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 몇년쯤 이였을거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갈릴레오는 조상중에 갈릴레오 라는 시조쯤 되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손재주가 좋아서 악기도 잘 다루고 이것저것 뭐든 만드는걸 좋아했다.
21세쯤인가에는 피사대학으로 의사공부를 하러 간다고 해서 아버지가 지원을 해줬는데, 의술공부는 안하고 기하학에 빠져서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르키메데스부터 파기 시작해서 물리학과 수학을 독학했는데 몇년후에 결국 다시 대학으로 되돌아간다. 교수가 되어서.
25세에 수학교수로 모교인 피사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학교측에서는 학술 가운의 상시착용이 근무조건이였다. 학술 가운 안입으면 뭐 덜떨어지냐? 불만을 가진 갈릴레오는 ’학술가운 착용에 반대하여‘ 라는 300줄이 넘는 디스 시 를 단테의 운율 테르차 리마 형식에 맞춰서 쓰고 동료들한테 퍼뜨리고 낄낄댔다. 내용은 - 따지고 보면 그냥 발가벗고 사는게 맞는거임. 벗어라 다들.
1600년 몇년가에 쓴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라는 책에는 심플리치오 (Simplicio) 라는 인물이 등장해 교회의 견해 - 천동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옹호한다. 심플리치오는 책의 결말에 이르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현상을 구현한다!” 라는 교황의 주장을 대변하는데 여기서 심플리치오는 단순 멍청이란 뜻. 그래서 교황이 멍청이가 되버린다. 재판소에서는 이 책이 ‘이단혐의가 짙다’ 는 이유로 인쇄를 금지시키고 금서로 지정한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충실한 제자들이 책을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네델란드로 밀수, 그의 유언과 같은 이 역작은, 몇년 후 케임브릿지 대학의 근로장학생 찌질이 아이작 뉴턴의 손에 들어가게된다.

갈릴레오는 망원경도 만들었는데, 발명한것은 아니고 네델란드에서 누가 렌즈를 이렇게 저렇게 해서 멀리있는걸 보이게 했다더라 라는 소문과 시중의 안경렌즈를 조합해서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했다. 렌즈는 유리를 깎아서 만들어야했는데 재주좋은 갈릴레오는 3배 4배 결국 20배까지 성능을 올린 망원경을 만들고 베네치아에 가서 ‘이걸 쓰면 저 멀리 오는 적을 미리 볼수있다!’ 고 영업한뒤 연구자금을 두둑히 챙긴다. 그렇게 여유가 생긴후로 밤마다 낭만을 즐기며 별과 달을 관찰했는데 달이 엄청 못생겼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하나님이 공동지배했던 당시의 세계에서 달을 포함한 모든 천체는 콤파스로 그린 원처럼 동그랗고 매끄럽게 빛나는 아름답고 완벽한 신의 작품이자 선물이였다. 갈릴레오는 “별의 보고” 라는 책을 내고 거기에 자기가 그동안 망원경으로 본것을 낱낱히 밝혀놓았는데 그걸 읽고 사람들은 충격받았다. 내가 내 눈으로 다 봤는데 뭐 어쩔래. 목성도 보고 금성도 봤지롱.


그렇게 밤바다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던 갈릴레오는 눈이 나빠져서 실명하고, 노년에는 교회의 감시를 피해 제자들과 책을 밀수출하는일에 전념하다 1642년 사망한다. 이단자라고 찍혀서 성당 구석에 방치되던 유해는 1737년 미켈란젤로 무덤 맞은편으로 명예롭게 이장되는데, 유해를 옮기던 미친 추종자들이 시신의 손가락과 치아 척추뼈들을 잘라간다. 이중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은 유리관속에 보관되어 세대를 거쳐 피렌체의 갈릴레오 박물관에 영구전시 되어있는데 z축으로 하늘을 향해 세번째 손가락을 올리고있다. 엿드세요.
실증과학. 말장난 그만해라. 나는 자연이랑 직접 대화하겠다. 실험도구 내가 만든다. 해보니까 되던데. 내가 보니까 지구가 돌던데.
퍼킹 배드애스 과학자. 갈릴리오 갈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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