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종합병원 by reiha

 

 

 

식도 아랫부분에 혹 같은 게 보이는데……. 아무래도 조직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재인은 멍청하게 의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암일 수도 있다는 얘깁니까?”

 

식도암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자세한건 우선 조직검사를 해봐야...”

 

잠깐만요, 지금 제가 나이가 서른하나거든요?”

 

그런데요?”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의사는 지금 뭔 말을 하는 거냐 라는 얼굴로 빤히 재인을 쳐다보았다. 재인은 침을 꿀꺽 삼키고, 이게 다 의사 탓이라는 듯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암에 걸리기엔 너무 젊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드물지만 십대 암환자도 있어요. 바로 지난주에도, 십대 폐암환자가 여기서……. 아니 이건 아니고, 하여간 아직 조직검사도 안 했잖아요? 환자분은 당뇨도 좀 있으시니까, 아예 며칠 입원해서 검사를 받아 보는 걸로 하죠. 간호사한테 입원 신청서 받아가세요.”

 

 

외래환자도 많고 암환자도 많은데, 여기서 내 시간 뺏지 말라는 얼굴로 재인을 내보내려는 의사에게 재인은 다시 물었다. 하나마나한 질문인 건 알았지만.

 

 

그럼, 죽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의사는 펜을 한 손에 들고, 반쯤 짜증이 섞인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죠.”

 

 

 

재인은 병원 출입구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망할 병원, 누가 폐암으로 죽은 환자 없달까봐 전 병원이 금연이다.

 

, 이래봤자 살 놈은 살고 죽는 놈은 죽는다. 누가 폐암이 무서워서......’

 

라고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딴 데 미쳤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학교 때부터 하루 한 갑은 꼬박꼬박 피웠는데, 혹시 그것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술도 좀 많이 마시긴 했지. 오바이트도 많이 하고……. 그것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커피도 많이 마셨다. 그러고 보니, 고기도 너무 많이 먹고 인스턴트도 너무 많이 먹고, 앗 그러고 보니, 광우병 걸렸을 지도 모르는 쇠고기까지 너무 많이 먹었다.

 

그런 거 먹지 말고, 항암효과 높다는 토마토나 브로콜리나 콩이나 뭐 그런 것 좀 먹을 걸.’

 

담배 연기를 깊게 내쉬고, 재인은 하늘을 한 번 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 지가 걱정이었다.

 

 

입원 신청서를 넣고, 며칠 기다려서 입원을 했다. 부모님에게는 간단한 검사라 금방 끝나니까 병원 근처로도 오지 말라고 말해놓았고, 회사에는 병가 신청을 냈다. (돌아왔더니 책상 없어졌을까봐 겁나서 정말 정말 별 거 아니니까 금방 돌아올 거라고 몇 번이나 부장에게 말해야 했다.) 운이 좋아 5인실을 금방 배정받고 혼자 환자복을 갈아입고 간호사와 간단한 상담을 하고 나서, 재인은 조용히 침대에 드러누웠다. 창밖으로 푸른 하늘과, 이제 피기 시작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그 모습을 빛내고 있다. 재인은 눈을 감았다.

 

 

 

나이 서른하나. 직장은 있지만 돈은 많이 못 벌고, 사귀던 여자도 있었지만 얼마 전에 헤어졌다. 마누라도 애도 없고 빚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인생 정말 해도 너무 단출하다. 그런데 그 단출한 인생에 암이라니,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을 보던 재인이

 

슬쩍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람 빡빡한 5인실, 여기 자신만큼 젊은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치 채지 못하게 눈길을 살살 돌려서, 옆 환자의 머리맡에 붙은 푯말을 슬쩍 훔쳐보았다.

 

 

이름 정한동, 병록번호 2498834 , -52, 담당의사 곽예나

 

 

신상명세에 병 이름 같은 건 붙어있지 않지만 옆 환자의 빡빡 밀은 머리로 보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세한 이름은 몰라도, 하여간 무슨 무슨 암인 거겠지.

