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집주인 큰 아들의 친구가 놀러와 있었습니다. 너무 잘 생겨서 여주는 마음을 뺏깁니다. 기억해요? 여주가 좋아하는 대상들은 벌레, 파충류, 파파야열매인데 하나같이 등장할 때마다 여주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괴기한 음악이 흐른다고요. 이 장면에서 불길한 음악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아들래미 친구역시 여주의 미소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후에 재차 만나게 될 때엔 어김없이 그녀의 미소와 함께 불길한 음악은 흘러나오게 됩니다.
집주인 아내는 옷감을 팔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꽤나 잘 팔려서 생계는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은 돈을 담는 함에 "벌레"가 그려져 있군요. 머지않아 문제가 생기게 될 거란걸 우리는 알죠.
10.
막내의 여주 괴롭히기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막내의 눈엔 벌레, 파충류와 같으니까. 해로운 것을 쫓아내고 싶은 마음.
11.
괴롭힘이 끝나자 어떤 노인이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통성명을 합니다만 그의 미소는 상당히 기이하고, 웃을때 아주아주 기괴한 웃음소리, 부자연스런 웃음소리를 냅니다. 이 집에 들어오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틈을 보고 있었던 불행의 한 조각인 것 마냥. 통성명만 하고 사라집니다.
12.
집에 잘 붙어있던 백수 한량 남편이 갑자기 차려입고 어딜 갔다오겠다 합니다. 그런데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확인하고 챙겨 가는군요.
13ㅡ16
무이의 선배격 늙은 하녀가 무이와 대화를 합니다. 그러다가 집주인의 가족관계를 전해듣습니다. 7년도 더 전에, 집주인은 딸을 낳아 놓고서도 끊임없이 밖을 쏘다니며 아내가 벌어 온 돈을 흥청망청 썼고 몇 달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러다가 딸이 죽자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다시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아내가 모아둔 돈을 허투루 쓰지도 않아왔다고 합니다. 딸이 죽은 7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어? 그런데 아까 장면에서 악기 연주하며 집에 잘 붙어있던 남편이 양복 안주머니에 어떤 봉투를 챙겨서 외출하지 않았었나요?
17.
잘 있던 남편이 갑자기 차려입고 외출하자 아내의 촉이 발동했습니다. 서둘러 불안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달려가서는 벌레문양이 찍혀있던 함 앞에 멈춥니다. 함에는 옷감을 팔아 모아둔 돈이며 값비싼 장신구가 죄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망연자실 합니다. 7년이나 집에 잘 붙어있던 남편이 갑자기 돌발행동을 한 것이죠.
18.
딸아이가 살아있었을 때 남편은 집 밖을 쏘다녔고, 딸아이가 죽자 남편은 집에 돌아왔었습니다. 아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딸 처럼 종종 느껴지던 무이의 침소 앞에 멈춰섭니다. 그리고 혹시나 죽은 내 딸이 이 아이를 통해 돌아온 건 아닌가 싶어서 한참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 보죠. 때마침 여주의 입에서 나온 잠꼬대, '엄마' 라는 단어를 듣고 아내는 눈물을 쏟습니다. 하지만 감동스런 장면은 결코 아닙니다. 이때도 불길한 음악이 계속 깔리고 있었으니까요. 친딸처럼 생각하면 할 수록 여주가 몰고 온 불행은 이 집안 전체에게 먹구름처럼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19-20
무이를 들이고나서 집안의 모든것이 엉망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잘 팔리던 옷감들도 이젠 잘 팔리지 않길 시작하고, 막내는 덩치 큰 사내아이 둘로부터 맞고 돌아옵니다. 구타 당한게 서러워 아빠를 찾아보지만 어제부로 나가고 없었죠. 불행의 냄새를 감각적으로 맡은 막내는 또 여주를 찾아가 그녀를 부릅 뜬 눈으로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불행의 냄새가 퍼지고 있으니까.
21.
아버지의 가출로 막내만 힘든게 아닙니다. 차분히 글 읽기를 좋아하던 둘째 역시 책을 던져 밟아버리고, 파충류를 노려보고, 개미를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새총을 집어들고 파충류에게 쏜 것 같은데 여주는 같은 시각 같은 대상들을 바라보고 너무나 행복해 합니다.
