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곤 사토시의 '천년여우'
두서없이 써 보겠다. 천년여우는 사랑이 가득한 작품은 아니라고 운을 떼겠다. 사랑보다는 사랑의 결핍이 가득한 작품.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한 뒤 잠깐 다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겠다.



제목, 천년여우(千年女優, Millennium Actress)

0. 줄거리
은화 영화사는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철거될 예정이다. 70주년이자 철거를 동시에 기념하려는 듯, 스튜디오 로투스의 사장은 한때 전설적인 여배우였던 치요코를 다룬 전기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한다. 노인이 된 치요코. 과거 여전히 한창이었던 전성기에 갑자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산속에 틀어박힌 수수께끼의 배우. 그녀는 자신을 향하는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었기에 이번 스튜디오 사장의 요구에는 응할지 의문스러웠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요구에 응했다. 인적 드문 시골 산 속. 그렇게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장이 중요한 것을 전해주러 왔다고 한다. 열쇠를 건네준다. 치요코는 '잊고 살아왔는데...' 라고 조용히 읊조리며 열쇠와 관련된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동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던 날. 치요코는 태어났고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대신 많은 유산이 남았다.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 없는 생활 속에서 치요코는 부끄럼이 많은 소녀잡지의 열렬한 팬으로, 다시 말해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소녀로 성장하고 있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눈 내리던 어느 겨울에 그녀는 경찰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한 남자와 운명과도 같이 부딪혀 넘어지고 만다. 왠지 모르게 그를 쫓는 경찰들에게 다른 방향을 알려주게 된 그녀는 상처입은 남자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허락한다. 남자는 화가였다. 그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화가 찾아오면 고향으로 돌아가 반드시 그림을 완성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향으로 갈 수 없다고, 만주로 돌아가 동료들과 투쟁을 계속 할 것이라 한다. 나중에 평화가 찾아오면 반드시 너를 찿겠다고, 이 열쇠는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인데 너에게 맡기고 가겠다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다음 날 남자는 경찰의 추적에 등떠밀려 치요코가 돌아볼 새도 없이 기차를 타고 떠나고 없다. 치요코는 열쇠를 두 손에 꼭 쥐고서 자신도 남자를 찾아 나서겠다며 학생의 신분임에도 만주로 향할 것을 마음먹는다 . 만주에서 영화촬영이 있다는 소식을 그녀가 놓칠 리 없다.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는 신인배우가 되기로 맘 먹고 어머니의 반대에 맞서 싸운다. 그렇게 그 남자를 찾아 열쇠를 돌려주기 위한 평생의 여정, 영화배우로써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녀는 언제나 남자의 뒤만 바라보며 달리고 있었다. 실제 삶에서도, 영화 속 배역에서도 항상 달렸다. 그러던 그녀는 어떤 자각을 계기로 남자에 대한 열정도 흔들리게 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열쇠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달릴 힘을 잃어버린 그녀는 배우로서의 활동을 포기하고 영화감독과 결혼해 그저 그런 정체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다 발견하고 만다, 영화감독이 열쇠를 고의로 훔쳤다는 증거를.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열쇠를 훔쳤던 것이다.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치요코는 남편을 떠나 홀로 산 속에 은거하며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세상 속에서 잊혀지게 된다. 오직 한 남자, 스튜디오 로투스의 사장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는 열쇠를 손에 들고 먼 길을 쫓아 그녀를 찾아왔다. 다큐 촬영을 위한 인터뷰를 통해 치요코는 잊고 있었던 그 남자에의 열정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데... 그 순간. 그녀를 세상에 태어나마자마 아버지로부터 떨어뜨리게 만든 지진, 커리어를 포기하기 전 마지막 촬영장에서 목숨을 위협하며 비극의 전조를 알리러 왔던 것 같던 지진. 그 지진이 다시 한 번 그녀를 휩쓴다. 이번에도 비극의 전조인가? 아니다. 다르다. 이 지진은. 잊고 살았던 과거의 한 남자를 향한 열정을 되살아나게 만드는 영원한 심상의 흔들림이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은영 영화사. 신화가 펼쳐지는 무대.

