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감각을 한번쯤 느껴본 적이 있는가?
느껴지기는 하는데 그 근원이 도대체 어디인지 찾아도 찾아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감각.
분명 충분한데, 원하는 것 다 가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슴 언저리에 남아있는
가슴을 옥죄여오는 조바심,
껌껌하고 큰 구멍과 공허,
근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허기를 느껴본 적이 있나?
그렇다면 잘 왔다.
이제부터 함께 그 감각의 근원을 찾아가보도록 하자.
처음엔 납득이 안된다.
모든것이 완벽한 이 때,
정신도 안정되어있는 듯 하고(월간이드 ㅈㄴ읽었잖아)
외부 환경도 내게 몹시 호의적인데
왜 나의 내부에는 여전히 이런 불쾌한 잔존감이 남아있을까?
그러면 앞으로 계속 노력하고 노력해도,
이런 이상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살다보면 머릿속에서
어디선가 주입받은 이미지를 재료로ㅡ그것은 스쳐지나간 누군가의 브이로그에서,꽤나 행복해보이는 여자애의 입 밖으로 나온 소리에서 등장함ㅡ 환상의 왕국이 세워진다.
이 환상의 왕국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에게는 안전한 양육환경 속에서 풍족한 지원과 평생에 이어지는 무결한 사랑을 받아야 해.
친구와는 시기질투없이 위기의 순간마다 서로의 힘이되는 순수한 마음을 나눠야 해. 신뢰로 가득찬 우정 같은거 말이지.
애인에게는 공주대접, 남편에게는 보호와 부양, 맹목적 애정을 받아야 해. 여자에게는 영원한 내 편이 필요하지. 그건 여자가 행복이란 천국으로 가는 데 필요한 티켓 같은거랄까.
타인에게는 미소와 친절을 받아야 해. 내주위에는 항상 나에대한 호의로 가득찬 좋은 사람들로 가득 해야해.
받아내야 해. 더, 더. 왜냐면...그것이 내가 좋은 사람이며, 좋은 인생을 산다는 증거니까. 이로써 나의 존재는 증명되니까.
좀 더 살다보면 당신은 깨닫게 된다.
아, 나는 그 환상의 왕국의 국민이 아니구나! 아마 어쩌면 평생!!ㅡ 여기서부터 공허가 반틈씩 자라나 존재를 야금야금 메워가게 된다.
그때즘 불행이 파리의 모양을 하고 나타나 귓가를 윙윙대며 속삭인다.
분명 나 꽤나 괜찮은 것 같은데 왜 동시에 이렇게 불행한거야?
그래. 난 받았어야 했는데. 내 생각엔 나는 아무래도 그것을 충분히 받아내지 못한 것 같다. 남들은 다 받아내고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나만, 나만 고양이 없어!!!
비참하다. 초라하다. 나는 그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일까. 왜 누구도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거야?
사실 나 별론가?
나는 '그 정도 밖에 안되는'사람인가'?
ㅡ나는 부적격자인가? 받지 못한 나는?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지쳐간다.
질병처럼 허기가온 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받아내야할 것을 받아내지 못한 박탈감으로 몸이 쩍쩍 메말라간다. 거지도 아닌데 어느날부턴가 구걸하는 빈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뺏긴적도 없으면서 출처모를 박탈감과 억울함에 자면서 이불을 뻥뻥 차기도 한다.
당신의 존재가 소리친다. 누가 좀 저한테 주세요! 제발 저한테, 사랑과 인정을 주세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좀 알려주세요!! 좀 주라, 그게 어려워?
이때쯤 허기진 정신이 만들어낸 환상의 왕국에서
받아내야 했을 것들을 받아내지 못해 탈진한 당신의 뇌가
정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그래...
이 모든 문제는 내가 받을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야. 남들한테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면 돼.
그럴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면 돼. 그러면 문제 없어,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은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받을 수 있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오력, 노오력을 하자!
이제부터 눈물없인 못봐줄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ㅡ이것은 환상의 왕국에서 살 수 있는 영주권을 따내기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이다.
당신은 부모의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착한아이가 된다. 말 잘듣고, 공부 잘하면 언젠가 받을 수 있겠지 사랑.
