더니 친히게 지내던 이전 회사의 비서였던 중국인 릴리가, 식사를 대접하고싶다고 쿠폰을 챙겨두었다고 하네.
철판으로 바로 요리를 눈앞에서 해주던 곳이었는대 처음으로 푸아그라를 먹었던거 같애. 손님은 릴리와 나밖에 없었고. 그때 딱 이즈음이었는데 여전히 해가 뜨거운 중국의 남방지역인 복건성에 위치한 샤먼에서 정말 오랜만에 출장간거 였어. 얇은 모직으로 된 세트 정장과 얕은 모직으로 된 가디건 세트를 입고 역시 모가 들어간 슬랙스를 입고 다녔네. 그 레스토랑의 1층과 2층인지 2층과 3층이었는지 사이에 화장실이 있었어. 세련된 옷차림과 화장을 한 중국인 모녀가 줄을 서 있었어. 고풍스런 예쁜 건물의 맛 좋은 요리를 먹어서 흥분되어 머라고 머라고 말을 걸었는데 (그 건물 앙에서 사람을 거의 못봄) 팔짱을 낀채로 눈을 위아래로 깔아 흘깃 나를 보고 말더군. 늘 중국인들의 침범에 가까운 관심을 받는데 익숙했었는데 그렇게 씹히긴 지금도 흔치 않은 경험이야. 신기한 경험이었어. 상해여자들인가? 역시나 도도하네…했던. 세월이 흘러흘러 2024년에, 5성급 호텔 조식에서 옆 테이블의 부유한 상해 모녀는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오늘은 11월의 날씨를 떠올리며 프랑스 조계지에 대해 조금 기억을 더듬어 봤어. 주소나 가는 길이 언급되지 않은 불편한 글이지만, 프랑스 조계지, 우캉 멘션, 헝샨루, 프랑스 조계지 스타벅스 같은 것들로 검색하면 좋을꺼야.
상해에 간다면 와이탄의 번드의 루프탑 다음으로 한번 쯤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곳이야. 한국에는 없는 그 무엇, 상해의 서글픈 역사의 거리가 아기자기하게 로맨틱하게 모던화 된 곳. 유럽의 침략의 흔적이 아름다운 잔해로 남은 곳.
주소를 언급할수 있는 호텔 맛집 등은 다음 글에. 사진은 너무 오래되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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