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엄마가 늦잠을 자면
아버지는 엄마 몰래 동네 골목가게에서 라면을 사서 끓여줬다. 소시지와 김장김치가 듬뿍 들어간 매운 라면,
동생과 나는 평소에는 라면이나 소시지는 먹지 못했기 때문에 흥부네 아이들처럼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었다.
신나게 먹고 있노라면 뒤늦게 일어난 엄마가
그런 거 먹으면 못쓴다고 잔소리를 하고 아버지를 타박했다.
우리 셋은 쪼르르 한 이불을 덮고 낄낄거렸다.
설거지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끝날 줄 모르고
나는 라면을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1998년, 하늘이 새파랗게 화창한 날에도 누구도 웃지 못했다. 우리 엄마, 아버지만 봐도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 형제는 영문도 모르고 자주 라면을 먹게 돼서 좋았다.
매일 아침 멋지게 양복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던 아버지는
우리가 학교를 갔다가 돌아와도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주 6일은 일하던 아버지가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야구나 축구를 보러 가고 놀이동산도 백화점도 갔었는데
매일 쉬는 아버지는 좀처럼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다.
눈부시게 새하얀 메리야스를 입고 돌아누운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회사에 안 가요?'
물으면 엄마는 한숨을 쉬고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제법 눈치가 있었던 나는
암울하고 칙칙해진 분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나이라
금세 잊어버리고
동생을 데리고 나가 밤늦도록 뛰어놀았다.
한 달에 이만 오천 원씩 받았던 용돈을 엄마가 매일 오백 원씩 주겠다고 했다.
다이어리를 꾸밀 스티커도 못 사고 햄버거집 가서 세트메뉴도 못 먹게 돼버려서 조금 속상했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랑 어울려 떡볶이를 먹으러 다녔다.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돈을 아껴서 저금통에 저금했다.
시커먼 눈이 쓱쓱 그어진 빨간 돼지 저금통,
성인 머리보다 2배 크고 옆으로 퍼진 몸뚱이 위에 금칠이 되어 있었다.
나의 돌잔치 때 아버지 회사 동료가 돌반지를 주면서 같이 선물해주셨다.
저금하는 슬기로운 습관을 키우라는 메시지와 함께.
엄마와 아버지가 주로 쓰고 남은 동전을 넣어 줬고
나는 세뱃돈이나 남은 용돈을 넣었다.
참 엉뚱하게도 늘 책상 위에 가만히 있는 돼지 저금통인데
어느 날부터 깊숙이 숨기고 싶어졌다.
결국 고작 숨긴다는 게 내 방 옷장 속이었지만.
나는 곱게 긴 생머리를 단발머리로 잘랐다.
누가 자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엄마를 조르고 졸라 동네 미용실에 가서 잘랐다. 내 기분이 그랬다. 긴 머리카락 따위 자르고 싶었을 뿐.
엄마는 단발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르고 할머니처럼 파마를 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어떠냐고 묻는 엄마를 보고 나는 그 모습이 싫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십 년이 넘도록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언제부턴가 매일 아침 일찍 나갔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에서 낡은 엘피판들을 꺼내서 정리하고 닦거나 대학교 시절 책이나 노트를 들여다봤다.
엄마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자 나와 동생은 마음이 불안했고 심지어 동생은 초등학생이나 돼가지고 엄마가 올 때까지 매일 울었다.
늘 첫째 답지 못하다는 소리만 듣는 나지만 그때만큼은 동생이랑 같이 울지 않았다.
눈물이 차서 삐져나올 거 같아도 동생 앞에서만큼은 울고 싶지 않았다.
꼭꼭 눌러 담으려 해도 나도 어린애니까
집에 돌아온 지친 엄마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또르르 흘러
화장실로 달려가서 거칠게 세수를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동생의 머리통을 조용히 하라며 리모컨으로 때렸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악마인가.
내 마음은 끝도 없이 차갑고 시리게 얼어붙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꽤 강한 아이였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버지를 향해 눈깔을 부라리고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며
동생을 때리지 말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가장 자신을 많이 닮은 나를 때려죽이진 않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를 더 이상 손찌검하지 않았지만
결국엔 모든 불똥은 엄마에게 튀어서 둘이서 무수히 많은 밤을 싸웠다.
그때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텔레비전에 나와 회사 대표로 노태우 대통령이랑 악수를 해서 온 동네가 난리가 났고
폼나게 pcs폰으로 집으로 전화를 하고 제일 빳빳하고 질 좋은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며 장롱 한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넥타이가 걸려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매일 어떤 기분으로 집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엄마와 우리는 아버지와 분리되었다.