1. 신화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무의식, 승화와 억압의 분투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 내었고 그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무의식을 담아내곤 했다. '개인'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본인 행동의 동기를 신화 속에 비유해 표현해왔던 것이다. 어째서 신화를 빌릴 수밖에 없었을까? 신화를 통하지 않고 개인의 차원에서 스스로 자기내면을 성찰하려 할 경우,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 그 진정한 동기를 직접 인식해버리게 되고 이어 견딜수 없는 수치심이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인간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화 속에 자신의 본성을 비밀스레 녹여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신화가 사라진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은 애써 자신이 행하는 여러 행동들의 부끄러운 동기를 부정하고 합리화하여 최종적으로는 스스로를 속이기 바쁜 존재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참된 동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인간은 그만큼 적어졌지만, 인간은 어찌되었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행동 그 진정한 동기를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파악하려 드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화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무의식은 항상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작동 중이다. 예외없이. 나도. 그리고 너도. 여전히.

하지만 진리를 향한 여정은 역시나 쉽지가 않다. 내면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은 금새 문제에 부딪히고 마는데, 진정한 동기를 파악하려는 본능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층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잘못된 행동 그 '수치스런' 근본 동기를 누가 쉽게 깨닫고 인정할 수 있을까? 진실을 의식의 차원까지 끌어올려 자각하고 마주볼 용기가 있다면 밀려오는 수치심을 '승화'시켜 앞으로 나아가게 될테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수치심은 언제까지나 잊히기 위해서 끊임없이 '억압'당할 것이다. 억압당한다는 말은 곧 진리를 여는 열쇠를 찾으려는 노력 대신 허구한 날 열쇠 없이 쉽게 열리는 엉뚱한 문들만 찾고 다니는 도어 호더(Door hoarder;내가 만들어낸 말이다)가 되어 인생을 소모하게 될 것이란 말과 같다. 신화 속 상징으로 비유하자면 영웅이 '신으로 부터 얻게되는 무기'는 해소되지 못한 비틀린 욕망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의미하고, 영웅과 싸우게 되는 '괴물'은 해소되지 못한 비틀린 욕망이 망상에 의해 한껏 감정적이게 된 정신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 역시 한 편의 신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욕망의 승화와 억압 사이의 분투, 다시말해 현대의 신화.






관동대지진. 아버지의 죽음과 주인공의 탄생.

2. 아버지의 부재,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이제 작품 속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작품 내내 치요코의 어머니는 등장하지만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관동대지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이 대신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그녀. 관동대지진으로 삶이 어려웠을 법도 하지만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남긴 많은 양의 재산 덕분에 어머니와 자신은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삶을 부족함없이 채워주었던 아버지.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아버지로 가득하다. 그때문이었을까? 2차세계대전으로 군국주의가 치요코의 동네에까지 물들어 갔지만 그녀는 그런 것엔 관심없고 여성잡지를 좋아했으며 동화속 왕자님이 언제까지고 나타나 주길 바래왔다. 그렇다. 그녀에겐 결국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니,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상징'이 필요했다.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어줄,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대리할 또 다른 누군가. 그렇게 운동권 떠돌이 남자는 치요코에게 아버지의 대리물로써 상징화되어 다가온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황당한 일이다. 외간남자에게 끌리는 마음이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의 부재 경험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원래 무의식이라는 녀석은 그렇게 우리의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한 비논리적인 놈이다.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현실 속에서 찾기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니게 될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형상화 된 내면의 갈등.

