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천국 이스탄불, 아니 냥스탄불
22년 봄, 아주 멀고 낯선 곳에 가고 싶었다.
아주 멀고 낯설면서도 내가 버는 돈으로 여행하고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는 곳. 터키였다.
무비자 90일을 꽉 채워서 항공권을 끊었다. 계획은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한 달을 보낸 후 터키의 다른 도시 여러 곳을 여행하며 한 달.
또다시 이스탄불에 돌아와 한 달을 지냈다.
어딜 가나 고양이가 많았다.
무슬림 친구 말로는 무함마드가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단다.
그중에서도 터키 사람은 더.
길가에 길고양이를 위해 만들어진 고양이 쉼터와 사료 그릇도 많이 보였다.
이스탄불의 고양이들은 느긋하며 또 도도했다.
어느 맑은 날 외출하다가 만난 냥이.
뒤로 보이는 숲은 사실 공동묘지다.
내 방 바깥으로 숲이 보인다고 좋아했더니
공동묘지였다. 그런데 매일 지나다녀도 무섭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생몰년도를 보며 이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어떤 삶을 살고 갔을까
나는 어쩌다 여기 와서 이런 것을 궁금해 하고 있을까 생각할 뿐이었다.
초반 한 달의 일과는 단순했다. 근처 코워킹 스페이스에 한 달 이용권을 끊고 출퇴근하며 일을 했다.
퇴근길에는 매일 같은 곳에서 식빵 굽던 냥이에게 인사했다.
고양이가 대접받는 도시라고 해도 길냥이는 꼬질했다.
꼬질해서 더 귀여웠다.
귀여우니까 한 장 더.
이스탄불 냥이들은 생김새도 다양했는데
가장 다른 점은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까이 갈라 치면 달아나기 바쁜 한국 냥이들과 달리
사람의 호의가 익숙해서일까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고 사진을 찍어도 가만히 있었다.
빤히 바라볼 뿐.
역시 퇴근길에 매일 보던 고양이.
좀 뽀얗고 통통한 것이 가게냥이였는지도.
왕자와 거지?
문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두 냥이의 사연이 궁금했다.
이스탄불에는 시리아 난민이 많다. 아주 많다.
난민은 아이를 많이 낳고, 그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를 수거해서 판다.
이스탄불은 분리수거를 전혀 하지 않는데
음식물과 플라스틱, 일반 쓰레기를 모두 비닐에 담아 개방된 쓰레기통 안에 던지는 게 전부다.
그 쓰레기는 썩어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 여름에는 코를 막은 채 주변을 지나가야 한다.
시리아 소년들은 그것을 헤집어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카디쿄이의 한 골목에서 그렇게 수거한 플라스틱을 지고 가는 시리아 소년이
스마트폰을 보며 장난치는 또래의 터키 소년들 옆을 스치는 장면을 봤다.
그 소년들의 간극은 길냥이와 집냥이보다도 클 것이다.
다시 식빵. 통실통실 귀엽기도 하지.
아래 고양이의 포오즈가 너무나 우아하다. 멋진 녀석.
무엇을 보는가 하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는데 한 곳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저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스탄불에서 가장 좋아했던 교통수단은
아시아 사이드와 유럽 사이드를 잇는 페리였다.
대중교통의 한 종류로, 한국 돈으로 800원 정도였나.
낮에 타면 낮대로 멋지고, 밤에 타서 보는 야경은 그것대로 황홀했다.
기름 냄새가 아주 많이 났는데, 시원한 바다 냄새와 섞여서 묘한 냄새가 되었다.
지금 그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듯하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다 길게 만끽하며
바다를 따라 이스탄불을 구경하고 싶다면
인당 5만원 정도 하는 보트 투어를 추천한다.
에어비앤비 투어 등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일행이 많다면 더 즐겁다.
이스탄불에 와서 노을을 사랑하게 됐다.
유독 붉은 이스탄불의 노을은 아시안 사이드에서 보아야 한다.
노을의 매력은 금방 사라진다는 데 있다.
매일 해 질 시간만 되면 노을을 향해 뛰었다.
이것은 작년.
작년 여름에 또 이스탄불에 갔다. 이번에는 한 달 가량을 머물렀다.
친구와 모다 해변의 노을 명당에 가서 자리를 펴고 와인을 마셨다.
노을이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아, 저기 뒤로 보이는 것이 그 쓰레기통이다. 다행히 비워져 있었다.
이것은 체리.
매일 귀가할 때마다 과일 가게에 들러 체리를 1키로 샀다.
종류와 상태에 따라 1키로에 3천원도 하고, 좋은 건 5천원~8천원 사이.
자기 전에 반을 먹고 일어나면 아침으로 반을 먹었다.
재작년, 터키에 머문 3개월간 10키로가 늘었다.
물론 체리만 먹고 찐 것은 아니다.
한국인 입맛에 딩동댕 골든벨을 울리고 탭댄스를 추는 홍합밥.
터키에서는 술 먹고 난 뒤 먹는 국밥 정도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야식이며
나에게는 간식이자 주식이었다.
