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먼저 밝히고 싶은 건, 나는 고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절대로, 네버, 완전, 정말. 그것부터 우선 믿어주기 바란다.
당시 나는 대학 문예창작과에 휴학계를 내고, 공익 근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주 업무는 전화로 욕을 듣고, 민원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세절기에 A4용지를 한 박스씩 가는 것이었다. 나이 지긋한 계장의 술시중을 드는 것도 내 몫이었다.
머리숱이 조용히 줄어가던 그 때, 선배가 알려준 것이 다음카페 ‘습작생들’이었다. 선배 말로는 이곳을 통해 등단이나 출판에 이른 사람이 꽤 된다고 했다. 너도 여기서 함께 활동하자는 거였다. 카페는 무척 활성화되어, 이미 수 백 편에 달하는 소설들이 올라와 있었다.
탄력을 받은 나는 가입하자마자 글을 올리기로 했다. 퇴근 후 잠들기 직전까지, 꼬박 5시간을 투자해서 간신히 한 편을 완성했다. ‘파인애플이 어울리는 여자’. 그것은 올해 초 있었던 일을 가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단편 소설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추천수 112개, 덧글 17개! 예상보다는 적긴 해도, 다른 소설에 비하면 2배는 많은 추천수와 덧글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심장이 2배는 커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던 손이 어느 지점에서 얼어붙었다.
[닉네임 누노 : 아프리카코끼리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어 외람되게도 몇 자 덧붙여 봅니다. 주인공이 술김에 친구랑 오피를 갔다, 친구는 열심히 일을 치렀지만 자기는 너무 예쁜 여자분이라 이야기만 나누다가, 화대랑 마침 들고 있던 파인애플을 선물로 주고 나왔다? 결정적으로 그 여자가 먼저 자기 전화번호를 팔뚝에 적어줬다는 마무리... 글쎄요... 겉멋 같은 데요. 다시 말해 여자와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일부러 순교하고서, 그것을 훈장처럼 드러낸 글이라고나 할까요? 아, 작품에 국한하여 말씀드린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얼굴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다짜고짜 이토록 무례할 수가!
덧글로 분노를 표출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망신살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엿을 먹여줘야 하나.
아이디를 추적해보니 이 사람은 여기서 활동한지가 2년이 넘어 있었다. 올린 소설은 도합 38편, 추천 수는 언제나 세 자리였고, 정모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한테 말고, 다른 댓글에선 하나같이 친절했고 정중하며 사려 깊었다. 내가 너무 잘 써서 억하심정이라도 생긴 건가? 흥, 저도 아마추어 주제에!
아직 출근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생수 500cc를 원샷한 다음,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타르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닉네임 아프리카 코끼리 : 누노 님, 경험담을 옮겨 쓰다 보니 일기 같은 측면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셨나 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자를 품을 기회가 생기면 남자는 되레 뒤로 물러서는 법이고요(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진짜로), 훈장이니 뭐니 하는 마음으로 쓴 글 절대 아닙니다. 진심을 증명할 수는 없으니 님이 그렇게 보신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댓글 주신 것도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해요 ㅎㅎ]
잠시 뒤 댓글이 달렸다.
[닉네임 누노 : 솔직한 감상을 말한 것뿐입니다.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고는 글쓴이의 몫이겠죠. 그리고 사이좋게 지내는 건 이와 별개의 문제인 듯 ㅋ]
나는 나도 모르게 노트북을 꽝 하고 소리 내어 닫았다. 시타르 소리가 뚝 하고 끊기고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거 순 꼴통 아냐?
실시간으로 중재를 시도하는 아름다운 댓글들이 이어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열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약이 올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분명 찐따 새끼일 거야. 친구도 없고, 뿔테 안경에, 거들먹거리는 꼰대 새끼. 으아아!
나는 출근을 하자마자 메신저로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누노라는 인간을 알고 있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선배는 엄청나게 잘 안다고 했다. 내 글, 그리고 덧글 논쟁도 다 지켜봤다는 거였다.
[선배가 읽기에도 별로에요? 솔직히]
[재미는 있던데? 팔뚝에 전화번호 써줬다더니 그것도 사실적으로 다 썼더구만ㅋㅋㅋㅋㅋㅋㅋ 너도 정상은 아니다 새꺄]
[누논지 니나논지는 실제로 만난 적 있어요?]
[어 정모 와. 근데 그거 아냐? 걔 씨발 전~~~~~~나게 이뻐요ㅋㅋㅋㅋ 나 포함 남자새끼들 다 걔 때매 가는 거ㅋㅋ]
[이쁘다고? 여자야?]
나는 머뭇거렸다.
[형, 다음 정모는 언제라구?]
*
‘습작생들’ 정기 모임은 그로부터 2주 후, 토요일 저녁 신촌에서 열렸다.
누노라는 인간이 누군지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까맣게 변해버린 파인애플을 들고 나타났다. 탱글탱글한 가슴, 쫙 뻗은 다리, 윤기 나는 입술. 모든 게 그 날 밤과 똑같았다. 그녀는 내 가슴에 파인애플을 안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고자 새끼. 왜 전화 안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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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게 올렸던 건데 찾아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지운 거 같지만 왜 언제 지웠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문학게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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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전에 올렸던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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