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역덕 5호] 러시안 김재규가 나타나면 평화가 찾아올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을 넘겼어. 가장 강력한 붉은 군대의 후신을 자처하던 러시아군은 자신만만하게 수도 쪽으로 진격했다가 대박 깨졌고, 두 달 간 온갖 몸개그를 선보이다 결국 수도 공략에 실패했지. 3일 컷이라던 수도 키이우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깃발이 휘날리고 있고, 러시아군은 현재 북부쪽에서 완전 패퇴해 병력을 철수한 상태야.
전세계 밀덕들은 물론 군사 전문가들마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 러시아군의 두 달 간 대활약상을 간단히 요약하면
1. 전후 체제의 핵심개념인 '영토보전'을 박살내고 침략전 개시
2. 길어봐야 일주일 예상했으나 두 달이 지난 여지껏 전쟁 중
3. 속전속결을 낙관했기에 엉망진창 보급상태
4. 연료부족과 보급난에 허덕이다 64km 돈좌 사태 발생
5. 싹 난 감자와 유통기한 10년이 지난 러시아의 전투식량
6. 자기들이 침공해놓고 자국에 계엄령 내림
7. 제공권 장악 실패, 항공기 뜨는 족족 대공 미사일에 격추
8. 개전 초부터 함락직전이라던 마리우폴은 여태 버티는 중
9. 잊을 만 하면 들려오는 러시아 장성들 저격 소식
10. 수도로 진격하다가 역포위 된 러시아군
11. 체르노빌에 참호 파다가 피폭 된 러시아군
12. 조국의 자존심이라던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대함 미사일에 격침되어 흑해에서 수장됨(이 소식에 푸틴이 의자를 집어던지며 극대노했다고)
정말 대단한 전과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전쟁을 일으킨 쪽은 아무리 절대권력을 구축한 독재자라도 권좌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돼. 권력층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정권퇴진 요구와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야. 보통의 국가라면 말이지.
지금 전세계의 시선은 크렘린에 쏠려있어. 이 전쟁을 끝내러 올 러시아판 김재규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 정말 그 바람대로 푸틴 하나만 없어지면 사악한 독재자의 폭정에 신음하던 러시아는 해방되고 서방과 화합을 이루며 세계는 다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러시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중론이야. 물론 지금 이 순간 푸틴이 실각한다면 당장의 전쟁행위 자체는 중단될지도 모르지. 그래봤자 결국 푸틴과 비슷한 부류의 독재자가 뒤를 이을 뿐이고, 어쩌면 러시아는 장기적으로 더 큰 헬게이트를 오픈할 가능성까지 크다고 봐.
왜냐하면 러시아의 실로비키, 즉 국정을 장악한 핵심 권력층은 푸틴이 직접 중용해서 정계에 입문하고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거든. 당연히 현 체제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면서 푸틴과 똑같은 유라시아즘에 경도됐거나 엇비슷한 사상을 공유하고 있어. 그러니까 러시아의 권력구도가 아예 싹 물갈이 되지 않는 이상 푸틴이 실각할 가능성은 없고, 그래봤자 결국 또 다른 푸틴으로 대체될 뿐이라는 거지.
권력 중심부가 아닌 야당 세력 역시 마찬가지야. 다들 기대하는 것처럼 푸틴 실각 후 러시아에 자유화 개혁을 이끌만한 인사들은 이미 최고급 홍차를 대접받은 지 오래거든. 이미 야당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 숙청된 상태지.
그러니까 지금 여당인 통합러시아 이외 정계에 남아있는 야당들은 위성정당이거나 생존을 위해 푸틴과 어느 정도 야합한 세력들이라고 봐야 해.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푸틴보다 더 한 막장 또라이들이 득시글거리는 노답 집단이기도 하지.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지 러시아의 대표 야당 두 곳의 상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명을 보자마자 떠올렸을 그 빨갱이 콩사탕 맞아.
아니 공산당은 소련 해체하면서 같이 사라진 거 아니었어? 실상이야 어쨌든 러시아는 민주정과 다당제를 도입한 나라인데 21세기에 웬 공산당?
응, 연방 해체하면서 같이 사라졌다가 소련 공산당의 후신을 자처하며 개같이 부활했어. 기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수정주의를 가미한 '신 사회주의 락원 건설'을 내세우고 있고 현재 제1야당을 차지하고 있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소위 '눈 내리는 나이지리아'라고 불릴 정도로 헬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민심이 떡락한 옐친을 대신해 집권 여당까지 노려볼 만한 시기도 있었어. 하지만 90년대 말 옐친의 권한대행으로 푸틴이 등극하면서 fail.