매콤한 토마토 양념 밥을 가득 채운 홍합 위에 레몬을 잔뜩 뿌리면...
나는 정신을 놓고 흡입했다. 정신을 차리면 홍합이 사라져 있었다.
술 먹고 먹는 터키 야식 no.2
코코레치, 양곱창 샌드위치다.
맛있는 집에 가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침 고인다
터키 디저트의 근본. 바클라바.
바클라바는 카라쿄이에 있는 귤루올루에 가서 먹어야 한다. 카이막 추가는 필수다. 이곳 카이막은 특별히 신선하기 때문이다.
사진 맨 아래의 바클라바는 호두인데, 저것을 시켰다가 터키 친구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바클라바는 피스타치오가 근본이며, 호두 바클라바는 가난한 자의 바클라바라고. 피스타치오 먹을 돈 없을 때나 먹는 거라고.
가격 차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후에는 피스타치오만 시켜 먹었다.
처음에 호두를 시킨 것은 피스타치오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똥 맛인 줄만 알았으니까.
하지만 터키에서 참맛을 알았다. 피스타치오의 엘레강스-한 맛을.
이곳에 와서 먹으면 그렇게나 맛있는데, 차이(홍차)가 없어서 그런지, 바로 먹어야 바삭해서 그런지, 신선한 카이막이 없어서 그런지.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진공 포장을 해서 사 왔지만 한국에서는 그 맛을 재현할 수 없었다.
아래 접시가 내 것. 피스타치오 바클라바와 카이막, 돈두르마(아이스크림)까지.
바클라바가 무슨 맛이냐.
수백 겹의 얇은 페이스트리를 꿀에 절여서 눅진하면서도 위는 바삭하다.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피스타치오가 씹히면서 달콤한 꿀이 입에 퍼진다.
카이막과 함께 먹으면 카이막의 고소함이 꿀의 달콤함을 감싸면서 2+2가 0이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입이 진득해졌을 즈음 따끈하고 쌉쌀한 차이로 입을 씻어준다. 리셋된다. 다시 시작한다.
참고로 나는 파리바게트 케이크도 달다고 잘 못 먹는 혀를 가졌다. 하지만 바클라바는 가능한 것이다.
터키에 처음 왔을 때 숙소 근처에 있어서 자주 가던 가게.
처음에는 이스탄불 지리를 모르고 숙소를 잡았다.
그 결과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네에서 지내게 됐는데, 다행히 꽤 조용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숙소 근처에 커피 집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앉아서 머무를 수 있는 카페는 아니고 잠시 앉아서 차를 마시며 디저트를 먹는 곳이었다.
바나나가 들어간 롤케이크와 딸기가 올라간 타르트 비슷한 것. 크림은 생크림이 아니라 우유를 전분으로 굳힌 듯한 맛이었다.
그러나 나이 든 주인내외가 참 친절하고 정겨웠다.
눈에 띄어서인지 갈 때마다 반겨주셨는데, 한국인이라고 하자 갈 때마다 영화 '아일라'를 보여줬다. 나는 그 영화를 본 일이 없지만 아는 체하며 맞장구 쳤다.
그러고는 꼭 가족 누구가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인이 터키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내 할아버지가, 내 삼촌이, 우리 큰아빠가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고. 잊을 만하면 들었다.
터키식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양이 적다.
항상 디저트를 먹기 전에 끝이 나서 다음부터는 매번 터키 커피 한 잔, 차이(홍차) 한 잔, 물 한 잔을 시켜서 마셨다.
그게 별나 보였는지 그후로는 내가 갈 때마다 웃으면서 그렇게 내어 줬다.
현지인만 사는 동네라서 커피 한 잔, 홍차 한 잔, 디저트 2개를 먹어도 3천원 대였다.
터키 아이스크림(돈두르마) 체인점 MADO.
베스킨라빈스31 저리가라 할 정도로 다양한 맛이 있다. 지점마다 다르지만 100가지는 넘을 것 같다.
현지에서는 고급 식당(식사류도 판매)으로 분류되는 곳으로, 아이스크림의 질이 훌륭하다.
한국에서 먹는 터키 아이스크림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절대 비교할 수 없다.
특히 헤이즐넛 돈두르마와 코코넛 돈두르마가 맛있다. 쫀득하면서도 시원하면서도 달콤하면서도 녹아내린다.
터키에 가시면 꼭 드셔보시길.
처음 살던 동네에서 매일 가던 라흐마준 집.
터키식 피자에는 피데와 라흐마준이 있는데, 피데는 도우가 두껍고, 라흐마준은 얇다.
사진은 크게 구운 라흐마준을 반으로 잘라 겹쳐 놓은 것인데,
저 얇은 라흐마준에 토마토, 파슬리, 양상추와 오른편의 샐러드를 싸서 레몬즙을 팍팍 뿌려서 먹으면
기가 막히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먹은 라흐마준은 저 맛이 안 났는데, 유독 저 집만 그렇게 맛있었다.
그렇게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정신 없이 흡입하던 어느 날,
반쯤 먹은 라흐마준 위에서 검고 굵은 털을 발견했다.
