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와 처음 살림을 합치던날 춤을 췄다.
내 뒤에서 몰래 춤을 췄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뭐해? 물으니
당황하며 너무 좋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정착하고 싶었다. 매 달 바뀌는 남자들, 섹스, 자극.
얌전해지고 싶었다.
남편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꼴값떤다.
*
둘이 살기엔 넓은 집이었다.
고양이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집이 넓어 공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남편과 단 둘이 있으면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
분양샵에 갔더니 고양이 한 마리가 울지도 않고 우릴 쳐다봤다.
다른 고양이들은 다 손바닥만한 크기였는데 이 앤 좀 컸다.
‘왜 쳐다 봐?’
고양인 야옹! 하며 날 또 쳐다봤다.
그래서 우린 그 앨 데려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끼때부터 인기가 없어서 분양이 안 됐던 애라고 했다.
그래서 5개월이나 지나서 팔린 거라고.
펫샵 사장님은 5개월짜리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는 우리에게
사은품을 더 챙겨줬다.
*
그래서 난 처음으로 고양이를 길렀는데
귀엽긴 했지만 별로 재미가 없었다.
불러도 안 왔고 애교도 안 부리고 자기 혼자 자고 자기 혼자 놀고.
편의점에서 싸구려 간식을 사다 먹었고
사료도 펫샵에서 먹였다는 로얄캐닌을 먹였다.
*
남편은 고양이를 대할 때 절절맸다.
고양이가 다칠 것 같다고 손톱도 못 깎아주고
아파하면 어떡하냐고 목욕도 못 시켰다.
그래서 매번 내가 했는데
짜증이 나서 억지로 시키면 세게 잡지 못해서 늘 고양이가 도망갔다.
*
고양인 날 깨물었다.
자고 있는데 발을 깨물어서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같이 깨물었다. 고양이가 화나서 날 긁었다.
남편이 처음으로 고양이한테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엄마 몸에 상처내면 어떡해. ‘
고양인 삐쳐서 지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
우리가 이틀 집을 비운 적이 있다.
사료와 물을 많이 놔두고 갔는데
집에 돌아오니 그 앤 이틀 동안 하루 분량의 사료도 먹지 않은 채였다.
나한테 관심없던 고양이가 날 졸졸 따라다녔다.
화장실만 가도 목청이 터져라울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안심하고 날 핥아줬다.
*
그 이후로 난 고양이 카페에 가입했고
사료의 성분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간식 성분에 예민해졌고
모래에 예민해졌다.
*
어느날 병원에서 복막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고양이가 죽을 수도 있다고 그랬다.
이전엔 동물농장에서 질질짜는 사람들을 이해 못 했었다.
병원에서 꺽꺽대며 울었다. 창피하단 생각도 없었다.
그럴 거면 예쁜짓 하지 말지
그럴 거면 나 따라다니지 말지
다신 고양이 안 키울 거야.
두 번 다신.
왜 저 작은애가 죽어야하는 걸까.
처음 데려왔을 때
투명한 케이지 안에서 야옹! 하며 쳐다봤던 모습이 떠올랐다.
*
다행히 고양인 복막염 의심이었던 상태에서 정상으로 판정받았다.
*
남편이랑 연애 시절, 취직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사람은 그러지 말고 알바 떄려치고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일을 구하라고 했다. 월세도 내주겠다고 그랬다.
친구들은 정착한 내 모습을 좋아했다.
나보다 더 우리 오빠한테 더 고마워했다.
주단위로, 월단위로 남자를 바꿔 만났고
입만 열면
어제 섹스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진을 보여주던 년이
이젠 오빠 하나만 보고
오빠 입을 옷 사고
오빠 영양제를 사줘서
집에 얌전히 잘 붙어 있어서
편안해 보인다 그랬다.
*
오빠가 준 돈으로
다니고 싶었지만 비싸서 못 간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 들어가는 입구에서
오빠랑 맞춘 커플링을 빼고 가방에 넣었다.
*
가난하게 자랐던 나는
가지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눈 뜨고서부터, 잠들 때까지 바쁘게 살아야만했다.
그런 스스로가 뿌듯했고
일종의 불안을 원동력으로 삼아 버텼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돈 많은 남자친구들 앞에서 안 쫄았고 당당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라서 평탄하게 문제 없이 교육 잘 받은 그애들은
내게 멋지다 그랬다.
남편을 만나고서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서
모든 걸 다 놔버렸다.
발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 편한 게 최고잖아.
굳이 바쁘게 살아야하나,
근데 난 불안하고 싶었다.
정신병이다.
뭔가 부족해서 열심히 살고 싶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억지로 배워보려는데
조금 힘들면 때려쳤다.
*
술을 먹고 친구들에게 한탄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에전처럼 살고 싶어.
친구들이 말렸다. 동생이 말렸다.
- 왜 그렇게 불안하게 살고 싶어해?
그래서 헤어지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지금, 후회한다.
작가 돈주기 작가 다른글 |
돈 쪼들려서 불안하고 그것 때문에 바쁘게 사는 거 지옥 같았거든?
불안한 게 너무 싫었어 무기력하고 갑갑해도 되니까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집안 살림하고 필라테스 끊고 맨날 카페 가서 유부녀들끼리 수다 떨고 싶었어 나 같은 인간은 결혼하면 잘살 것 같아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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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 | ||
ㅅㅂ 나랑 비슷하네 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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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 ||
이거 짭준열 얘기랑 이어지는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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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영 | ||
마지막 문단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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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 ||
언니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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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 ||
왜 후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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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화둥둥 | ||
내 정병 친구 매번 불안을 만들어
남편에게 선사하다 부부관계 붕괴 직전임 현재 불안의 끝판왕 체험중 나도 정병이라 쓰니 이해는 함 근데 이혼을 존나 귀찮게 만들어논 꼰대 새끼들이 이럴땐 기특허이 해장이나 하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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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 ||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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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 ||
이젠 뭘 하고 살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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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 | ||
담백하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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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 ||
언니 뭐하고 살아 글 너무너무 잼따 특히 짭준열 시리즈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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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 ||
뒷얘기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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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 ||
불안도 스릴이라 중독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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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 | ||
후회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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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 ||
고양이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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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캅 | ||
언니 다른 썰도 풀어죠
기다리고 잇겟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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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 ||
읽다보니 공감쓰...가끔 작은 원룸에 누워 좋아하는 노래틀어놓고 동다남들이랑 킥킥대며 연락하던때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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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 | ||
글 많이 써줘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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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아메리카노 | ||
나동 공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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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했던 블루 | ||
밍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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