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이 났다

 

 

이사온 지 한 달도 안 된

온통 낯섦이 지천에 깔린 집에 불이 났다.

 

주민들이 웅성 거렸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 타 버린 집과, 그을음으로 가득찬 집안의 물건들에 대한 상실감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나를 미치게 했다.

 

내가 불난 집의 그 주인이라는 것을 들킬까봐 잔뜩 쪼그라들었다.

피해를 끼친 근처 세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옥죄어왔다.

 

까맣게 그을린, 10년 이상 모아온 나와 가족의 손때가 묻은 것들의 흔적을 보는 기분이 이상했다.

특히 아이의 인형, 아이의 사진을 볼 때면 더욱 그랬다.

 

사고 원인은 인적 부주의나 고의성 발화가 아닌, 

제조상 결함이 있어 회수 명령이 떨어진 제품으로 인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나의 자책은 오래 갔고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피해를 제일 많이 당한 사람이 더 죄스럽고 수치심을 느끼는 이유를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됐다.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집은 깨끗하게 수리 됐고, 몇 달간 떠돌이 생활을 하던 가족들도 다시 안정적인 루틴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여전히 나는 이 곳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지금도 엘레베이터를 탔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층수를 누르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도 이제는 잠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있다.

 

아이 등원을 시키고 하원 후 일정도 잘 소화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가고 어느 정도 안면 튼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에 나는 정이 들어가겠지

 

나를 잠들게 하고, 조금이나마 식사를 할 수 있게 한 힘은

아파트 단체 보험에서 나온 일부 보상금도 아니고,

지자체에서 나온 구호 물품도 아닌,

 

나를 잘 모르는 동네 주민의 따듯한 인사였다.

청소하시는 여사님의 미소였고,

일부러 더욱 규칙에 맞게 정리하여 안고 간 분리수거 종이박스를 보고

칭찬을 해주시던 분리수거장 관리 직원이었다.

같은 유치원을 보내며 오다가다 몇 번 안면을 튼 어머님의 안부 인사였다.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일주일 간 좁은 원룸에서 세 식구가 자야 할 때가 있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이던 때, 이불이 한 장밖에 없어 난처했다.

담요 한 장 빌릴 수 있는 이웃이 떠오르지 않아 남편은 냉바닥에서 자다 고열에 시달렸다.

 

사고 수습과 아이 케어에 정신이 팔렸던 지라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생각을 못했다.

 

시간이 흘렀고

나의 합리적이지 못한 죄스러움도

신경증적 예민함도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타인의 따듯한 인사에 울컥하고 만다.

 

나는 정말 낭떠러지 절벽 위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따듯함을 구걸하고 있었나 보다.

 

사고가 났던 시기가 몹시도 추웠던 겨울 끝자락, 초봄이었던 이유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삶을 살아야지

씩씩하게 저작근을 움직이며 쌀알을 씹고,

불안이 차오를 때면 햇빛을 쬐며 무작정 다리 근육을 쓰며

하루 왼종일 걷다 지쳐

이불 속에서 생을 마감하듯 치열하게 눈을 감아야지

 

여전히 사고 트라우마가 일부 남아 있는

그렇지만 여전히 씩씩하고 잘 웃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기고 길러내야지

 

그렇게 씩씩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내게도 다시 소중한 친구가 생길 것이고,

언니 동생 친구 하며 집에도 초대할 용기가 날 수 있는 이웃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고 삶을 살아내던 중 돌이켜보았을 때

 

아 나 이곳에 정을 붙였구나

할 날이 올 것이다.

 

 

작품 등록일 : 2026-09-22
최종 수정일 : 2026-09-22
수고했다 괜찮을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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