 

 

잠깐, 근데 그럼 나도 머리 밀어야 되는 건가? 땜통 자국도 있고, 보기에 안 예쁠 텐데. 머리 밀게 되면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지? 역시 가발 써야 하나? 싼 걸 쓰면 가발 티 많이 나는데...‘

 

 

멍청한 얼굴로 그 환자의 빡빡 깎은 머리와 천장을 번갈아 보고 있는 모습이, 그 환자 옆에서 혼자 열심히 사과를 깎아먹던 보호자의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환자의 마누라로 보이는 그녀가 재인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젊은 것 같은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어쩐지 설명하기도 구차해지는 느낌이다.

 

 

식도에 혹 같은 게 있다고 해서. 당뇨도 있고 해서, 입원해서 조직검사 받으려구요.”

 

으응, 그래요? 하긴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암 많이 걸리니까. 아니, 암일거란 얘긴 아니고,뭐 진짜 암이라고 해도 치료 잘 받으면 돼요. 잘 먹고.”

 

, 그러면 남편 분은 무슨.”

 

 

무슨 암이신데 머리 빡빡 깎고 기운도 하나 없이 누워 계십니까?’ 라는 뒷말을 줄이며 재인이 물었다. 마누라로 보이는 보호자는 아삭, 사과를 깨물어 먹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폐암이지 뭐. 하여간 젊을 때부터 줄창 담배를 피우더니만 이제 나이 오십인데 내가 정말 무슨 병에 걸려도 걸릴 줄 알았지. 작년 여름에 검사해서 폐암인 거 알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면역력 떨어져서 폐렴 걸려, 대상포진 걸려. 아주 정말 내가 지겨워, 지겨워.”

 

한참 불평을 늘어놓던 마누라는 아주 약이 올라 죽겠다는 듯 사과를 깎던 칼등으로 남편의 손등을 콱 찍었다.

 

아 왜 그래? 아파!!!”

 

? 나한테 미안해 안 미안해? 어디 입이 있음 말 좀 해봐, ?”

 

아 내가 암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나? 왜 나한테 난리야 난리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광경에 재인은 그냥 입을 벌리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환자는 이미 병색이 완연하다. 그리고 병명은 폐암. 수많은 암 중에서도 한국인 사망원인 몇 위라더라? 하는 바로 그 사망률 높은 심각한 암. 그런데도 마누라는 시끄럽게 떽떽거리고 남편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 식칼로 자기를 찍고 있느냐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처음 암이란 거 알았을 때 그래도 많이 힘드셨겠어요.”

 

 

얘기를 좀 딴 데로 돌려볼까 해서 재인이 말했다. 마누라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편은 빡빡 깎은 머리를 만지며 대답했다.

 

황당했지. 요즘 한집건너 하나씩은 꼭꼭 있는 게 암환자라지만 그래도 그게 내 일이 되면 너무 억울한 거지. 한집건너 하나씩이면, 나 말고 딴 놈이 걸리면 안 돼? 뭐 그런 생각하고 말이야.

 

처음엔 당장 죽나, 이런 생각 드니까, 어차피 죽을 거면 또 고통스럽게 죽기는 싫으니까 항암치료 안하겠다고 한 번 난리도 부려보고.”

 

 

재인이 궁금한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암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나을 수도 있지만 죽을 확률이 더 많은 병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그리고 나서 본 하늘은 그 전까지 알던 하늘과 많이 다르던가요? 세상이 갑자기 변했나요? 그리고 모든 게 너무 무섭고, 병에 걸린 게 한없이 억울하고, 그래서 많이 우울하게 되던가요?