당신은 친구의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된다. 유머감각으로 무장하고, 선물 돌리고, 성격 좋은 척, 좋은 사람인 척 좀 해주면 갖을 수 있겠지 완벽한 우정.
당신은 애인의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예쁜 여자가 된다. 머릿결은 어떻지? 눈 크기는? 돌려깎고 라미 하고, 코좀 높이면.. 사랑받을 자격 있는 여자가 되겠네.
당신은 타인의 호의를 받아내기 위해 있어보이는 사람이 된다. 귀티 좀 나나? 없어보이진 않나? 내 생각엔 명품을 좀 더 둘러야 할 것 같애. 향기는?
당신은 타인의 관심을 받아내기 위해 SNS에 사진을 올린다.오늘은 이 식당, 오늘은 이 호텔. 여행지는 여기. 이정도 가격이면 너무 저렴한데... 조금 더 있어보이는 곳에 있어보이는 음식. 하트 천개는 받을 수 있겠지?
.
.
노력들로 가득찬 나날들이 계속된다.
그런데 도무지 해도해도 끝이 안 보인다.
결숙 지친 몸과 마음이 아우성댄다.
대체 언제까지
노력, 노오력, 노오오오오오오오력 해야되는거지?
분명 내 인생의 주인은 난데, 남이 언제 사랑주고 관심 주나 목매다느라 신경이 온통 거기에만 가 있는게 이상하다. 마치 배급을 받으러 나온 노예같다. 분명 목줄은 없는데 모가지가 존나 답답하다. 내가 사람새킨지, 남이 키우는 개새킨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인생은 내꺼 내인생인가? 아님 남꺼 남인생인가? 니가그린그림은 내가그린그림인가? 바로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심지어, 이렇게 노오오오오오오오력 해도 원하는 것은 손틈 사이를 잠깐 스칠 뿐, 좀처럼 손에 콱 하고 잡히질 않는다.
더많은 관심을 받아도, 하트를 받아도, 번호를 따여도 충분한 만족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진즉에 채워져야 했었을 공허가 메꿔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커져 이제는 가슴 팔 다리 내장 뚫리지 않은 구멍이 없었다. 구멍 틈새로 서운함이 칼바람 처럼 통과해 마치 피라도 나는듯이 아팠다.
난 대체 뭐지?
노력으로 인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예전엔 좀 허기지기만 했는데 노오-호오-력을 끝마친 지금 당신에게 남은 것은 피날듯 아픈 서운함과 배신감, 그리고 미친듯이 질척거려 눈코입을 다 덮을 정도의 냄새나는 원망 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과가 이상하다.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노
오
오
오
오
오오
오
오오오
오
오
오
오력 했는데도 안줘? 더 안 줘? 그거밖에 안줘? 왜 나만? 남들은 존나 쉽게 얻잖아. 이 짓거리를 얼마나 더? 더러운 세상! 썩을놈의 인간들아! 더러워서 안해.
대체 얼마나 더 해야 언제쯤 사랑받고 인정받고 대우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는건데?
그때쯤 노력에 지친 당신의 뇌는 비로소 올바른 인과관계를 조립해나가기 시작한다.
근데 나 왜 이렇게 세상에 받아내야 할 것이 많을까?
어떤것을 '받아내는 것'으로, 정말 나의 가치가 정해져버리는 건가? 그런 것들을 받지 못하면 무가치한 사람인 건가?
그딴 씨발 개같은 세상이 어딨지? 내가 사는 내 세상이 그정도로 우스꽝스럽다고? 내가 광대새키야? 내인생이 무대야?
남의 사랑이, 인정이, 애정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내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거지?
누가 이딴 세상을 만들었지? 그리고 나는 왜 그런 세상에 암말 없이 순응하며 그렇지, 나 관심사랑애정긍정 못 받고 살았지. 나는 별로인 사람인가봐ㅡ 하며 살았지?
나, 왜 그렇게 받아내려고 애를 썼지?
왜 그렇게 사랑이 받고 싶었지?
왜 그렇게 인정이 받고 싶었던 거지? 마치 그거 안 받으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왜 그토록 평생을 허기진채 살아왔을까, 나는.
