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의 사전적 의미에 기대자면, 그러니까 스포트라이트라는 게 세상 사람의 주목이나 관심을 받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임을 감안한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스포트라이트의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은 내 인생의 암흑기에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는커녕 볼펜 똥만한 크기의 불빛도 없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 멍하니 교실에 앉아서 창문을 내다보면 모래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내가 졸업한 중학교가 보였다. 그 여자중학교와 여자상업고등학교는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두 채의 낡은 건물이 쌍둥이처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는 희망이란 게 있었다. 쥐색 체육복을 입고 느적느적 궁둥이를 움직이는 동급생들을 보면 한숨만 나왔다. 기억하라, 누군가의 인생을 효과적으로 망치고 싶다면 그가 혐오하는 집단 속에 3년만 처박아 놓으면 된다.

진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학교는 아홉 시 뉴스에 학교 폭력 사례로 보도되었다. 폭력의 가해자는 나와 같은 학년 같은 반 여자아이였다. 늦은 저녁,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잊었지만 대걸레 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처참한 사건이었다. 어느 하교길에는 낯익은 얼굴이 다방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얼핏 어른 여자처럼 보였으나 밤에 세수를 하면 내가 알던 옆반 친구의 얼굴이 드러날 터였다.

나 역시 말하기 힘든 가정사로 고통 받고 있었다. 온 세상이 미쳤다는 핑계를 대며 남들처럼, 착실한 모범생의 길을 걷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처지를 알아주던 여자친구와 진지하게 사귀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로 했던 일은 에곤 실레 그림 베끼기, 음반가게에서 음반 훔치기, 기타 줄 갈면서 잘난 척 하기 등이었는데 그 중 가장 열정적으로 임했던 비행은 지금의 코인 노래방 전신(前身)쯤이었던 오락실 노래방에서 목이 쉴 때까지 락큰롤 부르기였다. 크라잉넛과 니르바나만 있으면 온 세상이 미쳤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2인 밴드를 결성했는데 그 이름도 찬란하다, "거지발싸개".

우리는 나날이 간이 커졌고, 더 이상 노래방 부스에 갇혀있지 않기로 했다. 학교 소풍, 축제의 장기자랑에서 힘을 얻은 우리는 결국, 그 해 가을 벌어진 지역축제의 노래자랑에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그 순간을 떠올리니 갑자기 발밑이 사라지는 것 같다. 오, 신이시여, 누가 그들 좀 말려주세요.

햇살이 아름다운 어느 가을 오후, 바닷가 근처의 공원에서 가설무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촌구석의 지역 축제이긴 했지만 제법 큰 규모의 행사였다. 휴일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 더 이상 성별 구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노인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객기였는지 물러나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앞머리로 눈을 가린 채 서태지와 아이들의 ‘울트라맨이야’를 열창했다. 불타! 버려! 우린 쓰레기인 걸.

누가 먹다 남긴 포도 껍질이라도 무대에 던졌으면 좋았으련만. 트로트 대잔치를 기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몇 남지 않은, 입을 떡 벌린 동네 주민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무대를 내려왔다. 젊음이 느껴지는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사회자가 우리를 도로 무대에 불러들였다. 태양은 거대한 스포트라이트로 변해 우리를 비춰주었다. 특별상이라며 황금색으로 칠해진 플라스틱 트로피가 품에 안겨졌다. 그 순간이 기뻤던가, 그 반대였던가.

창고에 처박혀 있던 그 트로피는 곧 불타! 버린! 쓰레기로 변했고, 음반가게 사장에게 좀도둑질이 걸려 반성문인지 서약서인지를 썼다. 거지발싸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나 나는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세상 사람의 주목이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도대체 무슨 짓들을 벌이고 있는걸까?
작품 등록일 :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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