 

왜냐하면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또 처음 드는 생각이 마누라랑 우리 아들이랑 딸. 이제 고등학생 대학생인데 아버지가 해 준 것도 없는데 벌써 죽으면 어떡하나, 뭐 그런 거지. 내가 그래도 아직은 돈도 더 벌고 해야 할 나인데 덜컥 암에 걸려서 치료비만 깨지고. 혹시 내가 정말 죽게 되면 우리 아들네미랑 딸네미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나 그런 거.”

 

그 말을 하고, 환자는 재인을 쳐다보았다.

 

결혼 했나? 안 한 것 같은데.”

 

, . 안 했습니다.”

 

애인은 있구?”

 

있었는데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오랫동안 떠오르지 않았던 그녀 생각이 난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헤어진 걸까. 그래도 2년이나 만났던 그녀다.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결국 결혼 문제로 헤어지게 될 거라는 생각도 못 했었다. 단순한 얘기다.

 

 

다행이죠 뭐.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남자친구 병수발 들게 될 뻔한 거 막았으니까.”

 

재인은 피식 웃는다. 결혼하자고 먼저 조른 것은 그녀였고 용기가 없어서 뒤로 물러선 것은 자신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남들 다 하는 연애, 남들 다 하는 결혼생활.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하는지. 자신을 그렇게 자신 아닌 다른 이에게 무조건적으로 맡긴다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능한지, 그 신뢰관계가 깨졌을 때 불러올 결과가 전혀 무섭지도 않은 건지.

 

역시 헤어지길 잘했어, 하고 재인은 다시 생각했다.

 

 

그래도 여자 친구가 있으면 병원생활도 좀 더 견디기 쉬울 텐데.”

 

얘기를 듣고 있던 마누라가 재인에게 깎은 사과를 건네며 말했다.

 

재인은 사과를 받아들고 대답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뇨. 전혀 안 그랬을 거예요.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그녀가 내 옆에서 수발들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답답하거든요. 아마도 그냥, 갚을 수도 없는 빚만 왕창 진 기분이었을 겁니다.

 

 

 

 

“1층 내려가셔서 내시경 하고 오시면 되구요. 내시경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면 CT 찍으실 거니까요, 그렇게 알고 계시구요. 그런데,”

 

앞으로의 검사를 설명해주던 나이어린 여자 간호사는 흘끗 재인의 옆을 보았다. 보호자의 자리여야 할 옆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보호자는 안 계신가요?”

 

, . 보호자 필요할 만한 일이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간호사는 방긋 웃는다. 나이는 어리지만, 종합병원에서 이런 저런 환자 상대하는데 이골이 나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큰 검사 받는데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요? 곽재인 환자분, 얼굴도 잘생기셨구 여자 친구 있으실 것 같은데 왜 병원에 혼자 계세요. 여자 친구 데리고 오시던가, 아님 병원에서 하나 만들어서 퇴원하세요.”

 

 

그리고 다시 방긋 웃고 나가는 그녀. 재인은 할 말이 없어 입만 벙하게 벌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최소한 일곱 살은 어릴 것 같은데, 말투는 완전히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다. 그건 그렇고, 여기 이렇게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이 많은데 저렇게 막말하고 다녀도 되나.

 

 

식도 내시경이면 별 거 아니니까 금방 끝나요.”

 

이번엔 재인의 왼쪽 침대편의 환자가 재인에게 말을 걸었다. 커튼을 계속 치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번엔 자신 또래 정도인 것 같았다. 재인은 먼저 그 왼쪽 침대 환자의 머리를 살펴본다. 다행이다, 머리칼이 있다. 그럼 암환자는 아니겠지.

 

 

“CT도 어려운 검사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구. 그런 거 해 본적 없죠? 아까 식도에 혹이 어쩌고 그러든데.”

 

. 식도암이 의심된다고 해서요. 그럼 그 쪽은...”

 

그래도 암은 아닐 테니까 다행이다, 하는 얼굴로 보는 재인에게, 환자는 씨익 웃는다.

 

? 나는 위암.”

 

? 하지만, 머리가.”

