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축가 이야기

권형은 친구의 대학 선배였다. 말이 선배지 같이 그들은 동거하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는데 동두천에서 캐나다로 유학온 동생 이군과 내 친구 신군 그리고 권형 셋이 삼총사 처럼 지냈다. 

 

권형을 처음 만났을때 궁금한게 참 많았다. 형은 4학년 졸업반 이였고 나는 건축과 지망생이였기때문에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했다.

 

그런 나에게 권형은 이상한 첫마디를 건냈는데..뭐랬더라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그런걸로 말이 될거라는 기대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스튜디오로 데려가 자기가 작업중인 과제물을 보여주더니 안토니오 가우디의 설계방식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해줬다. 

 

그날 삼총사네 집에 돌아와서 이군이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고 물담배를 피우며 권형 방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뒤지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것 없다를 발견하고 이들과 죽이 잘 맞겠군 했는데 그 외에도 이것저것 서로 비슷비슷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며칠동안 신나게 놀다가 헤어졌다. 

 

그 후로 별다른 교류는 없었지만..1년후에 어찌저찌 사정이 생겨서 오갈곳이 없을때 권형이 삼총사네 집 빈방 하나를 흔쾌히 내주고 월세를 나누기로했다. 

 

권형은 엄청 말수가 적은 사람이였는데 나는 더 말수가 적어서 나랑 있으면 권형이 수다쟁이가 됐다. 여가시간엔 권형 방 침대에 누워서 권형이 해주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맞장구 쳐주는게 낙이였는데 여자얘기가 한 95퍼센트고 나머지는 예술이랑 그림 건축 패션 영화 뭐 그런것들이였다. 

 

권형은 어매리칸 어패럴을 엄청 좋아했고 거기 모델들 사진을 감상하는게 취미였다. 옆에서 보면 정말 변태같았다. 어매리칸 어패럴 만든 사람 이야기도 많이 해줬는데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미학에 매료되어있는것처럼 보였다. 거기서 파는 스키니 진이며 속옷이며 양말까지 구입해서 입고다녔는데 정작 본인은 옷이 좋아서 입는게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진 철학에 기꺼이 나의 한 표를 주는거다! 라는 주장을 했다. 너도나도 힙스터였던 2000년대에 그 누구보다 힙스터들을 혐오하며 자신은 힙스터임을 부정하던 권형은 그 누구보다도 힙스터 정신에 충실한 힙스터였다. 

 

둘이 앉아서 낄낄대며 좋아하던 놀이중의 하나가 영화 장군의 아들 보면서 대사 따라하기였는데 그 마초스러운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와 의리의리 한 대사톤을 엄청 즐겼다. 그 외에 김기덕 감독 영화 보는것도 좋아했고 가끔 이군이 합류하면 김광석이랑 스티비 원더 음악을 많이 들었다. 

 

권형과 여행도 몇번 갔었는데 둘 다 몬트리올 여행하는걸 좋아했다. 권형은 또 프랑스 빠돌이였는데 어느날은 방에 프랑스 국기를 인쇄해서 벽에 붙여놓더니 야, 자유. 평등. 우애. 좋지않냐? 으하하하!!!! 했다. 동네 어디 프랑스말 가르쳐주는데 가서 프랑스 말도 배우고 마리옹 꼬띠아르 나오는 프랑스 영화를 자막없이 보면서 똥폼잡곤 했다. 

 

둘이 담배도 많이 피웠는데 한번은 권형이 야, 넌 이 유독가스 냄새가 좋냐? 하더니 겁나 맛있게 피웠다. 그 언행일치 안하는 모습이 너무 양아치 같아서 운동이라곤 해본적 없는 그 비실비실한 몸을 부러지게 패고싶었다. 집에선 피자를 일주일에 세네번은 먹었는데 저녁에 권형이 피자 사들고 오면 삼총사랑 방바닥에 앉아서 피자를 먹고 콜라를 마셨다. 이군이 감탄하면서 콜라를 맛있게 마셨는데 콜라향이 주는 원초적인 자극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했다. 그 외에도 우린 모이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생각을 나눴는데 주로 여자얘기를 많이했고 왜 여자란 예쁜것인가? 부터 시작해서 건축이야기, 자각몽과 사후세계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했다. 그러고보니 권형이 연필 잡는것부터 선긋는것 그림그리는것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줬다. 아 스승이여.  

 

몇번의 계절을 함께 보내고 우리는 헤어졌는데 가끔 친구 신군을 통해 권형과 이군 소식을 들었다. 권형은 어매리칸 어패럴이 망하고 난 후에 그 창업자와 연락이 닿아 엘에이로 가서 같이 회사를 다시 만들고 어떤 일본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L.A. 어패럴이라고 했는데 캐나다로 배송 되냐고 몇년만에 이메일 보냈더니 배송 되니까 16온즈 플리스 사라고 영업했다. 너무 비싸서 안샀다.

 

그렇게 건축이랑은 인연이 없나보다 했던 권형은 얼마전 어패럴 사업도 때려 치우고 텍사스에서 삼성과 반도체 공장 짓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의 뻔한 콘크리트 디자인을 좋아하고 알도 로시의 스케치를 동경하며 생긴건 마치 승효상 같았던 권형이 건축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이미지는 건축가 승효상, 엘르 코리아에서 가져왔습니다. 

 

작품 등록일 : 2023-05-11
글 넘. 좋다
di*********   
이오빠 글도 잘씀! 쿠쿠 잼나
fl**********   
오 재밌네
제목 없음   
저런 친구들이 있는게 부럽다
덕분에 과거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아
자몽   
재밌게 읽었음
Tap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