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에 대한 노스탤지어 (5)
조언니 2019-02-18
#불편함에 대한 노스탤지어

(스마트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천천히 오롯이 나를 지키는 연습)


스마트워크. 더 빠르게. 경쟁. 성공. 이기다. 돈. 자본주의. 부자. 시스템. 분업.

나를 피곤하게 하는 단어들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지, 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지. 그 의미를 잃어갔다. 유튜브에서도 부의 추월차선과 같은 콘텐츠에 대해 들으면서, 이전에는 동기부여가 뿜뿜되었는데. 이제는 피로하다. 마냥 듣기 싫다.



차라리 잔잔한 재즈를 듣는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은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소한 일상, 건강한 하루를 위함이 아닌가?



나도 한 때 정말 열심히 돈을 벌어봤다. 흔히 얘기하는 억대 연봉이나, 월 천도 찍곤 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나를 기계화했었다. 이제는 그랬던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

건강에도 격차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80살까지도 일하고, 100살까지 건강한 사람. 어떤 사람은 나이 4~50에도 건강하지 않은 사람. 이대로 가면 건강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실제로 나는 건강이슈로 인해, 회사 다닐 때는 병가를 낸 적이 있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야근머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서 몸이 일어나지지가 않는 거다. 그 날은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날이라,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내 서랍의 짐들을 우리 팀 동료들이 들고가야 한다는 민폐가 있음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로 몸이 일어나지지 않아서, 회사에 출근할 수가 없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믿는 건강에 발등이 찍힌 거다.



그 때부터였다. 조금만 무리하면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이게 부정맥인지 알았다. 다음에는 이게 공황장애인 줄 알았다. 물론 공황장애는 심장이 안 좋으면 같이 온다고 한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기에, 무기력증 또는 우울증인 줄 알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무서웠기에 대인기피증인 줄 알았다. 조금만 갇힌 느낌의 공간에 있어도 무서워졌기에, 폐쇄공포증인 줄 알았다. 친한 친구들이나 친척과도 전화를 받을 수 없고, 카톡 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심할 때는 버스를 타거나, 영화관에 가는 일 조차 할 수 없었다.



빨라야해, 경쟁에서 이겨야해, 구독자 수를 많이 모아야 해, 취업강사 분야에서 이왕이면 짱먹어야해, 더 많은 일을 해야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해 등등



나를 혹사하는 것이 어떤 누구도 아닌.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이 나를 잠식하고, 건강까지 악화시킨 것이다.



00해야한다는 조급증은 욕심이 아닌 불안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월 200만 벌어도, 아니 150만 벌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나는 때때로 불편함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편하려고 가공식품을 먹으며 살아갔던 나날들. 왜 꼭 그래야하는가? 오장육부는 하루하루 불편해졌고. 위와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가던 어느 날. 그렇게 경종이 울려졌다.

굳이 퍼스널 브랜딩하지 않아도 돼, 굳이 마케팅하지 않아도 돼. 굳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돼. 생각해보면 나는 월 250벌며 하루에 4시간 일하던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 가장 행복했었다. 그 때는 드라마도 보고, 책 읽고, 주말이면 교외에 나가 딸기를 따기도 했다. 내가 직접 딴 딸기들로 잼을 만들었을 때, 그 잼을 식빵에 발라 맛있게 먹었을 때가 참 행복했다. 교외에 나가 간장게장을 먹고, 바베큐를 해먹었을 때. 교외로 나가서 핫도그도 사먹고, 포켓몬고를 할 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 그 때는 그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다.



이상은 크고, 이를 따라가기 위한 내 현실들은... 순간을 즐기지 못 하고,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했다. 홈페이지를 만든다든가, 블로그에 글을 쓴다든가,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도 취업과 관련된 콘텐츠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컨설팅이 끝나자마자, 영업전화를 돌리는... 일을 하기 위한 삶.



이제는 매일 컨설팅을 하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되었다. 왜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는 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 책을 쓰신 작가분도 참 열심히 살아오신 것 같다. 그리고 나서야 밀려오나보다 후회라는 것은.



이제는 그저 오래오래 가고 싶다.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공식품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고 싶지가 않아졌다. 오늘은 동태전을 했다. 후라이팬 하나로 계속 부쳐내려니,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래도 행복했다.



동태포를 쌀부침가루에 조물조물, 계란풀어 파를 송송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동태전들을 부쳐갔다. 참 맛있었다. 남자친구는 맛있다며 칭찬해주었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끝낸다는 것. 그것은 참 큰 성취감이다.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이다. 더구나 내가 만든 이 요리라는 작품을 즐겨주는 이 있을 때, 맛있다고 인정해줄 때. 마치 내가 인정을 받는 느낌이었다. 불편함에 대한 노스탤지어란 이런 거였다. 내일은 양배추 샐러드랑 명란마요밥을 만들어볼까?



물건 다이어트도 해 볼 것이다. 뭔가 부족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즐기며. 대신 널널한 공간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대신 돈을 덜 벌 수 있다.



이래서 돈을 버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벌어야 하는 게 맞다. 선순환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라도 콘텐츠를 좀 더 내가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 쪽으로 점점 더 바꿔가야 한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그게 나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재능. 즉 잘 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은 나에게 취업컨설팅이다. 특유의 센스와 꼼꼼함을 바탕으로 컨설팅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의 삶을 조금 더 편하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감사하되, 이제는 라이프스타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드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꿀 수 있도록 영상편집을 더 배우고.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실천해야할 것이다.



영상편집은 10분짜리 영상을 잘 만드려면 10시간도 걸린다니... 그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어찌 보면 의미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 스마트하고 빠른 세상 속. 내가 따라잡기는 너무나 빨라져버린 이 세상. 불편함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조금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니 글 너무 좋다
10달라 드렷어

언니가 쓴 글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야
나도 그런 삶을 원해
앞으로 그리 살거여
ej**** 2019-02-24 답글쓴이 돈주기   
나랑 비슷하네 언니. 백만번 공감한다~~
la******* 2019-02-24 답글쓴이 돈주기   
❤️
난 스마트폰이 너무 지겨워져서 어플들 다 지웠음
넷플릭스, 유튜브 구독도 다끊고 인스타도 지움
2019-02-24 답글쓴이 돈주기   
ㄴ 고마워 언니들 유튜브에서 미니멀리즘 검색해서 봐도 힐링되드라구♡
조언니 2019-02-25 답글쓴이 돈주기   
한병철의 피로사회 읽어봐
an**** 2022-03-23 답글쓴이 돈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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