22.
그날 밤 모든것이 꼬일대로 꼬여버린 이 집안 식구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심한 소리 하는걸 둘째가 엿듣게 됩니다. 너만 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들이 집 밖을 나다니지도 않았을 거라고, 애비없는 자식이라고 어디서 맞고 다니지도 않았을 거라고 모든게 어미 네 탓이라고 말입니다. 둘째는 주체하지 못할 괴로움을 느끼며 마당 바닥에 엎어져 쓰러집니다. 그리곤 들키지 않게 소리없이 흐느껴 울죠. 이 집안에서 태평한 사람은 오직 무이 뿐입니다.
23.
불길한 음악의 시작. 여주는 벌레들을 잡아 가둬 키우고 있었고, 또한 오늘 식사를 만들기 위해 파파야에 손을 뻗습니다. 파파야를 갈라 그 속 알맹이들에 손가락을 갖다 댈 때 여주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환해지고 불길한 음악은 정점을 향해 내달립니다.
24.
아까의 불길함 가득하던 파파야로 만든 음식을 내놓습니다. 이 음식이 놓여진 식탁에는 곧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예상대로, 막내가 아버지의 부재중인 것을 자꾸 언급하니 듣고있던 둘째가 화가 나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나가버립니다. 어머니도 따라가서 둘째를 챙기는데, 어느샌가 둘이 함께 주저앉아 현재의 처지에 대해 좌절하게 됩니다.
25.
그러던 중 첫째아들의 친구가 또 집에 놀러온답니다. 여주는 자기가 직접 내어줄 요리를 하고싶다 하고 몸도 꽃단장을 하며 물가에 자기모습을 비추며 행복한 미소를 또 짓습니다. 불길한 음악은 다시 깔리고 있었죠.
26.
그를 만나 너무 행복한 여주. 이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질 것처럼 보여지는건 착각일까요? 물론 불행을 불러오는 인연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군요.
27.ㅡ28.
장면은 넘어가고 아까의 노인이 또 찾아왔습니다. 진실을 얘기하며 짝사랑했었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뒤쪽 담 너머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몰래 계속 보고 있습니다. 불길함 그 자체입니다.
29-30.
집에 들어가려는 짝사랑 노인을 지켜보던 삿갓 쓴 이의 옆모습이 클로즈업 되고 카메라는 그의 멀어져 가는 발걸음을 화면에 담습니다. 누구길래 이리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라져 가는 걸까요? "큰 코와 둥근 턱선"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결국 불공드리는 실내에 들어가 버린 짝사랑 노인. 그런데 말입니다. "남편의 영정사진"이 어딘가 아까의 행인과 닮아있지 않습니까? 네. 아까의 죽은 시아버지의 원혼이었던 겁니다. 불공을 받고 있던 남편이 집을 떠나가 버리는 장면이었던 겁니다. 여주는 집에 들이면 안 되는 자를 집에 들여서 시어머니의 7년 간 공든 탑을 모두 무너뜨려 버린 거죠.
30.
공을 드리다 부정을 탄 영향인 것인지. 다음날 정성드리던 시어머니가 갑작스레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모두 여주인공이 초래한 사실이라는 것을. 시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도 슬픔보다는 공포스런 분위를 자아내는 연출.
31.
장면은 건너뛰어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주인공은 성인이 되었죠. 성인역을 맡은 여배우의 표정이며 몸짓,잘 보시면 공포시럽고 괴기합니다. 아역배우가 너무나 청순한 연기로 공포 분위기를 살려내지 못했었다면 성인역 배우는 분위기를 제대로 드러내 줍니다.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워도 풍경을 제외한 그 모든 것들, 음악과 사건들 연출들은 공포를 자아내죠.
영화의 반 쯤을 다뤘으니 나머지는 여러분이 직접 감상하여 기괴스런 포인트들을 찾아보시길. 끝까지 보기로 하셨다면 마지막 장면의 여주 대사와 눈빛을 잘 보세요. 이토준지가 떠오르는 결말일테니까.
이상, 베트남의 풍경과 아름다운 색채의 소품들로 가득 채워져 오직 아름다운 미적 영화, 로맨스 영화라고만 알려졌던 누명을 쓴 영화 '그린파파야 향기'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