3. 신의 무기 열쇠, 신화적 괴물 마녀
운명이자 상징이자 아버지의 대리물이 그녀에게 말한다, 13일인 오늘의 달은 기울고 야위어 있지만 14일의 달에겐 보름달이라는 내일 곧 '희망'이 있다고. 이 열쇠는 가장 소중한 걸 여는 열쇠('미완성인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방도구 가방열쇠)라고. 내일까지 무엇에 대한 열쇠인지 꼭 알아오기로 약속하자고. 그렇게 미래를 여는 열쇠를 치요코는 손에 쥐게 되지만 남자는 사라지고 없다. 그녀가 남자를 쫒는 상황은 끊임없는 연극 속 개별 에피소드로 바뀌어 연출된다. 앞서 얘기했다, 신화는 인간 무의식의 반영이자 진정한 행동의 동기를 깨닫기 위한 자각에의 노력이라고. 한 편의 극중 장면은 한 편의 신화들이다. 치요코의 무의식의 반영 한 편 씩이다.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치요코의 인생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고 소심하기만 하던 그저그런 인생 1이었다. 하지만 남자를 만나고나서, 본인이 알아차렸든 못 차렸든 간에, 그녀는 사랑받지 못하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으로 열정 그 자체인 인생을 살게 된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추구하는 대상은 아버지라는 '상징'의 대리물일 뿐. 사실은 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망상이라 해도 좋으니까 외로운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게 시선을 빼앗아 줘-라는 본인의 진정한 동기를 그녀가 자각할 수 있을까? 대면하고 자각하여 수치심을 겪는 일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승화'시키고 인생을 앞으로 내달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억압'하고 합리화하여 내 마음은 진실한 사랑인 것 뿐이라고 되뇌이면서 인생을 제자리걸음 하게 둘 것인가?  매번 놓치게 되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치요코의 손에 쥐여지는 건 실망 뿐이다. 애당초 손에 넣을 수 없었을 나의 무한한 결핍이었을 뿐이라고 인정한다면 실망은 한 순간일 뿐, 금세 털고 일어나 다른 형태의 동일한 '상징'을 향해 손 뻗으려는 노력을 평생에 걸쳐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유일무이한 대체불가의 한 남자를 쫓고 있는거라고, 나는 저 사람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저사람만이 내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고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그녀의 내면은 금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넌 결코 저 남자를 만날 수 없다'는 마녀의 저주는 그래서 받아들이기에 따라 저주이기도 하며 축복이기도 한 자기 무의식의 목소리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신화 속 신으로 부터 얻는 무기는 충족되지 못한 비틀린 욕망을 승화로 이끄는 내면의 힘을, 신화 속 여정을 방해하는 괴물은 비틀린 욕망이 망상 속에서 비대해져 감정적으로 정신의 파멸을 불러오는 상태를 의미하는 거라고. 신의 무기는 열쇠이고, 신화적 괴물은 마녀의 저주이다. 남자, 마녀, 열쇠, 저주, 그녀 그 자신. 모든 것은 그녀가 만들어 낸 내면의 목소리들이다. 

남자는 현실세계에 정말로 존재하는 인물이다. 최초의 첫 만남에서 분명히 존재했고, 이후 죽음으로 드러나는 사건 속에서도 그러했다. 단지 첫 만남 이후부터 치요코의 기억 속에 나타나곤 하던 남자는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 내면이 형상화시킨 상상 속 그림자였을 뿐. 남자가 건네준 열쇠로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남자와의 사랑결실이 아닌 본인의 가장 젊고 아름다울때의 자화상이라는 점은, 환상 속 남자가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해주는 과정에서 잠시 거치고 사라지게 될 신기루 같은 것이란 말이 된다. 남자의 현실적 존재함이 그녀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 열어보기 전까진 그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앞날에 대한 기대와 설렘과 환희로 가득 차 있는, 빛나는 희망을 열어줄 열쇠. 과거는 제쳐두고 오직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두근대는 발걸음, 그것이 남자가 건네준 열쇠의 의미이다.

마녀 역시 그녀 자신의 또 다른 그림자인데, 마녀는 백발의 구부정한 노인이자 한 손으로는 물레를 끊임없이 돌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백발노인의 모습은 그녀가 평상시의 자신을 추하게 여기고 있다는 자아상의 표현인데, 빙빙 돌며 실을 감는 물레는 테세우스 신화 속 미노타우르스 일화에서 등장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비슷한 상징이다. 영웅 테세우스가 지하미궁 라비린토스(감춰진 잠재의식)을 헤쳐나가게 도와주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비슷한 의미인 것인데, 무의식 속의 진정한 자기 모습(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는 둘 다 포세이돈의 아들이므로 미노타우르스는 테세우스의 형상화 된 내면의 악)과 대면하게 이끌어주는 나침반으로써의 실타래이다. 마녀는 처음부터 줄곧 진실을 말해왔던 것이다. '너는 결코 (실재하는)남자를 만날 수 없어. 하지만 언젠가는 (네 환상 속 남자의 진실을)만나게 되겠지...'. 자신의 무의식 진정한 동기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심연의 괴물과 마주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직시는 자칫 무한한 수치심과 과도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자기 안의 파괴적인 면모만을 과장해서 바라보게 만들 수도 있다. 영원한 머무름, 과거에의 안주. 그러므로 마녀의 저주와 실타래는 치요코를 진실된 동기와 마주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파괴적인 마주함이라는 것. "괴물들과 싸우는 그는 자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당신이 심연을 깊이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도 당신을 깊이 들여다 볼 것이다."-니체.

열쇠로 인해 손에 넣게 될 가장 젊은 날의 자화상(진실의 인식)과 물레를 돌리는 늙은 마녀의 이미지는 결국 동일한 내면에의 참된 자각이면서 동시에 상반되는 발걸음(정체하기/나아가기)의 이미지들이다.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만 볼 수 있었던 남자의 그림. 늘 추구하고자 했던 참된 자신의 모습.

