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그래도
입추라고 바람이 분다!
오늘은 시험 하나 봤는데 졸릴까봐 쫄쫄 굶었더니 다 치고 나올땐 배가 너무 고픈거야.. 그래서 동네에 새로생긴 국밥집 들러 혼자 완뚝하는데 여긴 990원에 살얼음낀 막걸리 한잔을 내준다. 국밥에 이거하면 세상 부러울게 없음 정말너무 행복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
뜨끈한 편백순대찜도 무한리필에 전라도식으로다가 초장베이스 소스도 만들어먹을수있다 아따 근본이랑께

(든든해장국밥 선유도역점)
옛날에 본가(쌍도시골)에서 빈둥댈때 가끔
아빠가 일하다말고 점심때 후딱 밥먹자곤 했었는데
그렇게 둘이서 같이 국밥먹으러갔던 기억이 많이 난다. 자기가 데려와놓곤 다대기 넣는 나를 신기하게 보면서 아니 무슨 아가씨가 이런 메뉴를 먹냐며..ㅋㅋ 아저씨 당신이 저를 쌍도녀로 키웠잖아요! 그리고 국밥은 아가씨 메뉴야 이를 못즐기는자 어찌 레이디라 할수있겠는가
사실 그때의 내 최애는 국밥보단 시골식당 쟁반차림이었다 촌할배들이 야외석에서 뻐끔뻐끔 담배피우며 한잔 걸치는 그런집. 싼값에 엄청 푸짐하게 주는데 반찬 다 때려박고 비벼먹으면 존맛임 보통 장사잘돼서 반찬도 매일 새로하구 채소는 밭에서 바로 따오고 전부 음청 신선함ㅋㅋ 근데 어린맘에 괜히 무서워서 혼자서는 못가고 아빠졸라서 갔다.. 아 아빠보고싶다 이젠 혼자서도 잘갈수있을거같지만ㅋㅋ

(배달시키면 이렇게 쟁반에다가 신문지 덮어서 오는 집이었음ㅋㅋ)
와중 아빠의 아빠 그니까 울할아버지는
넘 점잖은 양반이었어서 그런 와일드한 시골식당에 날 데려가는걸 안좋아했다. 그는 나를 한떨기 꽃같은ㅋㅋ 아씨로 키우고 싶어했던거 같은데 그래서 (지금은 좃도 기억안나는)다도도 오랫동안 배우고 한복입고 서원 같은데 다니고 아 레이디수업 넘 빡쎄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근사한 신사셨다. 그는 은퇴 후에 나의 하원담당이 되었는데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날 아파트 입구까지 데리러 나오면서 항상 중절모에 양복을 갖춰입으셨음 한여름이고 한겨울이고 그 짧은 일정을 위해 말야
심지어 식사는 조선시대 스타일로다가 밥과 국과 찬이 갖춰진 상차림을 방으로 넣어드려야 잡수는 양반이었는데. 나 간식먹일때엔 손수 과일껍질을 까고 심지어 내가 싫어한다고 귤에 있는 흰부분까지 하나하나 제거해 잘먹는지 지켜봤다고..ㅠㅠ
왜냐면.. 제가 유일하게 이쪽성씨 고명딸+막내였거든요
그리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손녀딸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자기 머릿속에 어설프게나마 있는 이상적인 숙녀의 모습, 점잖고 고상한 레이디로 프린세스메이커하는 것이었던거같다ㅋㅋ

(집가면서 본 귀요미)
그래서 이런 기억이 떠오를때마다 가끔 궁금해짐. 할아버지가 오래 살아계셨다면 나는 다도와 한시를 즐기는 기품있는 아가씨가 됐을까?? 아님 오냐오냐해서 버르장머리 없는 안하무인 싸가지로 컸을까?? 혹은 쌍도집안 보수성에 질려서 일탈, (이런 일기장에 비속어 남발하는걸론 모자라) 아주 제대로 엇나가버리는 제 3의 인생으로??
어쨌거나 할아버지 나는 토요일 대낮에 혼자 식당에서 반주 걸치는 아가씨가 됐어ㅎㅎ 소싯적엔 제법 술을 즐기셨다는데 어쩌면 그걸 닮았을지도 모르지.. 그렇담 그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허기진 배에 채워넣는 얼큰한 돼지국밥의 맛을 그리고 살얼음낀 막걸리 한잔의 행복을. 한모금 홀짝일땐 아 내가지금 당신들이 선물해준 인생을 아주 기깔나게 즐기고 있구나 싶어 그러니 너무 뭐라하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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