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에 관한 이야기

박재호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동창생을 다시 만난 것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의 일이다. 우리 모두 시골 출신이었지만 녀석은 그 중에서도 잘 생긴 얼굴과 부유한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가 크게 벼농사를 지었고, 땅도 제법 많은 집이었다. 유명했고, 서른 즈음에 아주 예쁜 베트남 처녀를 만나서 가정을 꾸렸다고 들었던 것이 그 이후의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 시골을 떠나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돌아가지 않았던 나로서는 오랜만에 만난 그 녀석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너 진짜 오랜만이다. 녀석, 그 동안 잘 지냈지?”

반갑게 인사하며 내민 그 녀석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나는 응수했다.

뭐 그럭저럭.”

사실 주변의 소문으로 녀석에 대해 들은 것은 있었다. 예쁜 베트남 처녀와 육 개월도 안 되어서 이혼했다는 것도. 그 이후는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나 결혼한다. 이번에.”

재혼한다, 가 아니라 결혼한다, 라고 부러 말하는 녀석의 자존심이 조금 우스웠지만 일단 축하는 해주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리고, 아주 예뻐. 순수하고, 착하고, 흐흐. 돈도 좀 있고. 장인어른 되실 분이 서울에서 크게 학원 사업을 하시거든. 아주 유복한 집안 따님이라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주절주절 하는 녀석의 가벼운 입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마음 없는 대꾸를 계속 하는 내게, 녀석은 언제 준비했는지 청첩장을 내밀었다. 시간 되면 와 줘. 마을 회관에서 결혼할 거니까. 신부 될 사람이 부유한 데 비해서 마음이 소박해서, 우리 시골이 맘에 든다고 여기서 결혼하자고 하지 뭐야. 와 줄 거지?

 

 

그 청첩장은 나를 며칠 간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자꾸 떠올리게 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이제 내 나이도 오십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고향을 외면하고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그나마 가끔 연락을 하고 지냈던 동창 석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 재호한테 청첩장을 받았다고?”

. 갈까 말까 생각중.”

너도 오면 좋지.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보고.”

그 녀석, 신부에 대해서 자랑하던데 어떤 사람이야?”

 

석희는 자신이 들은 대로 말해주었다. 신부의 부모님이 서울에서 부유하게 사업을 하시고, 은퇴를 앞두고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려고 귀촌을 했다고. 그 계기로 우연히 재석을 만나서 서로 빠져들어 결혼을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시골 근처에 새로 생긴 신축 아파트에서 살림을 차릴 예정이고, 신부 측이 워낙 돈이 많은 집안이라 집까지 마련해 오는 거라고.

 

나는 건성으로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신부라는 여자는 알고 있을까. 재호에 대해서. 녀석이 왜 아리따운 베트남 처녀와 이혼했는지에 대해서. 왜 녀석과 그토록 친하게 지냈던 내가, 녀석을 피하기 위해 다시 시골로 돌아가지 않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일단락 시키기 위해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어느 날, 나는 낡은 중형차를 타고 내 고향이었던 시골로 향했다. 이제는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서 더욱 낯설게 느껴졌던 이 마을.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면서, 이 곳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조차 없는 곳. 예전 마을 사람들만이 붙박이처럼 늙어 가는 곳. 재호의 집 앞을 지나쳐가면서, 재호 아버지가 농사짓던 논 저 편의 창고에 시선이 갔다. 창고만은 새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예 헐고 새로 지었을지도 모른다. 죄를 감추기에는, 낡았던 흔적은 없애버리고 그 위를 하얗게 새로 덮는 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분명히 그 때 보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마을의 유지였던 재호의 아버지가, 돌봐주는 이 하나 없었던 어린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끌고 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그 모습을 나와 같이 목격했던 재호가, 얼마 간 방황하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그 여자아이를 끌고 창고로 들어갔던 모습도. 왠지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서 핸들을 꽉 잡았다. 녀석은 아리따운 베트남 처녀에게도 그런 짓을 했을까? 그래서 그녀도 도망갔던 게 아닐까? 이번에 결혼한다는 순수하고 부유한 그녀에게도 그런 짓을 했을까?