 

이번에 재발해서 병원 들어온 거라 아직 머리는 멀쩡해요. 근데 또 항암치료 시작할 테니까또 머리카락 빠지겠지. 삼년 전에 항암치료 받고 머리 겨우 잘 길러서 다듬어 놨더니 또 이 꼴이야. 애들두 머리 없는 거 싫어하는데 말이야.”

 

 

---위암, 그리고 재발.

 

 

둘 중 한 단어만 들어도 으스스한데, 눈앞의 이 남자는 태연하게 이 두 단어를 붙여서 얘기하고 있다. 위암이었다고, 그런데 재발했다고, 그런데 머리카락 빠지는 게 너무 싫다고. 머리카락 따위 없어도 사람은 산다. 솔직히 말하면 다리가 하나 없거나 팔이 하나 없거나, 눈알이 하나 없거나 그런 것보다야 머리카락 없는 게 제일 낫지. 머리카락이야 없어도 돈 좀 들이면 진짜 머리카락 보다 멋진 가발 살 수 있고, 티도 안 나지 않는가 말이다. 하긴 그렇게 말하면 다리 하나 없어도 의족이라는 게 있고, 팔이 하나 없어도 의수라는 게 있는데.

 

 

점점 삼천포로 빠져 들어가는 생각을 재인은 털어냈다.

 

 

그렇다. 그 모든 게 없어도 사람은 산다. 단지, ‘죽는 것만이 문제다. 죽어버리면 가발도 의족도 의수도 살 수 없고, 필요도 없어지는 거니까.

 

 

많이 힘드시겠어요.”

 

재인이 겨우 입을 열어 한 말이라는 게 고작 이거였다.

 

글쎄 안 힘들다면 그것도 거짓말인데. 병원에 오래 있다 보면 눈앞에서 죽는 사람도 많이 보니까. 앗 참.”

 

?”

 

환자는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씩 웃는다.

 

그러고 보니, 그 쪽 입원하기 하루 전에 그 자리에서 간암 환자분이 돌아가셨는데.”

 

재인은 다시 입을 멍하니 벌렸다. 몰랐으면 좋았을 일을 잘도 알려주는구나 싶다.

 

 

그런데.”

 

?”

 

괜찮으세요?”

 

뭐가?”

 

사람 죽는 거 보는 거요. 그거 괜찮아요?”

 

 

얘길 해 놓고도 정말 멍청한 질문을 했다 싶다. 괜찮을 리가 없다. 괜찮을 수가 없지. 간암이고 위암이고 종류는 다르지만 암은 암이고, 다른 종류의 암이건 같은 종류의 암이건, 같이 입원해있던 환자가 죽어나가는 걸 보는 게 어떻게 괜찮을까.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겠지.

 

 

환자는 재인을 쳐다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 쪽팔리지만 처음에는 혼자 몰래 울기도 했었어. 그러니까 사람 죽는 거 보는 게 괜찮을 리가 없지.”

 

……그럼 어떻게 했어요?”

 

뭘 어떻게 해.”

 

 

이번에야말로 정말 멍청한 질문 하는구나, 하는 얼굴로 환자는 재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걸 극복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생각했지. 할 수 없다, 라고. 어쩔 수 없다, 이건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괴로워한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심장마비로도 죽을 수 있고. 공평한 건 누구나 죽는다는 그 하나뿐인데, 사람은 자신이 죽는 방법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고 말야.”

 

 

---그것 참 명쾌하시군요.

 

 

하지만……가족이 있잖아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이 환자에게도 가족은 역시 문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딸애가 하나 있는데 이제 일곱 살이니까. 아빠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니까 뭔 병인지도 모르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지. 예쁜 딸애랑 우리 아직도 한참 젊은 나이의 마누라랑, 그리고 한참 갚아야 하는 집 대출금에. 우리부모님 다 멀쩡하게 살아계신데 아들이 먼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갑갑하지.”

