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 인간과 독서

내향적인 인간은 혼자 있길 좋아한다. 사람들 틈에 끼어서 많은 말을 하고,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그때마다 표정 역시 오르락 내리락. 그런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쓰지 않던 근육을 갑자기 너무 많이 써버린 것처럼. 탈진상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내색하지 못하던 피로감이 몰려온다. 두통처럼. 없던 멀미가 한껏 몰려오는 기분. 완전한 혼자가 되기위해 집을 찾는다. 원을 그리듯 결국 되돌아오는 발걸음.

 

 

혼자가 좋다. 모든게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흘러간다. 모든건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내 방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하나같이 되풀이 되고 반복되며 예측가능한 일들 뿐이니까. 그래서 그렇게나 내 방을 정리하고 꾸미는데에 공을 들이게 된다. 조명이며 인테리어 그리고 가구배치까지 하나하나 신경쓰게 된다. 모든 것이 나의 시선 아래에 나의 의도대로 배치된다.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은 내 존재의 확장이어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는 나에 의해 감싸져있다는 포근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안경을 자주 쓰던 지인이 그것을 쓰고 있노라면 그 한 겹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던 적 있는데 그와 비슷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혼자가 좋다고 해도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마저 좋아할 수는 없다. 그건 극한의 내향적 인간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어제 먹었던 밥을 오늘도 먹고 내일도 또 먹게 되리란 사실, 어제 좋아했던 음악을 오늘도 좋아하며 내일도 좋아하게 되리란 사실, 어제의 취향이 오늘의 취향이 되고 내일에도 반복될 거란 사실. 어느 하나 다를 것 없을 어제의 오늘의 내일의 나. 내향적 인간은 그런걸 원한 적 없다. 어느 방향으로도 흐르지 않는 고인 물을 결코 원한 적 없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시끄럽게 너울대고 거칠게 철썩대는 파도, 태양빛이 한껏 부딫혀 눈부신 인파로 가득한 해변의 파도보다는 인적 드물고 고요한 호숫가의 잔물결을 선호하는 쪽인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은 자유다. 더 없이 확실한 자유. 하지만 나 자신의 정체성에게 만큼은 완전한 감옥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내가 어제와 같은 선택만을 주구장창 하게 되리란 것을 누가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향적 인간에겐 정체성을 변화시킬 어떠한 '사건'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외향적 인간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세상 속에서 찾는다. 온 몸을 부딪힌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들을 접하며, 오감으로 감각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성향을 바꿔나간다. 내향적 인간에게도 그런 사건들이 필요하다. 모든게 내 뜻대로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나의 예측을 벗어나 홀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정체되어있던 나 자신을 압도할 사건 말이다. 예측불허의 타인. 예측불허한 사건의 예고. 결국 내향적 인간에게도 최소한도의 '타인'이란 존재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것이다. 세상을 조그만 화면속에 담아내는 유튜브로는 안 된다. 그 화면 역시 나의 영향력 아래 존재하는 내 존재의 확장일 뿐이다. 세상 밖을 비추는 창으로써 기능하길 바랬던 유튜브는 세상을 비추지는 못하고 오직 나 자신만을 끊임없이 되비추는 조그마한 거울 같은 것 따위가 되어 버렸으니까. 

 

 

내향적 인간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이 그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플롯따위를 중시하기 보단 생각의 시야를 바꿔주는 철학책과 문학책들. 또는 그러한 류의 영화매체. 일방적인 저자의 목소리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차이를 만들어준다. 나의 정체성이 바뀔 수 있는 '사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예측을 비켜나가는 한 명의 개인을 내향적 인간들은 책에서 마주칠 수 있다. 그러한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예측불허한 사건이 되어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도록 삶을 비틀어줄 수 있다. 외향인들처럼 온 몸으로 부딪혀가며 체험하는 몸의 사건은 아닐지라도 한 발 떨어져 관찰하는 사건 역시 예측불허의 사건인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 책들을 읽으며 나는 종종 충격을 받는다. 우습지만 가끔씩은 쌓아올려진 책 무더기들을 바라볼 때 한 권 한 권이 저마다의 자아와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들로 느껴질 때도 있다. 살아숨쉬며 생명체처럼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부턴 문학책 보다도 철학책이나 사회학책 혹은 과학책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핵심요약 압축판이기 때문인 걸까. 가끔은 한 페이지를 읽는데에 20분 이상 걸릴때도 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내가 바라던 내 정체성의 변화를 이끌어낼 저자의 생각들을 확실하게 발견할 수가 있기에, 그만큼 효율이 좋은 것이다. 문학책들은 가급적 알려진 것들만 읽는다. 신간도서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고 들어서 몇 권 사보았더니 돈 버리고 시간 버리는 경험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망한 영화를 돈 주고 가서 보느라 돈과 시간을 다 버린 느낌? 그런 의미에서 사상을 다룬 책들을 요즘엔 좋아하게 되었다. 정체되어 있을 나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그러한 책들이 내게 최선의 선택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했던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책을 읽던 버릇처럼 남의 행동거지를 들여다보며 그 사람 전체를 읽어보려 하게 된 것이다. 당장에 드러난 하나의 몸짓은 하나의 목소리다. 유일한 몸짓, 유일한 목소리. 그것들은 대체불가한 문장처럼 내게 주어진다.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몸짓.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련의 몸짓들, 문장에서 문단으로, 소단원에서 대단원으로. 마침내 그려내게 될 마음 한 켠 한 권의 책-한 명의 사람. 그렇게 요즈음 절실한 크리스천 한 사람이 자꾸만 나의 눈에 밟힌다. 어떠한 연유로 저 사람은 저렇게 까지 절실하게 믿음을 이어나가려는 것일까. 어째서 주님에게 저렇게 매달려야만 하는 것인지. 지금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저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앞으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 텐가. 계속해서 한 사람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 명의 내향인으로써 어울리지 않게도 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작품 등록일 : 2023-01-24
좋다
복코   
모야 사람을 책처럼 읽는구나 멋있어
첫번째 두번째 문단 개공감
엉셩떼   
톰크루즈의 엣지오브투머로우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속성을 잘 묘사하셨네요.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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