식사 테이블 건너편으로 터키 털보 아저씨들이 맨손으로 반죽하고 화덕에 굽는 장면이 바로 보였기 때문에 출처도 분명했다.
10초간 고민하다가 털만 떼고 계속 먹었다. 그만큼 맛있었다.
이것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맛있는 고등어케밥.
카라쿄이에 있는 곳으로, 터키에 오자마자 참여한 미식 투어에서 알게 된 곳이다.
가이드가 말하길 이곳이 가장 깨끗하며 가장 좋은 재료를 쓰고, 고등어 가시도 잘 바르며
현지인도 가장 많이 오는 맛집이라고 했다.
갈 때마다 현지인과 외국인이 섞여 줄을 서 있는데
한 번만 먹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랩 안에 뿌려 주는 석류 소스를 따로 달라고 해서 잔뜩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
링크: https://culinarybackstreets.com/cities-category/istanbul/2019/balik-durum-mehmet-usta/
터키의 스타벅스, 카흐베 듄야스.
터키의 스타벅스는 특별히 맛이 없기 때문에 로컬 대항마 카흐베 듄야스에 자주 갔다.
그중에서도 아이스 터키 커피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게 또 기가 막힌다.
자바칩 프라푸치노의 3단계 업그레이드 버전이랄까. 아무튼 드셔보셔야 아는 맛이다.
역시 터키에 가면 꼭 드셔보시길.
요 며칠 이드에 터키 관련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다.
마무리로 이스탄불에 대한 감상을 짧게 적자면 이스탄불은 정말이지 이상한 곳이다.
인구 1,600만의 도시.
너무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복잡하다.
교통 체증은 최악이며 도로는 엉망이다.
터키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도로 공사를 하고 싶어도 공사를 할 수가 없단다.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오기 때문에.
그래서 주말 번화가에서는 택시 잡는 데만도 1-2시간이 우습게 걸리지만
아무튼 어쩔 수가 없단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지만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타튀르크 이후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됐고 유럽을 모델 삼아 발전했다.
하지만 지난 20년, 뼛속까지 이슬람주의자라는 에르도안의 통치 아래 보수화되고 종교 갈등도 심해졌다.(중간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서일까 너무 다양한 모습이 공존한다.
이슬람 국가지만 이스탄불의 젊은이 다수는 프리섹스 주의자다.
이슬람 국가지만 밤문화도 발달했고, 술집도 많다. 게이바도 많고, 동성애자도 정말 많다.
위의 사진은 한 달 동안 다녔던 요가원이다.
이 요가원의 선생도 동성애자였다.
외국인 모임에 많이 나가서인지 새로 만나는 현지 사람의 다섯 중 하나도 동성애자였던 것 같다.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내 터키 친구에게 침을 뱉는 여자-입까지 가리는 베일을 쓴-도 있었다.
길 가다 술집에서 히잡을 쓰고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는 젊은 여자도 봤다.
이스탄불이라서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이상하지만 자꾸 다시 가고 싶은 곳.
그 와중에 노을이 눈부시게 붉은 곳.
이것은 터키 전통주 라크. 터키의 술 문화는 유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슬람 국가다.
이곳은 베욜루 중심에 있는 고급 메제 레스토랑이자 이스탄불에서 제일 좋아하는 식당. (Tunel Buselik)
저녁 시간이 되면 여유 있는 터키 사람들은 이런 메제 레스토랑에 모여
한 병에 7만원 하는 라크를 몇 병이고 시키면서
양고기와 메제를 밤새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떤다.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보이는 갈라타 탑.
1500년 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주변에는 항상 갈라타 탑에 오르기 위한 대기줄이 빙 둘러 있는데 나는 아직 못 가봤다.
갈라타 탑에 함께 올라가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터키 젊은이들이 주로 가는 칵테일 바. 칵테일 한 잔에 18,000원이었던 듯.
서울 못지 않은 가격이다.
프라이빗 파티 어쩌고에 가서 시킨 술.
역시 좀 비쌌다. 술이나 유흥 물가는 저렴하지 않은 편.
이스탄불의_흔한_지하철_풍경_
작년, 에스키세히르에 갔다가 이스탄불에 오자마자 찍은 사진이다.
스토리에 올렸더니 터키 친구가 답장했다
"Welcome to Catstanbul."
냥스탄불의 에어비앤비에서 고양이 없는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
재작년에는 고생을 좀 했는데 터키에서 워낙 자주 노출되다 보니 익숙해진 건지
작년에는 고양이와 한 곳에 있어도 견딜 만했다.
작년에 일주일간 지낸 에어비앤비에 있던 아기 고양이. 배가 내 주먹만 했다.
한 층을 임대해서 쓰는 곳이었고, 출입문을 공유했는데 문을 조금만 늦게 닫아도 이 녀석이 쫓아내려왔다. 말썽꾸러기였다.
처음에는 애를 써서 위로 올려보내다가 며칠간 서로 익숙해졌더니
마지막날 짐을 싸는데 올라와서 애교를 부렸다.
괜히 뭉클해져서 쓰다듬었더니 손가락을 물렸다. 쩝.
-냥스탄불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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