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산달이 다가와 거동이 불편한 한 여인이
조촐한 보따리를 머리에 얹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허리를 받치고 나룻터로 왔다.

제법 큰 배로 다가가 어디로 가는 배냐 묻자 뱃사공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이 배는 그런 배가 아니란다.

그런 배가 어떤 배냐 따지고 들참에 훑어보니 왠 선비들과 꼭 하나씩 붙은 몸종들 한쌍이 채우고 있다.
이상하구나, 생각하는 차에 마침 또 선비 하나 몸종하나가 배에 타면서 이르거늘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요?

- 예예. 어서 타시지요.

더 서있을 기력이 없는 여인이 비스듬히 기대어 태워줄 때 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었다.

- 이제 올 사공은 다 온 모양이오. 사람 수만큼의 뱃삯과 고마움의 표시로 조금 더 넣었네. 내 미안하오. 사정이 넉넉치 않아....

- 아이고, 아닙니다. 항시 강령하시고 매달 내려오셔서 잘 지내시는지 얼굴이나 보여주시오.

여인이 눈을 떴을 때 방금 대화를 마친 선비와 눈이 마주쳤다.

- 몸도 무거울텐데 어디로 가시려오.

- 어디든 가려했으나 이 배는 그런 배가 아니라하여... 

- 사정은 모르겠으나, 어디든 가려했으면 우리와 갑시다. 우리는 사공(士公)이라 하여, 속세에 흔들림 없이 글이나 읽고 논하고저 하는 바. 

어디든 이곳을 떠나기만 한다면, 무사히 복중태아를 출산하기만 한다면 무엇도 괜찮았을 터라 여자는 그 사공의 우두머리를 따라 나섰다.

사공이 많이 모여, 그들은 뜻하던 대로 -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가기로 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배에서 내린 선비 아니 사공과 몸종 무리들이 초 여름의 산길로 접어드나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몸종들을 데리고 간 것은 부리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로 부터 생활력을 배우기 위함이라 
사공들은 몸종에게 감히 스승이라 칭하며 바늘에 실꿰는 것 밥을 짓는것 부터,  지붕을 고치고 담을 정비하는 것,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골라내고 밭을 일구어 곡식을 심고 거두는 것 까지 실로 다양한 것을 배웠다.

그리고 원하는 이들에게는 글을 알려주었다.
내가 붓을 들고 글을 쓰다니 감격에 겨워 자다가도 벅차우는 이도 더러 있었다.

여인은 조용히 여자 몸종들과 함께 방을 쓰며 방 한켠을 정갈히 차지했다.
몸이 무거워 많은 일을 거들 수는 없었지만 앉은 자리에서 자분자분 움직이며 방을 쓸거나 옷을 개키거나 했다.

해가 짧아지나 싶더니 여인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왕왕 태어났다.
사공의 아이이기도, 몸종의 아이이기도 했으나 중요하지는 않았다.

사공이고 몸종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비이자 어미였다.

이따금 옷이나 신을 지어 팔아 돈을 벌고,
필요한 것은 직접 지어서, 기르고 먹으니 겨울이고 여름이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춥지 않았다.

가족을 꾸린 이들은 부산스럽지 않게 인사를 하고 산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규칙이 딱히 없었으나, 단 하나를 지켜야 했는데- 바로 사공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허나 사람의 입은 그렇게 무겁지 않고, 손가락을 걸고 했던 맹세도 돌아서면 아무런 힘이 없다.

장안에 이런 말이 나돌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라'

천한 것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 말에 유난히 입안이 까슬하고, 거슬리는 자들이 소문의 출처를 찾아 결국 사공들이 모인 산을 알게 되었다.

위험한 자들이다.
여차하면 역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몇 해 전 임금의 씨를 품고 사라진 여인이 거기에 있다.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는가 싶었다.
까마귀 모양을 한 연 떼였다.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졌다.

누런 배 모양을 한 폭약들이 사공의 마을로 쏟아졌다.

사공들의 마을은 화염에 휩싸여 누구하나 도망치지 못하고 그렇게 산채로 모두가 사라졌다.



장안에는 이런 말이 나돌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라.'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다.'

모여서 참견하기 좋아하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모골이 송연하여,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바삐 자리를 피했다.

사람들은 까마귀가 날면 마음이 괜히 불안해졌다.

작품 등록일 : 2022-06-10

▶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어떤 사람

오마이갓
안뇽하세요   
너무멋지다..
만두**   
언니 존경해
시제 뽑아서 시험 치루던 과거라면 완전 장원급제야
기린   
미친 상상력이네 언니글 사랑해
Assal   
우와… 행텐 언니 새 글이네!! 너무 재밌어
살치살 꽃살   
헉 나 첫댓이다... 언니 글 꾸준하게 써줘 나는 순수문학하는게 늘 꿈인데 언니 보면서 맨날 희망 얻어 ㅠ
우짤래미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