어쨌든 얘네도 정권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원내정당이고, 제1야당씩이나 되는 위치라면 푸틴의 폭정을 견제하기 위해 이번 침략전쟁을 강력하게 규탄하지 않았을까?
응 아니고, 아예 당 차원에서 러시아 지도부가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어. 특히 이번 푸틴의 결단이 우크라이나, 특히 돈바스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 이번 전쟁에 대해서 사실상 한통속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해.
한 술 더 떠서 공산당 소속의 모스크바 지방의회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다른 나라에도 무장해제와 탈나치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어. 탈나치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핵심 명분이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 안해도 다들 감이 올 거라고 생각해. 이 의원이 지목한 대상 국가는 총 6개국으로 카자흐스탄, 몰도바,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폴란드야.
...잠깐, 폴란드라고?
?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히틀러랑 손잡고 폴란드를 반갈죽했던 스탈린 대원쑤 동지의 후신이 지금 폴란드에게 나치 드립을 치고 있다 이 말입니까?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지? 주변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정당화하는 건 물론 여지껏 빨갱이 사상을 고수하고 있으니 그 막장력이 푸틴에 결코 밀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
-러시아 자유 민주당
소련에서 창당의 자유가 명시되고 다당제가 도입되었을 때 만들어진 최초의 정당이자 첫 야당이야. 당명도 그렇고 팀컬러도 그렇고 어쩐지 우리와 같은 블루팀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자유롭지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으니 이름에 속으면 안돼.
정당의 창시자인 지리노프스키는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린 극우정치인이야. 대략적인 성향을 말하자면 네오파시즘에 인종주의와 대러시아 민족주의를 더하고 옛 러시아제국 영토의 수복까지 주장하는 진정한 또라이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어. 어느 정도 막장인지 몇 가지만 소개하면
1. 나치의 순혈주의를 방불케하는 극단적 인종주의자로 비슬라브인들의 출산을 제한하고 다자녀 가구에게는 벌금을 물려야 한다는 발언을 함. 이에 푸틴은 이민자들이 러시아의 가치관과 문화를 존중하면 된다며 일축. 정작 이렇게 말한 그 자신은 러시아가 아닌 카자흐스탄 출신임.
2. 양측 합의 하에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알레스카를 미국에게 속아서 넘긴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함. 물론 이때도 푸틴은 말도 안되는 개소리라며 대차게 깠음.
3. 2014년 크림위기 당시 의회 연설을 통해 폴란드를 포함한 인접국이 우크라이나 서부를 점령하고,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함. 우크라이나 중부만이 우크라이나 고유 영토이며, 동부와 서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각각 러시아와 폴란드의 땅이었으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지리노프스키가 구상한 우크라이나 동서분할 계획
이에 폴란드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독소 불가침 조약)식의 사고를 하고 있느냐"고 대경실색하는 건 물론, 정신병자나 할 법한 발상이라며 지리노프스키를 극딜했음,
4.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과 예술을 부활시키기 위해 남다른 해결법을 제시함. 주옥같은 지리노프스키의 행보 중에서도 찐광기가 휘몰아친 명연설로 유명함. 푸틴과 메드베데프 총리를 포함 정부 관계자들을 감동과 폭소의 도가니탕으로 처넣은 그의 다차원 의식체계를 감상해보자. 영상링크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대문호가 되었습니까? 강제복역을 10년 한 덕분입니다. 우린 사람들을 가둬야 합니다! 그들이 3, 4, 5년 정도 갇혀있으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나타나고 차이코프스키가 나타날 겁니다.!
이 나라에는 마야코프스키가 필요합니다! 해학도, 운율도, 2행 연구도 가진 비시네프스키가 있지만 그러나 젊은이들은 요구하고 있어요. 마야코프스키는 어디 있나? 니콜라이 루브초프도 없고, 예세닌도 없다. 시인이라고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예술과 문화의 역사는 수감자들과 성소수자들이 창조해왔습니다!
요새는 그런 방식을 쓰지 않으니 위대한 문화인이 배출되지 않는 거요. 모스크바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등 따숩고 배부른 이성애자는 예술을 창조하지 못합니다! 창조를 하는건 변태, 또라이란 말이요!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일화와 골 때리는 어록들이 대기 중이지만 그걸 다 적다보면 스크롤이 소멸할지도 모르니 여기까지만 알아보도록 하자.
최근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지리노프스키의 마지막 근황이야. 특유의 막장성으로 2중대를 넘어 현 여당인 통합러시아에 국민들이 몰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푸틴 장기집권의 또 다른 일등공신이자 든든한 파트너였다고 할 수 있지. 생전 지리노프스키에게 훈장을 내렸던 푸틴은 물론 장례식에도 매우 극진히 예우를 갖춰 참석했다고 해.
작품 등록일 : 2022-04-26
작가 돈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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