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 원투 원투 체키라웃. 잘 들리시죠? (삐익- 하는 마이크 노이즈) 저기 뒤쪽 분들도요? 네, 감사합니다. 조금 떨리네요. 우리는 오늘 안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이 문장을 다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죠. (화이트보드에 적힌 글자를 가리킨다)
“흙 인형의 정수리에 한 줌 안개를 쏟아 놓은 일, 우리는 그 실수를 기리리.”
약간 황당한 이야기죠? 웃고 있는 분들이 보이네요.
볼리비아 알티플라노 지방에서 최근 발굴된 고대서적의 한 구절입니다. 은유적이지 않나요? 한국어 번역을 제가 맡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을 여는 의미로 적어봤어요. 우리의 내부가 축축한 이유, 영혼의 비밀이 바로 안개에 있다고 고대인들은 굳게 믿고 있었던 거죠. 단언컨대 이 강의가 끝날 무렵이면요, 우리들 역시 안개의 왼손을 잡고 퇴장하게 될 겁니다.

일급비밀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세요?
바로 ‘안개의 날’이랍니다. 엄밀히는 오늘을 포함, 1년 12달 365일, 지역에 관계없이 이 지구별에는 안개의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해서 기상청에선 늘 생략을 하지만요. 안개는 숨바꼭질을 좋아할 뿐, 언제 어디에나 있답니다. 물론 지금 여기에도요. 들어오기 전까지 해가 쨍쨍했는데, 웬 안개 타령이냐구요? 하하. 걱정 마세요, 안개의 편재성(遍在性)은 재론의 여지없는 사실이거든요.
이런, 그런데 왜 내게는 보이지 않는 걸까요.
안개가 워낙 투명해서? 타조처럼 훌륭한 시력을 갖지 못해서?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다만 안개를 보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뿐이랍니다. 노력, 참 어디에나 따라붙는 요구사항이지요?
여러분들은 모두 일반적인 안개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바다나 산, 호수 근방에 사는 분들은 그들을 자주 보시겠군요. 그러나 지금부터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런 안개의 기본형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정형화된 안개는 우리 인식에 코털만큼의 이해를 허락할 뿐입니다.
그 쩨쩨한 코털을 뽑아버립시다.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깨워, 이민 보냅시다. 고대 인디언들처럼, 점프하고, 소리 지르고, 모닥불 주위를 신나게 돌아다닙시다. (미소를 띤 채 강단을 왔다갔다 한다) 대체 단어들을 모두 삭제하세요. 제 이름을 잃고 떠도는, 가엾은 안개의 운명을 우리가 꿰매줍시다.
바람
입김
수증기
하품
물보라
베이비파우더
저녁 어스름
심포니
신기루
성운과 성단
...
이 모두를 <안개>라고 써진 검은 상자에다 집어넣으세요.
연기는 말라붙은 안개에 속하며, 성에와 서리는 얼어붙은 안개에 속합니다. 오로라는 극지방의 안개입니다. 여름날 스프링클러로부터 분사되는 안개는 무지개를 동반할 때도 있지요.
안개가 가장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비가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안개는 안개로서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자유를 더 선호하는 편이니까요.
아, 모두들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실 향(香)에 대해서는 학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다룰 텐데요. 후각적인 안개라고만 일단 메모해 둡시다.
참, 거미 역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겁니다. 거미의 꽁무니에서는 가느다란 실 형태의 안개가 방사됩니다. 그들은 안개의 명인들입니다.
너무도 많은 이름, 너무도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존재하면서도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닌 존재.

여러분은 여러 가지 기상현상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따지고 보면 기상현상이야말로 지구상 모든 생물의 '기분'과 가장 본질적으로 닮아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어요.
해가 뜨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주르르 내리는 비는 외로움을 불러오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마음 속 미적지근함을 흔쾌히 쫓아줍니다. 우연히 잠에서 깬 새벽, 소륵소륵 쌓여가는 눈을 보면 나의 고향은 꼭 빙하와 이글루가 있는 극지대였던 것만 같아 자꾸만 방구석에 놓인 여행 가방을 쳐다보게 되지요.
벼락과 돌풍을 동반한 태풍이 몰려오는 때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믹서기 속에 들어있는 야채들처럼 힘없이 날리고 짜부러지고 부서지는 광경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을 겁니다.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세계의 광포한 에너지. 그러나 이러한 광기조차도 우리는 이미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지 않나요? 형광등이 번쩍이고, 때로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면서 주위는 어둠에 단단히 먹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은 아니지요. 설령 갑자기 날아온 슬레이트 지붕에 행인의 상반신이 날아가 버린다 해도...
인간의 기분은, 대체로 지상의 날씨와 떼려야 뗄 수 없이 한 몸인 겁니다.

안개.
그러나 안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는 영원히 길 잃은 어린아이들입니다.
