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떻게 태어났냐면

내일이면 내 생일이다. 내가 태어난 날.

몸도 쇠약해지고 돈도 없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가기 직전까지 우리 집에서 몇 년 살았다.

그때 당시 할머니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네 엄마가 네 아빠를 어떻게 만났는지 아냐.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리고 딱히 알고싶지도 않았다.

당시 아빠는 24, 엄마는 20. 둘 모두 떨어진 작은 섬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 광주에 모이게 됐다.

엄마는 소기업의 경리로 그 회사 사장의 부인이 되길 꿈꾸는 야망녀였고 아빠는 그 작은 섬에서 중, 고등학생을 일진으로 보낸 후 군복무를 마치고 일거리를 찾기 위해 광주로 왔다.

 

큰아빠가 인맥이 있었기에 공고를 나온 아빠를 어느 공장에 취직시켜주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아빠는 노조를 만들어 공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해고. 그리고 수감.

놀라신 할머니가 섬에서 급히 배를 타고 올라와 큰아빠와 면회를 왔다.

아빠는 큰아빠의 돈과 한숨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빨간줄 찌익.

 

그 후, 큰아빠가 다시 인맥을 통해 전기회사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이번에는 사고치지 않고 조용히 살겠노라 약속하고, 조심조심 시간이 흘러갔다.

슬슬 심심해진 아빠는 동료에게 여자를 소개시켜달라고 졸랐다. 동료는 섬에서 나고 자라 여자가 주변에 없다고 했고, 아빠는 섬사람이니 섬여자가 좋을 거라고 꼬드겼다.

그러자 동료는 고등학교 동창 여자 한 명이 광주에 와서 경리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번호를 받아낸 아빠는(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으므로) 엄마가 일하는 회사로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차 한잔 하자고 들이댔다.

 

황당한 엄마는 바로 전화를 끊었고, 아빠는 그 이후 매일, 같은 시간 전화를 걸어 같은 멘트를 날렸다. '차 한잔 하실래요?' 누군지도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엄마를 알게됐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빠는 타고난 능글거림과 재치로 엄마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회사 사장의 부인을 꿈꾸던 여인은 야망과 달리 숫기도 없고 수줍음이 많았으므로 그렇게 목소리밖에 모르는 남자에게 홀라당 마음을 내줘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내 한 전봇대에 이상이 생겼고, 아빠와 동료 1명이 점검을 하러 갔다.

동료는 올라가 보겠다며 전봇대 위로 올라가 전선을 건드렸다. 그리고 펑, 폭발음과 함께 동료의 사체는 아래로 고꾸라졌다.

순식간이었다. 아빠는 급사한 동료를 황망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사이 주변에서 동료들이 우루루 달려왔다. 그때, 엄마는 아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번에 전화가 오면 못이기는 척 차 한 잔 하자고 하려 했는데. 그렇게 아빠의 전화를 기다리던 며칠 사이 엄마의 사랑은 점점 더 커져갔고, 상사병으로 앓아 눕기 직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기숙사 주소를 알려준 엄마는 초조히 아빠를 기다렸다. 곧 아빠가 들이닥쳤고, 그때가 두 사람의 첫만남이었다. 아빠는 문을 잠그더니 엄마에게 건넨 첫마디가 '숨어야 해.' 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터졌는데 현장에는 아빠와 사망자 뿐이었고, 아빠의 이력에는 빨간 줄이 있었고, 회사 측에서 아빠를 용의자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번에 잡혀 들어가면 몇 년이 될 지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놀란 눈으로 아빠의 이야기를 듣다가 새삼 그의 겁에 질린 눈망울을 품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말을 마친 아빠가 물었다. '나 사랑하냐.' 고. 엄마는 대답했다. '사랑한다.' 고.

 

그렇게 아빠는 한동안 엄마의 기숙사에 숨어 살면서, 엄마가 가져다주는 밥을 몰래 먹고, 그 안에서 얌전하게 엄마만 기다렸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알게 된 큰 아빠가 사건을 수습해주었고, 아빠는 엄마를 통해 그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큰아빠 보기가 무서워 엄마의 기숙사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임신했다.

 

임신한 엄마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저 남자와 이대로 결혼을 하게 되는 건가. 내 인생이 영원히 저 남자에게 묶이는 것인가. 이제서야 정신이 든 엄마는 아빠와 헤어져야 겠다고 결심했고, 아빠는 엄마를 사로잡았던 그 눈망울에 눈물을 한가득 담고서 엄마의 다리에 매달렸다.

사랑한다고, 평생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매달렸다. 그때, 엄마는 아빠의 눈을 쳐다보지 말았어야 했다.

 

고작 23살의 나이에 애가 들어서 버린 엄마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암담한 미래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이제 아이가 생겼으니 다시 나가 돈을 벌어보겠다고 기숙사에서 나갔지만, 기숙사에는 여전히 두 사람이 살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혼란이던 엄마를 지켜보던 경리 한 명이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낙태를 얘기해주었다. 처음에는 엄마도 기겁했으나 곧 아직 팔다리도 자라지 않은 생명, 이 아이만 없으면 내가 다시 자유로워 지지 않을까. 바로 수술을 예약했고 엄마는 아빠 몰래 이틀 뒤,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임신 12주차였던 엄마는 조금 불러온 배를 쓰다듬으며 대기실에 앉아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그런데 툭, 내가 발로 찼다고 한다. 말도 안되지만, 엄마는 분명 나의 발길질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툭, 내가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엄마는 벌떡 일어났다. 비록 그 남자의 씨라고는 해도 신이 내게 처음으로 주신 생명, 이렇게 죽일 수는 없다. 평생에 처음으로 엄마의 심장이 폭발할 듯 뛰었다. 이 생명을 어떻게든 지켜야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해의 첫눈이 내리던 날. 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살아 곧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나의 존재로 두 사람이 기적적인 미래를 맞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엄마의 등골은 점점 휘어가지만,

딸 보기가 부끄러운 아빠는 점점 딸의 생일을 피하게 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살아 곧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 등록일 : 2019-01-03
생일축하합니다
개똥밭에구르는중   
ㅜㅜ
du*****   
글 잘읽었어 생일 축하해
온종일 너를 그리다   
지난글도 이글도 읽다가 울었음 ㅠㅠ 생일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매년 첫눈내릴때마다 언니글 생각날 것 같다
시진핑 사생팬   
글 잘 쓴다. 생일 축하해~~~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1년 기다리면 또 생일은 오니까.
wi******   
아아..
Happy birthday to you.
su*****   
이 글도 좋다
살아있음 된거여!!
al*****   
언니는 가슴으로 글을 쓰는구나
lu*********   
여자에게 임신이란 뭔지...
지금도 같은 일은 되풀이되고 있더라

다가올 생일 미리 축하해
je********   
글잘읽었으
우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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