 

 

마을 회관으로 들어갔을 때, 재호는 새신랑답게 차려입고 부모님과 함께 하객을 맞고 있었다.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하는 재호의 부모님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분위기가 어쩐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부 측 자리는 비워져 있었고 하객들은 어쩐지 수군거리고 있었으며, 재호 역시 어딘가 당황한 기색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나는 다른 하객들과 함께 한 시간을 더 기다렸는데, 결국 신부는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부나 신랑이 참석하지 않는 결혼식이라니, 도시 전설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재호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뭣해서 자리를 빠져나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는 않았다.

 

마을을 빠져 나오며 나는 백미러로 내 옛날 고향을 멀찍이 바라보았다. 다시 찾아온 시골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익숙한 흙냄새와 다정다감한 넓은 땅. 눈을 감고 살았더라면 이 고향을 이렇게 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눈감아주었던 범죄를 고발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없었다.

 

 

며칠 후, 석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은 흥분해서 재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들었냐, ? 재호녀석, 완전히 맘고생해서 살이 쫙쫙 빠지고 난리도 아니야.”

신부가 결혼식에 안 왔던 거 때문에? 뭐 서로 안 맞는 게 있었나보지. 가끔 그런 일도 있다더라.”

무심하게 대꾸하는 내게 석희는 서둘러 대답했다.

서로 안 맞아서 파혼한 거면 다행이게? 아 놔, 진짜. 어쩐지 신부가 그렇게 부자라고 자랑을 하더라니.”

무슨 소리야?”

도시에서 사업 크게 한다던 사람들이 어쩐지 귀촌한답시고 갑자기 나타난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그 사람들, 다 사기꾼이었어! 번지르르하게 하고 나타나서, 외동딸을 시골에 시집보낸다는 핑계로 마을 사람들한테 접근해서 돈을 뜯어갔더라고.”

?”

제일 크게 당한 게 재호 녀석이야. 부모님 돈도 투자 핑계로 뜯어가고, 그 신혼 새 아파트 핑계로 재호한테 돈도 받아갔더라고. 신부가 사라진 게 문제가 아니지. 녀석 완전히 지금 앓아누웠어.”

 

전화를 끊고, 나는 얼굴도 보지 못했던 그 신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재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베트남 처녀에 대해서도. 그리고 한 때 내가 좋아했었던,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었던 그 초등학생 여자아이에 대해서도.

 

고소하다거나 잘 됐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 죄책감의 일부를 덜어 준 얼굴도 보지 못한 그녀에게 어쩐지 감사한 기분도 들었다. 그 때 그 상처받았던 여자아이에게도, 내 어린 시절에게도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기분.

 

 

작품 등록일 : 2018-09-04
순식간에 봄ㅋㅋ 딸라놓고 갑니당
과메기   
재밌당
영화 한편 본 기분
일어나보니 오후 2시   
와.. 대반전

진정언니 블로그에 추천된거 다 좋다
선우   
존잼
xo********   
60분짜리 영화 만들면 보러간다
히치콕 뺨치는 언니
rl*******   
잼있따
Jen   
대박 와 존잼이다
ca********   
정말 재밌게 읽었음
같은 공간,다른 시간   
와아
여우만만   
통쾌하다ㅋㅋ
yo*******   
굿
이렇게살다죽게내버려두세요   
와씨
tt*******   
돈줘따 언니야 잼이따!!!
bl********   
오씨 ㅋㅋㅋㅋㅋㅋ 상상도 못한 결말이넼 ㅋ 돈주고감
Life is wonderful   
대작이다ㅋㅋㅋㅋ진짜 개꿀잼
돈 충전하는법 알게되면 나중에라도 돈드릴게ㅋㅋㅋ마지막 진짜 시원함
tl******   
몰입도 최고
무도회장   
단편영화엿으면!
lu*********   
이거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로라   
진짜 꿀잼!!
pi*****   
와 이런 대작이 ㄸ
ja*****   
히야 잼다 ㅋㅋㅋㅋㅋ 잘봤서!!!
sk****   
처음부터 뭔가 이 시골에 드러운 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통수의 통수!!! 유튜브에서 스포일러 포함해서 영화 소개해주는 15분짜리 영상 하나 본 기분으로 재밌게 읽고 갑니다.
Maybe   
잘읽었어 재밌는 단편한권 읽은 느낌이야
10달러 주고간다
th****   
헉... 너무 재미있으면서 메시지가 묵직하게 강타하네요 잘 읽었어요 가진 달라 쥐꼬리만큼남은 거 다 드리고 가요
이런 반전이 ㄷㄷ 근데 통쾌
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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