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점은 놀란 감독이 원래 상업 영화 감독이 아닌 비주류 예술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대표작들을 보고 있으면 “저 새끼 대체 뭐래는 거야 자긴 뭔 소린 줄 알고 만든 거야?” 이런 의심이 자주 듭니다. 지나치게 복잡한, 너무 무거운 주제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놀란 감독이라는 사람 자체가 그렇습니다. 햇살 가득 주류 감성과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는 지옥에서 올라온 어둠의 그늘남.
...아무리 놀란 감독 영화가 어둡다 다크하다 재미없다 병신같다 싶어도 이 사람 작품엔 한결 같은 주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장르를 넘나드는 수많은 다양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한번도 일관된 주제를 포기한 적 없었단 점은 예술 창작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뚝심입니다.
문학 관찰기: 메멘토 (시간순 편집)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연쇄 살인마입니다. 마누라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다니는 희대의 연쇄 살인마입니다... 이 영화는 그냥 시간 순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놀란 감독이 젊은 패기 예술병 걸려서 영화를 미친듯이 꼬아 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작품의 진가를 몰라 본 겁니다. 이 영화, 시간 순으로 정직하게 보면, 정말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서스펜스 (심리 스릴러) 영화가 됩니다.
문학 관찰기: 인썸니아
인썸니아(Insomnia, 2002)는 놀란 감독의 첫번째 메이저 영화 데뷔작입니다. 사람들은 걱정반 기대반이었죠. 놀란 저 새끼 아무래 또라이 같은데 대중 취향 메이저 영화를 똑바로 만들 수 있는걸까? 근데 만들었습니다. 똑바로 만들었죠.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논리정연 군더더기 없습니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나무랄 데 없이 깔끔담백합니다. 영화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했죠.
문학 관찰기: 오펜하이머
1)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으며, 2) 모두가 불행해지거나, 3) 모두가 죽어 버리는 다크 소울 엔딩.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고 당신이 매력을 느꼈다면 그건 놀란 감독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쌓아올린 "출구 없는 염세주의"의 금자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놀란 감독 염세주의 세계관의 화룡정점이었습니다.
문학 관찰기: 오디세이
놀란 감독 영화 주인공들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누구보다 정의로운 척 똑똑한 척, 올바른 척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치졸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는. 크리스토퍼 놀란 문학의 핵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 지금까지 본 모든 놀란 감독 캐릭터 중 오디세우스가 제일 위선적이고, 가장 가증스럽습니다. 호메로스 원작 오디세우스에는 없는 이 부분은 놀란 감독의 순수 창작입니다. 지난 25년간 이어온 놀란 창작 패턴의 일관성이 3천년 전 그리스 소설에도 재현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