한 집에 있어도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인 것처럼 지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가 학교 준비물은 잘 갖고 다니는지,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뭐가 되고 싶어 하는지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릴때는 글짓기에 소질을 보여 상도 타고 주변에서
작가가 되라는 소리를 들었다.
작가가 되겠다,라는 생각은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지만
글을 쓰면 결국 작가가 되겠지 싶었다.
그러니까, 글을 써야 작가가 되겠지,
나는 책이 더 이상 읽고 싶어지지도 글을 쓰고 싶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동생은 네 살 때부터 다니던 태권도 학원을 그만뒀다.
모든 게 한계에 부딪히고 담담하게 포기해야 할 건 포기해야 하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일어났다.
작은 나의 방 창가에는 수십 개의 마론인형이 낡은 옛 옷을 입고 조르르 앉아있고
한쪽 벽을 가득히 채운 책들 위에 먼지가 쌓였다.
울컥한 마음에 비닐봉지에 마론인형들을 담았다.
하도 세게 던져서 다리가 빠지기도 하고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 아버지가 생일이며 크리스마스며 혹은 그냥 사준 것들이었다. 특히 제일 갖고 싶었던 바비인형은 내 생일날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맡에 있었다.
너무 기뻐서 소리를 빽 지르고 안방으로 달려갔다.
데미안, 셰익스피어 비극과 희극, 장미의 이름. 토지 등
순서였었나. 대부분의 책들이 아버지가 회사 밑에 있다는 문고에서 사줬다. 어렵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더라도
무언가 어른다운 것들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재미에 읽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제일 좋아해서 엄마 몰래 밤새도록 읽고 또 읽기도 했다.
차곡차곡, 다 버리기로 했다.
아무것도 못 버리고 과거 속에 사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엄마가 책만은 버리지 말라고 말렸지만
이미 다 읽어서 상관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거 같고
내 유일한 낙은 빨간 돼지 저금통을 쓰다듬는 것이었다.
동전을 넣는 틈으로 살짝만 봐도 돈으로 빵빵하게 차오른 몸뚱이가 탐스러웠다.
빨간 돼지의 무심하고 깊은 검은 눈동자를 보면
마음이 든든했다.
나를 지켜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를 지켜주고 있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급식비를 안 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매우 창피했지만 동생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거 같아서 마음 아팠다.
엄마는 넌지시 각종 세금도 내야하고 밀린 돈도 갚아야 하고 우리들 급식비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빨간 돼지가 나만의 것이라는 착각은 그렇게 깨져버렸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흐릿했고 토요일이었다.
어제도 먹었던 라면을 엄마는 조금은 색다르게 떡국떡을 넣고 끓여줬다.
아버지도 엄마도 나도 동생도 묵묵히 둘러앉아 라면을 먹었다. 아버지는 후루룩 빠르게 라면을 먹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와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내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빨간 돼지를 꺼냈다.
엄마는 망치와 식칼로 빨간 돼지의 배를 갈랐다.
우수수 터져 나오는 동전들과 꾸깃꾸깃 접힌 지폐들.
만원짜리 지폐가 꽤 많았다.
나와 동생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재빨리 동전을 비닐에 담았다.
평일보다 빨리 닫는 은행 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준비했다.
정신없이 은행으로 달려간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문 닫기 전에 도착했다.
나와 동생은 동전을 다 셀 때 가지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사십여만원.
동전만으로도 그 정도 돈이 되었다.
엄마가 오랜만에 신나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각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저녁에 먹을 삼겹살도 한 근 샀다.
나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빨간 돼지가 생각났다.
배를 아주 흉측하게 갈랐는데도 무덤덤해 보이던 빨간 돼지의 검은 눈.
툭하면 눈물을 잘 쏟는 나인데,
매정해진게 아니다.
마음이 아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동생과 방방을 타러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선뜻 놀고 오라고 천원을 내밀었다.
긴 세월 빨간 돼지가 품고 있었던 천원.
네모 반듯하게 여러 번 접어 볼품없는 천원.
그 돈으로 미친 듯이 방방을 뛰었다.
옷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리고
그러고도 동네를 뛰어다니고 쏘다녔다.
허기진 동생은 분식집 앞에서 멈춰 섰다.
" 먹을래? "
내 말에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떡꼬치를 하나씩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애써 발장난을 치며.
작가 돈주기
작가 다른글
|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