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절대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곳에 가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날은 내가 다니는 방송통신대학교 시험 날이자 일요일이었다. 여름이었으니까 아마 중간고사 기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인천의 지역대학에서 지정한 시험 장소는 집과 아주 멀었다. 지도의 길 찾기 기능을 이용해서 미리 버스 노선을 알아봐 두었지만 실제로 버스를 타고 노선을 달리니 느낌이 좀 달랐다.
일요일 오전, 비 그친 다음 날이라 그런지 햇살이 깨끗했음에도 내 마음은 느긋하지 못했다. 지금쯤 내리면 되려나, 싶은 지점에 다다랐는데 하필이면 도로 공사로 인하여 길이 막혀 있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그 지점에서 내렸는데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뒤를 따라 내리고 말았다. 나처럼 시험을 보려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을텐데 달랑 한 사람을 믿고 내린 것부터가 실수였다. 흙먼지가 콧속을 파고 들었고 레미콘이 웅웅거려서 귀가 먹먹했다. 게다가 입실 시각이 5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학교가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나중에 알아차린 거지만 한 정거장 앞서 내린 것이었다. 공사 관계로 원래 인도가 있어야 할 자리가 사라져 있었고, 공사중임을 알리는 꼬깔들이 일 미터 간격으로 형광색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갔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고깔들을 무시한 채 질주하는 차들과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를 기준으로 왼쪽 대각선 방향에, 학교로 짐작되는 건물이 보였다. 여자처럼 쿨하게 고깔들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시험장이 아니라 영안실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우회하는 길이 있었다. 전날 내린 비로 황톳물이 찰랑거리는 도랑 위에 철판이 깔려 있었는데, 일종의 길목이었다. 공사현장 길목이긴 했지만 인부의 허락을 맡고 빠져나가면 거뜬히 지나갈 수 있을 듯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도랑을 건너던 나는, 한쪽 발이 도랑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인부는 별 말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안됐네요' 를 말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이제 입실 시각은 1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미친듯이 시험장으로 쳐들어가서 축축한 신발과 바지를 애써 무시하며 1교시 시험을 치렀다.
2교시가 끝나자 점심 시각으로 짐작되는 1시간 반 정도의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오후 시험을 두 개나 더 치러야 했다. 내 물리적 허기 또한 깊어서, 편의점의 간편음식 따위로는 만족할 수 없을 듯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식당다운 식당이 아무 데도 없음을 깨달았다. 학교 주변이 온통 공사판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신도시나 재개발 구역인 듯했다. 짐작으로 가득한 하루구나, 체념하며 그나마 가장 번화해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좀 걸어보기로 했다.
이상했다. 슈퍼마켓, 철물점, 미용실, 애완샵... 을 지나서 아무리 길을 걸어도 식당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골목의 사람들은 모두 밥 먹으러 어디로 갈까? 지형 또한 매우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가게들이 사라지더니 길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행인이나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허기는 극에 다다라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찾아내야 했다. 나는 방향을 틀어서 다음 골목길로 들어섰다.
오아시스를 찾아낸 사막의 거상들도 그랬을까.
낡아빠진 중국집 간판이 보였다. 빙고! 은색 철가방이 실린 오토바이가 반가워서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행히 비명을 지를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지는 않았다. 나는 침착한 척하며 갈색 구슬과자를 닮은, 광택이 도는 실커튼을 지나서 중화반점 탁자에 앉았다.
90년대에 구입했을 것 같은 조그만 텔레비전에서는, 최신식 냉장고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지금 몇 년도로 왔는가.
"뭐 드릴까요?"
물통과 컵을 내려놓은 아주머니는, 뭐하러 이곳까지 점심을 먹으러 왔는지 궁금한 기색이었다.
"짜장면이요."
오이채가 흩뿌려진, 검게 기름진 짜장면이 나왔다.
그 때 어떤 아저씨가 들어왔다. 초면에 이런 말은 실례지만 안방 벽에다 톱이 다섯 개는 걸려 있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는 상상에서처럼 빙글빙글 면발을 젓가락에 감았다. 일단 면발을 먹기 시작하자 다행히 생각은 중단되었다.
돼지고기와 애호박이 들어 있는 짜장 찌꺼기를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먹은 다음, 몇 조각 안 되는 단무지까지 해치우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모금, 물을 삼킨 순간이었다. 방심하던 차에 톱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침묵 사이로 '그동안 쭉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자막이 지나갔다. 그는 사냥꾼이었고 무언가 사냥할 것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 나는 얼른 값을 치르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 날,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은 것은 아저씨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중화반점이 진짜루 거기 있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잠시 신기루에 홀려서 다른 시간에 다녀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오스스함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