 

난요.”

 

 

재인은 천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결과야 안 나왔지만 내가 정말 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냥 무서워요. 고통스럽게 죽기도 싫고 아직 나이도 한참 젊은데 왜 이런 병에 걸려야 되나, 그냥 억울하기만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걸 제외하면 그다지 신경 쓰이는 문제가 없어요.”

 

 

제 말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재인은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직장은 있지만 돈은 잘 못 벌어요. 그렇다고 일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서 그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죠. 그냥 남들 다 가니까 나도 직장에 나가는 거예요. 결혼 안 했으니까 반드시 갚아야 할 집 대출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 할부금 내던 것도 작년에 끝났고. 돈은 없지만 빚도 없어요. 여자 친구랑은 다행히 얼마 전에 헤어졌고, 아들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물론 슬퍼하시겠지만 나 말고도 누나도 있고 형도 있어요.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될 거예요. 그러니까 내 얘긴.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냥…… 그래서 다행이라는 얘기예요.“

 

재인은 히죽, 웃었다.

 

 

그게 뭐가 다행이지?”

 

?”

 

그건 그냥, 자네가 불쌍한 사람이란 얘기잖아.”

 

 

 

 

종합병원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자 담당의가 찾아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아까 내시경 하셨죠? 의심되는 부위의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했는데 현재로서는 식도암으로 보입니다. 내시경 결과로는 두 군데 종양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우선 전이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CT검사를 하겠습니다. 전이여부가 판단되면 그 때 가서 치료방침을 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호자는 안 계신가요?”

 

 

또 보호자를 묻는다. 암 판정에 충격 먹고 병동에서 뛰어내릴까봐 그러나.

 

 

없어요, 올 사람이.”

 

불쌍한 얼굴을 하고 여자 담당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담당의는 웃지도 않고 말한다.

 

우선 가족 분들한테 알리셔야죠.”

 

천천히 할 건데요.”

 

, 그러시던지 하는 얼굴로 돌아서던 담당의는 깜빡 했다는 듯 다시 재인에게로 왔다.

 

보호자 분께서 혹시 궁금한 사항 같은 게 있으면 저한테 오시면 됩니다. 환자분께서야 지금 정신도 없고 그러실 테니까요.”

 

저기요.”

 

?”

 

 

재인은 침을 꿀꺽 삼킨다. 병의 진행 정도보다, 앞으로의 생존율보다 지금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제가 불쌍해 보입니까?”

 

황당한 얼굴을 하는 담당의. 아마도 재인보다도 더 어릴 것 같은.

 

왜요? 암에 걸려서요? 보호자가 없어서요?”

 

둘 다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얼굴로 담당의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암에 걸린 거야, 운 문제니까 불쌍하긴 하네요. 하지만 보호자가 옆에 없는 건.”

 

?”

 

그거야 순전히 환자분 탓이겠죠.”

 

 

 

 

담당의가 나가고 나서 재인은 혼자 키득대고 웃었다. 암이라는 데 웃고 있는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더 우습다.

 

 

---역시 의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니까. , 저렇게 똑똑하잖아.

 

 

자신보다도 어린 담당의는 불쌍한 것과 안 불쌍한 것을 저렇게 분명하게 구분해주었다. 암에 걸린 건 불쌍한 것. 하지만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은 당신의 탓이라고. 내일은 예전 그녀에게 전화를 해 볼 생각이었다. 아무리 헤어졌어도 불쌍하게 암에 걸렸다는데 안 와줄까. 부모님께도 전화를 해봐야지. 아들네미가 암에 걸려 다 죽어간다고. 예전 그녀가 안 와주면, 그럼 아까 그 간호사라도 꼬셔봐야겠다. 나보고 잘생겼다고 그랬으니까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 나머지는, 내일 다시 생각해야겠다.

 

 


작품 등록일 : 2018-08-30
희망적이야
ny******   
오 나 이 작가 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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