4. 승화로 향하게 만드는 참된 자기에 대한 자각
...마녀의 저주가 실현이라도 된 것인지 치요코는 남자를 매번 놓치지만 지치지도 않고 그의 뒤를 다시 쫓는다. 위기도 있었다.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외치는 학생들 앞에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다 주장하는 남자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그가 무슨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지조차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나는 정말로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진정한 내면의 동기에 한 발짝 다가간 그녀였기에 꽁꽁 감춰두었던 무의식의 수치심이 파도처럼 의식 위로 밀려든다.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그녀. 위기는 그 뿐만이 아니다. 보다 더 큰 위기는 이후 열쇠를 잃어버린 순간일 것이다. 열쇠는 남자의 마음을 열고 그와 인연이 이어지게 해주는 마법 아이템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화방도구 가방을 열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란 것. 그 사실을 그쯤엔 이미 자각한 그녀였을 것이다. 한 남자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었다면 열쇠를 잃어버리든 말든 상관없었을 것이지만 치요코는 그러지 못했다. 미래를 바라보며 고된 현실을 버티고 있었건만 모든걸 놓아버린다. 남자를 쫓는 자신의 마음은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랑받음'에 대한 상징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치요코. 열쇠는 곧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상징.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그것은 누구로든 채워질 수 없다. 어떤 수를 쓰든 결코 도달할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자각. 그간 달려올 수 있었던 행동의 진정한 동력을 잃어버린 치요코는 열쇠를 잃어버린 모습으로 나타나고, 평생직업이던 배우의 일도 그만 두게 된다. '어디까지건 쫓아가려 했는데'. '왜 그만두신 거죠?'. '사고가 났던 그때 깨달았어요. 이미 그가 기억하는 내가 아니란 걸'. 그녀는 열쇠를 잃어버린 상태이자 참된 자신을 찾기위한 여정을 포기한 상태였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은 최초로 남자와 마주했던 과거의 자신과는 달라져 있었다. 자기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계속 하려 할 때에 그녀는 남자가 그려준 초상화 속 풋풋한 소녀가 될 수 있었고, 여정을 포기한 순간에는 쭈그렁 할머니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마녀의 물레에 이끌려 저주와 마주했던 것이고, 그 자리에 그렇게 주저앉는 정체의 발걸음에 굴복하고 말았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다시 손에 쥘 수 있었던 열쇠.

5. 죽음으로 완성되는 신성화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깊은 산 속 은둔 중인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인터뷰란 인터뷰는 죄다 거절 중이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꺼진지 오래. 그런 그녀 앞에 '사랑받음'이 잃어버렸던 열쇠를 직접 찾아들고 치요코의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다. 열쇠가 여기 있으니까 다시 한 번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말이다. 변두리에 머무르면서 항상 그녀를 지켜보고 짝사랑하던 촬영스태프가 그녀가 할머니가 된 이후에도 변치않고 찾아와서 열쇠를 전해주러 온 것이다. 스태프는 촬영사고 현장에서 그녀의 목숨을 살려준 적 있기까지 한 생명의 은인이자 살아있는 사랑 그 자체이지만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웃으며 말한다. 자신의 결핍에서 눈 돌릴 틈이 없었던 것일까? 사랑받고 싶다는 결핍이 그녀를 수많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어 주었지만 정작 그녀는 한 순간도 곁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음의 감각을 느껴본 적 없었다. 촬영했던 수많은 작품 속 시나리오가 환상이듯, 그녀 역시 자신 안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진정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남자가 열쇠를 들고 눈 앞에 앉아 있지만 그녀는 온기를 가진 그 남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볼 수가 없다. 그녀는 열쇠를 쥔 채 마지막 숨을 토해내면서 행복한 듯이 눈을 감는다. 완전한 자기 내면의 자각과 함께. 남자가 아니라 만들어진 환상만을 사랑했었다는 자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고 정열적으로 살아갔던 자신의 곁엔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 그렇게 늘 혼자였다는 것. 환상에 의지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외롭디 외로운 자신의 인생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날에서야 진정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의 대면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눈 앞에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를 마주보는 대신 환상 속 남자의 뒷 모습만을 또 한 번 눈으로 쫓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렇게 그녀는 현실 속에서 환상을 연기하는 여우(女優)로 남는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이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순응하여 사후 영원한 신으로 승천하듯이.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서야 그녀는 마녀의 저주, 그 주저앉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미래를 그리며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이다.







작품 등록일 :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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