비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화창한 날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제3의 감정이 안개 앞에서 불현듯, 피어오릅니다.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일찍 채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방을 메고 문을 열어 거리로 나섰을 때, 당신은 안개가 사방을 포위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골목길 끝에서 끝까지, 익숙한 빌딩과 익숙한 버스 정류장과 익숙한 가게들의 간판은 안개에 지배 당해, 익숙함을 잊게 하고 이미 먼 곳에 도착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데려옵니다. 우리는 갑자기 우리 자신의 바닥에 안개가 깃들어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공간을 채운 이 불확실함이야말로 원래 우리의 얼굴이었다는 것을요.
여기는 과연 어디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누구이며, 누구였으며, 또 누구로 변해가게 될까요.

온갖 본래적인 질문들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존재로서의 안개는 때로 안락한 소파에 파묻혀 리모콘 재생버튼을 누르면 시작되는 7부 합창곡이기도 하고, 봄날 언덕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기도 하며, 열사의 사막에서 불어 닥치는 모래폭풍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개학은 이렇듯 인간 내면을 건드리는 안개의 특성을 ‘안개의 영혼성’이라 칭합니다. (화이트보드에 안개의 영혼성이라고 적는다)
이 성질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B. 친친나트가 있습니다.
친친나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며 교단을 서성거린다)
그 분은 안개값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고양되는지를 객관적 데이터로 입증하고자 평생을 연구에 바쳤지요. 연구업적은 물론, 삶의 궤적까지 아우른다면 그를 안개사(史)의 베토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아시다시피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생의 끝자락에는 문자 그대로 ‘벽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야말로 기적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벽 또한 안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퍼포먼스로서 말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역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이 퍼포먼스는 TV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방영 되었습니다. 그는 CG처럼 콘크리트 벽 속으로 자연스레 사라졌고, 전설이 되었죠. 그 후로 친친나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었다, 우주로 돌아간 것 뿐이다...... 새로운 형태의 메시아다, 물리를 부정하자...... 이번에도 미디어의 거대한 사기극이 행해졌을 뿐이다...... 친친나트의 사망설을 전면 부정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기다리는 종교단체마저 생겨날 지경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 동영상을 보신 분 있나요? 네. 생각보다는 많이 보셨군요. 역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안개라는 영역을 개척하고 탐사한 최초의 인류, 친친나트에 대해서는 2단원에 걸쳐 밀도 있게 다루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안개의 이곳저곳을 건드려보았습니다. 혹시 질문 있는 학생은 없습니까?
첫 시간이라 쑥스럽겠지만 궁금한 점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네. 저기 오른쪽 끝에서 손을 들었네요. 좀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학한 H라고 합니다. 친친나트에 관한 질문입니다.”
좋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교수님께서는 정말 그가 벽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리적으로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까 하는 것이 저의 의문입니다. 정말 어떠한 속임수도 없는, 순수한 사라짐이었을까요.”
솔직히 말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는 TV가 아닌 실제로 그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방송국에 몸담고 계셨거든요. 덕분에 저는 무대의 가장 앞쪽에서 두 손을 모으고 구경을 할 수 있었지요. 마침내 친친나트 씨가 커튼을 젖히고 사라진 순간! 진공 상태가 몇 분 간 지속되다가 드디어 방청객들과 스태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뒤쪽에서는 알 수 없는 괴성-가짜야! 모두 가짜라고!-이 들려왔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중년의 사내가 경비들에게 질질 끌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가짜야! 세계는 가짜고 미디어가 진짜다! 너희들도 전부 다 짜가짜가! 세계는 딱딱한 벽이라고! 어떻게 그걸 뚫지도 않고 통과할 수가 있어! 미디어를 찬양하라!”
“진정하세요, 국장님! 어서 안으로 모셔! 아니, 병원으로 모셔!”
“아싸, 미디어, 아주까리 동백꽃. 친친나트 빵꾸똥꾸~”
FD였던 저의 아버지가 허둥지둥 사태를 수습하고 있었습니다. 작가였던 어머니는 웅성거리는 방청객들을 달래고 계셨구요. 국장님의 싯뻘건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눈으로 보았지만 결코 믿을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인간의 머리는 이상해지기도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쩐 일인지 그 날부터 저는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실어증이 시작된 겁니다.
안개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벽은 또 무엇일까, 우리 인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15살짜리 어린애가 품기에는 너무도 거대했기 때문일 겁니다.
부모님은 말을 잃어버린 딸의 영혼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부모님은 화를 내기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셨지만 저의 입은 끼니를 먹을 때만 겨우 열리고 닫혔을 뿐, 실수로 단 한 토막의 음절도 흘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 손을 붙들고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셨고, 상담치료소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주셨으며, 때로는 무당을 찾아갔고, 무인도에서만 채취가 가능하다는 희귀한 버섯을 한 달이나 달여 주시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두 분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에 이르자, 가만히 지켜보자는 어머니의 조심스런 제안에, 아버지가 벌컥 화를 내고 집을 나가는 일도 있었지요.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딸을 향해 지긋이 미소를 보내주실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어머니는 굳건했습니다. 아버지는 며칠 후, 수염이 텁수룩한 얼굴로 우리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돌아오신 그는, 제 방문 앞에 서 계셨지요.