앞으로도 계속,
평생 이렇게 받아내기 위해 안간힘 쓰며 살아야 되는거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처럼 보이려고 하면 할 수록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이제 모든 것을 멈추고
가슴 속에 거울을 하나 꺼내 들여다 본다.
거기엔 평생을 남에게 구걸하며 살아온 처량맞은 몰골의 인간이 하나 서 있다.
그지색히다.
시간이 생겨 그 사람을 좀 들여다보기로 한다. 계속 보다보니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든다.
...얼마나 열심히 구걸하러 다녔는지 신발엔 구멍이 나 있고 볼은 패인 채 퀭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한테 빌고 빌었는지 손바닥엔 긁힌 상처가 나 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애원하고 있다. 제발 이 고통을 끝내 달라고 말이다.
나는 오래 노력했고, 너무 지쳤고, 이제는 편해지고 싶다고.
이 모든 노력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고.
그러고선 이제 그냥 존재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저 그냥 존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생각해본다.
내돈 내가벌어 떳떳히 먹고살던 당신을 구걸하며 빌어먹는 거지로 만든게 무엇인가.
이제 모든 노력을 중단하기로 한다.
나 이제 거지그만하겠다고
구걸 그만하고 살겠다고
이제 나 그런거 필요 없다고 안받겠다고 세상에 선언하기로 한다
사실은 받고 싶었다고. 죽을 힘을 다해 받고 싶었다고.
근데, 받을만한 사람이 되면 주는 줄 알았는데 노력하면 할 수록 어째서인지 더 배고팠다고, 채워지지 않았다고.
이제는 알겠다고
문제는 받으려는 마음이었다고ㅡ
아니,
받아야만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받아내지 못하면 이상하고,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뒤틀린 생각이었다고.
우뚝 서서 선언한다.
이제 내 세상에 그런거 없다고
사랑받고, 관심받고, 인정받는게
너무나 죽을듯이 좋았고
그것이 세상 전부인줄 알았는데
어느날부턴가
등에는 짐이 가득하고
발엔 모래주머니가 달린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고
그래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이쁨받는거 너무너무 좋았지만
이제는
전부 다 놔 주고
그냥 살려고 한다고.
못받아도 괜찮아! 너는 그대로 완전해! 이따위 허울좋은, 공주들? 떡볶이먹은 다음에 죽자앙~ 식의 위로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제밥 제가 벌어먹고 범죄이력 하나없고 평생을 세상에 부끄러울 짓 한 번 안한 성인 여자가,
단지 그까짓 생각 하나때문에
평생을 남에게 사랑 인정 관심 구걸하며 싸구려 동냥 거지로 살고, 등따숩고 배부르게 살면서도 마음은 매번 만성 허기와 허탈감에 시달리며 당장 아프리카에 내놔도 손색없을 기아 난민수준의 그지꼴 멘탈 이제 그만 그만 지겨우니까 그만해버리자고 그딴거 이제 버려버리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열병처럼 시달려온 환상을
평생, 너무나 살고 싶어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던 환상의 나라를
이제 그만 부수기로 한다.
망치를 들고 사정없이 쿵.쾅.쿵.쾅 내리친다.
환상은, 부서지면서도 잔해 하나 남기지 않고
마치 오래 시달렸던 시절이 거짓이라는 듯이
당신에게 뭐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부서진다
이제 이 짓거리 그만 두는거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사랑 관심 애정 배급받아 연명하던 남이 키우는 가축놀음 그만 두는거다.
당신은 너무 오래 노력해왔고,
너무 오래 소진되었으며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이제 줄 때가 되었다고.
그리고선, 오래도 숨통을 조여왔던
때묻은 목줄을
풀어내 버리기로 한다.
안녕을 고한다.
목줄이
바람에 나부끼며
시야 밖으로 사라져간다.
너무도 오래 시달려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것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재가 되어 사라진다.
앞으로 당신이 사는 세상은
때로는 외롭고, 차가워서
온기가 그리워진 당신은
다시 예전처럼 남에게 목줄을 쥐어주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평생을 꽉 막힌 채 살아왔던 가슴께에서
바람이 구멍을
시원하게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은
한없이
자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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