화분처럼,
일요일 오후
찬장에 놓인 매실 항아리처럼
저는 침대에 앉아 저의 일부인 아버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아버지의 일부인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부녀지간이 아닌, 한 인간과 한 인간이, 서로의 사이를 메운 안개를 바라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기상학 교과서에 실린 안개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안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요. 어쩌면 영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처음으로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입술이 달싹이기는 했으되 차마 모음과 자음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여 다만 우, 으, 으, 아, 하는 괴로운 음향만이 방 안의 안개를 흩뜨릴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어와서는 저의 이마를 짚어주었습니다.
우, 으, 으, 아...
우, 으, 으, 아...
그것이 따스함이었는지, 아니면 서늘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손길은 실어증에 걸린 제게는 그저 몇 만 광년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과 헤어지게 되면 도로 몸을 찾기까지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비록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 할지라도.
그러니 저는 분명, 운이 좋은 사람이겠지요. 어떤 우연에 의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지금 이렇게 많은 학생들과 안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날 이후로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우려처럼 남은 생을 벙어리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공감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진정한 저의 두려움은, 말하자면, 세계에 대해, 인간에 대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물과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정말로 할 말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말이, 얼어붙은 목젖과 혀를 녹여주기를 누구보다도 스스로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바닷가로 떠난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서야 친친나트의 뒷모습으로부터 저는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늦잠꾸러기인 제가 어째서 그 날만큼은 일찍 눈을 떴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커튼을 열어젖힌 저는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지금까지, 구름 속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해안가 절벽의 모텔이었을 뿐, 날짜 변경선을 넘고 있는 비행기에서 눈을 뜬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개였습니다. 미친 안개의 치맛자락이 굽이치고 있었으며 세상은 안개의 플라스크 속에 완전히 갇혀있었습니다. 폭설 다음날의 풍경처럼 놀라워서, 말을 잃은 지 오래였는데도 송두리째 할 말이 달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주 고운 빛 입자들 몇 개만이 날이 밝아오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끝없는 하양 속에서 꿈틀거렸으나 안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의 염통은 멎어있었습니다. 시계를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초침마저 안개 직전에 붙박여 버렸으리라 짐작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수평선 끝, 멀디 먼 새벽의 바다에서부터 손에 손을 잡고 안개들은 몰려왔겠지요.
저는 걸쳐 입을 윗도리도 없이 바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안개는 존재하기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더 좋아하는 족속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변으로 달려가는 저에게 콧속으로 눈으로 안개가 물밀듯 밀려들었습니다. 산소통을 울러 메고 심해로 뛰어내린 다이버의 심정으로, 그러나 산소통 하나 조차 챙기지 않고 온몸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기꺼이 안개가 되었습니다. 입을 벌려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양의 안개를 흡입하였습니다. 아무런 맛도 없었으나 너무도 청량했습니다. 그것은 친친나트 아저씨가 저에게 보내준 한 장의 거대한 엽서, 말없는 응답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무런 글자도 쓰여있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이것이 제가 열 아홉살의 생일날, 다시 처음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안개를 평생의 화두를 푸는 열쇠로 삼기로 하고, 기상학부터 시작해 온갖 학문들의 문을 하나씩 두드렸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안개도 돌아왔던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열쇠가 필요합니다. 언젠가 나타날 상자를 열 수 있도록, 아무리 힘들더라도 열쇠를 붙들고 있어야 해요. 그러면 먼저 그 길을 간 누군가가 일깨워주는 목소리가 들리게 될 겁니다. 어서, 그 열쇠를 사용해보렴. 하고 말이지요...
대답은 짧았으되 사설이 길었군요. H군, 충분한 답변이 되었나요?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수강 신청을 하실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안개학은 평생을 바쳐도 좋을 학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개략적인 설명으로 짐작이 가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안개학은 생각보다 범주가 넓고, 파고들 여지가 아주 많은 학문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렇지요.
안개 속에는 종교성과 철학성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 직관이라는 손가락에만 의지해 길을 나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 그렇지. 여러분은 이제 손가락 끝에 달린 눈을 뜨게 될 겁니다. 안개는 손가락으로 가장 잘 읽히는 영혼의 음각(陰刻)이니까요...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기가 ‘안개’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데려오세요. 지참할 수 없는 형태의 것이라면 다른 수단을 활용하시면 된답니다. 예를 들어 입김이라면 거울이나 유리병을 준비해 와야 겠지요.
결국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쩨쩨함’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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